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111
방심.
사실 방심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것이 아레스의 시선이 끌리는 건 방심해서가 아니라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아프로디테가 왜 여기에?’
아프로디테.
아주 오래 전.
아직 색욕과 아프로디테가 하나였을 시절.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연인의 관계였다.
그것이 불륜의 관계였다지만 둘에게는 다를 게 없는 생활.
‘....못 본지 오래 되긴 했지.’
신이라고 해서 인간과 다를 건 없다.
사랑을 하고, 몸을 섞고, 결혼도 하니까.
그의 아버지 제우스도 헤라라는 여신과 결혼하여 그들을 슬하에 두었으니 그가 아프로디테와 만나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얘기.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오랜만에 보는 아프로디테의 모습에 순간 강혁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설마 아프로디테에서 알 리가 없는 강혁이 환영을 보일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런 생각은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비웃음을 던지는 아프로디테, 아니 색욕의 말에 의해서 산산조각났다.
“바~보. 내가 네 애인으로 보여? 머리 속도 근육으로 가득찬 멍청이 같으니.”
“....어?”
자신을 놀리며 이죽거리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그제야 아레스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색욕!”
“정~답! 근데 이를 어째? 상품을 준비하진 못했거든.”
활짝 미소를 지으며 깐족거리는 아프로디테의 모습에 아레스가 발끈하며 주먹을 다시금 내지르려던 찰나.
“어딜 보는 거야. 네 상대는 나다.”
“....! 이놈!”
자신이 한 눈을 판 사이, 어느새 자신의 곁에 다가온 강혁의 모습에 아레스가 이를 갈며 주먹을 내질렀다.
이미 멈춰 있던 상태로 뻗어지는 만큼 온전한 힘이 실릴 리가 없었지만 상대는 신.
콰과과곽-
어마어마한 풍압과 함께 내질러지는 주먹은 결코 멈춰선 상태로 다시금 뻗어진 주먹이라곤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눈앞에 둔 강혁의 선택은 간단했다.
탁-
“....피해?”
가벼운 보법으로 주먹을 부드럽게 피해냈다.
여태까지 피하긴커녕 흘리는 것도 벅차하던 강혁의 모습과 180도 다른 모습에 아레스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거구나. 인드라가 말했던 그거. 네 녀석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있구나. 고작해야 필멸자 주제에....”
“아카식 레코드 말하는 거지? 미안한데 난 참 쉽게 쓸 수 있는데 넌 그런 것도 못 쓰고 신 맞냐?”
“....열린 입이라고 잘도 나불대는 구나. 어디 언제까지 그 입을 놀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이를 악물고는 재차 주먹을 내지르는 아레스의 주먹을 여유롭게 피해내며 강혁이 주먹을 내질렀다.
쾅!
“....크으.”
주먹을 막기 위해 팔을 X자로 교차하며 강혁의 주먹을 막아낸 아레스는 신음과 함께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강혁의 주먹은 제대로 닿지 않기에 그에게 위협적이지 않았던 것이지 제대로 맞는다면 아레스 본인조차도 피해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다만 그게 닿지 않았기에 여유로웠던 것이고, 그게 닿은 순간 아레스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아카식 레코드. 그 빌어먹을 지식의 보고의 힘을 빌리다니. 하지만 고작 그걸로 내 공격을 피할 수는 없을 텐데?’
아카식 레코드.
접속을 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정보로서 보게 해주는 특별한 지식의 보고.
누가 만들었는지는 신과 악마조차 알지 못하며 그들의 정보 또한 존재하는 기괴한 곳.
그 누구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으며 그 안의 정보를 파기하는 건 있을 수 없 정도.
하지만 아카식 레코드의 힘은 딱 그 정도다.
모든 정보를 알게 해주는 것.
공격의 궤도, 능력, 파괴력 등.
모든 정보를 주지만 딱 그것밖에 주지 않는다.
공격의 궤도를 볼 동체 시력, 공격의 능력을 흘려보낼 기술 등.
그것들은 온전히 아카식 레코드의 접속자가 감당해야만 했다.
‘....저놈의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지만 내 주먹을 보고 피하거나 할 정도는 아닌데.’
아카식 레코드로 공격의 궤도를 읽은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공격을 피해냈다는 사실에 아레스는 이를 악물었다.
‘....여유가 없어졌군.’
더 이상 자신이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라는 걸 느낀 그가 이를 악문 상태 그대로 강혁을 향해 쇄도했다.
“빨리 가자. 눈 아파 죽겠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달려드는 아레스를 바라보며 눈가를 살짝 짓누르던 강혁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레스를 죽이기 위한 발걸음이 떼어지는 순간이었다.
*“저게 다 뭐람.”
“....진짜 신인가. 허, 말이 안 나오는군.”
가장 먼저 몬스터들을 처리한 장 진과 니아 아리엘은 폭음이 울려퍼지던 백사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펼쳐지는 전투의 모습에 그들은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허허로이 웃음을 머금고 있던 장 진마저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들의 전투를 지켜볼 정도였으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그들의 시선이 강혁과 아레스에게 닿아 있을 때쯤 속속들이 다른 이들도 백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이미 백사장을 가득 채우던 모래들은 모조리 모습을 감춘지 오래였지만 말이다.
“지금 저거 김승태 맞죠?”
“맞는데 아니야.”
한수연의 물음에 니아 아리엘은 고개를 내저었다.
생김새는 승태와 똑닮았지만 그 내용물은 결코 그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비단 반신의 격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닌 전력을 다하고 있는 강혁과 싸우는 데에도 비등을 넘어선 우위를 점하는 모습이 그가 승태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증거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럼?”
“신이겠지.”
“....!!! 도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신이라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강혁을 가리키며 도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에 니아 아리엘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떻게? 지금 우리가 뭘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이 친구의 말이 맞네. 나조차도 저기서 돕는다는 건 솔직히 장담할 수 없어. 오히려 저 친구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야.”
“....어르신까지 그렇게 말하시면 오빠는....”
천하의 검성마저 앓는 소리를 하자 수연의 안색은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
전신에 상처가 가득하고 휘청이기까지 하는 강혁의 모습은 분명 위태로워보였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녀석은 분명 괜찮을 테니까.”
“....발터 씨.”
걱정을 감추지 못하는 수연의 옆에 발터 밀란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내려앉았다.
최고의 암살자다운 몸놀림이었지만 수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표정 변화 없이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발터 밀란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
“강혁이 저 녀석이 패배한다는 생각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부끄럽지만 나도 저 녀석을 이기는 모습이 상상이 안 가거든. 여태까지 그래왔고, 이번에도 그럴 거야.”
평소 즐겨피우는 시가를 입가에 가져다대며 중얼거리는 발터 밀란의 말에 수연은 떨떠름한 얼굴로 핀잔을 던졌다.
“거꾸로 물고 계시는데요.”
“....젠장, 쪽팔리는군.”
불을 붙여야 하는 부분을 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는 듯이 허둥지둥 시가를 바꿔 무는 발터 밀란을 바라보며 수연은 그저 이해한다는 듯이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 마음 이해해요.”
“아니, 이건....그게 아니라....하아, 그래. 나도 걱정 된다. 걱정 돼. 저 녀석이 저렇게 고전하는 건 처음 보니까.”
시뻘겋게 전신에 피칠갑을 하고 이미 피로 물든 주먹을 내지르는 강혁의 처절한 모습은 발터 밀란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
하지만 점점 전투가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발터 밀란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끼곤 코를 감싸 쥐었다.
“....감기에요?”
S급 헌터를 넘어선 이가 감기라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말을 내뱉는 수연의 말에도 불구하고 발터 밀란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니아 아리엘을 비롯한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거 우리 물러나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우리 보고 강혁이를 버리고 도망이라도 치자는 거야?”
금방이라도 자신의 멱살을 붙잡을 것 같은 니아 아리엘의 모습에 발터 밀란은 주춤대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위험할 수도 있어서 하는 말이야.”
“위험? 우리가 아무리 전투에 도움은 못 되어도 전투의 여파에 휩쓸려서 위험할 수준은 아니지 않아? 발터, 네가 그리 겁이 많은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하아, 그게 아니라니까. 이거 진짜 위험하다고!”
물고 있던 시가조차도 바닥에 내팽개친 채로 발터 밀란이 성을 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점점 주위는 위험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아무리 나라도 불가능한 일이야. 오직 저 녀석만이 가능한 일이지.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가 물러서는 게 맞아.’
주변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는 것.
그건 발터 밀란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때마침 전투를 하던 강혁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는 것을 느낀 발터 밀란은 강혁을 바라보았고, 강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한 강혁의 모습에 발터 밀란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안 가십니까? 방금 강혁이 저를 보고 고개를 까닥였습니다. 그게 뭘 의미하는 것 같습니까?”
“가지.”
“할아범!”
“그럼 여기서 죽치고 있을 건가? 슬슬 다른 친구들도 오는 것 같은데 계속 여기서 구경이나 할 거라면 말리지 않겠네.”
“....으윽.”
할 것도 없이 여기서 농땡이를 피우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에 니아 아리엘은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한숨과 함께 두 손을 들어올렸다.
“갈게. 가면 되잖아. 젠장. 만약 강혁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절대. 절대 없을 거다. 오히려 우리가 여기에 있으면 강혁이 녀석이 더 제대로 싸우지 못할 거다. 지금 녀석이 준비하고 있는 한 방은 그런 한 방이니까.”
“....좋아, 그거 절대 잊지 마라.”
발터 밀란이 한 말을 한 자 한 자 곱씹던 니아 아리엘이 거칠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백사장과 정반대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건물 몇 개를 넘어서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에 발터 밀란은 한숨을 내뱉으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우리도 가죠.”
그렇게 강혁에게서 멀어지며 다른 이들 또한 함께 데리고 멀리 떨어지는 순간 발터 밀란은 나지막히 백사장을 맴도는 ‘무언가’의 이름을 읊조렸다.
‘....넘버링 20. 결국 그걸 쓰는구나.’
자신의 역작임과 동시에 자신이 넘지 못한 통곡의 벽.
넘버링 20.
요르문간드의 독과 그의 걸작이 합쳐져 만들어진 독.
그 독이 강혁의 용혈과 합쳐져 부산 앞바다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조차도 간신히 파악한 독의 살포에 혀를 내두르며 그는 몸 안에 남아 있던 독기를 태우기 바빴다.
‘살아서 보자. 그리고 다시 볼 때에는....만독불침을 얻었겠구나.’
자신이 얻지 못한 것을 얻어낸 친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뒤, 그는 도주에 온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