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104
칠선.
그중에서도 절제라는 새로운 칠선을 갑자기 얻게 된 강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여기서 칠선이 왜 나와? 나야 좋긴 하다만.’
언젠간 얻었어야 할 것을 갑자기 얻게 되었음에 강혁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때.
분노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뭘 그리 놀라지? 어차피 얻어야 할 것을 얻었을 뿐 아닌가.
‘그건 그런데 신기하긴 하잖아. 라울 슈바함을 잡았을 뿐인데 칠선을 얻다니 말이야.’
궁금증 가득한 강혁의 물음에 분노는 신기할 것도 없다는 듯이 웃음기 맺힌 목소리로 대꾸했다.
-왜일 것 같나? 칠선이라는 평범한 이라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일개 인간 따위가 가지고 있던 이유가.
‘....설마.’
-그래, 녀석은 보관함이었던 거다. 신들이 직접 가지고 있기 싫어서 그저 인간의 몸이라는 보관함에 처박아 두었던 보관함 말이다. 그런 보관함을 부쉈으니 그 안에 있던 물건이 네게 향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허, 이런 미친놈들이.’
가만히 잘 살아 있는.
그것도 신들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던 이를 보관함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에 강혁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파들파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하던 강혁은 분노에게 물었다.
‘만약 아무런 일도 없이 지나갔다면 라울 슈바함은 살 수 있었을까?’
자신이 움직인 것 때문에 라울 슈바함이라는 죄 없는 이가 죽은 게 아닐까? 생각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였고.
이어진 분노의 대답에 강혁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네 녀석도 아니고 일반 인간 따위가 우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나?
‘....그럼?’
-당연히 죽는다. 그것도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
-네가 건드리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신들에게 회수 당할 때, 녀석은 어마어마한 고통과 함께 죽었을 거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라. 녀석이 멍청하여 신을 믿었을 뿐이니까.
착잡하다.
그 말만큼 현재 강혁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은 없을 정도로 현재 강혁은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됐다. 이왕 지나간 일 빨리 정리하고 가자고.”
승태가 아닌 다른 최강의 10인 중에서 죽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던 강혁이기에 충격은 컸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국. 빨리 중국으로 넘어가야 한다.’
현재 검성과 맞부딪쳤을 니아 아리엘과 루카스 폴른을 도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강혁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발터!”
“넌 진짜 괴물 다 됐구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여기 주변 정리 잘 할 수 있겠어?”
“뭐? 아니 그건 가능한데 갑자기 왜?”
“니아랑 루카스가 위험할 지도 몰라.”
“....설마 검성이랑 부딪친 거야? 그 괴물이랑?”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여는 발터 밀란의 모습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혁의 대꾸 아닌 대꾸에 발터 밀란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토해내더니 이내 손을 내저었다.
“가. 여긴 우리가 정리할 테니까.”
“오빠! 무사하세요?”
“저거 보면 모르냐? 무사하니까 우린 지금부터 부상자들 수습하고 곧바로 복귀한다.”
“....그럴게요. 오빤 다시 떠나는 거에요?”
전투가 끝났음을 확인하고 다가온 수연의 물음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 번 말했지만 지금 니아랑 루카스 쪽이 불안해서.”
“그쪽이면....검성?”
“맞아, 중국 쪽 한 지방에서 산이 무너지고 지진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있어. 아마 그곳이 두 사람이 검성과 부딪친 장소겠지.”
“....하, 빨리 가보세요. 저도 걱정되니까요.”
검성이라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한숨을 토해내는 수연의 모습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럼 뒷정리는 부탁할게!”
“네! 여긴 걱정하지 마시고 한국에서 다시 봬요!”
손을 붕붕 흔들며 배웅하는 수연을 뒤로한 채로 강혁의 모습은 이내 인도의 상공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강혁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던 수연은 강혁이 사라지기 무섭게 얼굴을 굳히면서 발터 밀란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희는 이제 정리를 하죠.”
“하아, 내가 이젠 하다하다 남이 싸지른 거 뒷정리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미즈키 씨! 미즈키 씨도 빨리 오세요!”
“....조용히 묻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쉬움 가득 담긴 미즈키 페이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세 사람은 전쟁이라도 난 듯 박살이 난 거리를 돌아다니며 피해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휘오오오-
푸른 하늘, 하얀 구름들로 가득한 상공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중국을 향해 가던 강혁은 분노에게 물었다.
“이제 한 개 남은 건가?”
-그래, 그 한 개만 모은다면 네 녀석도 신과 대적할 수 있는 기초 정도는 다질 수 있게 되는 거지.
“기초? 기초면 아까 만났던 인드라는....”
-죽고 싶으면 싸워 보던가.
“....너무하네.”
시작부터 재를 뿌리는 건 너무하지 않나?
인드라는 주신급의 존재.
당연히 이제 막 신을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된 강혁의 힘 정도로 대항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렇기에 분노의 말은 옳디 옳은 말이었지만 강혁 본인이 그걸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었다.
“하루 빨리 더 강해져야 하는데.”
-넌 충분히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해라. 그렇게만 된다면 넌 어느 순간 그 누구도 올려다 보지 않아도 될 테니까.
나지막히 울려 퍼지는 분노의 목소리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주먹을 말아쥐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거의 다 와가는 군. 힘의 파동이 느껴진다. 그것도 세 개나.
“정확하네.”
인도에서 중국까지 단숨에 날아온 강혁과 분노의 기감에 잡히는 세 개의 커다란 기운에 강혁은 착지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런 강혁의 눈앞에서 거대한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이 들어왔고,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루카스와 니아네. 정확하게 찾아왔어.”
산사태로 인해 만들어진 흙의 파도 속에서 거칠게 움직이는 두 명의 인영.
그리고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본 순간 강혁의 감각이 경고등을 울렸다.
“....저 사람이 검성인가.”
-과연. 저 자가 인간 중 최강인가? 대단하긴 하군. 저 정도라면 분명....반신 정도는 가볍게 이기겠어.
“그 정도라고?”
-검 한 자루만 들고 신이 될 것 같은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저 자를 꼽고 싶군.
“....네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확실하네.”
검성 장 진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검을 다루며, 무척이나 강력한 세계 최강의 헌터라는 것 정도가 강혁이 아는 전부.
하지만 분노의 말대로라면 장 진은 자신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신과 대적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만약 그와 내가 같이 힘을 합칠 수 있다면 신들과의 전쟁도 꿈은 아니겠지.’
장 진.
그의 참전이 라울 슈바함과는 다르게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으며 강혁은 빠르게 지상으로 쏘아져 내려갔다.
*쾅!
“젠장, 루카스! 좀 잘 막아봐!”
“막고 있다. 너야말로 제대로 된 공격을 해보는 건 어떻지? 저 괴물은 상처 하나 없지 않나.”
“누가 공격 맞추기 싫대? 저 아저씨가 다 피하고 흘리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장 진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낸 두 사람은 곧바로 서로를 헐 뜯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장 진을 공략할 방법은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상처는 많아져만 갔고, 절로 답이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검성인가. 지금의 나로는 아직....만약 강혁이가 여기에 있었더라면....’
니아 아리엘답지 않게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상황은 좋지 못했다.
“고작 이걸로 나를 포섭하려고 한 건가? 아서게. 자네들로는 그들을 감당할 수 없어.”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니까 하는 소리라니까!”
“그럼 나를 포섭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이를 데려오게. 그렇지 않다면 그대와 나는 계속해서 의미없는 칼 싸움이나 하게 되겠지.”
“하아, 미쳐버리겠네. 루카스, 방법 없어?”
“없다,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꺼냈어. 하지만 마법 저항력 같은 건 하나도 없는 몸으로 마법으로 모조리 베고 흘려버리니 방법이 있을 리가 있나.”
한숨 가득한 루카스 폴른의 대답에 니아 아리엘 또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싶어졌다.
여태껏 포기란 없다는 듯이 살아온 루카스 폴른의 허망한 대답에 니아 아리엘 또한 포기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콰득-
주먹을 말아쥔 니아 아리엘은 결의를 다졌다.
‘언제부터 내가 남의 손에 의지를 하려고 했지? 부끄럽기 짝이 없네.’
포기를 모르고, 남에게 손을 빌리기는커녕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해오던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방금과 같은 생각은 불쾌할 정도로 자신 같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다시금 임전태세를 갖춘 니아 아리엘의 모습에 장 진은 흥미를 드러냈다.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줬음에도 저런 모습이라....확실히 재능도 있고 결의도 있군. 저 아이라면 그들과의 전투에서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어.’
실시간으로 내려지는 평가 속에서 자신이 합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니아 아리엘은 다시금 장 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봐줄 수는 없지.’
물론 합격점에 가까운 성적을 내고 있는 니아 아리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 진의 머릿속에 봐준다라는 건 없었다.
오로지 진심으로 그녀를 상대하며 합당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 노력할 뿐.
“오게나.”
검을 쥔 손을 비스듬하게 늘어뜨리며 말하기 무섭게 니아 아리엘의 신형이 장 진의 코앞에 도달하였고.
“제발 한 대만 맞아!”
한이 서린 니아 아리엘의 주먹이 그의 검에 닿기 바로 직전.
“일단 거기까지. 니아 너는 조금 쉬고 있어.”
두 사람의 사이로 강혁이 내려앉았다.
니아 아리엘을 향해 내질러지던 검날을 맨손으로 잡고, 니아 아리엘의 주먹을 포근하게 붙잡으면서 내뱉은 강혁의 말에 니아 아리엘과 장 진 둘 모두 놀람을 금치 못했다.
“강혁이 네가 어떻게 여길?”
“....어떻게 내 검을 그리 쉽게 붙잡은 거지? 이해할 수 없군.”
니아 아리엘은 강혁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장 진은 강혁이 자신의 검을 붙잡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놀람에도 불구하고 강혁은 니아 아리엘을 데리고 뒤를 물러서는 것으로 대답을 피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맡을게. 루카스, 니아를 부탁해.”
“....그러지.”
“내 상대야!”
“지금의 너로선 안 돼, 니아.”
“....쳇, 조금 강해졌다고 그러기야?”
입술을 삐죽 내밀고 부루퉁하게 대꾸하는 니아의 말에 강혁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녀올게.”
인사를 끝으로 장 진을 향해 다가가는 강혁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스산함이 감돌 때.
강혁은 장 진의 앞에 꼿꼿하게 서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친구가 신세를 많이 졌으니 지금부터는 제가 상대해드리죠. 검성 어르신.”
“사양하지 않겠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이 격돌했다.
콰아아아앙!
여태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산을 배경 삼아 두 사람은 서로를 파악하기 위한 전투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