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108
“한층 더 괴물이 되었구나, 이강혁.”
“넌 그냥 괴물 같은데.”
물에 퉁퉁 불어 있는 승태의 모습을 보며 강혁은 비웃음을 아끼지 않았다.
강혁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욕적인 말에 승태는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괴물 같은 모습이긴 하지. 하지만 이 모든 건 널 죽이기 위해서다. 이강혁.”
“할 수 있으면 해 봐.”
부산 전역을 뒤덮을 정도로 막대한 신성력과 마기.
그걸 강혁이 흩뿌린 이유는 간단했다.
너와 나 사이의 격차가 이 정도다. 라는 걸 두 눈으로 보게 만들어준 것.
하지만 그런 격차를 보여줬음에도 승태는 겁 먹지 않았다.
이 경우에 강혁이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
‘이 녀석이 포기를 했거나 이 정도로는 겁도 안 난다는 거겠지.’
참으로 쉬운 이지선다에 강혁은 한숨과 함께 주먹을 말아쥐었다.
“어차피 더 할 말도 없는데 빠르게 끝내자고.”
파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질러지는 주먹이 순식간에 승태의 턱을 후려친다.
묵직함과 함께 홱- 하고 고개가 돌아가는 승태의 모습을 보며 강혁은 곧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빡- 빠각-
이격, 삼격.
점점 늘어나는 공세 속에서 승태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가드를 올리고 강혁의 공격을 막는 것 뿐이었다.
‘....빠르군, 확실히 괴물이긴 해. 내가 당했던 게 이해가 될 정도로.’
예전 서울 강남에서 자신이 패배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는 그는 이를 악물고 공세를 견뎌냈다.
신의 힘을 받은 그의 신체는 무척이나 튼튼했고, 공격을 흘리기만 한다면 크게 피해도 없었기 때문이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주먹질이라는 소나기 속에서 그는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우드득-
뻗어지는 팔을 붙잡고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꺾어버린 것이다.
팔이 망가지는 고통에 강혁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뒤로 뺐다.
팡-
뒤로 몸을 뺌과 동시에 발차기를 날리며 견제를 하는 것도 잊지 않은 채, 뒤로 물러선 강혁은 혀를 찼다.
‘힘이 발군이네.’
우득-
망가진 팔을 그대로 꺾어 본래의 위치로 교정한 뒤, 신성력으로 치료한다.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이 진행되고, 강혁의 망가진 팔은 언제 다쳤냐는 듯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멀쩡해진 상태에서 강혁은 살짝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미약하지만 신의 힘이 스며들었다. 녀석이 신과 관련이 있는 건 이제 확정이군.’
망가졌던 팔에서 느껴진 미약한 신의 힘.
그건 곧 승태가 신과 연관이 있음을 알리는 확실한 증거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자체적으로 신격을 이루어 반신 정도의 힘을 이뤘을 수도 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나랑 싸울 때까지만 해도 반신 끝자락에도 못 오던 녀석이 팔다리가 다 잘리고나서야 반신이 되었을 리가 없지.’
깨달음이라는 말은 무색과도 같았다.
중요하지만 반대로 중요하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었다.
더군다나 사지가 잘린 상황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만약 얻더라도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반신에 오를 수 있겠는가?
분노? 복수? 그런 건 신격을 얻는 데에 하등 필요하지 않았다.
‘뭐, 내가 가진 분노와는 궤가 다르긴 하지만.’
강혁에게 있는 것처럼 칠죄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분노라면 모를까.
결국 승태의 힘의 근원을 파악한 강혁은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리며 미소를 머금었다.
“빌어먹을 놈들한테 빌어먹을 힘을 받아먹었구나, 김승태.”
“....그게 중요한가? 넌 오늘 여기서 죽을 텐데 말이야.”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라지만 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는 법이야.”
짧은 도발.
하지만 굵직한 도발이기도 한 강혁의 말에 흥분한 승태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콰드드득-
백사장이 터져나가며 그 사이에서 뛰쳐나오는 수십여 개의 강철 창.
그것도 예전 스파르타의 전사들이 쓸법한 창들로 이루어진 창의 덫 앞에 강혁이 움찔했다.
‘일반적인 창이 아니야.’
하나 같이 신의 힘 깃들어 있는 ‘신살’을 담고 있는 창들.
아무리 강혁이라지만 신의 힘을 지니고 있기에 저건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공격이었다.
결국 강혁은 이를 악물고는 자신만의 신격을 틔워냈다.
쾅!
강혁의 주먹에 담긴 신성력이 터져나가며 그 안에 담긴 신격과 신성력이 뒤섞여 창의 바다를 깨부쉈다.
후두둑 무너져 내리는 창의 바다 속에서 승태는 아까 전의 강혁과 마찬가지로 이격, 삼격을 준비 중이었다.
콰드드드득-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는 창들의 모습에 승태는 노선을 바꾸었다.
여러 개보다 하나의 집중하기로 말이다.
거대한 한 자루의 강철창.
당연하게도 거기에 깃든 강력한 신격은 아까 전 창의 파도에 담긴 신격보다 강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잘한 거 여러 방보다는 큰 거 한 방이 낫지?”
“물론, 그런데 그것도 자잘한 거 아니야? 너무 미약한데?”
“....곧 죽어도 허세는.”
수십여 개의 창에 담긴 신격을 창 한 자루에 담았으니 당연히 그 신격의 크기가 클 수밖에.
승태에게 주어진 신격의 대부분이 때려 박아진 강철창이 강혁에게로 쏘아졌다.
더 이상 창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한 거대한 로켓 같은 강철창이 쇄도해오는 걸 확인한 강혁이 몸을 날리려던 순간.
“피해도 되겠어? 네 뒤에 뭐가 있는 줄 알고?”
“....하, 이 쓰레기 새끼. 몇 달 전만 해도 인류의 영웅이라고 불리던 새끼가 이런 짓을 벌여?”
자신의 뒤를 가리키며 씨익 미소를 짓는 승태의 모습에 고개를 돌린 강혁은 이를 갈았다.
부산 해운대 앞을 가득 메우는 인파와 건물들.
만약 이 창을 피한다면 강혁은 멀쩡하겠지만 저기 모여 있는 이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터.
결국 강혁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콰드드득-
모래로 이루어진 백사장에 발을 박아 넣고 자세를 잡는다.
절대로 창 따위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기백을 보여주는 강혁의 모습에 주위가 요동치고 나아가 대기가 떨려온다.
오싹-
‘저 녀석 진심이군.’
창을 던진 승태조차 오싹할 정도로 강혁의 기세는 대단했다.
그리고 그런 기세 속에서 강혁의 방어는 완성 되었다.
“와라.”
모든 준비가 끝나고 완벽에 가까운 상태에서 강혁이 손끝을 까닥인 순간 쏘아진 강철창이 강혁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흡....!”
전신에 있는 근육들이 한 올 한 올 풀렸다가 이내 다시금 더욱 쫀쫀하게 꼬이고 꼬인다.
마치 꽈배기처럼.
수십 번의 꽈배기질을 반복한 끝에 다다른 단단하디 단단한 근육들이 폭발적인 힘을 내기 시작한다.
거기에 마나가 근육의 힘을 증폭하고 마기는 거기에 파괴력을 더하며 신성력은 거기서 파생되는 충격을 흡수하고 회복한다.
그리고 그런 강혁의 손에 날아든 강철창이 붙잡힌다.
꽈아아악-
쫙 편 손의 손가락이 강철창의 끝부분을 파고든다.
어마어마한 악력.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철창은 멈추지 않았고, 서서히 강혁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한 걸음, 두 걸음.
이윽고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의 코앞까지 닿을 정도가 되었을 때야 걸음이 멈추었고, 바로 그때 승태가 움직였다.
“넌 그게 문제야. 제 주제도 모르고 남들을 구하려고 하는 멍청한 모습. 정말 꼴 보기 싫단 말이지.”
듣는 이로 하여금 짜증이 나게 하기엔 충분한 목소리.
하지만 강철창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강혁으로서는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입을 열었다간 힘이 빠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대꾸 없이 얼굴만 붉히는 강혁의 모습에 승태는 이를 갈며 강혁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퍽-
가죽북 터지는 소리와 아주 흡사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강철창을 붙잡고 있던 강혁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다행히도 강혁이 쥐고 있던 강철창은 바다에 풍덩하고 빠졌지만 강혁 본인은 무사하지 못했다.
“쿨럭!”
붉은 피를 토해내며 백사장을 붉게 물들인다.
방금 전 일격이 심상치 않았음을 의미하는 증거였고, 나아가 강혁이 승태에게 한 방 먹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런, 천하의 이강혁이 그렇게 무시하던 내 손에 한 방 먹었군 그래?”
“....너무 간지러워서 닿은 줄도 몰랐는데 공격 했었나?”
“바다에 던져 놓으면 주둥이만 둥둥 뜰 놈 같으니.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콰과과과과-
승태의 손으로 모여드는 막대한 힘.
정통으로 막게 된다면 정말 죽을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의 집합체가 승혁의 손 위에서 타오른다.
그리고 그런 원형의 파멸구를 저 멀리 있는 시민을 향해 승태가 전속력으로 던졌다.
쐐에에엑-
마치 화살이 쏘아지듯 파공성을 내뿜으며 날아가는 원형의 구를 바라보며 승태가 웃음을 터뜨렸다.
“또! 또 가서 되도 않는 영웅 노릇이나 해 보아라 멍청한 놈 같으니!”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유쾌하여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승태의 모습에 강혁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안 되겠네.”
“그래, 포기해라. 너의 나약함으로 인해 시민들이 죽는거다, 이강혁!!!”
포기하는 듯한 강혁의 말투가 마음에 드는 듯 한껏 들뜬 목소리의 승태를 바라보며 강혁은 짜증 어린 시선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한계 초월.”
언제나 강혁에게 든든한 조커 카드가 되어주었던 한계 초월이 다시금 사용되고, 강혁의 신체가 격동했다.
콰득-
식욕으로 재구성한 신체가 격동하며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탈피하고 새로운 모습을 향해 나아간다.
촤르르르-
검은색 비닐이 돋아나며 강혁의 전신을 뒤덮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전신을 완벽하게 뒤덮은 검은 비닐을 바라봄과 동시에 강혁의 몸이 전방을 향해 튕겨져 나갔다.
“....저건 대체 뭐야?”
처음 보는 강혁의 모습에 승태가 입을 쩍 벌린 채로 바라보고 있을 때.
강혁은 어느새 승태가 던진 파멸구 앞에 도달해 있었다.
이제 곧 시민들을 향해 자신의 아가리를 쩍 벌리고 그들을 집어삼킬 준비를 마친 파멸구를 바라보며 승태가 미소지었다.
“그래 봤자 내 파멸구 앞에서 갈려나갈 거다.”
강혁의 전신을 뒤덮은 강철과도 같은 비늘들
그것들이 파멸구에 닿는 순간 여름철 아스팔트 도로 위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녹아 없어지리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텁-
“....? 잡아?”
파멸구를 붙잡은 강혁의 모습을 본 순간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한 승태가 진땀을 흘렸고.
그런 승태를 바라보며 강혁은 파멸구를 붙잡은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퍼어엉-
악력.
고작 악력으로 파멸구를 터드린 강혁은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은 모습으로 승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각오는 되있겠지?”
검은 비늘 너머로 보이는 강혁의 검은 눈동자.
그걸 보는 순간 전신에 끼치는 오한을 느끼며 승태가 자세를 잡는 순간.
“어딜 보는 거냐. 그건 내 잔상인데.”
“....이런 미친!”
어느 순간 자신의 옆에 다가와 있는 강혁의 모습에 승태가 기겁했다.
하지만 그의 기겁은 그리 오래 갈 수 없었다.
쩡-!
승태의 복부의 틀어 박히는 강혁이 정권 지르기.
회피할 수 없는 일격이 복부에 박히는 순간 그의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