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95
[저는 교단에서 비밀리에 키워지고 있던 템플러라는 집단의 단장으로 교단이 음지에서 벌이는 일들에 대한 처리를 맡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로 악마전 소속으로 악마숭배자들의 단장 역할로 최강의 10인들이 모여 있던 올 마스터 길드 본부를 노렸습니다.]
“....이런 미친! 저게 어떻게 된 거야!”
TV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템플러 단장과 악마숭배자 단장의 모습과 대화들에 교황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분명 자신이 보낸 템플러 단장과 생김새가 똑같았다.
거기에 서서히 그의 입을 통해 흘러 나오는 교단의 치부는 정말 그가 본인이 아니라면 모를 것들로 가득했다.
즉.
“감히 신과 교단을 배반해?! 저놈들을 당장 죽여!”
“하....하지만 이미 기폭 장치를 사용했지만 사용이 되질 않습니다!”
“뭐....? 그게 무슨....”
“아마도 적 쪽에 기폭과 관련 되어 해제를 하는 데에 능숙한 이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젠장젠장젠장!”
쾅쾅쾅!
추기경의 보고에 교황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내려쳤다.
강력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박살이 나서 먼지가 된 테이블의 잔해를 치우라 명령하며 그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처리는 어떻게 할 거지?”
“아마 최강의 10인들이 곁에서 인질 보호를 할 테니 저희 쪽에서는 죽일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애초에 희생까지 사용한 이들이 패배했다면....저희 쪽엔 그들을 감당할 방법이 업습니다.”
“빌어먹을!”
참담한 현실 앞에 교황은 이를 갈면서 지금 상황을 부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자신이 믿는 신에게 자신에게 맡기라고 호언장담한 상황,
그런데 이단을 처리하기는커녕 추한 모습마저 보였으니 그로서는 부끄러운 나머지 쥐구멍에라도 숨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로 그때.
그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라. 나의 아이야.
“....아아!!!”
안개 낀 머릿속이 환하게 정리 되는 듯한 느낌.
상쾌하디 상쾌한 느낌을 받으며 교황이 입에 문 담배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는 교황의 모습에 추기경도 얼떨결에 무릎을 꿇을 때쯤.
교황은 머릿속 목소리에게 또 다른을 전해듣고 있었다.
-이단들을 제거하는 데에 실패했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녀석들을 파악하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괜찮다, 너희들에게 바란 건 이단 제거가 아닌 우리들의 위대함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니.
“하지만....!”
-지금부턴 우리의 뜻을 이어 받은 ‘사도’가 곧 나타나 그들을 징벌할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너희들은 그들을 건드리지 말고 주어진 일에 전념하도록 해라.
“....따르겠나이다.”
목소리에 담긴 호의에 가려진 멸시를 느낀 교황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금 조용해진 머릿속에 그는 한숨과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땅에 떨어진 담배를 짓밟고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사도를 맞이할 준비를 해라.”
“예? 사도라고 하시면?”
“신께서 이단을 징벌할 사도를 내리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그 분을 맞이할 준비만 하면 된다.”
“템플러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들이 내뱉는 말들을 전면 부정하고 우리는 포교에 앞선다.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야 말로 신의 목소리가 필요할 때이니.”
“....알겠습니다.”
쿵-
교황실의 문이 닫히고 혼자가 된 교황은 불이 붙은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중얼거렸다.
“사도라....이단들을 처리할 존재가 오는군.”
사도.
세상에서 신의 힘이나 악마의 힘을 이어 받은 존재를 일컫는 말.
그리고 현재 세상에서 사도라는 이름을 달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라울 슈바함. 그보다 더 강한 존재인 건가. 그렇다면 정말로 이단들을 처리할 수 있겠어. 흐....흐하하핫!!!”
치이익-
빨갛게 달아오른 담뱃재가 자신의 손등을 태우는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그는 교황실이 떠나가라 웃어젖혔다.
라울 슈바함.
세상에 드러난 단 한 명의 사도임과 동시에 최강의 10인의 자리에 떡하니 이름을 박아 넣은 존재.
그리고 그런 그와 비등한, 아니 더 강한 존재가 이단을 정벌하기 위해 지구에 강림한다는 사실에 그는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기자회견을 하루에 한 번씩 하는군. 아주 유명인 다 됐어?”
“원래부터 유명인이었다.”
“오죽 하시겠어. 이젠 우린 아주 필요도 없지?”
팔에 감은 석고 깁스를 부수며 말을 잇는 발터 밀란의 툴툴거림에 강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제 일은 나도 무리를 한 거다. 너희들의 도움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할 거야.”
“쯧, 이런 답지 않는 눈속임까지 보여야 하다니....”
석고 깁스.
최강의 10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그들에게는 딱히 어울리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있던 기자회견에서 템플러 단장과 악마 숭배자 단장이 교단과 악마전의 비밀들을 토로할 때 그들은 석고 깁스나 붕대 등을 찬 채로 기자 회견에 임했다.
아무리 전투가 강자들과의 전투라고 한들 그들이라면 순식간에 나았을, 나아가 엘리자베스와 강혁이라는 뛰어난 성직자가 있음에도 그들이 그런 퍼포먼스를 보인 이유는 하나.
“교단과 악마전이 위험하다는 걸 알려야 했으니까 어쩔 수 없어. 추가로 우리가 피해를 입었다는 걸 보여줄 수도 있으니 방심을 유도할 수도 있고.”
“그래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건 교단이나 악마전이 끝이 아니니까. 오히려 그들을 잡는 게 시작에 가까워.”
“하아,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을 맡게 됐을까....”
한숨 가득 담긴 발터 밀란의 모습에 강혁은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대꾸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몬스터가 되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보단 낫잖아?”
“....그건 그렇지.”
최강의 10인들이 이토록 빠르게 힘을 모으고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강혁에게 들었던 신과 악마의 본성과 그들이 바라는 모습을 들었기 때문이다.
즉, 자신들의 정해진 미래를 들었다는 것이고 그런 미래 따위를 바라지 않은 그들은 강혁과 함께 하기를 택한 것이다.
“그런데 최건은 어떻지? 요즘 도통 볼 수가 없어서.”
“잘 성장하고 있더군. 지금은 S급 헌터 수준이야. 그래봐야 제대로 된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충분해. 나나 수연이 없을 때 올 마스터를 맡아줄 이가 있다는 건 큰 이득이지. 그것도 S급 헌터라면 말할 것도 없잖아?”
“낙하산이라고 욕할 텐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
“....언제나 마이웨로군.”
남들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는 자신의 모습에 한숨을 토해내는 발터 밀란을 뒤로하고 강혁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한 걸음 뗀 거야. 교단과 악마전의 주력을 쳐냈고, 이젠 강한 놈들은 얼마 없겠지. 하지만 방심하면 안 돼. 신과 악마가 좀만 힘을 쓰더라도 괴물 같은 놈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놈들은 대체 왜 잘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지랄인 건지.”
짜증을 감추지 못하는 발터 밀란을 애써 무시하며 강혁은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전력을 부족해. 알지?”
“....안다, 이번 일로 확실히 알았지.”
“맞아, 짜증나지만....사실이야.”
루카스 폴른과 니아 아리엘의 수긍에 나머지 최강의 10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짜증나고 믿기 힘든 일이지만 그들은 무적이 아니다.
모두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남들보다 좀 더 강하고,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것 뿐.
더불어 어제의 전투로 자신과 비견되는 강자들을 만났다는 게 그들의 짜증을 만들어냈다.
세계 최강의 10명이라고 칭송 받던 이들이 고작 하루만에 자신들과 비견될만한 이들을 만났다.
아무리 은거 기인이라는 존재들이 있고, 숨어 지내는 혹은 사정상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이들이 없다곤 하지만 그들에겐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충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아무리 다른 이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지만 현실과 상상은 다르지. 저들의 고고한 프라이드가 박살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언제나 자신보다 강자와 싸우고, 최강의 10인을 넘어선 괴물들을 적으로 두고 있던 강혁이기에 충격을 받진 않았지만 저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만 했다.
“가만히 있다가 죽기 싫으면 움직여야 해.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는 철저한 분업으로 움직인다.”
“분업?”
미즈키 페이의 물음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근차근히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우리가 섭외하지 못한 최강의 10인들은 아직 남아 있어. 알지?”
“그래, 검성과 사도. 두 명이 남아 있지.”
검성, 장 진.
사도, 라울 슈바함.
오직 두 사람만이 그들과의 관계에 발을 걸치지 않은 상황.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하는 상황에 두 사람을 빼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라울 그 자식은 사도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를 포섭해?”
라울 슈바함.
흔히들 사도라고들 부르는 그는 신의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내려 받은 존재.
당연하게도 현재 신과 악마를 적으로 돌린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최강의 10인 중에서 최초로 신과 악마 편에 서는 이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
“그걸 아직 모를 일이지. 그 자가 신과 악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돌아설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혁은 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현재 상황은 좋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로.
그렇기에 강혁의 말에 다른 이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전력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 진도 위험하지. 만약이라도 그가 신과 악마 쪽에 붙는다면 그건 재앙이니까.”
이어진 강혁의 말은 다시 한번 최강의 10인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장 진.
세계 최강의 사나이라고 불리면 1위라는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인물.
강혁조차도 지금의 자신으로서도 그를 대적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데려와야만 하는 인재였다.
“둘 다 데려와야 해. 그래야만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우위에 설 수 있어. 그러니 팀을 둘로 나눈다.”
“한 쪽은 장 진, 한 쪽은 라울 슈바함인가?”
“맞아. 1팀은 니아 아리엘, 루카스 폴른으로 장 진을 찾는다. 2팀은 미즈키 페이, 발터 밀란, 한수연으로 라울 슈바함을 찾아가 그를 데려와. 직접적인 전투가 있을 수도 있으니 모두 조심하고.”
순식간에 팀을 꾸리고 명령까지 하달하는 강혁의 모습에 방안에 모인 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혁, 너는 왜 이름이 없지?”
다름 아니라 강혁의 이름만이 수색 명단에서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강혁의 말은 모두를 이해시키기에 충분했다.
“난 더 강해지러 간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니 다들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해보자고.”
“....좋아, 그럼 바로 가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우선 나부터 가지.”
명령 하달을 끝낸 강혁은 그 말을 끝으로 회의실의 창문을 열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강혁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머지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살아서 다시 만나지.”
무뚝뚝한 루카스 폴른의 말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이내 묵언으로 대답을 대신한 이들이 방안에서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