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올 마스터-96화 (97/178)

나 혼자 올 마스터 #96

탁-

올 마스터 길드 본부를 벗어난 강혁은 한적한 숲길 위에 내려앉았다.

“현재 내가 가진 칠죄와 칠선 목록 좀 불러봐.”

-분노, 인내, 색욕, 순결. 총 넷이다. 갈 길이 멀고도 멀다.

“....쯧, 아직도 10개 가까이 남은 건가. 그래도 더 강해질 방법이 10개나 되는 셈이니 그건 마음에 드네.”

-이제 어디로 갈 거냐?

행선지를 묻는 분노의 질문에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던 강혁은 고민에 빠졌다.

막상 다른 이들을 내버려두고 나왔는데 마땅하게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칠죄의 위치를 알아야 뭘 좀 할 수 있을 텐데. 저번처럼 분노가 딱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걱정이네.’

순결을 얻었을 때에는 분노가 직접 순결의 위치를 알려주어서 쉽게 찾아갔지만 지금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

결국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을 때.

띠링-

핸드폰이 울리고 떠오른 알림을 본 강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미국에서 열린 푸드 파이터 시합에 몇 번이나 연속으로 챔피언을 달성한 사람이 있어. 근데 몸은 푸드 파이터답지 않게 엄청 멸치라는데....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 네게 도움이 됐길 바라.]

“....니아가 내게 선물을 주네.”

앞길이 막막하던 찰나에 주어진 선물.

미국이라는 말을 입안에서 초콜렛처럼 굴리던 강혁은 이내 땅을 박차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촤악-

등 뒤로 돋아난 순백(純白)의 날개와 순흑(純黑)의 날개을 펄럭이는 강혁의 모습은 어느새 그 자취를 감춘 뒤였다.

*

미국.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단어마저 존재할 정도로 유명한 나라임과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이기도 한 곳.

그곳의 한 도시에서는 한창 푸드파이터 대회가 한창이었다.

-와아아아! 제이콥! 힘내라!

-드디어 녀석을 이겨보라고!

-저 괴물을 이길 녀석은 없나? 없으면 엉덩이를 발로 차줄 테니까 더 먹어!

-에릭! 에릭! 에릭!

각자 응원하는 이들의 이름을 연호하며 대회를 관람하는 이들 사이로 후드를 깊게 눌러쓴 누군가가 대회를 관찰했다.

‘저놈인가. 니아가 말했던 의심 된다는 놈은?’

-그래, 맞는 것 같군. 그리고 칠죄 중 한 명은 맞는 것 같다.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대회 중에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릴 리가 없잖아?’

당연하게도 그 누군가 한국에서 미국까지 단숨에 날아온 강혁이었다.

그리고 대회에 참가 중인 현 챔피언 에릭 팔든의 시선을 느낀 강혁은 니아 아리엘의 선물이 정답이었음을 확신했다.

푸드파이터 대회의 연속 챔피언 에릭 팔든.

그가 자신의 입안에 음식을 처넣으면서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가로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낯익은 기운.

마기는 결코 평범한 마기가 아니었다.

-승자느으으으은! 에릭 팔드으으으은!

그렇게 서로간의 아이컨택을 하면서도 대회는 흘러갔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대회의 승자는 정해져 있었다.

에릭 팔든.

칠죄 중 하나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에릭 팔든이 푸드파이터 대회의 또 다시 우승하며 챔피언 자리를 지켜냈다.

사람들의 환호와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시상마저 끝났을 때쯤.

에릭 팔든은 강혁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왔군.”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나?”

“뻔하지, 몸 안에 다른 녀석들을 넣고 다니는 데에 모를 수가 있나. 한국에 있을 때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으니 미국으로 오는 것쯤이야 뻔히 알 수 있지.”

입가에 묻은 케찹을 스윽 닦아내며 씨익 미소 짓는 에릭 팔든의 말에 강혁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또한 칠죄나 칠선의 유무를 파악할 수 있으며 특정된 장소라면 그곳에 칠최나 칠선이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에릭 팔든의 말도 일리가 있는 셈.

“조용한 곳으로 가지. 잘 아는 음식점이 있거든.”

“....방금 그렇게 먹고 또 먹는다고? 정말 사람이 맞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로군.”

방금 전 푸드파이터 대회에서 그가 먹어치운 수십 키로 분량의 먹거리들.

그걸 고려할 때, 그가 한 말은 밥 먹고 또 밥 먹자는 말과 다르지 않았기에 강혁이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어진 에릭 팔든의 소개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 소개가 늦었군, 올 마스터. 내 이름은 에릭 팔든. 칠죄(七罪) 중에서 식욕(食慾)의 죄를 맡고 있다.”

식욕(食慾).

먹는 것과 관련해서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죄악.

그것이 에릭 팔든이 가진 칠죄의 이름이었다.

“배고픈데 일단 먹으면서 얘기하지.”

“....돌겠네.”

주린 배를 쓰다듬으며 강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에릭 팔든의 뒤를 쫓았다.

*

스걱스걱- 쩝쩝- 와구와구-

칼질하는 소리, 씹는 소리, 먹는 소리.

이 모든 소리가 강혁의 앞에서 식사를 하는 에릭 팔든의 입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게 사람이 가능한 일이야?’

-사람이 아니니까 가능한 일이지. 식욕이라....녀석이라면 충분히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뭔데, 너만 알지 말고 나도 말해주는 게 어때?’

-그건 녀석에게 직접 들어라.

마지막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무는 분노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던 강혁은 어느새 접시를 비운 에릭 팔든에게 자신의 몫을 내밀며 물었다.

“안 배불러?”

“배부름? 그런 감정 따위는 내게 없다.”

“....? 그건 또 뭔 소리야?”

배부름.

인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감정이 없다는 에릭 팔든의 대답은 강혁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강혁이 준 1kg짜리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입안에 털어넣으며 에릭 팔든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신에게 버림 받고 벌을 받는 내게 배부름이란 감정은 사치. 나는 오로지 배고픔이라는 감정밖에 느끼지 못한다.”

“....너 설마.”

“맞아, 내 식욕은 배부름 따위는 느끼지 못하게 언제 어느때나 배고픔만을 갈구하게 만들지. 자면서도, 걷다가도 심지어는 여자친구와....”

“됐어, 거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고통을 받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에릭 팔든의 식욕을 가져가고 싶은 생각이 강혁에게서 사라져갈 때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분노의 핀잔이 강혁의 귓가에 꽂혔다.

-언제부터 네가 패널티를 받았다고 이제와서 그걸 걱정하지?

‘....그건 또 뭔 소린데?’

-네가 나를 얻었다고 분노에 몸을 맡기고 화를 낸 적이 있었나?

‘....아니지.’

-인내, 색욕, 순결. 그것들을 얻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얻은 뒤로 그들에게 휘둘린 적은?

‘....없었지.’

-그런데 뭔 패널티 타령이냐 멍청한 녀석아. 네게는 패널티 따윈 먹히지 않아. 만약 먹혔다면 진즉에 몸이 뻥! 하고 터져나가서 죽었겠지.

‘....아하.’

욕설이 가득 담긴 분노의 애정을 온 몸으로 느낄 때, 어느새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모조리 해치운 에릭 팔든이 강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가지고 싶나?”

“....발언이 살짝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 맞아, 난 너를 가지기 위해서 왔다.”

“시련을 견딜 준비는 되어 있겠지?”

“물론, 여태까지 4개의 시련을 통과했어. 너의 시련 또한 다르지 않을 걸.”

“흐....과연 그럴까?”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에릭 팔든의 모습에 강혁이 불안해지려할 때쯤 에릭 팔든이 시련의 내용을 공개했다.

“많이 먹기 대결이다.”

“....뭐?”

“말 그대로야 많이 먹으면 그만인 시련이다.”

“....평범한 시련은 아닐 것 같은데.”

뭔 시련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전신에 돋는 소름을 느끼며 강혁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때.

에릭 팔든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너는 내가 인정할 때까지 혹은 내가 먹는 걸 그만둘 때까지 먹는 걸 멈출 수 없다. 마치 나처럼.”

“....그 말은?”

“몇 날 며칠. 혹은 몇 주, 몇 달이 걸리든 너는 계속 음식을 먹어야 하고 그 음식이 어떤 음식이든 넌 먹어야만 한다.”

“....이런 미친!”

말이 몇 날 며칠이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강혁 또한 마찬가지고, 마음 먹고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고작해야 몇 끼 정도만 먹어도 배가 부를 터.

‘....이게 정말 가능한 시련인가?’

색욕이나 순결 같은 경우에는 가능하긴 했다.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버티면 됐으니까.

하지만 먹는 건 다르다.

그 어떤 것도 먹는 것에 보탬을 주지 않으며 설령 보탬을 주더라도 몇 날 며칠 동안 음식을 먹는 건 솔직히 불가능에 가깝다.

‘당장 푸드 파이터 시합에서 나온 음식들만 먹더라도 배가 터져서 내일까지는 굶어도 될 것 같은데 녀석은 그걸 다 먹고도 1kg짜리 스테이크 두 덩이를 먹어치웠다. 이걸 이기라고?’

물론 에릭 팔든의 인정이라는 또 다른 방법도 있지만 그것도 힘든 일이긴 매한가지.

결국 강혁이 고민에 빠질 때쯤.

분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일단 해라.

‘뭐? 너도 알잖아? 내가 먹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그럼 포기할 거냐? 칠죄나 칠선은 비단 그 능력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 신격. 신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격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단 얘기다. 그런 칠죄 중 하나를 그저 배불러서 통과하지 못할 것 같다고 그냥 포기할 생각이냐?

‘....그건 아니지.’

칠죄와 칠선.

14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그것들을 모두 얻어야지만 신과 악마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일 수 있다.

즉, 그들 중 하나라도 없다면 그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건 강혁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

분노의 핀잔과 다시금 깊게 고민한 결과 강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겠다. 하면 될 거 아니야.”

“좋아, 그럼 시련의 시작은 일주일 뒤. 그동안 배 좀 비워두고 오라고. 내 시련은 오래 걸릴 테니까.”

“....위치는?”

“던전 안.”

“....뭐?”

던전 안에서 푸드 파이트라는 건 어불 성설에 가까웠다.

먹을 것조차 딱히 없는 던전 안에서 푸드 파이트는 곧 사막에서 물 마시기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하지만.

“먹을 게 왜 없지? 던전 안에 널린 게 먹을 건데.”

“....그건 또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몬스터.”

“....아, 빌어먹을.”

먹을 게 널렸다는 말에 의구심을 드러낸 것도 잠시 몬스터라는 에릭 팔든의 말에 강혁은 이마를 짚었다.

몬스터.

이번 푸드 파이트의 음식으로 선정된 것이 바로 몬스터라는 얘기였으니까.

“날 것이든 구운 것이든 상관 없다. 먹기만 하면 돼. 이제라도 포기하고 싶으면 포기하던가.”

“....닥쳐,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이기고 널 가지겠다. 식욕.”

“패기는 마음에 드네. 그럼 일주일 뒤에 보자고.”

드륵-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일어나는 손님처럼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를 떠나려는 에릭 팔든에게 강혁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넌 누구지? 본래 어떤 신의 파편이었느냔 말이야.”

하지만 강혁의 생각과 달리 에릭 팔든은 신의 파편이 아니었다.

“난 원래 인간이었지. 그리고 그들에게 저주를 받았고, 지금은 칠죄 중 하나가 되었다. 내 이름은 에리식톤.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배고픔이라는 형벌을 받은 죄인이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에리식톤, 아니 에릭 팔든은 자취를 감추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