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72
콰르르릉-
무너져내리는 저택의 풍경을 바라보며 강혁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저거 루터 아재가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닌데?’
단 일격에 거대한 저택을 무너뜨리는 힘.
성기사인 루터 할론에게 어울리지도 걸맞는 힘도 아니다.
그의 힘은 한 방 한 방이 강력한 니아 아리엘과 같은 그런 힘이 아니라 오랫동안 전투를 유지할 수 있는 지구력과 체력에서 나온다.
즉, 지금 그가 보인 힘은 여태까지의 그와는 전혀 다른 힘이라는 얘기.
그에 동의하듯 분노가 대꾸했다.
-당연하다. 저건 일반적인 필멸자가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니니까.
‘....필멸자가 다룰 수 없다....그 말은?’
-그래, 저 성기사가 다루는 힘은....미약하지만 신격이 스며든 힘이다.
‘하! 엿 한 번 날린 대가치고는 너무 큰 거 아니야?’
-그들에게는 미약한 신격 쯤이야 자기를 능멸한 필멸자를 죽이기엔 그리 비싼 대가가 아니라는 거지. 그들의 신격은 너처럼 미약한 횃불이 아니라 태양과도 같으니까.
‘....비유 한 번 살벌하구만.’
횃불과 태양.
어쩌면 반딧불과 태양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차이.
열심히 달렸건만 아직까지도 신에게 닿기란 무리였나? 라는 생각에 강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어진 분노의 말에 그의 두 눈이 반짝였다.
-대신 저 힘을 네가 가지게 된다면 횃불이 모닥불 정도는 될 지도 모르지.
‘내가 가진다라....그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만약 내가 루터 아재가 가진 신성력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되지?’
-지금 네가 한 번 한계 초월을 할 때마다 망가지는 약해빠진 몸뚱아리가 조금은 괜찮아지겠지.
‘....그것만 해도 충분하네.’
최근 들어 한계 초월을 사용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강혁이기에 분노의 말에 구미가 당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악마화와 신성화.
어찌보면 트럼프에서 조커와도 같은 강혁의 비장의 수.
그것들은 분명 좋은 효과를 지녔지만 그와 별개로 한 번 한 번이 강혁에게 치명적이게 작용했다.
이번에 며칠씩이나 기절을 한 이유도 지나친 한계 초월의 사용으로 인한 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런 한계 초월을 패널티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최강의 10인을 갈아치우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승태 녀석을 끌어내리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고.’
현재 강혁이 목표로 삼고 있는 건 위태위태하게나마 버티고 있는 승태를 완전히 끌어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이 기회로 작용하게 되는 셈.
그렇기에 강혁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찬찬히 루터 할론을 바라보았다.
촤르르- 촤르르르-
‘....번개?’
신성력과 섞여 우윳빛을 띄는 번개가 루터 할론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모습에 강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거기에 분노의 부연 설명이 더해졌다.
-제우스로군. 그 쫌팽이 녀석 엿 한 번 먹였다고 주신이 직접 나서?
‘제우스라고? 나랑 대화하던 그 인자한 척 하던 신?’
-그래, 그 놈 맞다. 역시 되도 않게 인자한 척 할 때부터 알아봤지. 원래 그놈은 그런 놈이다.
인자한 모습이란 인자한 모습은 다 보여줘놓고 엿 한 번 날렸다고 직접 신격마저 주입하여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 강혁은 기가 찼다.
‘아무리 내가 엿을 날렸다지만 내게는 귀할 정도로 많은 신격까지 부여하면서 나를 죽이려고 해? 신이 왜 이리 쫌팽이야?’
-방금 말했지? 인자하고 자애로운 신의 모습을 기대하는 거라면 그 생각 지우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거다.
‘....허, 일단 저 번개부터 어떻게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정답이다. 제우스의 번개는 대상의 신체를 넘어 영혼마저 불 태우는 걸로도 악명이 높지. 제 주인을 똑닮아서 싸가지가 없어.
‘....너 진짜 신들 싫어하는구나.’
-흥,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죽임을 당할 상황에 놓인 강혁보다도 더한 분노를 가지고 있는 ‘분노’의 모습에 강혁이 헛웃음을 터뜨릴 때.
파앙-
“....죽인다.”
“....거, 우리 사이에 생각할 시간도 안 주는 건 너무한데 루터 아재!”
공기막이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부숴진 잔해들을 짓밟으며 코앞에 도달한 루터 할론의 우람한 모습에 강혁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을 내뱉었다.
전신을 휘감은 전류의 갑옷과 그 위에서 새하얗게 광채를 터뜨리는 신성력의 향연.
그 모습에 강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거 내가 아는 루터 아재의 신성력보다 많은데?’
-신격은 신성력의 근간이 되는 힘. 그런 신격이 인간의 몸에 깃들었으니 신성력이 증폭되는 것도 당연한 일. 강해졌다고 방심하지 마라.
‘알아, 나도 눈 있고 기감 있다. 방심해서 당하는 일은 없어.’
꽈아아악-
분노의 핀잔 어린 목소리에 주먹을 말아쥐며 속으로 투덜대던 강혁은 자신의 안면을 향해 내리꽂히는 루터 할론의 주먹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후웅-
정확하게 코앞에서 지나가는 주먹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뒤로 몸을 날린 강혁의 앞에는 어느새 다가온 루터 할론이 서 있었다.
‘....돌겠네.’
피해도 피해도 끝이 없는 상황.
마치 뫼비우스의 띠에 올라탄 기분을 느끼며 강혁에 재차 목을 젖히고, 허리를 젖히고 스텝을 밟으며 루터 할론의 공격을 최대한 흘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루터 할론의 주먹에 담긴 뇌기가 흘러나와 몸에 침투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찌릿-
그리고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어느 순간부터 차곡차곡 쌓인 뇌기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강혁의 몸을 경직시켰다.
후웅!
그때만을 노렸다는 듯이 복부를 향해 꽂히는 주먹의 모습에 강혁을 이를 갈았다.
‘피하기엔 늦었다! 이건....최대한 안 아프게 맞아야 돼.’
이미 피하기엔 늦었고, 그나마 남은 건 피해를 최소화해서 맞는 것뿐이다.
키이잉-
전신에 퍼져 있던 마기가 피부를 단단하게 만들고 신성력이 그 위에 우윳빛 막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강혁이 생각해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그래도 아예 고통이 없을 수는 없었기에 강혁이를 악문 순간 주먹이 복부에 바로 직전.
빠각!
“....강혁이는 누구도 못 건드려. 그게 아저씨라고 할 지라도.”
루터 할론의 팔꿈치 부분에 작럴한 니아 아리엘의 주먹이 그의 팔을 기형적인 각도로 꺾어놨다.
다시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걱정은 기우로 그쳤다.
뿌득- 뿌드드득-
“....진짜 괴물 다 됐네.”
“원래부터 바퀴벌레라고 불리긴 했지만....지금은 바퀴벌레를 넘어섰군.”
기형적으로 뒤틀린 팔을 그대로 되돌리며 신성력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루터 할론의 얼굴에는 고통스런 기색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좀비를 보는 듯한 모습에 루카스 폴른마저 포커 페이스를 깨뜨리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대꾸했다.
하지만 루터 할론은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연신 ‘죽인다....’라는 말만 반복할 따름이었다.
“강혁, 일단 무슨 일인지 설명부터 해주지 그래?”
“맞아, 아저씨는 갑자기 왜 저러는 건데? 응?”
그나마 치료를 하는 사이에 번 틈을 타서 두 사람은 방어 태세를 잡음과 동시에 강혁에게 루터 할론이 갑작스레 적이 된 이유를 물었다.
그들의 말에 강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아까 말했지? 신이랑 적대하게 되었다고.”
“그랬지.”
“내가 기절한 사이에 그들을 만났거든. 나보고 뭐, 칠죄를 모아달라 그러더라고.”
“....그래서?”
지금 이 상황과 신과 강혁의 만남 등.
설마설마하는 생각으로 두 사람이 강혁을 바라볼 때, 강혁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엿이나 까잡수라고 했지.”
“....그 결과가 이거다?”
“아마도. 루터 아재가 사용하는 뇌기. 그게 신 중의 한 명의 것이라고 하더라고.”
“이 바보야!”
퍽퍽퍽!
신과 척을 진 것도 모자라 면전에 대고 엿을 날렸다는 강혁의 당당한 대꾸에 니아 아리엘은 강혁의 팔을 우다다다 치면서 그를 나무랐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루카스 폴른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그게 너다운 일이긴 하지. 그럼 방법은 있나?”
“아마 루터 아재의 몸 내부에 있을 신격을 끄집어내서 내가 흡수하면 될 것 같아. 알마드와 블라드의 족쇄를 부술 때와 비슷해. 어렵진 않을 거야. 다만 그걸 하러면....”
“저 탱크 같은 양반을 제압해야 한다는 거군.”
“맞아, 나 혼자서는 불가능할 거야.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불안전한 신격, 반신의 격을 지닌 강혁과 적지만 완연한 신격을 지닌 루터 할론.
본래부터 최강의 10인에서도 중위권을 힘을 지닌 루터 할론인데다가 그와 신격의 상성은 너무나도 좋았다.
즉, 방법은 단 하나 뿐이었다.
“다구리를 놓자. 그거면 돼.”
다구리.
한국인의 정이라고도 불리는 필살기를 사용하자는 강혁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 명을 상대로 우리 셋이 달라 붙는다고? 그건 너무 쪽팔리지 않나?”
“음, 그리고 아저씨를 상대로 셋이나 달라붙는 건 좀....”
내키지 않아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강혁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설득에 나섰다.
“루터 아재이기 때문에 우리 셋이 나서야 하는 거야. 죽이는 거라면 나 혼자서라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루터 아재의 사살이 아니라 제압이야. 알지?”
“....후우, 그래. 알았어 해보자 그럼.”
한숨을 푸후 내쉬면서 동의를 하는 니아 아리엘의 모습에 만족스런 미소를 짓던 강혁이 고개를 돌려 루카스 폴른을 바라보았고.
그 또한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획은 뭐지?”
동의와 함께 계획에 대해서 묻는 루카스 폴른의 모습에 강혁은 스산한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계획을 꺼내놓았다.
“그러니까 내 계획은....”
*우득- 우드드득-
니아 아리엘의 공격으로 망가진 팔을 완전히 복구한 루터 할론은 강혁과 무리가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물음표를 머리 위에 띄운 루터 할론의 앞에는 강혁을 비롯한 니아 아리엘과 루카스 폴른 각자 전투 자세를 잡은 채로 서 있었다.
마치 사냥을 앞둔 사냥꾼과 같은 자세를 갖춘 그들의 모습에 루터 할론이 허리를 앞을 향해 숙인 채로 뛰어들려는 찰나.
그들 쪽에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미끼!”
“....미끼!”
미끼.
낚시를 할 때 흔히들 사용하는 것으로 물고기를 낚을 때 쓰는 물건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미끼라고 부를 수 있는 건 하나 밖에 없었다.
“....아버지?”
“....!!!”
루터 할론.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것.
그의 딸 엘리자베스 할론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등장에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루터 할론의 동공을 보는 순간 강혁이 전투 개시를 외쳤다.
“다구리 시작!”
....그 전투 개시의 시작을 알리는 말로는 볼품이 없었지만 엘리자베스 할론을 통해 루터 할론을 한 차례 뒤흔든 세 사람은 루터 할론을 향해 빛살처럼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