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97
에릭 팔든과의 만남 이후, 알케미의 집으로 향한 강혁은 알케미를 앞에 두고 걱정 어린 말을 꺼냈다.
“내가 과연 그 시련을 통과할 수 있을까?”
“포션이라도 만들어줄까?”
현존하는 연금술사 중에서 최고의 연금술사로 통하는 알케미라면 분명 한계 이상의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포션도 충분히 제작이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강혁은 그런 알케미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션으론 한계도 있고, 애초에 그런 방법으로는 에릭 팔든을 이길 수도 없을뿐더러 인정조차 받지 못할 게 분명해.”
포션.
분명 좋은 방법이긴 하다.
다만 강혁의 재능 수준으론 알케미급의 포션을 만들수도 없을뿐더러 그게 에릭 팔든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에 가깝다.
아니, 거의 불가능할 게 뻔했다.
‘약물로 경기를 뛴다고 해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건 아니고, 만약 따더라도 약물로 인해서 취소 되기 마련이지. 물론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와는 다르지만 완전히 다를 것 같지도 않으니까.’
결국 강혁이 할 수 있는 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본인의 힘만으로 에릭 팔든의 식성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길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에릭 팔든.
그의 괴물 같은 식성을 눈앞에서 보았으니까.
-평범한 방법으론 안 될 거다. 녀석은 신들에게 저주받아 영원히 배고픔이라는 감정을 떨쳐낼 수 없게 된 녀석. 배고픈 나머지 제 몸마저도 먹어치운 놈이 그놈이다.
‘....진짜 답도 없네.’
배고파서 자신의 몸마저 먹어치운 자.
에리식톤의 섬뜩한 과거마저 들으니 더더욱 힘이 떨어지는 강혁이었다.
영원히 먹을 수 있는 존재를 상대로 먹는 걸 가지고 승부라니 말도 안 되지 않은가?
하지만 강혁은 포기할 수 없었다.
‘녀석을 포기하면 안 돼. 특히 칠죄 중에는 전투에 도움 되는 능력이 많아.’
분노는 말할 것도 없고, 색욕도 충분히 좋은 능력이었다.
그런 마당에 식욕은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을지 상상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아, 지금부터라도 배를 비워야 할까 아니면 많이 먹는 연습을 해야 할까?”
“그런다고 되면 진즉에 이겼겠지. 그 녀석이 칠죄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거고.”
알케미의 핀잔은 비수가 되어 강혁에게 날아와 꽂혔다.
결국 바뀌는 건 없었다.
강혁은 에릭 팔든과 먹는 걸 가지고 결투(?)를 해야만 했고, 그런 결투에서 강혁은 승리를 차지해야만 했다.
“아무튼 그 승부는 승부고 나와 한 약속은 어떻게 되가고 있지?”
승부에 대한 내용으로 열띤 토론을 벌일 때, 알케미의 갑자기 쑥! 하고 들어오는 말에 강혁은 잠시 에릭 팔든과의 결투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슬슬 준비 되가고 있어.”
“그래?”
“교단과 악마전 쪽을 한 번 쑤셔놨으니 그들이 슬슬 움직이겠지. 그렇게 천천히 족치다 보면 신과 악마들도 가만히만 있을 순 없을 거다.”
“....정말 곧 나타나겠군.”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알케미의 어깨를 두들기며 강혁은 그를 진정시켰다.
“진정해. 아직 정해진 건 없어. 곧이라고 했지만 그 곧이 당장 내일일지 몇 년 뒤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괜한 기대하지 말고 그냥 기다려.”
“....후우, 답지 않게 흥분했군. 평생을 염원해오던 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생각에 그만....”
“괜찮아, 누구나 그럴 수 있지. 원하는 바를 목전에 두면 흥분하는 게 당연해. 하지만 그렇게 흥분했다간 목전까지 다가온 목적을 놓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아둬.”
“....명심하겠다.”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그 녀석과의 푸드 파이트에서 이길 수 있을까?”
“흐음, 난 너의 몸상태를 완벽하게 알지 못해. 어떤 재능이 있는지 어떤 신체를 지녔는지 등을 말이야. 그렇기에 확답을 내릴 순 없지만....지금으로선 가장 가능성 있는 건 역시 소화 관련 포션 제작이....”
본론으로 돌아왔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알케미는 포션 제작에만 조예가 깊을 뿐 다른 것에 대해서는 영 꽝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강혁에게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내게 방법이 하나 있다.
‘....그래? 못 미덥긴 한데 말이나 한번 해봐.’
구원의 동아줄은 다름 아니라 분노였다.
방법이 하나 있다며 말을 걸어오는 분노의 모습이 못 미덥긴 했으나 강혁에게 남은 방법은 없었기에 께름칙한 얼굴로 한번 말이나 해보라며 그를 종용했다.
그런 강혁의 태도에 분노가 분노하는 진귀한 모습이 연출되었지만 이내 진정한 분노는 자신의 생각을 강혁에게 말해주었고.
“....오?”
분노의 생각을 전부 전해들은 강혁은 입꼬리를 틀어올렸다.
그의 말대로 진행이 된다면 에릭 팔든의 시련도 그리 어렵게만 느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알케미.”
“왜.”
“네 앞마당 좀 쓴다.”
“뭐? 대체 뭔 난리를 치려고?”
“보면 알아.”
황당해하는 알케미를 향해 씨익 웃어보인 강혁은 그 길로 알케미의 앞마당으로 나섰고.
콰과과과-
신성화와 악마화를 번갈아 전개하며 그 주위를 초토화시켰다.
“이런 미친놈아!”
망가져 버린 자신의 앞마당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알케미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강혁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네 말이 맞았어, 분노.”
-난 언제나 옳지.
“이 정도면 그래도 출발선엔 선 것 같지?”
-아마 녀석도 그걸 바랬을 거다. 최소한 자신의 시련에 도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말이야.
“....좋아, 그럼 일주일 동안 열심히 노력을 해볼까.”
그 말을 끝으로 강혁은 신성화와 악마화를 번갈아 사용하는 걸로도 모자라 악신화까지 사용해가며 에릭 팔든의 시련을 통과하기 위한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물론 그 대가로 알케미의 집 앞마당은 완전히 박살이 났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강혁 개새끼야아아아!”
원통함이 가득 담긴 집주인의 비명과 함께 강혁의 시련 대비는 시작되었다.
*
일주일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동안 강혁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느 정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거라면 그래도 될 지도 모르겠어.’
자신이 한 일이 옳은지는 확실친 않다.
일주일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혁은 후회하진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해온 일이 옳을 거라고 믿으며 시련에 도전할 뿐.
“일주일 만이로군. 딱히 변한 건 없어 보이는데? 정말 시련에 도전할 생각인가?”
일주일만에 다시 강혁과 마주하게 된 에릭 팔든 그다지 바뀐 게 없는 강혁의 모습에 의아했다.
본래 그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고, 그의 시련을 받게 된 이들은 대부분 두 개의 모습 중 하나로 자신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삐쩍 말라서 오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살이 불어서 오지. 그런데 녀석은 딱히 변한 게 없단 말이지. 신기하군. 포기할 놈으론 안 보이는데.’
최대한 많이 먹기 위해 일주일 내내 굶거나 혹은 일주일 내내 먹거나.
그것이 에릭 팔든이 보아온 도전자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강혁의 모습은 둘 다 아니었다.
그저 일주일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을 뿐.
결국 에릭 팔든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으며 강혁을 으슥한 곳으로 데려갔다.
“여긴?”
평범한 뒷골목과 다를 바가 없는 곳으로 자신을 데려온 에릭 팔든의 모습에 강혁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스윽-
에릭 팔든 손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수놓고, 이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쩍-하고 갈라졌다.
그리고 나타난 게이트의 모습에 강혁이 흠칫하며 전투 자세를 잡을 때.
에릭 팔든의 웃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푸핫! 뭐, 여기서 몬스터라도 나올 것 같아? 걱정하지 마. 여긴 어디까지나 너와 나의 시련을 위한 음....식욕의 던전이라고 해둘까? 그런 곳이거든.”
“....여기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
“맞아, 자세한 건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배 고프거든.”
“....분명 내가 봤을 때, 꼬치를 들고 있던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
“아니, 현실이야. 근데 너도 알잖아? 내가 어떤 저주를 받았는지.”
씨익 한 번 웃어보이곤 게이트 너머로 사라지는 에릭 팔든의 모습에 강혁은 방금 전, 에릭 팔든의 웃음에 담긴 자조 어린 감정을 느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혁도 에릭 팔든의 뒤를 따라 게이트 너머로 몸을 던졌다.
*
쏴아아아- 철썩-
파도가 치는 푸른 바다가 보이는 백사장 위.
그곳이 게이트 너머의 세상이었다.
“여긴?”
“말했잖아 식욕의 던전이라고. 이제부터 넌 여기서 시련을 받게 될 거야. 부디 성공하길 바랄게.”
짝짝-
마지막 말을 끝으로 두 번의 박수를 친 순간 백사장 너머의 정글 속에서 무언가가 걸어왔다.
“요리사?”
어디에서나 볼 법한 흰색 셰프복에 손 위에는 음식이 들려 있는 요리사.
그가 정글 속에서 나타났다.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그의 모습에 강혁이 의아해할 때.
정글 속에서 나타난 요리사는 그들의 앞에 음식을 놔두곤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련을 시작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리사가 두고 간 요리를 향해 에릭 팔든이 손을 뻗었다.
이윽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요리의 모습에 강혁 또한 다급히 손을 뻗어 음식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우물우물-
맛을 감상할 시간 따윈 없다는 듯이 순식간에 씹고, 삼키자마자 강혁의 눈에 들어온 건 어느새 다시 생겨 있는 음식이었다.
마치 귀신의 수작이라도 된 것 같은 상황에 어리둥절해할 때, 에릭 팔든은 다시금 음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결국 의문을 풀 새도 없이 강혁은 다시금 음식을 먹었고, 음식을 다 먹을쯔음엔 어느새 음식은 다시금 생성되어 있었다.
‘....무한하게 재생성되는 음식인가? 전 세계적인 기아를 해결할 수 있겠어.’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면서 강혁은 서서히 음식을 먹는 스피드를 높혀갔다.
이윽고 수십 접시 분량의 음식을 비웠을 때쯤 강혁은 배가 거의 다 찼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에릭 팔든은 아직도 여유롭다는 듯이 다시금 생성된 음식을 입안에 털어넣고 있었다.
분명 강혁 자신보다 더 많은 요리를 먹었음에도 멀쩡한 그의 모습에 강혁이 혀를 내두르며 자신의 준비했던 능력을 꺼내드려고 할 때였다.
“지금부터 음식을 바꾸도록 하지.”
“....뭐?”
갑작스런 음식 변경에 강혁이 당황했다.
짝짝-
하지만 그런 강혁의 당황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에릭 팔든은 처음처럼 박수를 두어번 쳤다.
그리고 박수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무언가의 모습에 강혁이 흠칫했다.
“....코볼트?”
무언가를 알아본 강혁이 흠칫할 때, 코볼트는 에릭 팔든과 강혁에게 다가오더니 저 혼자 쓰러졌고, 죽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강혁이 어리둥절해 했다.
에릭 팔든은 죽은 코볼트의 다리를 잡아당기더니 이내 치킨의 닭다리라도 되는 것마냥 녀석을 먹기 시작했다.
끔찍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었지만 서서히 사라져가는 코볼트의 모습에 강혁은 이를 악물곤 자신의 앞에 놓인 코볼트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진정한 식욕의 시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