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88
“혈 마법의 시작과 끝은 ‘피’입니다.”
“그렇겠지, 이름부터가 ‘혈’ 마법이니까.”
블라드와 함께하는 혈 마법 수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강혁에겐 어렵지 않았다라고 하는 편이 옳겠지만.
아무튼 강혁이 블라드에게 배운 건 단 하나.
피에 대한 지배력이었다.
“먼저 몸에 상처를 내보시죠.”
“....이거 말고는 참 좋은데 말이지.”
다만 당연하게도 피를 몸 밖으로 끄집어내려면 당연히 상처를 내야한다는 선행과제가 필요했다.
그것도 꽤 깊은 상처를 말이다.
마치 자해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꺼림칙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재능을 익히기 위해선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기에 강혁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는 손에 쥐어진 단검으로 손바닥을 좌악 그었다.
후두두둑-
마치 비처럼 손바닥에서 떨어진 피들이 바닥으로 수직 낙하했다.
그리곤 서서히 조그마한 웅덩이를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블라드는 다음 단계로 강혁을 인도했다.
“다음은 저 피웅덩이를 향해 자신의 지배력을 담는 겁니다.”
“지배력을 담는다라....어떻게?”
“음, 전 날 때부터 피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어서 뭐라 설명하긴 힘들지만 집중하며 피에 명령을 주입하는 느낌이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빌어먹을 재능충.”
날 때부터 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태어나는 뱀파이어.
그중에서도 블라드의 재능은 뱀파이어 중에서도 뛰어난 축에 속하는 걸 넘어 다시 없을 수준이었다.
그들의 시조마저 뛰어넘는 피에 대한 지배권과 피에 담긴 막강한 격은 그를 최고의 혈마법사로 만들어주었다.
당연하게도 평범한 인간 출신인 강혁에게는 그런 지배권 따윈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움직여라.
“....용언은 생각도 못했는데 나쁘진 않군요.”
강혁에게는 그 어떤 대상에게도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용언’이 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블라드가 놀라하는 얼굴을 바라보며 허공에 둥둥 뜬 상태로 둥그런 구의 모양을 하고 있는 블러드 볼(Blood Ball)을 가리켰다.
“다음은?”
“지배권 아래에 둔 피를 이용하여 마법을 펼치면 됩니다. 쉽죠?”
“쉽군,”
블라드의 제스쳐에 강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혈 마법이라는 게 딱 피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까지만 어렵지 그 뒤부터는 일반 마법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피를 사용하는 만큼 일반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지녔다는 점은 달랐지만.
“실드.”
가장 간단한 마법 실드를 사용하며 혈 마법에 대한 감을 익히려고 할 때.
강혁은 머리가 핑- 하고 도는 걸 느껴야만 했다.
“....이게 무슨?”
푸화아아악-!
초인의 반열에 든 강혁이 머리를 붙잡고 비틀거릴 수밖에 없던 이유.
그건 다름 아니라 살짝 깊게 베여진 손바닥의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양의 혈류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창백해진 안색으로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 반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강혁이 블라드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런 강혁의 질문에 블라드는 짙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대꾸했다.
“이게 혈 마법의 좋은 점이죠. 강한 이의 피와 막대한 지배권만 있다면 전신에 있는 피 전부라도 혈 마법을 위한 재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말입니다.”
“....그럼?”
“자, 앞을 보시죠. 저 영롱한 실드를 말입니다!”
눈앞을 가득 메우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핏빛 실드의 모습에 강혁은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블러드 실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게....실드라고?”
“저 정도라면 제가 진심을 담아 후려쳐야 부숴지겠군요. 대단하십니다!”
놀람과 감탄이 뒤섞인 블라드의 말에 강혁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중급 혈 마법[LV.2]를 획득하였습니다.]
‘....허, 그래도 대단하긴 한가 보군. 시작부터 중급 2레벨? 처음이지 이런 적은?’
시작부터 중급 2레벨에 달하는 재능을 얻게 된 강혁이 헛바람을 들이쉬고 있을 때.
블라드는 좋은 제자를 만나 여한이 없는 스승의 얼굴로 그를 다음 단계로 이끌었다.
“다음, 다음은 공격 마법으로 해보죠. 어떻습니까?”
“....일단 저것부터 회수하는 방법부터 말해주지 그래? 지금 죽을 것 같거든?”
아무리 강력한 인간이라도 전신에서 대량의 피가 사라지면 죽는다.
그리고 현재 강혁은 계속해서 새로운 피를 만들어내고, 초인적인 체력으로 버티곤 있었지만 지금 블러드 실드 하나에 소모된 피는 전체 피에 절반 가량.
당연히 강혁으로선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블라드는 태연했다.
“그 정도는 버티셔야 합니다. 저는 전신의 모든 피를 끌어다 쓰고 다시 생성되는 피까지 모두 끌어다쓸 수 있습니다. 그러고도 몇 분이고, 몇십 분이고 살아있을 수 있죠. 주인님께서도 그렇게 되셔야 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전체 피의 절반 사용해도 빈혈이 오는데 전신에 있는 모든 피를 끌어다쓰는 걸로도 모자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피마저 빼내야 한다?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전신의 모든 피를 빼버려도 살 수 있는지가 의문인 상황.
하지만.
“수업에 뒤처지면 전 수업을 포기하겠습니다. 꼭 제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길.”
“....젠장. 너무나도 좋은 선생을 두어서 기뻐.”
“저도 뛰어난 제자를 가르치게 돼서 기쁩니다. 그럼 일단 전신의 피를 3할 정도만 남기고 다 빼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
강혁은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눈빛을 보왔다.
*“후읍-!”
강혁이 블라드에게서 혈마법을 배운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물론 태생이 뱀파이어인 블라드처럼 전신의 모든 피를 빼낸 것도 모자라 계속해서 만들어진 피까지 끌어다쓰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전신의 피를 자유자재로 넣었다 뺐다 하며 혈마법을 운용하는 기본적인 틀 정도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훌륭하군요. 제가 딱 바라던 경지 정도에는 도달하신 것 같습니다.”
박수를 치는 블라드의 눈앞에는 강혁의 뜻대로 움직이는 핏빛 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피로 이루어진 강을 보는 듯한 모습에 블라드는 진심으로 감격했다.
그가 애당초 강혁에게 바랬던 건 기본적인 마법을 피를 매개로 사용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 시간 동안 강혁이 도달한 경지는 피로 그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그가 그림자를 찰흙처럼 빚어 무엇이든 만드는 것과 비슷한 단계인 셈.
‘저기서 한 단계만 나아가면 나와도 엇비슷해지겠어. 뭐, 거기까지는 무리겠지만.’
블라드가 현재의 단계에 발을 디디고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종족적인 특성 때문이다.
피가 전부 사라지더라도 살아 있을 수 있으며 주변에 피가 존재하면 그것만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 특이한 몸 상태 덕분에 전신의 피를 다 빼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즉, 그의 강함은 종족적인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꽤 크다는 얘기였다.
‘그런데도 주인님께서는 자신의 몸안에 있는 모든 피를 끌어내실 수 있게 되셨으니....진짜 괴물은 어쩌면 주인님일지도.’
고작해야 몇 주도 되지 않은 시간 사이 강혁이 도달한 경지에 블라드는 한참 동안 혀를 내두를 때.
강혁은 본격적으로 피라는 찰흙을 가지고 무언가를 빚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빚음이 끝나고 강혁이 만든 무언가의 모습에 블라드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어때? 내가 직접 만든 블러드 골렘이다. 무척이나 강력한 놈이지. 이 정도면 충분히 청출어람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어?”
오싹-
자신보다 몇 미터는 더 큰 블러드 골렘의 위에서부터 들려오는 강혁의 섬뜩한 목소리에 블라드는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위세를 느껴야만 했다.
물론 블러드 골렘 정도는 블라드도 만들 수 있다.
크기를 키우고, 그 안을 피로 가득 채우며 자신의 지배력에 따라 움직이는 골렘 정도야 그리 어려운 혈마법이 아니니까.
실제로 마법사들 또한 일반적인 골렘을 어렵지 않게 제작하곤 한다.
다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건 일반적인 골렘이라는 얘기다.
숙련된 마법사가 뛰어난 재료와 마법들을 때려박은 골렘이라면 당연히 일반적인 마법사로서는 평생이 가도 그런 골렘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혈 마법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으니 바로 용혈로 만들어진 블러드 골렘이 바로 그 예다.
‘용의 피에는 그 어떤 뱀파이어도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했는데....’
피에 관해서는 전문가 그 이상인 뱀파이어들마저도 용혈을 이용한 혈 마법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의 피가 아닌 다른 이의 피라면 더욱 많은 지배력이 들어가는 것도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용혈이 지상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의 피라는 점이었다.
‘....용의 자아에 잡아 먹히는 추태를 보일수는 없지.’
능히 반신에 버금가는 존재임과 동시에 신마저 내려다보는 오만한 종족들.
그것이 바로 드래곤이다.
그런 존재의 피를 자신의 지배 아래에 둔다?
당연히 혈마법사이기 이전에 뱀파이어로서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업적이지만 그와 별개로 그건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용의 그 어느 부위에도 용의 자아가 깃들지 않은 곳은 없었으며 심장 다음으로 강한 자아를 지닌 것이 바로 용혈이니까.
즉, 어지간한 뱀파이어, 아니 블라드 본인이 나서도 용혈을 길들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기다가 강혁의 피에는 용혈로서의 성분 뿐만 아니라 극독을 넘어서는 독성마저 깃들어 있다.
그말인즉슨.
‘저기에 닿기만 해도 전신이 녹아내리고 드래곤의 자아에 침범 당하는 걸 동시에 느낄 수 있단 말이지.’
마치 블라드가 한국에 와서 먹었던 짬짜면과 같이 하나를 먹으면서 두 개를 먹을 수 있는 그런 것.
그것이 바로 강혁의 피가 지닌 힘이었다.
그런 피로 만든 블러드 골렘?
‘....최강의 골렘이군.’
그 어떤 대마법사가 만든 골렘을 데리고 오더라도 강혁의 블러드 골렘 앞에서는 상대조차 되지 않으리라고 블라드는 단언했다.
실제로 그건 꽤 옳은 말이었다.
“이게 진짜 재능충....”
강혁이 자신을 보면서 입에 담았던 재능충이라는 말.
그걸 고대로 강혁에게 되돌려 주는 블라드였다.
그가 보기엔 진짜 재능충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보다 혈마법사로서 높은 곳에 도달한 강혁이 재능충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산?”
“....정말 더 이상 가르칠 게 없군요. 하산하세요. 어차피 제가 더 이상 가르치는 그 어떤 것도 그보다 강한 건 없으니까요.”
블러드 골렘을 넘어서는 기술 따위 블라드에게 없었다.
그렇기에 순순히 하산을 허락하는 블라드의 모습에 강혁이 짙은 미소를 머금은 순간.
콰아아아앙!
“....뭐야 저건?”
블러드 골렘 위에서 저 멀리까지 볼 수 있던 강혁의 눈에 거대한 폭발과 함께 치솟는 불기둥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켠 포털 사이트 상단에 뜬 검색어 1위를 본 순간 강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빌런, 서울에 나타나다.]
잠잠하던 빌런들이 모습을,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드러냈다는 사실에 그는 블러드 골렘의 머리를 툭툭 내리쳤다.
-그으으?
자신을 부르는 주인의 부름에 블러드 골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강혁은 고갯짓을 하며 저 멀리 보이는 불기둥을 가리켰다.
“가자, 빌런 잡으러.”
-그으으!
블러드 골렘의 화려한 데뷔전을 알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