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76
“흠, 확실히 내부가 진탕이 되어 있긴 하군요.”
“심한가?”
“아뇨, 그 정도는 아닙니다. 블라드 녀석과 주인님과 비교해보면 이 정도는 선녀죠. 그리고 신격을 받아 들인 몸 자체가 워낙 튼튼해서 더 괜찮습니다.”
“아....”
블라드와 알마드의 집에 도착하여 침대에 눕히고 진찰을 마친 알마드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몸 상태가 얼마나 쓰레기였는지 또한 함께 알게 되었다.
‘반신의 격조차 갖추지 못한 이가 완연한 신격의 파편에 의해서 정신마저 잃고 몸까지 뺏긴 것보다 내 몸 상태가 더 쓰레기였더라....반성하게 되네.’
-알았으면 몸 좀 아껴써라. 세입자들 생각 좀 하라고!
‘미안하지만 또 싸울 일 있으면 난 또 그렇게 행동할 걸? 너도 그렇잖아?’
-....쳇.
그런 강혁의 푸념을 들은 분노가 핀잔을 던졌지만 강혁의 성격이나 분노의 성격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에 그의 말을 들을 강혁이 아니었다.
결국 강혁의 말에 격침 당한 분노가 혀를 차는 걸 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가 일단락되고 강혁은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루터 할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무사한 건가?”
“기력 자체가 크게 손상을 입었고, 내부의 장기나 혈관 상태가 말이 아니지만....집중 치료를 받는다면 괜찮을 겁니다. 주인님처럼 엘릭서까진 필요하지도 않고요.”
“....내가 엘릭서를 마셨었어?”
루터 할론의 경과 보고를 하던 알마드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깨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알게 된 강혁이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고.
자신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아니, 강혁이 네가 엘릭서를 마셨다는 걸 알게 되면 괜히 미안해할까봐....”
“걱정할 건 없다. 나야 네가 가진 드래곤 스케일이 필요했으니 엘릭서를 구해온 것 뿐이다.”
“저....저는 저 때문에 그렇게 되신 거니까 도와드리고 싶어서....”
각자 나름대로의 변명을 늘어 놓는 세 사람의 모습에 강혁은 한숨을 토해냈다.
엘릭서.
죽기 직전, 혹은 갓 죽은 사람이라면 되살릴 수 있다. 라는 말이 있는 지고의 영약.
망가질대로 망가진 강혁의 신체마저 복구한 전적이 있으니 그 말의 대부분이 사실일 터.
당연하게도 그런 영약의 가치는 적지 않다.
그런데 그런 영약을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남을 위해서 구해와서 사용했다는 말을 들으니 강혁으로서는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친구들이 왜 엘릭서의 복용 사실을 숨겼는지 이유 또한 얼추 알 것 같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내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그랬나? 하긴 부담스럽지 않으면 그게 미친 놈이고 이상한 놈이지.’
건물 몇 채 가격을 줘도 구하지 못하는 게 엘릭서다.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물건이 바로 엘릭서이며 살 돈과 다른 것이 있더라도 물량이 없어서 못 사는 경우마저 있는 것이 바로 천고의 영약, 엘릭서.
자신이 그걸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미안함과 고마움이 전신 가득 차오르는데 부담스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뭘 준 건데. 알케미 그 녀석에게.”
“....나는 내가 만든 마법 시약을 주기로 했다.”
“....난 필요할 때 몬스터 부산물을 구해다 주는 걸로.”
“저....저는 삭신 쑤실 때마다 힐을 써달라고....!”
“....하, 됐다. 그 녀석 주소랑 번호나 불러둬. 내가 먹은 건데 값은 내가 치러야 하는 게 맞겠지.”
“강혁아, 하지만 괴짜 녀석은 자신이 필요한 게 아니면 대가로 받질 않아.”
“그래, 우리쯤 되니까 녀석도 그런 조건을 내건거다. 어쩌면 그저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 지도 모르지.”
남들은 어찌할 수 없는 우러러만 보아야 하는 존재들을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권한.
알케미가 바란 건 현자가 만든 마법 시약도 구하기 힘든 몬스터 부산물도 몸이 아플 때 치료해줄 성직자도 아니었다.
그저 현자, 무신, 성녀 등.
전 세계를 발 아래에 두는 이들을 자신의 발 아래에 두어 그에 해당하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한 방법일 뿐이었다.
그걸 전해들은 강혁은 이를 악물면서 최대한 밝은 미소를 머금었다.
“말해. 상관없어. 그리고 너희만 유명인이야? 나도 유명인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번호랑 주소만 내놔. 이번 일 마무리 되면 내가 직접 가서 처리할 테니까.”
“하아, 강혁....”
“됐다, 녀석이 저럴 줄 알았으니까 우리가 말 안 한 것 아니냐. 우린 할 만큼 했다.”
“....나중에 필요한 일 있으시면 말해주세요!”
말리려는 니아 아리엘, 그런 니아 아리엘을 말리는 루카스 폴른과 두 주먹을 쥐어 보이며 언제든 불러달라는 엘리자베스 할론까지.
자신을 걱정해주고 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아까와는 달리 진심으로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고맙다. 문자 찍어서 보내줘.”
“내가 보내주마.”
“알았다. 자, 그래서 아저씨는 무사할 거고 구할 방법은 그냥 기다리면서 치유만 하면 되는 건가?”
“예, 마침 옆에 메시아도 있으니 딱 적당하군요.”
“....너도 메시아에 대해서 아는 거야?”“모를리가요. 어찌 보면 메시아도 신이면서 반신과 다르지 않은 존재. 반신이었던 저희가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죠.”
“그리고 언데드인 만큼 저런 류의 존재에게 민감한 것도 한몫했지.”
“아, 하긴 그렇겠네.”
약해지기 전의 알마드와 블라드는 반신에 해당하는 강함을 지녔다.
같은 반신인 드래곤에 비하면 많이 쳐지지만 그래도 그들의 강함은 특별하며 독보적이었다.
최강의 10인이 여럿은 달라붙어야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들.
그 정도 존재가 되면 상성의 차이가 거의 사라지지만 언데드와 성녀의 강화판인 메시아는 상극 중에서 상극이다.
당연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 구조인 셈.
“메시아라면 충분히 이 사내를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뭐, 메시아도 상태가 영 좋지 않을 걸 보니 곧바로 털고 일어나는 건 힘들겠지만....언젠간 일어날 거라는 건 확실하지.”
알마드와 블라드.
전직 반신들의 잇달은 증언에 강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자베스를 바라보았다.
“그럼 여긴 너에게 맡길게. 그리고 어지간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 하지만 아버지를 찾고 계실 다른 오빠들이나 언니들이....”
“지금으로선 그들이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몰라. 마지막에 녀석이 한 말 못 들었어? 너도 죽이려고 했어, 나만이 아니라 너도. 그러니까 언제 너도 그들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얘기야.”
“....알겠어요.”
“식료품들은 저기 두 녀석에게 맡기고 넌 여기서 루터 아재가 일어날 때까지만 고생해줘.”
“제 아빠이니 제가 돌보는 게 맞겠죠. 꼭 아빠가 몸 성히 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아까와 같이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자신감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지은 강혁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잘 부탁해.”
“으으으으!!!”
옆에서 니아 아리엘이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신음을 내뱉었지만 애써 무시한 강혁은 이내 루카스 폴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빈방으로 가자. 아까 궁금했던 점들. 다 말해줄게.”
“그것만 기다리고 있었다. 전부 다 말해주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다.”
“숨기고 싶은 것도 없어. 나도 아까 전에서야 알아낸 거니까.”
눈치를 주는 루카스 폴른의 말에 입을 삐죽 내밀며 퉁명스레 대꾸한 강혁은 그 길로 은신처에 숨겨진 빈방으로 사라졌다.
그런 강혁의 뒤를 따라 니아 아리엘과 루카스 폴른이 따라 들어가고, 그 방의 문앞을 알마드와 블라드가 나란히 지키고 섰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옅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만신창이의 루터 할론의 손을 꼬옥 붙잡으며 눈을 감았다.
“....제가 꼭 멀쩡하게 다시 일어나게 해드릴게요. 아빠.”
화아아악-
그와 동시에 그녀의 전신에서 환한 광채가 터져나왔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알마드와 블라드만이 눈살을 찌푸렸다.
“....피부 다 타겠군.”
“후, 보기만 해도 평생 느낄 짜증을 다 받는 기분이야.”
언데드인 둘에게 있어서 메시아의 광채는 그 어떤 짜증보다 더한 존재였기에 광채가 사그라 들 때까지 두 사람은 한참이나 인상을 찌푸린 채로 서 있어야만 했다.
*“자, 그래. 차음막까지 다 쳤다. 들을 사람도 없고. 그럼 이제 말해봐. 메시아란 대체 무엇인지. 루터 할론은 왜 저렇게 되었는지. 전부 다.”
방안에 놓인 낡은 나무 의자에 걸터 앉으며 말하는 루카스 폴른의 말에 강혁은 다 말해주겠다는 듯이 마주 걸터앉으며 입을 열었다.
“메시아는 특성 : 성녀의 진화 버전이라고 보면 돼.”
“진화 버전이라....정확하게는?”
“반신과 신 사이. 어쩌면 새로운 신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힘 자체가 미약하여 반신으로 보는 존재. 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였나. 우리가 그녀의 말 한 마디에 무릎을 꿇은 게?”
“으, 그 말 하니까 기분 나빠졌어.”
자존심 빼면 시체인 그녀답게 루카스 폴른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까 전 엘리자베스의 언령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일인 탓이었다.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며 강혁은 말을 이어 나갔다.
“루터 아재가 저리 된 건 아까 말했던 신들 때문이야. 나를 죽이러 온 신. 알지? 이건 얘기해줬으니까.”
“그래서 왜 저렇게 된 거냐고 묻는 거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신 중 한 명의 신격 파편이 루터 아재 몸에 박혀 있었고, 거기에 내재된 신의 자아가 루터 아재의 몸을 집어삼킨 거다. 내가 그걸 흡수했으니 이제는 멀쩡해지겠지만.”
“....참 복잡하군.”
모든 설명을 듣고난 뒤, 루카스 폴른은 짜증이 담긴 얼굴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그 분을 토해냈다.
신이 자신들을 보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자애롭지도 않으며 언제든 자신의 몸에 신격을 박아넣을 수 있다는 것이 소름끼치는 것.
하지만 강혁은 거기서 루카스 폴른의 생각 일부를 수정해주었다.
“모든 이들에게 그럴 수 있는 건 아닐 거야.”
“왜지?”
“성기사니까.”
“....아.”
“루터 아재는 어떻게든 신들과 밀접하게 관계될 수밖에 없는 위치이니 만큼 신과의 연결 고리도 우리보다 훨씬 짙을 게 분명해. 그리고 그 연결 고리를 통해 신격을 박아 넣었다면 이해하기도 쉽지.”
“우리는 그들과의 연결 고리가 옅으니 신격이라는 제어 장치를 박기 어려울 것이다?”
“정답이야.”
“후우, 그건 다행이군.”
강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는 루카스 폴른의 모습에 니아 아리엘은 궁금증 담긴 얼굴로 강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루터 아저씨의 몸에 있던 신격을 강혁이 네가 얻었다면 너도 강해진 거야? 얼마나 강해진 건데?”
궁금증을 풀지 않으며 못 잘 것 같은 어린 소녀의 얼굴로 질문을 던지는 니아 아리엘의 모습에 강혁이 씨익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궁금하면 몸으로 알아 보지 그래?”
다소 도발적인 언사가 담긴 강혁의 목소리에 니아 아리엘 또한 둥글둥글한 표정을 지우고 전투적인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럼 오랜만에 뜨겁게 한 판 해볼까?”
방금 전의 싸우고 온 이들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의 모습이었지만 루카스 폴른은 이제 모든 걸 포기한 얼굴로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해.”
이미 두 사람의 막장을 너무나도 많이 겪은 탓에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