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09
“....컥!”
뭐지?
승태가 강혁의 주먹을 맞는 순간 들었던 생각이었다.
알 수 없는 파괴력.
분명 자신이 알던 강혁을 상회하는 파괴력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물론 강해질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가 아는 강혁은 세상 누구보다 빨리 강해진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너무 차이가 나잖아!’
방금 맞은 주먹은 여태까지 알던 강혁의 강함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 사실에 승태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지만 거기에는 씨익 미소 짓고 있는 강혁만이 자리 잡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어딜 봐? 지금부터 시작인데.”
“이강혁!”
“그래, 내 이름 이강혁 맞아. 그리고 너를 오늘 쳐죽일 이름이기도 하지. 기대 되지 않아? 벌레처럼 무시하던 내 손에 네가 결국엔 죽는다는 게. 그때는 놓쳤지만 이번엔 놓치지 않아. 용용아.”
“응!”
“마나 뿌려.”
“알겠어!”
푸화아악-
강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위로 용의 마나가 흩뿌려진다.
닿는 것만으로 마법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텔레포트 같은 공간 이동 마법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하는 용의 마나.
그것을 본 승태는 치를 떨었다.
“내가 도망갈 것 같으냐!”
“어, 이미 한 번 도망친 녀석이 말이 많아.”
“....큭.”
전적이 있기에 승태는 결국 이를 악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승태의 힘은 진짜였다.
쾅!
발을 한 번 구르는 것만으로 백사장이 폭발하듯 터져나가고 금빛의 모래 알갱이가 주위를 수놓게 만드는 능력.
그것이 승태에게는 존재했다.
당연하게도 그런 승태의 힘을 예상하고 있던 강혁은 뒤로 살짝 물러나는 것만으로 그걸 완전히 피해냈다.
이윽고 모래사장의 모래가 거의 사라질 정도의 지형 변화가 일어난 뒤에야 승태는 강혁을 향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넌 오늘 죽는다!”
“벌써 몇 번째 그런 얘긴지 모르겠네. 오늘 안에 끝나긴 해?”
“닥쳐라!”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떠는 승태를 바라보며 강혁은 표정을 지웠다.
여태까지의 도발과 미소는 모조리 가짜라는 듯이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던 강혁은 이내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중얼거렸다.
“내가 누굴 살리고 그러는 위인은 아니지만 막무가내로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은 아니거든? 오늘 너한테 죽은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모른다, 오직 내게 집중해라. 이강혁!”
“3142명. 짧은 시간인데 벌써 이만큼이나 죽었어. 분명 네가 직접 죽인 사람도 있지만 네가 끌고 온 몬스터들로 인해서 저만큼이나 죽은 거다.”
3142명.
그 어마어마한 숫자는 지금도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자칫 했다간 1만이라는 믿을 수 없는 단위까지 오를 지도 모를 상황에서 강혁은 옅은 한숨과 함께 주먹을 말아쥐었다.
강혁의 의지를 따라 신룡체의 드래곤 스케일이 착- 하고 강혁을 감쌌다.
드래곤 스케일 특유의 강철과도 같은 단단함과 서늘함을 동시에 느끼며 강혁이 땅을 박찼다.
파앙-
얼마 남지 않은 모래들이 주위로 비산하며 강혁의 신형이 승태에게로 쇄도한다.
“우리 악연도 길었다. 이제 끝내자, 승태야.”
“이강혀어어어억!”
덤덤하게 대꾸하는 강혁과 분노를 토해내듯 말을 씹어뱉는 승태의 모습이 참 웃겼다.
누군가 본다면 복수하는 대상이 강혁이 아닌 승태라고 생각될 정도로 둘이 보이는 모습은 극명하게 갈렸으니까.
하지만 이 전투의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는 승패였다.
둘 다 그걸 알았고, 그렇다고 해서 멈출 생각 따윈 없는 전투.
‘....내가 죽어도 그가 이강혁을 죽여줄 거다. 그래, 그거면 된다.’
그저 자신의 최후를 알고 있음에도 승태는 자신에게 힘을 준 그가 강혁을 죽여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자신의 신체와 영혼 그 모든 걸 갈아 바쳐서라도.
*쾅-
백사장 쪽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에 수연의 고개가 홱 돌아간다.
“....오빠는 괜찮겠지?”
심상치 않은 기파의 근원이 어딘지 정도는 수연 정도 되는 헌터라면 당연하게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즉, 강혁이 간 백사장에서 강렬한 기파가 터져나온다는 건 그만큼 격렬하다는 얘기.
걱정이 안 되려고 해도 안 될 수가 없는 상황.
하지만 이어져 터져나오는 일반인들의 비명 소리에 그녀는 정신을 다 잡았다.
“딴 생각은 나중에 하고 사람들부터 구출하자.”
자신 말고는 다른 이들이 부산에 왔지만 몬스터 웨이브의 규모가 역대급인지라 그들도 제 할 일을 하기 바쁠 터.
여기서 자신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큰 피해로 연결될 거라는 사실을 깨닫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을 위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가자.”
굳센 다짐과 함께 이내 수연의 신형이 자취를 감추고 시민을 덮치던 몬스터들의 머리통이 날아가며 피보라가 불었다.
*콰릉-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할 겁니다.”
자동 방범 기능을 갖춘 실드 안에서 사람들을 들여 놓은 뒤, 이어진 루카스 폴른의 말에 사람들은 감사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부산.
서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도시라는 이름이 허명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루카스 폴른의 실드 안에서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알아서 다가오는 몬스터들만 번개를 떨구며 공격을 하는 자동 방범 실드.
오직 루카스 폴른만이 만들 수 있는 천혜의 요새 안에서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바깥의 상황을 본 루카스 폴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끝도 없군.”
밀물처럼 밀고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몬스터들.
거기다가 그들의 끝에 존재하는 거대한 덩치의 몬스터는 평범하지 않음을 온몸으로 피력하고 있었다.
강렬한 기파를 뿜어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그의 모습에 루카스 폴른은 실드 밖으로 몸을 빼내었다.
방어는 절대 완벽하지 않으며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저놈을 여기 앞까지 데려다 놓으면 실드가 깨진다.’
자동 방범답게 매크로 같은 성능을 자랑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취약했다.
일정 수준 이하의 몬스터는 해일처럼 몰려들어도 막을 수 있지만 강력한 한 방을 지닌 몬스터나 보스급의 몬스터라면 종잇장처럼 실드를 찢어발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실드에서 나서지 마십시오.”
“....”
단호함마저 깃든 루카스 폴른의 목소리에 시민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만을 끄덕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선망 어린, 혹은 두려움 어린 시선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크워어어어!
“네 상대는 나다.”
자신을 바라보며 포효를 터뜨리는 몬스터를 향해서 말이다.
*“다른 곳도 장난 아니군.”
“대체 할아범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건지 신기하네.”
“자네도 나처럼 될 수 있으니 걱정 말게나.”
“....그런 의미로 물어본 건 아닌데.”
멀리 떨어진 동료들의 상태를 훤히 꿰뚫고 있는 장 진의 말에 니아 아리엘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물론 말과는 달리 장 진의 기감 등을 동경하여 내뱉은 건 사실이었지만.
대화를 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차분했다.
가장 몬스터 웨이브가 밀려 들어오는 상황 속에서 둘은 단 두 명이서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막아냈다.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영웅이라도 칭송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뭐, 당장 백사장에서 가장 강력한 적과 맞상대하는 강혁이 존재했기에 그들의 칭송이 퇴색되긴 했지만 그래도 둘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없으리라.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강혁이 간 백사장 방향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폭음 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장 진보다 기감이 약한 그녀마저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축포에 가까운 폭음에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할아범! 봤지? 봤지? 강혁이가 이겼어!”
강혁의 승리.
그걸 확실시하는 폭음에 그녀는 뛸 듯이 기뻐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퍽-
가죽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몬스터 한 마리의 머리와 몸이 분리가 되며 주위에 흐드러졌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앞선 수십,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개박살 났기 때문이다.
분명 좋은 일이고, 니아 아리엘처럼 환호할만한 일이지만 장 진의 표정은 어두웠다.
“끝일지 시작일지는 지켜봐야겠지만....늙은이의 눈으로 보기에는 끝이라기보단 시작같군.”
“....? 그게 무슨 소리야, 할아범. 시작이라니. 이건 분명 끝나는 소리라고. 그리고 생체 반응도 사라졌는데?”
“그러니까 시작이라는 게지.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나 다를 바 없으니. 빨리 정리하자꾸나. 도와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겠어.”
“....대체 뭐가 벌어지려는 거야. 또 빙의인가?”
신의 빙의.
지금의 니아 아리엘로서는 장 진이 걱정하는 부분은 그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강혁이 빙의한 신과 상대로 승리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상처 가득한 승리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승리는 승리.
그걸 장 진도 분명 알 텐데 걱정하는 이유를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고작 빙의 따위가 아닐지도 모르니까 하는 소리다.”
“....그럼?”
“어쩌면 지구에 최초로 신이 강림할 지도 모르겠구나.”
“....!!!”
전신에 오소소 돋는 소름.
강림.
그 한 마디의 여파라고 보기에는 무척이나 대단한 일이었다.
무신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니며 모든 이들을 격파하고 다니던 그녀가 고작 말 한 마디에 소름이 돋는다?
그녀를 아는 이들이라면 거짓말하지 말라며 웃음을 지었을 터.
하지만 강림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들의 반응도 180도 달라질 터였다.
“....빨리 움직이자고, 할아범.”
“난 이미 그러고 있네만.”
껄껄 미소를 짓는 장 진의 얼굴에도 여유로움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바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구.
그것도 대한민국의 부산 앞바다에서 신이 강림할 것이라는 생각에 두 사람의 손속은 점점 빨라져만 갔다.
*“끝.”
정적.
부산 앞바다에 내려앉은 것의 정체였다.
방금 전까지의 폭음과 폭발은 거짓이라는 듯이 주변은 고요했다.
하지만 강혁의 앞에 무릎을 꿇은 승태와 그 주위만큼은 방금 전 폭발의 잔해로 가득했다.
백사장의 모래는 흔적도 없이 녹아사라지고 그 자리에 존재하는 흙바닥을 넘어선 돌바닥.
그런 돌바닥에 뻥 뚫린 크레이터 안에 자리 잡은 승태의 시체 같은 모습을 바라보며 강혁이 입을 열었다.
“고작 이거냐.”
“....!”
울컥-!
자신의 모든 걸 갈아냈음에도 강혁에게 닿지 못했다는 사실에 승태는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고, 결과적으로 답은 정해졌다.
패배.
‘젠장젠장젠장젠장!!!!!’
속으로 아무리 욕을 하고 떼를 쓰더라도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승태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마치 패배를 승낙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강혁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프지 않게 보내주마.”
그가 승태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라는 듯이 중얼거리며 뻗은 손에 서서히 마기와 신성력이 뭉치며 하나의 커다란 구 생겨났다.
거기에 담긴 막대한 기운은 능히 반신도 일격에 쳐죽일 만큼 대단했으니 승태의 끝은 정해진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큭....크크크....”
돌연 들려오는 승태의 웃음 소리에 강혁은 그런 그를 미친 놈처럼 바라보았다.
패배에 실성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느껴지지 않는 그의 모습에 강혁이 그를 바라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해? 아니. 안 끝났어.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지.”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꽤 악취미 같은 농담인데.”
전신이 아작이 난 상황.
설사 개미가 오더라도 짓누르지 못하는 상황인데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강혁에게 농담처럼 들려왔으리라.
하지만.
쿠구구구-
“....!!!”
갑자기 증폭되는 승태의 모습에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과 동귀어진을 준비하는 줄 안 강혁은 방어 상태를 굳혔고.
-멍청아! 빨리 죽여!
분노의 일갈에 깜짝 놀란 강혁이 순식간에 방어를 풀고 돌진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내 손으로 직접 못 죽이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푹-
마지막 유언과 함께 승태의 손이 자신의 가슴팍을 뚫고 들어가 자신의 심장을 뽑아들었다.
이윽고.
펑-
자신의 손으로 심장을 부숨과 동시에 그의 입이 살짝 열리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계약 이행이다.”
-크하하하핫!
그와 동시에 부산 앞바다에 울려퍼지는 정체 모를 남성의 웃음 소리와 함께.
쿵!
신이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