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98
으적으적-
살과 근육, 뼈.
그것들을 입안에 넣고 씹는 감각은 그리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강혁은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역겹다 못해서 토할 것 같네.’
아까까지 배터지게 먹던 음식이 그리워질 거라고는 단 1분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하던 강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배는 부르지, 손과 입은 어떻게든 움직여서 음식물을 운반하고 씹어야만 한다.
당연히 그로서는 배가 터지다 못해서 GG를 치고 싶은 상황.
하지만 그것이 차라리 더 나았다는 걸 깨달은 지금 이미 늦었다.
원래 후회란 기회를 놓쳤을 때 찾아오듯이 강혁 또한 비슷했다.
‘....배 불러서 토하는 게 아니라 그냥 토할 것 같아.’
마치 짐승의 고기를 날 것으로 먹는 것보다 몇백 배는 더 역한 느낌.
물론 강혁이 몬스터의 고기를 안 먹어본 건 아니다.
던전을 전전하며 헌터가 되기 전 나약한 몸뚱아리로 던전 내에서 몇날 며칠이고 버티려면 몬스터 고기를 먹지 않고선 살 수 없으니까.
다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작 1년 사이에 너무나도 예전의 모습을 빠르게 잃어버린 강혁에게 예전의 기억 따윈 없었다.
결국 강혁이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최대한 악취를 참고 꾸역꾸역 코볼트를 목구멍 너머로 밀어넣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때? 버틸 수 있겠나? 없으면 지금이라도 포기하라고.”
“....아직 버틸 수 있으니까 계속 내놓기나 해.”
“얼마든지. 오랜만에 좋은 식사 친구를 얻어서 좋은 걸?”
“젠장, 이런 걸 식사라고 부를 사람은 세상에 너 밖에 없을 거다. 에릭 팔든.”
헛구역질을 애써 참으며 참아왔던 말을 토해낸 뒤, 다시금 나타난 코볼트의 시체를 먹던 강혁은 우뚝 멈춰서야만 했다.
‘....배가 꽉 찼다.’
더 이상 사람의 인내심이든 뭐든 밀어넣을 공간 자체가 없어졌다.
즉, 이제 강혁이 무언가를 더 먹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
이건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섰다.
그렇다고 토하고 다시 먹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
결국 강혁은 지금이 바로 자신이 준비해왔던 것을 꺼내들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신성화.”
처음은 신성화였다.
전신에서 찬란한 신성력을 내뿜으며 신성력의 날개를 펼쳐든 강혁의 모습에 에릭 팔든은 처음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던 팔을 멈추곤 강혁을 바라보았다.
“한 판 하자는 건가? 이런, 싸움은 영 꽝인데.”
“장난치지 말고 계속 먹어.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츠츠츠츠-
최고 출력의 신성력을 주위로 뿜어내는 순간, 강혁은 불러왔던 배가 천천히 가라앉는 걸 느꼈다.
“....호오, 그걸 그런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꽤 놀라운데? 나쁘지 않은 접근이야. 일주일 동안 준비한 게 이건가?”
강혁이 뭘 하려고 하는지 곧바로 눈치챈 에릭 팔든의 흥미가 가득 담긴 목소리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신성화를 전개하면 그 대가로 많은 양의 마나가 소모 되고 체력 등이 소모 되지. 그 과정을 오로지 영양분으로만 바꾸면 이렇게 된다는 거야.”
배불렀던 배가 순식간에 꺼지고 오히려 배가 고파오는 상황에 강혁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코볼트를 집어 들었다.
마치 이제 막 첫 끼를 하는 사람처럼 코볼트의 뒷다리를 크게 한 입 베어물며 강혁이 입을 열었다.
“자, 가보자고.”
식욕의 시련은 지금부터였고, 강혁은 그 시련을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
하루가 지났다.
으적-
‘....지겹군.’
이제는 배고픔과 배부름의 경계가 아닌 지루함의 경계에 선 강혁이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코볼트를 씹어 삼켰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무언가를 먹는다는 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걸 실감하면서도 강혁의 입은 멈추지 않았고, 손 또한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다만 몰려오는 지루함을 막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는 배부름이라는 감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 강혁은 아직까지도 여유롭게 똑같은 모습으로 코볼트를 먹어치우는 에릭 팔든의 모습에 생각을 달리해야 했음을 깨달았다.
‘먹는 건 기본에 불과해. 저 괴물을 먹는 걸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니 중요한 건 저 녀석에게 인정 받는 거다. 그런데 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인정 받을 수 있는 건지를 모르겠네.’
하루 종일 먹고도 변함이 없는 모습.
자신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해서 겨우 따라가는 페이스를 해내고 있으니 강혁으로선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결국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먹어서 그를 이기는 것이 아닌 ‘인정’을 받는 것에 포커스를 둬야한다는 걸 깨닫고 고민에 빠졌다.
물론.
으적-
코볼트를 먹어치우는 건 멈추지 않았다.
열심히 입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식사를 하던 강혁은 불연 듯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걸 느꼈다.
‘....먹는다는 건 먹은 무언가를 완전히 몸 안에 흡수하는 거지. 그렇다면 그 흡수한 영양분을 비롯한 먹은 생물에 대한 것들이 내 몸 속에 깃든다는 얘기 아닐까? 만약 그 영양분을 비롯한 생물의 모든 것들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전신이 번개를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린 것은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입을 움직이며 내부의 관조를 시작했다.
시작은 주변을 지우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이제는 습관이 된 입과 손은 제가 알아서 잘 움직이니 걱정할 건 없었기에 내부를 관조하기에 앞서 주위를 완벽하게 지워낸 강혁은 내부를 살폈다.
‘....이건가?’
얼마나 지났을까?
신체의 어느 한 구석에서 잡힌 무언가.
그것이 자신이 찾던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강혁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찌익-
“....?”
피부가 갈라지고, 그 아래에서 새로운 피부가 올라온다.
마치 코볼트의 피부와 비슷한, 하지만 조금 더 질기고 억센 피부가 말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아주 미약한 변화였지만 조금이라도 더 방어력이 뛰어나졌음은 확실했다.
그것이 아주 미약하다고 할 지라도 그 변화는 찰나의 순간을 가르는 전투 속에서 그 빛을 환하게 빛낼 테니까.
“정말 해낼 줄은 몰랐는데.”
입가에 코볼트 특유의 초록 피를 묻힌 채로 어느새 다가온 에릭 팔든의 모습에 강혁은 살짝 놀라면서도 자신의 피부를 가리키는 걸 잊지 않았다.
“이게 당신이 말하던 ‘인정’ 받는 과정이 맞나?”
“맞아, 내가 먹은 모든 것들은 내 안에서 살아숨쉬며 그것이 가진 특성은 곧 내 힘이 되지. 설령 그것이 아주 미약하다고 할 지라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특성은 강해지고, 그것은 곧 내게 큰 무기가 된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겠지.”
“....당신을 얻지 않더라도 이것만 잘 활용할 수 있다면 꽤 큰 수확이겠는데?”
“다만 내가 있으면 더욱 수월하고, 더욱 확실하게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겠지.”
“그건 부정할 수 없네.”
식욕의 죄를 지고 있는 에릭 팔든을 얻을수만 있다면 근본적인 내 몸 자체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용체와 같은 신체들이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베이스는 인간이다.
거기서 추가로 용체라는 아바타를 입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아무런 대비도 없이 공격을 당하게 되면 나는 인간인 상태로 적과 상대해야 한다는 얘기.
결과적으로 기본적인 신체 능력 자체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식욕을 얻는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나쁘지 않은데.’
최근 급격하게 강하지면서 신체에 대한 불편함은 여전했다.
용체, 신성화, 악마화, 악신화 등.
다양한 신체들을 겪으면서 평범한 인간의 신체에 대해서 불만이 생기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결과적으로 에릭 팔든의 말대로라면 인간의 신체를 벗어던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콰드드득-
“현재 내 몸에는 셀 수조차 없이 많은 몬스터들의 정보가 담겨져 있지. 매우 쓸만하다고. 이걸 모조리 다루고 그걸로 신체를 재구성할 수만 있다면....”
“평범한 신체도 반신에 걸맞는 신체가 될 수 있겠군.”
“정답이야.”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에릭 팔든의 모습에 강혁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에릭 팔든의 말마따나 몬스터들에게서 좋은 점만 쏙쏙 가져와서 신체를 재구성하는 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도움이 될 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좋아, 그럼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어때?”
식욕을 통해 먹어치운 몬스터들로 신체를 재구성하는 것.
그걸 포기하기에는 지금의 신체가 강혁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딱 자신의 외형만 유지한 채, 모조리 뜯어 고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한 강혁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강혁의 대답을 듣는 순간 에릭 팔든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럼 다음 음식으로 넘어가지.”
“....홀리 쉐엣!”
당연하게도 새롭게 식탁 위의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음식을 보는 순간 강혁은 터져나오는 욕설을 참지 못했다.
다음 음식은 고블린이었으니까 말이다.
“축배를 들자고 친구.”
“젠장, 살다살다 고블린 다리로 축배를 들게 될 줄은 상상도 했는데.”
찌이익-
죽은 고블린의 다리가 뜯겨져 나오고 그걸 맞부딪치며 건배를 하는 에릭 팔든을 향해 욕을 내뱉으며 강혁은 다리를 크게 물어뜯었다.
콰득-
초록피가 주위에 비산하며 누린내가 가득한 고기가 입안에 가득 찼지만 강혁은 개의치 않았다.
최대한 감각을 죽이고 내부의 관조를 하며 먹은 고블린의 성질을 파악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기 시작했다.
*
하루의 시간이 지나고 사흘, 나흘,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당연하게도 하나의 성질을 모두 익히면 다음 음식이 나오고 그것 또한 다 익히면 그 다음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평범한 음식이 아니라 몬스터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강혁은 에릭 팔든이 내주는 모든 음식을 먹어치우고 그들의 성질을 몸에 각인시켰다.
‘이거라면 꽤 괜찮네.’
적어도 S급 몬스터와 필적하는 몸을 지니게 된 강혁은 꽤 만족스러웠다.
오우거의 근육과 힘줄, 트롤의 생명력, 와이번의 시야, 드레이크의 브레스 등.
다양한 능력 등을 몸 안에 때려 박은 강혁은 더 이상 인간의 신체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전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그 내부만큼은 아니었다.
언제든지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기에 별 다른 걱정을 하지 않던 강혁의 앞에 에릭 팔든이 다가왔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고맙네. 그럼 이제 너를 얻을 수 있는 건가?”
“물론,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그리고 이 몸의 주인은 네가 잘 보살펴주도록 해. 쓸모는 있을 테니까.”
“그 정도 쯤이야.”
에릭 팔든, 아니 식욕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칠죄나 칠선에게 몸을 내주었던 이들치고 평범했던 이들이 없다.
당연히 에릭 팔든 또한 그럴 거라고 생각하며 그를 올 마스터에 가입시킬 생각을 할 때, 에릭 팔든의 몸에서 빠져나온 식욕이 강혁의 몸에 흡수 되었다.
[칠죄 : 식욕을 획득하였습니다.]
[마기 스탯을 +100 획득하였습니다.]
[신체 : 반성반마(半聖半魔)로 인하여 마기 스탯 +100이 신성력과 마기 스탯 +50으로 변환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보지만 익숙한 메시지창과 동시에 강혁은 자신의 손에 생긴 변화를 눈치챘다.
“....입?”
-그게 내 본 모습이다. 내 모든 걸 먹어치우고 입만 남은 내 본 모습. 이제 그걸 네가 사용하여 너를 발전시킬 기회다.
손에 달린 입.
그걸 보고 기겁한 것도 잠시 식욕의 설명에 강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식욕은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던전은 나의 내면이다. 내가 여태까지 먹어치운 모든 몬스터들이 도사리고 있지. 자, 이 안에 있는 모든 걸 먹어치워라. 그러면 너는 전 차원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먹은 것과 같게 될 테니까!
“....좋아, 일주일 동안 먹은 걸로는 성이 좀 안 찼는데 나쁘지 않네.”
식욕의 말과 함께 입가에 번지는 진한 미소와 함께 강혁은 백사장 너머 정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손에 매달려 낼름거리는 입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