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93
콰득- 콰득-
올 마스터 길드 건물의 벽에 손과 발을 박아 넣으며 마치 암벽 등반을 하듯, 다만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건물의 외벽을 오르며 템플러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마치 하나가 전체처럼, 전체가 하나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움직이는 그들은 자세히 보더라도 알아 보기 힘들 정도로 건물과 동화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걱정부터 앞서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최강의 10인과의 전투라....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후우, 떨리는 군.’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어차피 일개 사람일 뿐이라고 속으로 되뇌이지만 마음과 머리는 달랐다.
마음으론 템플러 다운 신실함과 자신이 믿는 신들을 부정하고 악으로 규정 짓는 그들에게 단죄를 내리라고 말하지만 머리는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템플러 중에서도 정예만 모인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고, 모든 템플러를 이끄는 템플러 단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역시 우리는 여기서 뼈를 묻을 각오로 임해야겠어. 그것말고는 방법이 보이질 않아.’
뼈를 묻는다.
은유적인 비유가 아니라 현실적인 비유였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아니라 싸우기 전부터 목숨을 걸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전투조차 벌일 수 없는 처지.
오직 템플러 단장만이 최강의 10인 중에서 10위나 9위에 속하는 강함을 지녔을 뿐, 다른 이들은 그에 발끝조차 닿지 못하는 실력을 지닌 상황이었으니 목숨을 거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까웠다.
그리고 최강의 10인들이 모인 회의실에 가까워졌을 때.
템플러 단장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모두 섀크리파이스와 연결 시스템을 사용해라.”
“예!”
“모든 건 신을 위해.”
“모든 건 실을 위해!”
마치 광신도를 연상케하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그들의 입가에서 동시에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섀크리파이스.
희생이라는 이름의 신성 마법을 사용한 대가였다.
그들은 이제 어떠한 방법으로도 오늘을 넘기지 못하고 가장 처참한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다만 그 대가로 그들은 본래의 자신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거머쥐게 되었다.
적어도 죽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신성 마법 중에서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되는 금기의 마법.
섀크리파이스였다.
“신께 이 육신을 바칩니다!”
“바칩니다!”
희생 마법을 사용하며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신께 바치며 강력한 힘을 손에 쥐게 된 그들의 외침이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퍼짐과 동시에.
콰챵!
회의실 벽면의 거대한 커튼월이 산산조각나며 회의실 내부에서 그들의 적이 등장했다.
그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신을 부정한 이단들.
“여기가 너희들 집 안방이야? 입 안 닥쳐?”
나아가 자신들을 바라보며 침을 퉤- 뱉으며 잡상인 취급한 강혁이 그 선두에서 검은 마기와 순백의 신성력을 토해내며 그들을 향해 쇄도했다.
콰아아아앙!
강력한 신성력을 지닌 템플러 단장의 신성력과 강혁이 지닌 신성력과 마기가 뒤섞인 혼돈과 같은 힘이 충돌하며 마치 핵폭발 같은 충격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템플러들과 최강의 10인 간의 전투를 이렇게 시작 되었다.
*‘꽤 쎄네?’
가장 앞에 있던 대장으로 보이던 템플러와 부딪쳐 본 강혁의 평가였다.
꽤 쎄다.
그것이 목숨까지 갈아 넣은 결과라는 걸 생각하면 초라하지만 그 상대가 강혁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적지만은 않은 결과이기도 했다.
‘흠, 역시 교단이나 악마전 쪽에도 최강의 10인과 비견되는 강자가 있긴 했구나.’
교단이나 악마전의 뒷배가 신과 악마라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다만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에 쉬쉬하며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지 못했을 뿐.
그리고 바로 지금.
여태까지 괴담처럼만 떠돌던 숨어지내던 최강의 10인급 존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도면 중위권 수준이다.’
적어도 수연과 비슷한 수준의 강자.
하지만 강혁은 걱정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핏발을 세우며 힘 겨루기를 하는 이를 제외하면 딱히 위험한 이들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넌 나랑 놀자.”
“건방진! 네놈은 신벌을 받아 편히 죽지 못할 것이다!”
상태가 딱히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그것이 강혁이 그를 봐줘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일단 한 방.”
응축된 마기와 신성력이 한데 모여 응축된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템플러 단장은 섬뜩함을 느껴야만 했다.
‘이건 맞으면 죽는다.’
죽음의 기운.
그것이 저 주먹에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뒤로 몸을 날리며 신성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보호막을 구축한 순간 보호막 위로 강혁의 주먹이 닿으며 강혁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폭(爆).”
콰아아아앙! 쩌저저적-
검고, 흰 폭발이 눈앞을 메움과 동시에 보호막이 박살이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보호막의 파편을 멍하니 바라보는 템플러 단장을 향해 강혁의 두 번째 공격이 쏟아졌다.
“메테오.”
쿠구구구구-
상급에 달한 강혁의 마법 재능은 이제 운석 정도는 불러올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드래곤의 신체라는 무지막지한 기반이 있기에 가능한 일.
하지만 강혁을 상대하는 입장에서 그런 기반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신이시여.”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해 기도를 올리며 자신을 구원해주길 강하게 바랄 뿐.
그리고 그런 템플러 단장의 머리 위로 메테오가 떨어져내렸다.
쿠우우웅-
이미 펼쳐둔 차음막과 보호막이 메테오의 충격과 폭음을 가려주었지만 파괴만큼은 막아주지 않았다.
애초에 파괴까지 막을 거라면 메테오를 쓸 이유가 없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방금 전, 템플러 단장이 서 있던 자리에는 집채만한 운석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끝인가?”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부활의 주문을 강혁이 외우는 순간 거대한 운석이 반으로 쩍- 하고 갈라지며 그 안에서 만신창이의 템플러 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깅혀어어어억!”
“요즘 들어 내 이름 부르는 사람이 많네, 역시 사람은 인기가 있고 봐야 해? 안 그래?”
씨익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는 강혁의 모습에 템플러 단장은 이를 빠득 갈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단 한 발자국도 강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쿠구구구-
‘과연 저게 진정 사람이 뿜어낼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마치 지진이라도 일으키는 듯한 떨림.
그 떨림이 오로지 한 사람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템플러 단장은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오로지 신만을 믿고 따르며 그 아래는 모두가 평등하며 하등하다고 생각해온 그에게 강혁의 존재는 두려움과 미지 그 자체.
덜덜 떨리는 몸이 무너지는 것만을 간신히 막으며 꼿꼿하게 서 있는 게 전부인 그에게 강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전부야? 템플러도 별 거 없네. 하긴 그러니까 너희들이 내가 여물기 전에 미리 싹을 쳐내려고 했겠지. 어때? 가지치기가 실패해서 왕성하게 자라난 가지를 보는 기분은?”
웃고 있지만 웃고 있지 않은 목소리.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이들을 향해 강한 분노를 토해내고 있는 강혁의 모습에 템플러 단장은 이를 악물면서 소리쳤다.
“전원 연결(Link)해라! 우린 하나다!”
“우린! 하나!”
연결하라는 외침과 동시에 대여섯 명이서 한 명의 최강의 10인을 상대하던 이들의 기운이 달라졌다.
쿠구구구구-
마치 강혁이나 엘리자베스가 반신의 격을 뿜어냈을 때처럼 주변을 압도하는 광오한 포효와 같은 떨림.
그것이 주위를 강하게 강타함과 동시에 템플러들을 한 단계 더 높은 고차원적인 곳으로 올라가게 만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S급 최상위의 실력자였다면 준 최강의 10인이라고 불러도 될만큼 그들의 강함은 급상승했다.
대여섯 명이 달라붙어야 간신히 상대할 수 있었던 이들을 고작 서너 명이서 상대할 수 있게 되니 전황이 순식간에 급변하는 건 당연했다.
치이이익-
“죽지 않는다!”
“....허, 자존심 상하는데 이건.”
발터 밀란의 극독은 템플러들을 일거에 저승으로 보내지 못했다.
그의 독이 약한 게 아니라 갑작스레 템플러들의 독에 대한 저항력이 급증한 까닭이었다.
결국 단검술만을 사용하여 그들을 상대하며 독은 잠깐잠깐 움직임을 멈추는 용도로밖에 사용하지 못하게 된 발터 밀란이 이를 갈았다.
최강의 10인에 오른 이후로 제대로 된 전투를 하지 못하긴 했지만 이토록 무력한 적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이런 기예를 보일 수 있는 거지?’
고작해야 연결이라는 능력 하나만을 사용했을 뿐인데 급변한 상황에 발터 밀란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좀 쓰러져라! 쓰러져!”
콰득! 콰드드득-
템플러들의 팔다리를 뽑아놓을 것처럼 꺾어대던 니아 아리엘은 쓰러지지 않는 템플러들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고.
“....마법 저항? 드래곤인가 대체 이 마법 저항은 뭐지?”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마법 폭격을 맞고도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의 실드를 두들겨대는 템플러들의 모습에 루카스 폴른은 흥미와 당황을 드러냈으며.
“꺅!”
다른 이들과 직접적인 전투 능력은 떨어지는 미즈키 페이의 경우에는 그녀의 식신들이 허무하게 쓰러지며 본체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진짜 본체는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본체이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닌 셈.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연과 엘리자베스는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템플러들을 쳐내면서 협공을 하며 그나마 제대로 된 전투를 펼칠 수 있었다.
“또 와요!”“하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고작해야 S급 상위에서 최상위권 밖에 안 되던 녀석들이....”
엘리자베스의 외침에 수연은 이마에 손을 얹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S급 최상위와 준 최강의 10인은 그 단계 차이가 무척이나 크다.
그런 이들이 무려 수십 명이나 되니 그들로서도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
당연하게도 숫자도 템플러 쪽이 더 많으니 아까까지만 해도 가볍게 몰아붙이던 최강의 10인 쪽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템플러 단장은 방금 전 상처를 깨끗이 지워낸 모습으로 강혁을 바라보며 코웃음쳤다.
“오늘 너희는 우리와 함께 죽는다.”
“자기 희생인가.”
“그래, 희생으로 증폭된 힘을 템플러 전원과 연결하여 하나의 힘으로 만든다. 이게 우리가 너희를 압도하는 이유. 허무하지 않느냐? 너희들이 노력하여 이뤄낸 힘 따위는 신의 힘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
자신감 넘치는 템플러 단장의 목소리에 최강의 10인은 그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마따나 고작 해야 목숨을 바치고 모든 힘을 하나로 합치는 것만으로 자신들에게 대응할 수 있게 된 그들의 모습은 맥이 빠지게 하기엔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어쩌라고.”
“....?!”
강혁에게는 아니었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신. 내가 보여줄게. 한계 초월.”
쿠구구구구-
그 말과 함께 강혁은 참으로 오랜만에 한계 초월을 사용했다.
최근 들어 한계 초월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할 수 있었기에 쓰지 않았던 그의 특성이 발휘되는 순간.
대지가 갈라지고, 하늘이 요동치며 건물이 흔들렸다.
그리고 모든 소란이 앉은 자리에는....
-꿇어라. 그게 너희 같은 벌레들과 나 사이의 눈높이다.
인간의 모습을 한 신룡(神龍)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