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74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엘리자베스의 말에 담긴 힘에 의해서 강제로 무릎 꿇려진 강혁은 멍하니 지금 상황을 바라보았다.
3대1의 상황이었음에도 무척이나 팽팽했던 전투가 엘리자베스의 참전으로 순식간에 소강 상태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 신성력의 광채를 뿜어내며 천천히 걸어오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강혁도 이미 한 번 느껴본 적이 있는 기운이었다.
‘....신들과 만났을 때와 비슷한데?’
기절했을 당시에 만났던 신들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감당할 수 없는 거력.
그런 거력이 엘리자베스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그들과 비교하기엔 엘리자베스의 격과 힘이 너무나도 낮았지만 신이 연상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엘리자베스 할론이 저러한 힘을 지니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강혁이 고민에 빠졌을 때, 분노가 그 해답을 알려줬다.
-메시아다.
‘메시아? 그게 뭔데 엘리자베스가 저런 막대한 힘을 가지게 된 건데?’
-인간의 몸으로 신의 힘을 가진 존재. 본디 성녀는 신과 차별화 된 독자적인 신성력을 다룬다. 그걸 다르게 말하면 성녀 또한 신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얘기지. 그리고 메시아는 바로 그 성녀가 신의 자리에 한 발자국 걸친 상태를 말한다.
‘그럼 네 말대로라면 지금 엘리자베스의 상태는....’
-거의 신이라고 볼 수 있겠지. 네 한계 초월처럼 그리 오래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만 해도 장난 아니잖아?’
-그래, 그러니 저 힘을 이용해서 지금 상황부터 처리해라.
‘그러는 게 좋겠네.’
쓸 수 있는 건 모조리 쓴다.
그것도 신에 필적하는 힘을 빌릴 수만 있다면 루터 할론을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하고 그의 몸에 박힌 신격을 흡수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
생각을 마친 강혁이 걸어 오는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엘리자베스! 루터 아재에게만 그 힘을 집중시킬 수 있겠어?”
제압 당한 상황에서 내뱉는 목소리인 만큼 목에 핏대가 설 만큼의 힘을 써야 했지만 다행히 강혁의 목소리는 엘리자베스 할론에게 닿았다.
“....노력해볼게요.”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자베스 할론의 대답을 듣자마자 강혁은 다른 이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다.
“다들 들었지? 자세한 건 나중에 따지고 지금은 지금에 집중해!”
“....후우, 오늘따라 참 많은 일을 겪는 것 같군. 알겠다, 다만 이번 일이 끝나면 오늘 있었던 일과 엘리자베스 할론에게 벌어진 일 모두를 말해줘야 할 거야.”
“난 준비 됐어!”
강혁의 외침을 들은 루카스 폴른은 자신이 엘리자베스 할론의 힘 앞에 무릎을 뚫었다는 것이 믿기 힘든지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후에 해줄 것을 부탁했고, 니아 아리엘은 밝은 미소로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두 사람의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강혁이 엘리자베스 할론을 향해 소리쳤다.
“우린 준비 됐어! 시작해, 엘리자베스!”
준비가 끝났음을 아리는 강혁의 목소리에 신격을 유지하는 동안 찾아온 충격에 엘리자베스 할론의 입가를 타고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신격이라는 막대한 물을 엘리자베스 할론이라는 작은 그릇이 버티지 못한 결과였다.
물론 특성 : 메시아 덕분에 물을 담을 기반 자체는 다진 덕분에 딱 한 번은 더 힘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 한 번이 바로 지금 사용되었다.
“....아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루터 할론의 모습에 엘리자베스는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자신의 몸에 깃든 미약한 신격을 발휘했다.
루터 할론에게 깃든 제우스의 신격처럼 남에게 빌린 신격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이룩한 새로운 신의 신격이 오로지 루터 할론에게 집중되었다.
“끄으아아아악!”
신격과 신격의 부딪침.
여태까지 엘리자베스의 신격을 떨쳐내기 위해서 저항하던 제우스의 신격과 집중된 엘리자베스의 신격이 부딪치며 발생한 어마어마한 고통이 루터 할론의 전신에 직격으로 꽂혔다.
전신에 울긋불긋한 핏줄이 솟아오르는 것만 보아도 그가 느끼고 있을 고통이 얼마나 큰 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터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느낄 고통이 얼마나 클지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 와중에도 엘리자베스 할론은 힘의 집중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지금 아버지를 붙잡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야 돼. 그건....그건 볼 수 없어.’
지금 이 자리에 자신의 아버지, 루터 할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으로 그녀는 이를 악 물고 신격을 전개했다.
“엘리....많이 아프구나.”
“....!!!”
하지만 그녀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힘이 빠진 듯한 루터 할론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자 그 다짐은 거세게 흔들렸다.
자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아버지의 목소리.
여태껏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목소리는 아직 어린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뒤흔들기엔 충분했다.
스르륵-
신격의 전개와 동시에 산발이 된 머리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가고, 치켜든 팔 또한 물 먹은 미역처럼 축 쳐지는 모습에 루터 할론의 몸을 짓누르던 신격의 힘 또한 약해졌다.
콰득- 콰드드득-
그리고 그때만을 노렸다는 듯이 신격의 억제를 뚫어내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루터 할론의 모습에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두려움이 번져갔다.
“....아버지가 아니야.”
“맞다, 드높은 천상에서 너희를 내려다보고 있는 만물의 아버지가 바로 나이니 어찌 보면 네 아비 또한 나라고 볼 수도 있겠지.”
“당신 따위는 내 아버지가 아니야!”
번들거리는 미소 너머로 보이는 루터 할론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모습에 엘리자베스 할론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구속을 풀어낸 루터 할론, 아니 제우스의 인격이 루터 할론의 몸뚱이를 움직이며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터벅- 터벅- 터벅-
저택이 무너지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가라앉은 곳에서 루터 할론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할론의 앞에 우뚝 멈춰선 제우스의 인격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메시아라....새로운 신은 기존의 체계를 망가뜨리지. 너의 등장으로 세상은 신과 악마들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 불화와 혼란의 싹은 미연에 자르는 게 맞겠지.”
루터 할론의 몸을 빌린 이가 그의 몸으로 그의 딸을 죽인다.
참으로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지만 엘리자베스 할론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리기만 할 뿐 무언가를 하지 못했다.
이미 신격은 쓸 수 있는 만큼 사용했고, 그 리바운드로 인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극심한 탈력감에 허덕이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루터 할론의 두터운 손을 바라보기만 할 뿐.
평소 같았으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다정한 아버지의 손이었을 그것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아닌 목을 노리고 뻗어졌다.
단숨에 목을 부러뜨릴 속셈이 담긴 그의 손이 엘리자베스 할론의 목 앞에 도달하는 순간.
“수고 많았다.”
“....아.”
낯익은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안정되는 목소리에 엘리자베스 할론이 낮은 탄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순간 스르륵 허물어지는 그녀의 몸을 누군가가 가볍게 받아들었다.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맡겨.”
“....아저씨.”
당연하게도 그녀를 받아든 누군가는 강혁이었다.
그녀가 루터 할론을 붙잡고 시간을 끄는 동안 강혁은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이 자리에 섰다.
더불어 준비를 끝마친 건 비단 강혁만이 아니었다.
“솔직히 놀랐다. 각성한 지 이제 막 1년이 다 되어 가는 어린애가 우리 셋을 무릎 꿇린 줄은 몰랐거든. 이번 일이 끝나고 긴밀한 대화를 나눠봤으면 좋겠군.”
“그래도 강혁이는 못 줘!”
자신들을 무릎 꿇린 엘리자베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루카스 폴른과 갑자기 강해진 엘리자베스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니아 아리엘까지.
모든 준비가 끝난 이들 사이로 엘리자베스를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은 강혁이 걸어갔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우뚝 멈춰선 강혁은 루터 할론의 몸을 빌린 제우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신이 좀스럽기는. 그거 엿 한 번 날렸다고 내 주변 사람 몸을 빼앗아서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죽이려고 해? 그게 무슨 악취미야?”
“....일개 필멸자 주제에 신을 능멸한 죄는 가볍지 않다.”
“걱정 마. 곧 나도 너희들과 나란히 하는 신격을 얻어서 너희 앞에 다시 서줄 테니까.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둬. 그때가 되면 너흰 전부 내 손에 죽어.”
“건방진....!”
신들을 모조리 죽이겠다는 강혁의 오만함 가득한 발언에 루터 할론의 몸을 뒤집어 쓴 제우스가 이를 갈았다.
드높은 신 중 신인 그가 직접 인간의 몸을 빌려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
바로 강혁의 저런 모습 때문이었다.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걸로도 모자라 자신에게 엿을 날린 오만한 모습.
그 모습 때문에 제우스는 참으로 오랜만에 인간들의 세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의 신격에 깃든 미량의 자아일 뿐이지만 그 또한 제우스인 것에는 변함이었다.
그가 느낀 분노 또한 루터 할론의 몸에 제대로 깃들어 있다는 얘기.
“넌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고, 아쉽지만 다른 세 녀석을 붙잡은 걸로 만족해야겠군.”
다른 세 녀석.
분노, 색욕, 인내를 말하는 제우스의 말에 강혁은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꾸했다.
“만족? 과연 네가 만족할 수 있을까? 네 몸에 깃든 신격은 내가 잘 빨아먹어줄게.”
“....물에 던지면 입만 둥둥 뜰 것 같은 녀석 같으니. 그런 오만도 이제는 끝이다. 이 몸을 차지하느라 시간은 좀 걸렸지만 이제 이 몸은 완벽하게 내 통제 아래에 있다.”
딱!
말을 함과 동시에 손가락을 튕기는 제우스의 모습에 강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수십 개의 번개 다발이 강혁의 주위로 떨어져내렸다.
콰릉- 콰릉- 콰르르릉!
일부로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강혁을 제외한 주위를 처참한 크레이터 더미로 만들어버린 제우스가 강혁을 바라보며 이죽였다.
“이걸로도 부족할 것 같나? 너희들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나 고작 인간이다. 필멸자 따위가 신에게 대적하고도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짙은 분노마저 배어 있는 제우스의 목소리가 주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목소리만으로 세상을 진동시킬 것 같은 그의 목소리에도 강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씨익-
“....웃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강혁의 모습에 제우스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절대 질 리가 없는 자신이건만 ‘패배’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새겨지는 듯한 느낌.
아무리 본체도 아니고 화신체도 아니라지만 그에게 있어서 패배란 존재해선 안 되는 단어였고,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애써 그런 감정을 짓누를 때, 강혁이 행동을 개시했다.
“한계 초월.”
“흥, 지겹구나. 악마 놈들의 행색을 따라하는 모습이나 신의 모습을 따라하는 저열한 눈속임. 그걸로 나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어리석군.”
이미 많이 보았던 강혁의 한계 초월.
고작 그걸로는 자신을 이길 수 없음을 확신하는 제우스의 모습에 강혁은 퉁명스런 얼굴로 대꾸했다.
“이번엔 좀 다를 걸?”
“...뭐?”
“좋은 걸 먹었거든. 일회용이지만....눈앞에 있는 걸 먹어치우면 되니까 별 문제는 없겠지.”
좋은 걸 먹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강혁의 말에 제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한계 초월을 사용한 강혁의 모습이 점점 거대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제우스의 얼굴이 점점 딱딱해져 갔고, 이내 빌딩보다 거대해진 강혁.
아니, 거대한 무언가의 모습을 본 순간 제우스는 강혁이 무엇으로 변한 건지를 파악하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드래곤, 어찌....어찌 네놈이 그놈들의 신체를?!”
드래곤.
지상 최강의 생명체이자 신에게 필적하는 유일하는 생명체가 바로 강혁이 택한 제우스를 이길 방법이었다.
-그럼 한 번 시작해 보자고. 네가 강할지 내가 강할지.
그와 동시에 강혁은 커다란 입을 쩌억 벌렸다.
푸화아아악!
쩍 벌어진 입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불길이 제우스가 서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지상 최강의 생명체 드래곤의 필살기.
브레스가 뿜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