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110
전신이 타들어 가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는가?
강혁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젠장, 피부가...!’
승태가 있던 자리에서 터져나오는 기파에 강혁의 전신 피부가 타들어간다.
용광로에 들어가도 멀쩡한 피부가 녹아내리는 현상에 강혁은 이를 악물며 마기와 신성력으로 피부를 뒤덮었다.
신룡체의 드래곤 스케일마저 녹여버리는 힘은 전율적이었으니까.
-저게 진짜 신이다. 정확하게는 화신이지만.
‘....하, 괴물 밖에 없구만.’
-저놈이 특별한 거다. 녀석은....
분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강혁은 어느새 자신의 코앞에 도달해 있는 승태의 모습을 보곤 곧바로 본능적인 가드를 올렸다.
쾅-!
하지만 가드와는 별개로 X자로 교차한 팔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을 온전하게 막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뒤로 몸이 날아가며 나머지 충격을 흘려낸 강혁은 폐허가 된 앞바다를 굴렀다.
“하! 하핫! 고작 그걸로 신에게 대적했는가 멍청한 필멸자여!”
“....저거 김승태는 아니지?”
-말하지 않았나? 저건 화신체라고. 김승태라는 놈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그 정도 되는 이의 모든 것을 갈아서 화신체가 된 거다. 저건 김승태가 아니라 전신(戰神) 아레스다.
“....아레스? 그럼?”
“그래! 내가 네 녀석의 목을 취할 전신 아레스다!”
파앙!
그의 외침과 동시에 터져나오는 기파의 강력함을 느낀 강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기파에 담긴 힘은 강혁이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강력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우스와 인드라보다도 더 강해. 아니, 정확하게는 거의 온전한 상태의 신이 이 정도 격차라는 거겠지.’
신.
화신에 불과하다곤 하나 강신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힘의 격차에 강혁은 저게 진짜 ‘신’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직까지 악마들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강혁은 긴장했다.
‘저런 놈들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거지? 장난 아니네.’
아레스는 신 중에서도 특출난 존재인 걸 감안하더라도 문제는 컸다.
주신급도 아닌 이가 저 정도라면 주신급의 화신체 혹은 본체라면 얼마나 강력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을 한둘도 아니고 수십 명 넘게 처리해야 한다는 건 강혁으로서도 아득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할 일이겠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건 확정이었고,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고단하든 강혁은 그걸 뛰어넘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붙어보자.”
“흐하핫, 좋다! 좋은 장난감이로군.”
씨익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는 승태, 아니 아레스의 모습에 심호흡과 함께 강혁은 주먹을 말아쥐고 그에게 쇄도했다.
아직 신룡체가 유지 되고 있을 때가 강혁에게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거 풀리면 진짜 답도 없다.’
신에 가까운 신룡체 상태에서가 아니라면 아레스를 상대할 방법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카식 레코드라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최후의 최후까지 미뤄둬야만 했다.
‘....그건 진짜 리바운드가 너무 강해.’
신체에 한계 초월을 사용할 경우 전신이 박살이 나는 듯한 리바운드가 온다면 아카식 레코드의 경우에는 그 반대였다.
전신이 아닌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한 번 격어 보았지만 다신 겪기 싫었던 고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강혁은 곧바로 아레스에게로 쇄도했다.
‘여태까지 쌓아온 것들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자신의 주먹이 신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쾅쾅쾅-
주먹 한 번 한 번이 내질러질 때마다 폭탄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울려퍼진다.
당연하게도 그 폭음의 진원지는 아레스였다.
“....컥!”
“고작 그거냐! 필멸자의 한계다! 신에게 대적한 필멸자의 최후에 어울리는구나!”
아까 전 승태를 몰아붙이던 강혁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물론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는 게 에러였지만 말이다.
‘젠장, 신과 나의 격차가 아직 이 정도였나.’
화신.
고작해야 본체도 아닌 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여 방심한 게 큰 패착이었다.
아니, 애초에 방심하지 않았더라고 한들 바뀌는 건 없었으리라.
‘확실히 전신, 투신이라는 신명이랑 부합하는 강함이야. 신룡체로는 어림도 없겠어.’
고작해야 한계 초월로 잠깐 돌파했을 뿐인 신체.
당연히 본래의 신격을 온전히 발휘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마당에 화신체와의 전투는 어쩌면 강혁의 패배로 귀결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렇게 져야 하나?’
패배는 곧 죽음이다.
화신체가 작정하고 강혁을 쫓는다면 이제 와서 도망친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으리라.
무엇보다 잘 도망친다고 한들 지금 부산에 있는 다른 이들은 어찌하는가?
그들은 강혁만큼 빠르지도 날래지도 않다.
그나마 장 진은 어찌어찌 몸을 뺄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짝-
너덜너덜해진 두 팔로 양볼을 두들기며 정신을 차린 강혁은 두 눈을 부릅떴다.
아직 패배하지도 않았건만 패배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웃겼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싸움에서 진 개마냥 쫄아 있었다고 이러고 있냐, 이강혁 멍청한 녀석아.’
속으로 자기 자신을 타박하며 생각을 정리한 강혁은 한층 맑아진 머리로 자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이대로 가면 무조건 져.’
신룡체를 최대한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무난하게만 흘러가도 신룡체는 해제될 거고, 그러면 패배는 확정인 상황.
‘생각하자. 생각. 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녀석을 이길 수 있는 방법.
과연 내게 그 방법이 있는가? 하는 생각에 잠기면서 두 손을 바삐 움직이며 아레스의 공격을 쳐낸다.
나아가 발 또한 손에 뒤지지 않게 움직이며 재빠르게 공격을 피해낸다.
그러기를 수십 차례.
등 뒤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입안이 바짝 마를 때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나한테 맡기는 게 어때?
고혹적인 목소리.
색욕의 목소리였다.
갑작스레 색욕이 나타나자 강혁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네가? 네가 어떻게?’
-다른 신이라면 몰라도 아레스라면야....내가 전문이지.
만약 그녀가 눈앞에 있었다면 방금 말을 내뱉으며 씨익 웃음을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말해봐. 들어나 보게.’
무언가 생각이 있기에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강혁에게 그녀는 차근차근 자신의 계획을 늘어 놓았고.
-그러니까....
색욕의 계획을 잠자코 듣던 강혁의 입가에는 슬그머니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좋아, 한 번 믿어볼게. 준비 되면 말해.’
-물론이지! 나만 믿으라고! 대신 이번 일이 끝나면 나랑....
‘조용히 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 들려는 색욕의 말을 자르며 강혁은 여유로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레스를 노려보았다.
반격의 시작이었다.
*‘재밌다, 재밌어.’
신계에서의 생활은 단조롭기 그지 없다.
그나마 재미있는 건 인간계를 둘러보며 그들이 발버둥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뿐.
악마들과의 계약을 한 뒤로 그들과의 전투가 사라진 탓에 유일한 취미가 인간들이 발버둥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 있으니 아레스로서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 괴물들과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겠지만 필멸자 정도야 화신체로도 가뿐하지.’
괴물들.
악마들과 계약을 맺고 휴전 협정을 맺게 된 가장 큰 존재들.
그들의 강함은 일반적인 신과 악마의 강함을 뛰어넘었다.
그렇기에 그들과의 전투는 전신, 투신이라고 불리는 아레스일지라도 두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필멸자인 강혁은 아니었다.
‘인간 주제에 곧 있으면 신격을 얻을 정도라니 정말 재밌단 말이지.’
종종 인간들 중에서 반신들이 나오고 거기서 더 낮은 확률로 신격을 발아하는 이들 또한 등장한다.
그것이 아레스는 너무나도 좋았다.
‘그런 놈들이 있어야 내가 이런 유희도 즐기는 것 아니겠어?’
화신으로서 지상에 내려오는 일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자존심 강한 신이나 전투적인 능력이 없는 신은 화신체로 강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신에게 반기를 들거나 밟아둬야 할 반신이나 신격이 나타날 경우 대부분 아레스를 비롯한 전투 계열 신이 도맡았다.
그리고 바로 오늘, 강혁을 잡는 데에 아레스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
그 사실이 아레스는 너무나도 기뻤다.
‘역시 직접 부딪치며 싸우는 게 최고라니까.’
그가 괴물들이라고 명명한 존재들과의 전투는 무조건 원거리에서만 이루어지기에 근접 계열 전투를 선호하는 아레스에게는 무척이나 불리했다.
주먹을 내질러서 기파를 내보내는 게 아레스가 할 수 있는 원거리 공격의 전부였으니까.
물론 창을 던지거나 할 수도 있었지만 그거나 그거나였기에 별 차이는 없었다.
그가 괴물들과의 전투를 꺼리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재미도 없고, 위험하기만한 전투.
그가 딱 질색하는 전투였다.
하지만 강혁과의 전투는 아니었다.
“재밌어. 역시 약한 놈이랑 싸우는 게 최고라니까!”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릴 정도로 그는 지금 이 전투가 마음에 들었다.
목숨은 위험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상황.
아무리 화신체라도 죽게 되면 본체에 큰 타격을 입고 심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지만 그는 그런 걱정 따윈 일체하지 않았다.
“아쉽다, 아쉬워. 벌써 놀이가 끝이라는 게 참 아쉬워.”
자신의 강함을 믿고, 자신이 강혁보다 위라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방심은 당연했다.
압도적인 강자.
신과 인간이라는 그 격차가 그에게 방심을 일으켰으니까.
놀만큼 다 놀았다고 생각한 그가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차며 마지막 일격을 날릴 준비를 했다.
“끝이다, 필멸자.”
짧은 말 한 마디와 함께 그가 땅을 박차는 순간 그의 신형은 어느새 강혁의 앞에 도달해 있었고.
강력한 힘이 집결되어 있는 그의 주먹이 뻗어지는 순간.
강혁의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 나왔다.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무언가에 아레스가 움찔했지만 이내 생각을 정리하곤 그것을 깨부수려 했다.
“....아프로디테?”
“안녕? 자기?”
요염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손을 살랑살랑 흔드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갑작스레 나타난 아프리디테(색욕)의 모습에 그가 당황하면 멈춘 사이.
“지금이야.”
색욕의 신호가 떨어지고.
촤라라락-
강혁의 몸을 감쌌던 신룡체가 해제 되며 비늘들이 제 모습을 감출 때쯤.
강혁의 입이 열렸다.
“한계 초월. 그리고 전투 예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
아카식 레코드에 이은 전투 예지.
그와 동시에 세상이 정보로 가득 차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강혁의 몸이 아레스를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