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87
혈 마법.
강혁이나 루카스 폴른과 같은 이들이 배우고, 사용하던 기본적인 마법과 비슷하면서도 그 궤를 달리하는 마법이었다.
실드, 애로우, 파이어 볼 등.
다양한 마법들이 존재하고, 혈 마법 또한 기본적인 마법과 다르진 않았다.
다만 그걸 사용하는 매개체가 피라는 점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어떤 피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마법의 강력함이 대부분 정해지고, 거기서 술자의 기교, 기술 등이 더해져서 완성되기에 일반적인 이들이 사용하기에는 그리 좋은 마법이라고 불 수는 없었다.
“인간의 피는 저급합니다. 오히려 몬스터의 피에 깃든 야성이 인간의 피보다 도움이 되죠.”
“나도 인간인데.”
“주군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보실 수 없습니다. 못해도 반신이라고 봐야 옳죠. 그 정도면 인간이라고 말하면 얻어 맞습니다.”
“....”
태연하게 인간을 까내리고 시작하는 블라드의 말에도 강혁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의 말마따나 현재의 강혁은 인간이라는 틀을 어느 정도 벗어 던지고, 신을 향해 나아가는 상태.
이제는 인간보다 신에 더 가깝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강혁의 신격은 강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런 강혁의 피는 당연하게도 혈 마법의 매개로 사용하기에 아주 좋은 피이기도 했다.
“주군의 피를 사용해서 혈 마법을 펼친다면 조금만 숙달되면 저보다 더 강한 혈 마법을 다루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 정도라고?”
“예, 혈 마법이 어렵고 까다로운 마법인 이유는 술자 본인의 피가 너무 저급해서 피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기가 힘들 까닭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능 없는 동물보다 지능이 있고 어느 정도 말이 통하거나 생각이 있는 이를 길들이기 더 쉬운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피를 지배한다. 라는 명제.
거기다가 피를 지배하기 위해서 수준 높은 피를 지닌 편이 지배하기가 더 쉽다는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블라드는 혈 마법으로서 반신의 자리에 오른 존재.
그보다 뛰어난 존재는 신밖에 없을 거고, 아직까지 반신인 강혁에겐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적어도 혈 마법이라는 틀 안에서는 말이다.
“제 말을 전적으로 따르셔야 합니다.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가려면 말이죠.”
“....너 네가 드라마 적당히 보랬지.”
“....옙, 죄송합니다.”
모 유명 드라마의 명대사를 따라하는 그의 모습이 살짝 못 미덥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의 능력은 충분했다.
나를 가르치는 이들은 그 분야의 대가급이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성취를 얻기 힘들다.
워낙에 금방금방 성장을 하기 때문에 성취가 모자란 이라면 며칠 되지 않아서 그를 뛰어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터였다.
거기다가 혈 마법은 지구에서는 존재하는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마법.
당연히 제대로 익힌 사람조차 없을 게 분명했다.
“잘 부탁할게. 솔직히 이거 꽤 마음에 들었거든.”
“확실히 주인님의 피라면 충분히 혈 마법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이미 한 차례 내 피를 빨아본 전적이 있는 블라드가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내 피가 지닌 힘은 대단했다.
뱀파이어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이가 바로 알마드였고, 모든 피는 그에게 영양분과 다를 바 없음에도 내 피를 먹은 그는 그걸 소화시키지 못하고 제대로 탈이 났다.
정확하게는 피에 흐르는 독 때문이었지만 용혈이 가진 힘 또한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니었다.
모든 존재를 제 발 아래로 보는 드래곤의 성격은 고스란히 피나 기타 장기에도 짙게 스며들어 있다.
‘드래곤 하트랑 비슷하지. 용혈은 평범한 이라면 마시자마자 반발 작용으로 죽어버릴 테니까.’
괜히 2급 창고 처박혀서 쓸쓸하게 썩어간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효과.
당연하게도 그런 피를 이용해서 혈 마법을 부린다면 적에게 피에 대한 지배권을 강탈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은 없을 터였다.
설령 같은 드래곤이라고 할 지라도 굽히지 않을 테니까.
‘아마 신이라도 비슷하겠지.’
날 때부터 최강의 생물로 자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드래곤에게 있어선 신 또한 종국에는 넘어봄직한 대상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
“그럼 바로 넘어가자고.”
여타 다른 재능을 익힐 때처럼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나는 그리 말하며 환히 웃었다.
무언가를 배우고 강해진다는 건 내게 있어서 그 어떤 놀이보다도 즐겁게 재밌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불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하기 그지없는 방안.
그곳에서 한 남자가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범한 이라면 글씨 하나 읽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사내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였다.
“....길드장님, 이번에 추가적으로 길드원들의 이탈이....!”
“닥쳐, 나도 알고 있으니까.”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들어온 비서의 목소리에 어두컴컴한 방의 주인이자 무너져가는 전 1위 길드 ‘철혈’의 길드장인 승태가 짜증을 토해내며 축객령을 내렸다.
살기마저 담긴 그의 목소리에 B급 헌터인 그의 비서는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승태는 착잡함이라는 감정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깊은 수렁 속에서 머리를 싸맨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며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시작은 그저 길드에 필요 없던 벌레 한 마리를 내쫓은 것 뿐이었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알아서 나가길 종용했지만 그는 버티고 버텼었다.
결국 길드장의 권한으로 그를 해고시킨 다음부터 일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벌레가 각성해봤자 벌레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우리 사이에 있는 10년이라는 벽은 결코 넘을 수 없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녀석은 10년이라는 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을 수 있는 거지?’
시작은 승태가 해고시킨 벌레, 강혁의 각성이 폭발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 이뤄진 모든 일들이 강혁을 중심으로, 강혁이 직접 해결해대었고, 그 과정에서 그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강해졌다.
물론 그것도 한 때라고 생각했다.
최강의 10인 중에서 그런 성장 속도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느려지기는커녕 지금도 강해지고 있어. 이미 최강의 10인급 수준에 오른 건 물론이고, 점점 더 강해지는 녀석을 누가 막을 수 있지? 무신? 현자? 그들도 아니라면 검성?’
머리가 복잡해진다.
고작 한 사람 때문에 자신의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이 승태는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자식이 모든 걸 망쳤어. 진작에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그를 짓밟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헌터 라이센스 시험에서 오우거를 소환하여 그를 곤욕스럽게 만드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걸 기회로 삼아 더욱 높게 날라올랐다.
거기에 강남에서 벌어진 사건을 노리고 암살마저 지시했지만 녀석은 순순히 살아남아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발터 밀란마저 자신을 경계하게 되어 결국 강혁에 대해선 손 하나 댈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고작 한 사람이 벌인 일치고는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그때부터 철혈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고 승태는 생각했다.
실제로 발터 밀란에게 에둘러서 찍히고, 강혁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에 많은 길드원이 승태의 안목을 의심하며 길드를 나갔다.
설상가상으로 신규 헌터 유입마저 끊기며 철혈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내렸다.
고작 몇 달만에 길드가 무너져가는 모습에 승태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여러 헌터들과 다져둔 인맥들. 그 모든 걸 사용하면서까지 틀어막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끝인가.’
10년에 달하는 헌터 생활.
그것도 최고의 자리에서 이루어졌던 생활은 승태에게 많은 걸 주었다.
돈, 명예, 권력, 인맥 등.
자신이 쌓아온 모든 걸로 무너져내리는 철혈을 붙들었지만 수연이 나가고 그것도 힘들어졌다.
그리고 바로 지금 수연이 세운 ‘올 마스터’의 등장으로 철혈은 완전히 무너졌다.
“크흐흐, 빌어먹을. 한수연, 그 년이고 이강혁 그 놈이고 다 똑같았다.”
살(殺).
중국 최대 암살 집단이자 발터 밀란에게 밀려 2위라는 자리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암살 집단.
예전에 승태마저도 강혁을 죽이기 위해서 암살 의뢰를 넣은 적이 있을 정도로 솜씨 좋으며 평판마저도 좋았다.
사람 잘 죽인다는 평판이 좋은 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살(殺)이 이제는 수연이 만든 길드에 들어간다는 말이 직격타였다.
철혈의 마지막 남은 주춧돌마저 부순 그 직격타는 철혈의 모든 인재가 철혈을 등 돌리게 만들었다.
그들은 올 마스터의 문을 두들기거나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 탓에 한국 정부에서 비상이 걸렸지만 그들의 빈 자리를 올 마스터가 채우게 되면서 명실상부한 1강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원래는 철혈의 것이었을 1강의 자리를 말이다.
“이제 다 필요 없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나 또한 그에 합당한 대가를 내야겠지.”
하루 아침에 망가져버린 인생.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더 아프다고 누군가 말했던가.
딱 승태의 현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최고의 자리에 서서 남들을 내려다 보던 그가 정상에서 떨어져 내리는 추락의 고통은 너무나도 컸고, 그의 단단한 정신을 부수기엔 충분했다.
띠리리리-
그와 함께 전화기를 들고 승태는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나다.”
-....예, 말씀하십시오.
거들먹거리던 목소리는 승태의 차디찬 ‘나다.’라는 한 마디에 공손해졌다.
전화를 받은 이도 한가락 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이지만 승태의 앞에선 범 앞의 하룻강아지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승태의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반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획 실행하자.”
-정말이십니까? 안 하신다고 그렇게 난리를 피우시더니 드디어 마음을 바꾸신 겁니까?
“닥치고 차질 없이 준비해라. 쩌리들이랑 제대로 분탕을 칠 진짜들. 제대로 준비해 놔. 그리고 너와 나에 대한 꼬리도 자르고. 알겠어?”
-암요, 암요. 명심합죠. 그럼 계획 준비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형님.
희희덕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지고, 악력으로 전화기를 산산조각내버린 승태가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강남의 풍경을 바라보며 스산하게 미소를 지었다.
“준비해둔 빌런들을 쓰게 될 줄이야....이건 다 너희들이 자초한 일들이다.”
세상을 어지럽히며 헌터들의 입지를 위험하게 만들면서도 그들의 안위와 이득에 지대한 도움을 지는 빌런들.
그들을 부리던 이가 다름 아니라 승태였음을 사람들이 안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거고, 승태는 단숨에 범죄자가 되어 전 세계에 쫓기는 신세가 되겠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번 계획 이후, 자신은 영웅이 될 것이고 무너져내린 길드 또한 다시 되살아날 것임을 그는 확신했기 때문이다.
끼익- 끽- 끼익-
녹슨 의자가 몸을 기댄 승태의 의자에서 들려오는 귀를 더럽게하는 녹슨 쇳소리가 승혁의 방안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