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100
콰득-
“잘 먹네.”
-내가 먹는 게 네게 힘이 되니까 먹는 거다.
“고맙다.”
며칠의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조차 안 가는 상황 속에서 강혁은 자신이 쓰러뜨린 몬스터를 뜯어 먹는 식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식욕의 섬에서의 생활은 지극히 단조로웠다.
강혁이 몬스터를 잡으면 그걸 식욕이 잡아먹는다.
그것이 무한히 반복되는 곳.
그곳이 바로 식욕의 섬이었다.
‘이대로 얼마나 지나야 하려나.’
무한하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 식욕의 섬에서 강혁은 이런 생활을 앞으로 며칠이나 더 해야할 지에 대해서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식욕의 섬에서의 시간이 바깥과 다르게 흐른다고는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장 진을 찾으러 간 녀석들과 라울 슈바함을 만나러 간 이들에게 문제가 없을까. 내가 없는 그들이 과연 멀쩡한 모습으로 나를 볼 수 있을까?’
걱정이 안 되는 게 이상했다.
장 진은 그 자체부터가 강력한 존재였고, 라울 슈바함은 신의 힘을 빌리는 사도.
당연히 둘 다 위험했다.
검성, 장진의 경우에는 그가 그를 찾으러 간 이들을 적대하고 죽으려고 든다면 당연히 위험할 터였고, 반대로 라울 슈바함 쪽은 신에게 라울 슈바함이 붙는다면 루터 할론 때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지도 몰랐다.
‘....다들 무사해야 할 텐데.’
식욕과의 시련이 이렇게까지 오래 지속될 줄은 몰랐기에 강혁은 살짝 이를 악물면서 식욕에게 물었다.
“앞으로 얼마나 남은 거지?”
우득-
그리고 그런 강혁의 물음에 식욕은 강혁의 손에 달린 입을 열심히 움직이며 그에 대꾸했다.
-이제....한 마리 남았군.
“그래? 그건 마음에 드네.”
한 마리.
길고 길었던 시간이 이제 곧 끝이 난다는 말에 강혁은 그래도 미소를 머금었다.
앞으로 단 한 마리만 잡을 수 있다면 이 시련도 끝이라는 얘기였으니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터.
‘너무 오래 걸렸다. 그만큼의 대가도 있었지만....걱정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빨리 이곳에서 나가야만 해.’
제대로 날짜조차 세지 못한 채로 보낸 식욕의 섬에서의 생활.
그건 강혁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여태까지 만나온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몬스터들을 모조리 잡아먹었다.
정확하게는 식욕이 먹어치운 것이지만 그거나 이거나 다를 건 없었다.
어차피 결국엔 강혁의 몸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어치운 몬스터들의 능력으로 몸을 재구성하고 나아가 인간 그 이상의 것을 노리는 강혁에게 있어서 지난 며칠의 시간은 충분히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어진 웃음기 섞인 식욕의 목소리에 강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과연 그럴까.
‘....뭐?’
-내가 먹은 가장 강력한 놈. 그놈이 마지막 남은 한 마리다.
‘그래, 고작 한 마리지. 안 그래?’
-강함은 원래 절대적이지 않아. 하지만 절대적인 순간도 가끔씩 있지. 그리고 지금부터 네가 먹어치워야 할 적은 절대적인 강자라고 부르기엔 모자람이 없을 거다.
‘....대체 뭐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저기 오는군.
쿠구구구구-
“....저건?”
식욕의 섬 끝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파동.
익숙한 파동에 강혁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갈 때.
식욕의 목소리가 거기에 쐐기를 꽂았다.
-드래곤. 아쉽게도 고룡은 아니지만 성룡도 지금의 네게는 썩 괜찮은 상대가 되겠지.
“....하, 드래곤이라....마지막을 장식하기엔 딱 적당한 몬스터네.”
-지켜보겠다. 잡아먹히는지 잡아먹는지.
진심 어린 식욕의 목소리에 강혁은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의 내가 먹어치우지 못하는 건 없어.”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시작해라.
식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혁의 머리 위로 예전 2급 창고에서 보았던 드래곤보다도 훨씬 큰 덩치를 자랑하는 한 마리의 드래곤이 강혁의 머리 위를 날았다.
이윽고 강혁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악신화.”
악마화와 신성화를 뒤섞은 자신이 내보일 수 있는 최고의 상태 중 하나를 꺼내 들며 강혁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크롸라라라!
자신을 향해 날아오른 강혁의 모습을 확인한 성룡급 드래곤의 입이 쩍 벌어지며 드래곤 피어가 강혁에게 작렬했다.
찌릿-
벼락이 맞은 것처럼 전신이 찌르르하게 울리며 몸이 굳는 기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혁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과 함께 굳은 몸이 풀리고 머리가 맑아졌다.
[특성 : 불굴이 발동하였습니다.]
[피어에 저항하였습니다.]
“같은 급은 아니라는 거지?”
강혁 본인도 드래곤의 신체, 용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처음 용체를 얻게 도와준 드래곤 크기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였다.
즉, 지금 2급 창고에 잠들어 있을 드래곤의 생전의 강함과 눈앞의 드래곤의 강함은 꽤 차이가 난다는 얘기.
나아가 나이가 곧 덩치며 힘인 드래곤에게 있어서 저 덩치 자체가 강함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강혁은 용체로 그를 상대하기보다는 반성반마에서 나아간 악마화와 신성화를 뒤섞은 악신화로 대응했다.
‘신룡체는 불완전하기도 하고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그걸 쓰고 싶진 않아.’
악신화나 신룡체나 같은 신격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성룡급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드래곤의 끝판왕급의 신체를 쓰고 싶진 않은 강혁이었다.
물론 악신화 또한 만만치 않게 강하긴 하지만 드래곤은 원래 그 ‘신체’에 모든 강함이 집결된 바.
모든 드래곤의 정점이나 다를 바 없는 신룡체를 사용하게 된다면 승부는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는 셈.
이것 또한 시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한 강혁은 최대한 그와 비슷한 급을 유지하되 순식간에 끝나지는 않는 신체를 택했고, 그것이 바로 악신화였다.
“이거라면 충분히 재밌는 승부가 되겠지.”
마기와 신성력의 날개가 펄럭이며 다량의 마기와 신성력이 하늘의 별처럼 주변을 수놓는다.
그리고 이내 그것들은 하나의 칼날이 되어 드래곤의 전신을 노리고 쏟아져내렸다.
콰과과과과-
마치 유성우와 같은 모습을 바라보며 흠칫한 드래곤의 입이 쩍 벌어지고 그 안에서부터 브레스가 쏘아졌다.
푸화아아악!
이미 한 차례 만난 적 있는 트윈 헤드 와이번과 트윈 헤드 드레이크를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위력의 브레스.
아니, 둘의 브레스를 합하더라도 눈앞의 드래곤급의 브레스는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강혁 또한 그때와 비교하더라도 눈에 띄게 성장한 상황.
스걱-
강혁을 향해 뿜어지던 브레스가 반으로 갈라지며 양옆에 있는 숲을 박살을 내버렸다.
그리고 숲이 박살내는 충격으로 커다란 지진이 섬 전체에 퍼져나갈 때, 강혁은 이격을 준비 중이었다.
키이잉-
양 주먹에 맺힌 마기와 신성력.
그것이 뒤섞이며 강력한 폭발을 준비하였고, 이내 준비된 폭발은 드래곤을 향해 쏘아졌다.
“폭(暴).”
본래부터 터져나가는 속성 덕분에 강력함을 지닌 폭(暴)이 드래곤의 몸에 닿는 순간 그 속성대로 터져나가며 주위를 뒤흔들었다.
쿠구구구-
드높은 상공에서 터져나간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그 공격의 충격 때문에 주위가 뒤흔들리며 지진으로 고통받던 식욕의 섬이 다시금 흔들렸다.
하지만 강혁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멸(滅).”
모든 걸 멸망시킨다는 이름의 새로운 강혁의 기술이 폭에 이어 드래곤의 단단한 신체에 작렬한 순간.
강철보다 더 단단한 드래곤의 스케일이 쩍- 하고 금이 가며 그 틈새로 드래곤의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홍혈(紅血)의 비.
쿠웅-
거대한 드래곤의 동체가 식욕의 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 밑에 깔린 나무와 돌 등.
잡다한 것들을 짓뭉개버리는 드래곤의 동체 위로 가볍게 내려앉은 강혁이 식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뭐, 어려울 거라고?”
-....진짜 미친 놈은 맞는 것 같군.
-말했잖아. 저 또라이의 강함은 정도를 벗어난 지 오래야. 저 정도면 정말 신격만 갖춰지면 주신 바로 아래까지는 쳐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식욕과 분노의 시시덕대는 소리를 들으며 강혁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식욕의 입이 달린 자신의 손을 드래곤의 사체 속으로 푹 찔러 넣었다.
“먹어.”
-잘 먹도록 하지.
으적으적-
식욕의 섬 전체에 울려퍼지는 무언가를 씹고 뜯는 섬뜩한 소리를 감상하는 강혁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용혈을 흡수하였습니다.]
[더 많은 용의 기운을 흡수하면 용체가 더욱 단단해집니다.]
“....이거 드래곤들 사냥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드래곤들을 잡아 먹으라는 듯이 종용하는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그리 중얼거릴 때쯤.
콰득-
식욕이 마지막 남은 드래곤 하트를 씹어먹는 순간 강혁은 어느새 자신이 에릭 팔든과 함께 왔었던 뒷골목에 서 있었다.
“....여긴?”
-너와 내가 왔던 뒷골목 길이다. 그때부터 한....하루? 이틀? 정도 지났겠군.
“하, 고작 그것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나니까.
“....누가 칠죄 아니랄까봐 자존심 하나는 장난아닌데.”
식욕의 시련만 하더라도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건만 고작 하루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강혁이 어처구니 없어 할 때.
그걸 뛰어넘는 식욕의 대꾸에 강혁의 어이가 가출을 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아쉽게도 저 멀리서 들려오는 뉴스의 소리가 강혁은 정신줄을 붙잡았다.
-현재 중국의 한 산골자기에서 갑작스런 지진과 절벽의 무너짐 현상이 발생하여 당국에서 급히 헌터들을 보내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나섰습니다.
-그곳에서 몬스터가 나타났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하는 데에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몬스터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몬스터가 아닌데 지진을 일으키고 절벽을 무너뜨리는 존재가 있단 말입니까?
-예, 그곳은 검성 장 진이 있을 것으로 예전부터 추정 되어 왔다고....
“....이런 미친.”
뉴스에서 들려오는 말을 듣자면 이미 검성과 니아 아리엘 그리고 루카스 폴른의 만남은 확실했기에 강혁은 이를 갈았다.
지진이 일어나고 절벽이 무너지는 건 평범해선 일어나기 힘든 일.
당연히 세 사람이 만나고 난 뒤에 이어진 전투에서 벌어진 일일 터.
“....곧바로 중국으로 가야....”
그렇기에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중국으로 몸을 날리려던 찰나 이어진 또 다른 뉴스가 강혁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인도에서 라울 슈바함. 통칭 ‘사도’가 갑작스레 신전 앞에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포착 되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곳에 있는 이들이 ‘독인’ 발터 밀란, ‘여제’ 한수연, ‘음양사’ 미즈키 페이라는 것으로 확인 되어 많은 이들이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의 전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하, 이건 또 뭔?”
장 진 하나만 하더라도 머리 아픈 일임은 분명하거늘 이어지는 연속적인 폭탄 세례에 강혁은 머리가 어질어질 했지만 이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중국과 인도.
자신이 보낸 다른 이들이 빠진 위험에서 과연 어느 곳을 택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그가 고민을 할 때.
그는 이내 고민을 끝마치고 날개를 펄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거기부터 가자.”
‘거기’라는 알 수 없는 말만을 대답으로 남긴 채로 강혁은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