나 혼자 올 마스터#123
“....후우.”
신과 악마들과의 만남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온 강혁은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뭐야? 괜찮아? 갑자기 기절해서 놀랐는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숨을 고르는 강혁의 곁에서 니아 아리엘이 놀란 얼굴로 강혁의 몸 이곳저곳을 주물럭거리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혁이 정색하며 니아 아리엘의 팔을 쳐냈다.
“멀쩡해.”
“....쳇, 좋은 기회였는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니아 아리엘의 모습에 강혁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쟤는 참 한결 같네.’
이제는 강혁조차도 눈치챌 정도로 노골적인 그녀의 손길은 강혁으로 하여금 경각심을 지니게 만들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순결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을 말이다.
아무튼 정신을 차린 강혁은 곧바로 다른 이들을 소집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오빠, 괜찮은 거 맞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드러내는 루카스 폴른과 기절했던 강혁을 걱정하는 한수연.
“흐음, 몸 상태는 정상으로 보이는데. 불편한 곳은 없으시죠?”
“괜찮은 것 맞나? 네가 다치면 나도 무사할 수 없으니....”
방금 전의 니아 아리엘과 같이 몸 이곳저곳을 살피는 엘리자베스 할론 그리고 강혁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자신의 안위 또한 함께 걱정하는 루터 할론까지.
‘다른 이들도 말은 안 하지만 비슷한 마음인 것 같고.’
그 뿐만 아니라 말을 하지 않은 다른 이들이 품고 있는 생각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음을 눈치챈 강혁은 말을 꺼내기 앞서 자신의 몸상태는 멀쩡함을 알렸다.
“난 멀쩡해. 그저 저번처럼 신들을 만나고 왔을 뿐이야. 이번에는 악마들도 있었으니 신과 악마들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신과 악마?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무슨 대화를 나누었지?”
하지만 강혁의 바램과는 달리 소란은 진정되긴커녕 더욱 커졌다.
신과 악마.
자신들의 주적과 다를 바 없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왔다는 강혁의 말이 불러온 파급력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과 악마에 대한 궁금증이 컸던 장 진의 물음에 강혁은 결국 한숨과 함께 그들과 있었던 이야기부터 모조리 털어 놓아야만 했다.
“그들은 저 괴생명체들이 자신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 막말로 만든 것만 그들이 아니고, 보낸 것은 그들일 수도 있지 않나?”
“뭐,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도 그건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저것들과 연관이 없어요. 다만 저들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손에서 만들어졌는지 정도만 알 뿐이죠.”
담담하게 대꾸하는 강혁의 모습에 장 진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신과 악마를 진짜로 본 것은 강혁 뿐이었고, 그가 하는 말 대부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강혁의 안목을 장 진은 믿었다.
‘그의 안목이라면 나 같은 뒷방 노인보다야 낫겠지.’
그가 아무리 강혁을 제외한 지구 제일의 헌터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강혁을 제외했을 때의 일.
눈앞에 강혁이 서 있는데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더 이상 비생산적인 얘기를 하기보다 앞으로의 일을 먼저 논하기로 했다.
“그래서 저들을 보낸 이들은 누군가?”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을 가장 먼저 낸 장 진이 자신의 생각을 굽히고 들어가자 다른 이들은 더 이상 그에 관한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조용해진 주위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 차례 숨을 고른 강혁은 자신이 들은 것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저들은 신과 악마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보낸 놈들이라고 하더군요.”
“....신과 악마들과 전쟁? 그런 존재가 또 있다고?”
신과 악마들만 하더라도 벅차기 그지 없건만 이제는 그들이 힘을 합쳐서 전쟁을 벌이는 이들까지 나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지 장 진은 허탈한 얼굴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 말이 거짓이길 바라는 모습이었지만 강혁의 고개가 저어지는 일은 없었다.
모두가 진실이라는 말에 장 진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당혹을 금치 못했다.
‘신과 악마. 둘 중 하나만 하더라도 강력하기 그지 없는 강적이건만....그들 말고도 또 다른 존재들이 있다니....’
‘과연 우리는 이 전쟁의 끝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절로 고개가 가로 저어지는 상황 속에서 모든 이들의 얼굴이 침울해질 때.
짝-
청아한 박수 소리가 그들을 일깨웠다.
일파만파 퍼져나간 박수 소리에 정신을 차린 그들의 눈앞에는 담담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강혁이 있었다.
“축 쳐져 있을 거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어차피 신과 악마는 우리의 적이었고, 거기서 고작 하나가 늘어났을 뿐이야.”
“....하지만 신적인 존재들이 하나가 늘어난 건 그들의 세력까지도 생각해야 돼. 마냥 하나라고 칭할 수는 없어.”
“그러면? 우리를 장기말로 보던 신과 악마와 손이라도 잡을까?”
“....”
서늘함마저 느껴지는 강혁의 답변에 그 누구도 쉬이 대답할 수는 없었다.
괴생명체를 보낸 존재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들과 자신들이 머문 세계를 장기말로 부리던 이들과 손을 잡고 싶은 이들이 있을 리가.
결국 답은 정해져 있는 셈이었다.
“싸워야겠지.”
“그거지.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손가락을 튕기며 루카스 폴른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강혁의 모습에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싸운다.
그것이 신이든 악마든 그들과 대적하는 정체 모를 적이든 이미 정해져 있었다.
“우선 그에 들어가기 전에 저놈들부터 정리해야겠지만.”
저 멀리서 사람들을 노리고 달려드는 괴생명체들.
그들을 가리키며 강혁이 포문을 열자 모든 이들의 고개가 동시다발적으로 끄덕여졌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모든 이들의 끄덕임을 바라보며 강혁은 자신의 날개를 펄럭이며 자리에서 날아올랐다.
“살아서 보자.”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말을 입에 담으며 강혁은 가장 먼저 도시를 어지럽히는 괴생명체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모습을 감추었고.
“그럼 우리들도 출발하도록 하지.”
“예, 강혁이 말대로 살아서 보도록 하죠.”
장 진의 말을 필두로 루카스 폴른이 그의 말을 받은 뒤, 다른 이들 또한 각자의 장기를 살리며 도시 내부로 진입했다.
*-키에에엑!
전신이 찰흙처럼 짓뭉개져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는 괴물의 비명 소리에 거리의 사람들이 귀를 막으며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귀가 안 들려.”
“엄마....아빠....어딨어....”
고막이 터져 귀에서 피를 주르륵 흘리는 이도 있었고, 부모와 떨어져 울상을 하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괴생명체는 자신의 거체를 움직이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크우어어!
히죽 웃는 듯한 찡그림에 거리의 사람들이 공포에 질렸다.
“헌터! 헌터는 어딨는 거야!”
“젠장, 죽고 싶지 않다고! 제발!”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 그들이 간절히 비는 것은 헌터들의 등장이었다.
저런 괴물들을 잡고 성장하며 그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
그들이 빨리 나타나 저 괴물을 여타 다른 괴물들처럼 잡아주길 간절히 바랄 때.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A조 진입!”
“민간인 확인, 적과 마주 했다. 교전 시작하겠다.”
“빨리 움직여! 놈들이 대비할 시간을 주지 마라!”
국방색 옷을 차려입은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자 헌터들.
그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국방색으로 물든 거리에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물론 그건 아주 잠시였다.
“....어? 공격이 안 먹힙니다!”
“그래도 쏴!”
“마법도 총도 아무것도 먹히질 않습니다. 이거 근접전으로 해볼까요?”
“젠장, 칼이든 뭐든 놈에게 먹여주란 말이다!”
국방색 옷을 차려 입은 헌터들의 공격이 제대로 괴생명체에게 닿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이들이 다시금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안색이 파리해진 시민들과 자신의 부하들의 모습에 대장으로 보이는 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위험하다. 놈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야. 적어도 S급....아니면 그 이상가는 헌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을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이냐....’
이미 도시 곳곳이 혼란에 빠졌고, 인원 또한 나누어졌다.
그 중에서 S급이 포함된 곳도 있는 반면 A급과 그 이하로 이루어진 곳도 많았다.
그저 평범한 몬스터와 몬스터 웨이브라고 생각한 것에 대한 패착이었다.
결국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는 모습에 그는 이를 악물면서 후퇴 명령을 내렸다.
“시민들을 데리고 후퇴해라! 근접 계열의 탱커들은 앞장 서서 놈들을 막고, 성직자들은 탱커들을 보호해!”
지극히 합리적인 후퇴 명령이었다.
공격은 먹히지도 않고, 슬슬 사상자마저 나올 것 같은 분위기.
후퇴는 당연했고, 그 방법 또한 나쁘지 않았다.
탱커들이 앞장 서서 고기 방패 노릇을 하고 성직자들은 그런 성직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각종 버프를 걸어준다.
최종적으로 완벽하게 시민들과 나머지 인원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는 완벽한 대비인 셈.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해는 속출했다.
쿵쿵쿵- 콰아아앙!
묵직한 거체를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괴생명체의 돌진을 막기엔 한국의 헌터는 너무 약했다.
정확하게는 괴생명체가 너무 강했던 것이지만 그걸 알기엔 상황은 너무나도 급박하게 돌아갔다.
결국 피해를 무릅쓰고 민간인들부터 구출하기 시작한 한국 헌터부의 대장은 피눈물을 흘리며 후퇴했다.
‘조금만 더 버텨다오. 시민들을 위해서다.’
자신이 직접 키우고 같이 전장을 거닐던 부하들이 픽픽 쓰러지고,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모조리 지켜보며 그는 다른 이들을 인솔했다.
“빨리 도망쳐야 합니다. 이곳은 너무 위험합니다.”
“아윽, 다....다리가....”
하지만 전장이나 다를 바 없는 곳에서 일반인들의 상태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다리가 접질린 이는 널렸고, 부러지거나 부딪쳐 넘어져 짓밟힌 이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는 민간인들의 모습에 그는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하들이 나자빠지고 있건만! 흐으, 빌어먹을!’
민간인들을 향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부하가 무력하게 당하고, 민간인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와중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대한 발로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 하는 소리라는 얘기.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간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몰살되어도 이상할 게 없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시민을 들쳐 업었다.
“아파도 참으십시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지 않습니까?”
“....네.”
눈물이 핑도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크워어어.
“....!!!”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는 어느새 괴생명체가 입을 쩍 벌린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이같이 기쁨이 가득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순간.
“고개 숙여요.”
“....!”
홱-
말이 들리기 무섭게 초인적인 움직임으로 고개를 숙이는 걸 넘어 허리를 숙인 순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퍼석-
자신의 눈앞에 있던 괴생명체의 상체가 박살이 나서 사라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 증거로 괴생명체의 거체가 천천히 뒤로 넘어갔고, 그 시체에는 상체가 없었다.
“지금부터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얼떨떨함에 정신을 못 차리는 그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든 순간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올 마스터시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올 마스터 이강혁.
그가 이 자리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