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22
“뭐야? 다들 나와 있었네.”
“방금 소란을 보고도 방안에 가만히 있을 사람은 적어도 우리 중에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하긴 그건 그렇네.”
창밖에 보이는 소란을 보자마자 바깥으로 뛰쳐나온 강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먼저 나와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친구들과 동료들의 모습이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으로 보이는 니아 아리엘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최강의 10인.
그들은 가장 10명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헌터로서 정점에 이른 이들이기에 시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크기도 했다.
무엇보다 하늘 위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게이트와 몬스터들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이들이 아니기도 했고.
“대체 저놈들은 뭐야?”
-키에에엑!
괴성을 내지르며 사람들을 향해 내려꽂히는 괴생명체들의 모습에 강혁은 한숨을 토해냈다.
10년 가까이 되는 헌터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생명체의 모습.
무지는 곧 두려움을 불러오기 마련.
막강한 능력과 신체를 가지고 사람들을 학살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놈들의 모습에 강혁과 다른 이들은 짙은 혐오감을 느꼈다.
“....저것도 신과 악마들이 우리 때문에 내려보낸 건가?”
루카스 폴른의 질문에 다른 이들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신과 악마.
그들은 언제나 꽤 고아한 것들로 그들을 공격했다.
게이트를 연다거나, 아니면 인세에 퍼뜨려 놓은 자신들의 신도들을 바탕으로 공격을 펼친다거나 하는 공격 말이다.
“근데 저건 좀 아닌데?”
마치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키메라와 같은 모습.
이것저것 뒤죽박죽 섞인 놈들의 모습은 여태까지의 신과 악마들이 보여준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얼굴 위로 의문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할 때쯤.
찌릿-
강혁은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부여잡으며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긴장해라. 놈들이 교신을 보내고 있으니까. 아마 곧 저번과 같은 곳으로 이동하게 될 터. 놈들의 격에 무너지지 마라.
“....선전포고 이후에 교신이라 뭔가 이상하긴 한데....일단 알았다.”
갑작스레 혼잣말을 하는 강혁의 모습에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
인사를 끝으로 강혁의 정신은 어디론가로 빨려들어갔다.
*웅웅웅-
아무런 배경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운 우주와 같은 세상 속에서 강혁은 눈을 떴다.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았지만 강혁은 이곳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여긴 그때 거긴가.”
제우스를 비롯한 각종 신들과 만난 적이 있던 바로 그 장소.
그곳에서 다시금 눈을 뜬 강혁은 곧바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신들을 찾았다.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놈들은 이미 널 지켜보고 있어.
“....관음증 환자들 같으니.”
그것도 잠시 이미 신들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분노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노의 말을 듣고 보니 감각에 잡히는 시선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쳐다보고 이제 나오지 그래?”
-....슬슬 나갈 생각이었다.
귀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서 직접적으로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강혁은 마른 침을 삼켰다.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남이지만 처음도 그렇고, 두 번째인 지금까지도 신들을 비롯한 아직 만나보지 못한 악마 모두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왜 날 여기로 데려온 거지?”
그렇지만 껄끄러운 것과는 별개로 강혁은 자신을 이곳으로 다시 부른 신들에게 당당하게 나섰다.
그리고 그런 강혁의 반응에 허공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서울에 나타난 괴물들은 우리들이 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들이 한 것도 아니지.
맨 처음에 들렸던 목소리와 달리 조금 낮은 목소리가 순차적으로 강혁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처음은 신일 거고....그럼 두 번째 목소리는 악마인가?’
-맞을 거다. 내가 아는 신의 목소리 중에서 저런 신은 없으니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럼 정말 신과 악마가 한 짓이 아니라는 건가? 확실히 이상하긴 했는데....’
괴생명체들은 분명 이상한 부분이 많았고, 신과 악마들마저 자신을 불러 아니라고 의견을 피력하는 상황.
강혁도 이쯤 되면 정말 신들이 그 괴물들을 지구로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너희들이 아니라면 그 놈들은 뭐지?”
그렇기에 강혁은 대화를 택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 그들 전부를 상대로 승리를 따낼 수는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무엇보다 서울에 나타난 괴생명체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아야 제대로 싸울 수 있다.’
전투.
그걸 위해선 정보가 선행되어야 했고, 신과 악마들은 그 정보를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로 밝혀졌다.
-....놈들은 우리의 주적이 부리는 하수인이니까.
신들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뭐? 주적?”
주적.
주로 상대하는 적을 일컫는 말.
하지만 강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신과 악마에게 서로를 제외하고 주적이라고 부를만한 상대가 있다고?’
신과 악마.
절대적인 존재들에게 서로를 제외하고도 주적이라고 부를만한 존재가 있는지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도 않았기에 강혁이 멍하니 생각할 때.
재차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놈들은 태초의 어둠에서부터 태어난 존재들. 우리 또한 그들을 알게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수백 년 정도였지.
-그들의 존재를 알게된 이후, 우리는 악마들과 영원에 가까운 협약을 맺었다.
하나가 아닌 듯 여러 개로 갈라퍼지는 목소리 속에서 강혁은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신과 악마. 두 상반된 존재들이 왜 저들끼리 해치지 않는 협약을 맺었는지 이제야 알겠군.’
괴생명체.
아니, 정확하게는 그들을 조종하는 그 뒤의 배후를 두려워하고 상대하기 위해서 손을 잡은 것이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길래 콧대 높은 신과 악마들이 제 안위를 걱정하여 손을 잡게 만든 건지 심히 궁금한데.’
신격을 쟁취해낸 태초의 존재들.
그들이 본인들의 안위를 걱정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존재들은 대체 누구인지 강혁은 알아내고 싶었다.
다만 지금 중요한 건 그들이 누구인지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궁금증을 꾹- 짓누를 뿐이었다.
“....지구에 나타난 놈들. 그놈들이 무슨 존재들인지부터 말해.”
-놈들은 멸망의 씨앗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빨아먹고 양분으로 변화하여 제 주인들에게 가져다가 바치는 놈들이지.
“너희들이랑 다를 바는 없을 것 같은데.”
교단과 악마교를 들먹이며 비꼬는 강혁의 말에도 신의 목소리는 묵묵하게 자신이 할 말을 내뱉었다.
-그들을 방치한다면 전 지구는 놈들의 영양분으로 화할 것이고, 우리도 미련 없이 이곳을 버리게 되겠지. 뭐, 네 녀석은 그걸 두 눈 뜨고 지켜보진 않을 테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냥 꺼져.”
-안타깝지만 꽤 공을 들인 곳이라서 우리도 투자한 수익은 받아야 하지 않겠나?
마치 장사치처럼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에 강혁은 진심으로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에 겁 먹을 존재는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놈들을 상대해주길 바라는 건가?”
-애초에 네겐 선택지가 없다. 그놈들은 네가 동료랍시고 데리고 다니는 놈들 정도가 아니라면 막아낼 수 없는 재앙. 네놈이 나서지 않는다면 지구는 멸망이다. 그걸 원한다면 가만히 있던가.
비아냥거리는 신의 목소리에 이번에는 강혁이 흔들렸지만 그 또한 신들과 다르지 않게 꾸욱 참아냈다.
여기서 대거리를 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놈들의 약점은?”
-먹을 것을 노리고 달려드는 놈답게 식욕에 약하다. 먹을 걸로 유인하면서 잡는 게 가장 좋겠지.
“....기각, 거기서 먹을 건 사람들이잖나.”
-잘 아는군. 하지만 그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
“닥치고 다음으로 넘어가.”
인간을 미끼로 전투를 치룰 생각 따윈 없는 강혁이기에 이를 악문 상태로 씹어뱉듯이 말을 하자 신의 목소리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힘으로 찍어누르는 거다. 멸망의 씨앗이라곤 하나 그들도 생명체. 더 강한 힘 앞에서는 덧없이 무너지는 것이지.
“너희들처럼?”
-....그래, 아무리 신이라도 더 큰 힘과 신격 앞에선 무릎을 꿇는 것처럼 놈들도 다르지 않다.
덤덤하게 강혁의 비난을 받아 넘기면서 신은 자신의 할 말을 끝마치곤 입을 닫았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우주의 방안에서 강혁은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할까?’
괴생명체들.
그들은 분명 강력한 존재인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떤 신이 말한 것처럼 다른 일반인을 제물로 그들을 몰이사냥을 하는 게 더 많은 이들을 위해서 필요한 일일지도 몰랐다.
끊임없는 생각과 고뇌 속에서 발버둥치던 그때.
-네가 생각하는대로 따라라. 어떤 게 더 이득이고 손해고를 따지는 게 아니라. 네가 생각하고 원하는대로 움직이란 말이다.
분노의 목소리가 마치 찬물을 머리 위에 뿌린 것처럼 시원하게 강혁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래, 난 내가 하던대로 하면 그만이지.”
중얼거리며 제 뜻을 피력한 강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우주의 한 켠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너희들이 내 손을 빌려 놈들을 처리하고 나아가 그 뒤에 놈들까지 처리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둬라.”
-....
묵직함이 담긴 목소리가 우주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신들과 악마들은 그에 대한 응답을 하지 않을 때.
강혁의 마지막 한 마디가 우주를 가득 채웠다.
“너희도 내 손에 뒤진다는 것을.”
-....무엄한 놈.
짜증과 경멸이 담긴 목소리가 머리 속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강혁은 개의치 않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목소리가 불러온 두통을 털어냈다.
“나중에 보자. 저놈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뒤에 너희들까지 죽이러 갈 테니까.”
-....힘을 합쳐야 한다. 네놈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지만 그놈들 전부를 상대할 순 없어!
-맞아, 우리는 네게 필요악과도 같다. 개인적인 마음은 접어두고 우리와 함께 해라. 그게 너를 위해서도, 네 세상을 위해서 옳은 일이다!
자신을 설득하려는 듯한 여러 목소리들의 파도 속에서 강혁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중지를 들어올렸다.
“X까. 그게 옳은 일이든 틀린 일이든 너희들이랑은 절대로 함께 움직이지 않아.”
-크하하핫! 그래! 그래야 네놈답지!
털털한 분노의 목소리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끼며 강혁은 어느새 자신의 등 뒤에 생겨난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다음에 볼 때는 대화가 아니라 무기를 휘두르자고. 그게 우리 사이에 걸맞는 일 아니겠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를 끝으로 강혁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우주의 방 안에는 고요만이 가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