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올 마스터-89화 (90/178)

나 혼자 올 마스터 #89

쾅!

폭음과 함께 시내를 밝혀주던 가로등이 박살이 나며 그 파편이 주위로 비산한다.

당연하게도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그 충격이 전해졌음은 당연한 일.

“꺄아아악!”

“여기 사람이 다쳤어요!”

“제....제발 살려 주....”

주위로 비산하는 철제 파편은 사람 한 명 정도는 가볍게 죽이기에 충분할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각성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일개 일반인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수류탄과도 같은 파편들.

그걸 얻어 맞고,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사람이나 다리가 꿰뚫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 등.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고작 해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패닉에 빠지거나 불구 혹은 죽음에 이르렀다.

“캬하하핫! 대장! 저 벌레들 꼬라지를 봐! 정말 웃기지 않아?”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이나 분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 또한 있었다.

정확하게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들.

빌런들이었다.

그들은 거리 곳곳에 널부러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킬킬거리며 마치 즐거운 개그라도 본 것처럼 웃어댔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도 대장이라 불린 사람은 그저 한숨만 푹 내쉬며 그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래, 어차피 죽을 놈 즐기다가 가라.’

그들이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이유.

그건 빌런들의 무서움을 세상에 다시 알린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승태의 부탁, 아니 명령 때문이었다.

‘나도 조금은 즐겨도 되겠지.’

물론 자신에게 말을 건 부하 빌런의 말에 한숨을 내쉬던 것도 잠시 그도 본래의 성격을 드러냈다.

그 또한 빌런은 빌런.

당연히 각성도 하지 못한 일반인이야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자신 같은 특별한 이를 보필할 존재라고는 생각하긴 했다.

다만 그 이상까진 넘어가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 따위야 자신 같은 우월한 이들을 위해서 존재할 뿐인 거라며 생각하는 만큼 그의 손속에 자비란 없었다.

콰과과과광!

그의 손을 떠난 불덩어리가 건물에 직격하고 그 건물이 터져나가며 커다란 불기둥을 만들어내자 도망치던 사람들의 다리가 풀리고 우수수 쓰러졌다.

고작해야 손짓 하나가 만들어낸 거대한 참극에도 불구하고 대장 빌런은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래! 이 쾌감! 하찮은 벌레 따위가 고귀한 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이 모습! 역시 세상은 나를 위해서 돌아가야 옳아!’

빌런인 그에게 있어서 일반인이란 자신을 받들고 경외하며 존경해야만 하는 존재.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빌어먹을! 각성조차 하지 못한 놈들이 고작해야 돈 좀 많고 권력 좀 쥐었다고 우릴 탄압하려 들어? 버러지 같은 것들이 감히!’

이미 자리 잡은 기득권들은 대부분 일반인이었고, 그들은 각성자가 득세하는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최강의 10인들,

법 위에 선 초법적인 강함을 지니고 모든 각성자들과 일반인 기득권들의 머리 위에 선 이들.

그들만큼은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웠다.

다만 그런 그들마저도 일반인들을 발 아래에 둔다거나 하는 생각을 품지는 않았고, 결국 빌런이 되기 전 그들은 좌절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리에겐 우리를 지원하는 최강의 10인급 존재가 있어!’

그랬던 과거는 더 이상 없다는 듯이 그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최강의 10인.

법 위에 서 있으며 기득권들마저 설설 기는 존재.

그런 이들 중에서 한 명이 자신들의 뒤에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기엔 충분했다.

물론 오늘 일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귀족들을 죽이다니 마음에 들지 않지만....우리에게 더 좋은 세상이 되려면 어쩔 수 없지.’

각성자.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며 일반인들 위에 군림해야 할 이들을 갈아넣는 일이 마냥 좋게만 보일 리가 있나.

하지만 그는 그 제안을 받아 들었다.

자신이 얻게 될 막대한 권리들을 위해서.

후회 따윈 없었다.

오늘의 희생으로 인해서 더 많은 각성자들이 더 빨리 신세계를 맞이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그가 생각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미친 듯이 죽어나갔다.

다리가 잘려나가 과다 출혈로 창백한 얼굴로 죽음을 맞이한 이.

장난스레 던진 단검에 목이 꿰뚫린 이.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빌런들이 활개를 칠 때.

이변이 일어났다.

“크아아악!”

“뭐....뭐야?”

“철혈이다!”

양 떼 사이를 헤집는 늑대처럼 움직이던 그들의 앞을 가로 막은 사냥꾼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헌터.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최강이라고 불렸던 철혈의 등장에 빌런들의 기세는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 차리지 못하고 이를 드러낸 채, 저항하는 빌런이 없는 걸 아니었다.

“너희들도 우리와 같은 각성자면서 왜 우리의 앞을 막는 거냐!”

한 명의 목소리가 어렵지 둘은 쉬웠다.

“그래! 우린 모든 각성자들을 위해 움직인다! 너희도 헌터이기 이전에 각성자라면 우리의 편에 서서 싸워라!”

“빌어먹을 배신자들 같으니!”

도시를 수놓던 폭음, 폭발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빌런들의 목소리가 가득채웠다.

그동안 사람들은 도망갈 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철혈의 길드원들이 묵묵하게 그 말을 듣고 있는 모습에 사람들은 설마?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저 쓰레기들의 말에 철혈이 넘어가버린다면....’

‘빠....빨리 도망가야 돼.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

‘제발 저런 유혹에 넘어가지 마! 전 1위 길드의 위엄을 보이란 말이야!’

그리고 그런 의구심은 달리는 속도를 높혀주기에 좋은 부스터 역할을 하였고,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시민들의 모습에 빌런들은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푸핫! 저 녀석들이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꼴이 보여? 우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희가 배신할까 봐! 아니, 우리와 같이 옳은 길을 걸을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이냔 말이다!”

철혈은 빌런을 막기 위해 이 자리에 왔건만 정작 시민들은 빌런과 철혈을 동일한 선상 위에 두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이 현재 각성자나 헌터가 일반인에게 어떻게 각인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사실에 기세등등해진 빌런들이 목소리를 높이려고 할 때.

“닥쳐라, 냄새나는 것들아.”

“....!!!”

말 한 마디로 주위의 공기를 무겁다 못해서 얼어 붙게 만드는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목소리를 알아챈 빌런들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가 서 있었다.

“....철혈.”

“....김승태.”

“미친,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 최강의 10인 본인이 우릴 잡기 위해서 나온다고?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당황하는 빌런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태는 무표정한 얼굴로 검은 빼들며 명령을 내렸다.

“즉결 처형을 허하겠다. 모두 죽여라.”

“....존명.”

여태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것이 그들의 말에 혹해서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승혁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철혈의 길드원은 각자의 병장기를 빼들곤 빌런들에게로 달려들었다.

“크아아악!”

“아악! 막아! 막으라고!”

“사...살려줘, 난 얼마 죽이지도 않았다고!”

비명의 주인이 바뀌는 참혹한 지옥도에서 승태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걸로 나는 다시 돌아간다. 본래의 자리로!’

그런 승태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는 승태가 부른 피디들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철혈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비명을 내뱉는 빌런들과 그들을 처형하는 영웅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는 철혈의 길드원들과 승태의 모습이 전국, 전세계로 퍼져나갈 때.

“이건 대체 뭔 소란이야?”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그들의 앞에 내려앉은 거대한 핏빛 골렘과 그 위에서 들려온 짜증 가득한 목소리에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짜증이 얼굴에 가득 배인 강혁의 모습이 있었다.

*‘뭔일이야 이게. 빌런들이 나타난 것 같아서 달려왔더니 철혈이랑 빌런들이 한 판 하고 있고, 얼씨구? 승태 녀석도 있네?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

블러드 골렘의 전망대와 비견되는 큰 키 위에서 상황을 내려다 본 강혁은 무언가 기묘함을 느끼며 코를 킁킁거렸다.

그런다고 진짜 냄새가 나진 않았지만 무언가 썩은 악취 같은 것이 나는 것 같기도 했기에 강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상황을 다시금 찬찬히 파악했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빌런에 그에 맞춰서 딱딱 등장한 철혈의 정예들과 승태 녀석. 거기에 그걸 찍는 방송국 카메라까지. 이상해, 이거 진짜로 이상하다고.’

최근 활동이 잠잠 했던 빌런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에 더해서 그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모습을 드러낸 철혈의 정예들.

그런 그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서 모인 수십 대의 카메라들까지.

마치 짜맞추어진 연극처럼 딱딱 맞게 흘러가는 상황들.

인위적으로 누군가가 주도한 것과 같은 상황에 짜증 어린 표정을 지어지고 그 위에 웃음이 맺히기 시작했다.

‘저놈이 배후에 있다. 분명해.’

갑자기 나타난 빌런과 최근 저물어가는 철혈이라는 태양.

거기에 누군가에게 자기 자리가 빼앗기는 걸 싫어하는 걸 넘어 혐오하는 승태까지.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상황 속에서 씨익 미소 지은 강혁은 블러드 골렘의 위에서 뛰어내렸다.

쿵-

높다란 블러디 골렘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린 만큼 묵직한 소리가 주위에 울려퍼졌지만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옳으리라.

오싹-

‘이게 무슨?’

‘이게 인간의 기운이라고?’

‘각성한 지 1년도 안 된 피라미 따위가!’

강혁의 전신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짙은 살기.

그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베일 것만 같은 두려움과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꼼짝도 못하는 철혈의 길드원과 빌런들을 가로 질러 그 끝에 서 있는 승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간 강혁이 환히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 전 길드장.”

“네가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난 한 명의 헌터로서 빌런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온 건데.”

“꺼져라. 저 벌레들을 처리하는 데에는 나 혼자로도 충분해.”

짜증이 가득 담긴 욕설을 내뱉는 승태의 모습에 강혁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래? 그런 양반이 왜 다른 길드원들도 이끌고 오셨대? 마치 멋진 그림이라도 연출하려는 사람처럼?”

움찔-

아주 미세한 떨림.

하지만 강혁으로선 놓치고 싶어도 놓칠 수 없는 떨림이기도 했다.

그런 떨림에 확신을 얻은 강혁의 입이 벌어지며 승태의 몸이 크게 떨리게 만드는 말이 내뱉어졌다.

“마치 빌런들이 이곳에 나타날 걸 미리 사전에 알고 있던 사람처럼 너무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아? 이 상황이?”

“....!!! 지금 감히 내게 그 따위 누명을 씌우려는 것이냐.”

놀란 얼굴을 최대한 숨기며 자신에게 강하게 나서는 승태의 모습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꾸했다.

“그럼 여긴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넌 돌아가서 발이나 닦고 팝콘이나 뜯지 그래?”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했을 텐데.”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내가 너보다 강하니까 너보단 내가 여기 있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죽고 싶은 건가? 1년도 안 된 피라미 따위가 주변에서 받들어주니 뭐라도 된 것 같으냐!”

“여전히 애늙은이 같은 말투는 여전하네.”

분노를 토해내는 승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리던 강혁이 미소를 지워내며 서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꼬우면 말로 하지 말고 주먹으로 말해. 여기서 나를 향해 주먹 한 번만 날려 봐. 거기서 이긴 사람이 저 벌레들 처리하는 걸로 하자고. 어때? 쫄?”

마지막 말에 담긴 짙은 비웃음에 승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강혁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고.

쾅!

그와 동시에 강혁의 뒤에 서 있던 블러드 골렘의 주먹이 승태를 향해 내리꽂혔다.

“끝?”

주먹 아래에 깔린 승태를 향해 내뱉는 강혁의 비웃음 담긴 목소리만이 강남 주변에 고요하게 울려퍼질 따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