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올 마스터-67화 (68/178)

나 혼자 올 마스터 #67

검은 고성.

그곳은 마치 영화의 세트장과도 같은 모습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뱀파이어가 사는 영화 속 고성처럼 말이다.

뭐, 실제로 뱀파이어가 살긴 하지만.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만이 자리 잡은 고성 내부에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흠, 어두컴컴하긴 하지만 못볼 정도는 아니네.”

“동감이다. 이 정도 어둠이면 괜찮겠어. 하지만 특수한 마법 등을 사용해서 만든 어둠 같으니 다른 이들이라면 힘들겠군.”

“아~ 싸우고 싶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헌터들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두려움에 떨었던 것과는 정반대 되는 모습.

오히려 그들은 이 어둠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분석하기 바빴다.

그 결과.

“디스펠.”

루카스 폴른의 목소리가 나지막히 고성 내부에 깔리는 순간 고성을 가득 메우고 있던 어둠이 모습을 감추었다.

적당하게, 혹은 은은하게 빛이 나는 고성 내부를 둘러보며 강혁은 혀를 내둘렀다.

“나는 감도 안 잡히던데 넌 어떻게 그렇게 쉽게 디스펠을 하는 거야?”

디스펠.

마법을 해제하는 마법으로 당연하게도 고위 마법으로 이름 높은 마법 중 하나다.

뭐, 정확하게는 디스펠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저 마법을 파악하고 그 수식을 역순해서 풀어내기만 하면 되는 문제.

다만 그 어떤 마법사도 다른 사람이 깔아 놓은 마법이라는 난해한 공식과 수식을 한 눈에 파악해서 곧바로 디스펠하지는 못한다.

오직 현자 루카스 폴른이기에 가능한 기예.

그렇기에 루카스 폴른은 씨익 웃으면서 손가락을 좌우로 까닥거렸다.

“나니까.”

“....싸가지.”

짜증나는 대답이었지만 영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강혁이 혀를 내두를 때.

사사삭-

어느 정도 밝아진 고성 내부에서 울려퍼지는 무언가가 기어다니는 소리에 세 사람은 말을 멈추었다.

“쉬이- 불청객이 있나 본데?”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중얼거리는 강혁의 말에 루카스 폴른과 니아 아리엘 또한 거기에 동의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동의가 끝나기 무섭게 강혁이 말한 불청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이다!”

“녀석들의 피로 이 갈증을 채우리라!”

“캬하하핫! 맛있는 피다! 피!”

옛날 시대의 귀족과도 같은 옷을 입은 채, 날카로운 송곳니를 번뜩이며 몸을 던지는 뱀파이어들.

그들의 흉악한 모습을 바라보며 강혁들은 미소를 머금었다.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네.”

“미리 어둠을 해제하길 잘했군. 뱀파이어들을 상대로 어둠 속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지.”

“하하핫! 싸움이다! 싸움!”

트윈 헤드 와이번과의 전투로 인해 뻐근했던 몸을 풀며 이빨을 드러낸 강혁이 검을 빼들었고.

루카스 폴른은 자신의 판단이 제대로 통했음에 만족하며 스태프를 빼들었다.

니아 아리엘은 그저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드는 듯 환히 미소를 짓고 있었고.

“....뭐지?”

“뭔가 이상하다.”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그런 그들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뱀파이어들이 주춤되며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자, 빨리 다른 사람들 찾으러 가보자고.”

“그러지.”

어깨를 붕붕 돌리며 위협적인 모습과 함께 검을 내지르는 강혁과 동시에 루카스 폴른 또한 어느새 생성한 마법 다발을 뿜어내며 그에 응했다.

순식간에 전세역전이 된 상황 속에서 씨익 미소를 머금은 니아 아리엘이 전방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다 뒤져!”

그저 장난스레 내지른 한 번의 주먹질.

다만 그 주먹질이 불러온 참사는 그리 장난스럽진 않았다.

콰과과과광!

고성을 지탱하는 검은 기둥들을 연달아 부숴버리며 돌진한 충격파는 이내 전체에 3분의 1에 달하는 이들을 핏물로 만들어버렸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3분의 1의 동료들이 죽어버리자 안 그래도 창백하던 안색이 새하얗게 변한 뱀파이어들이 혼비백산했다.

하지만 뿔뿔이 흩어지는 녀석들을 놔줄 정도로 세 사람은 자비롭지 못했다.

“그럼 난 왼쪽.”

“오른쪽을 맡지.”

“난 아무데나 좋아!”

“좋아, 그러면 다른 사람들 위치 파악하면 신호 보내고 그곳으로 모이는 걸로.”

“알겠다.”

“좋았어! 나 먼저 간다!”

각자 흩어지는 뱀파이어들을 쫓아 세 개 무리로 찢어진 뒤, 세 사람은 고성 내부를 이 잡듯이 헤집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뱀파이어들이 다른 헌터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전세역전.

그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순간은 전 세계에 몇 없을 터였다.

*콰드드득-

“....컥!”

“시시하군. 시시해. 인간들이란 전부 저렇게 약해빠졌다니까.”

조각 같은 미남.

눈앞에서 헌터 한 명의 전신에 존재하는 피를 단숨에 뽑아내는 모습만 아니었더라면 화보의 한 장면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을 장면.

하지만 바짝 마른 미라처럼 바닥에 널부러지는 헌터의 모습을 본 순간 그런 생각은 머릿속 저 너머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엘리자베스 할론을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이면 뱀파이어 백작이 직접....!’

뱀파이어 백작.

이곳 고성의 던전 보스이자 수백의 뱀파이어들을 수족으로 부리는 괴물 같은 존재.

그의 진짜 강함은 그가 부리는 수백의 뱀파이어도, 고생 내부를 잠식한 검은 어둠도 아니었다.

피를 다루며 날뛰는 폭력적인 강함.

그는 그냥 강했다.

다른 부가적인 걸 붙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 예로 알마드 또한 이를 갈면서 그의 혈마법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기 바빴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혈마법은 디스펠도 잘 먹히지 않는다. 저건 무조건 힘 대 힘으로 부숴야하는 건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강혁과의 전투로 인해서 잃어버린 자신의 힘이 뼈에 사무치게 아까웠다.

혈마법.

피를 다루는 마법으로 일반적인 흑마법사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사악한 마법이며 다루기 어려운 마법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마법에서 살짝 삐져 나와 있는 만큼 다른 마법과는 달리 디스펠 또한 잘 먹히지 않는 특이한 마법.

다만 다루기도, 배우기도 어려우며 피라는 매개체가 있어야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모든 단점을 메우고 남을 정도의 장점이 혈마법에는 존재했다.

강함.

그 어떤 마법보다도 강하며, 유했고, 변화무쌍했다.

피만 무한하다면 그 어떤 대군도, 그 어떤 강자라도 그의 앞에선 한낱 패배자에 불과했다.

더불어 피 또한 충분하고, 그걸 다루는 혈마법사의 수준 또한 높다면 말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콰드드득-

생각에 잠긴 사이, 또 한 명의 헌터가 피가 전부 빨린 미라가 되어 바닥에 널부러졌다.

벌써 다섯 명 째.

안 그래도 남은 인원도 별로 없는데 계속해서 죽어 나가니 엘리자베스 할론은 물론이고 알마드마저도 입안이 바짝 말라갔다.

“재밌군, 재밌어. 힘이 떨어진 아크 리치와 성녀라니. 이것만큼 재밌고, 맛있는 별미가 어디에 있을까!”

다른 헌터들의 앞에 서서 자신에게 발버둥치는 알마드와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며 뱀파이어 백작 블라드는 조각 같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반할 것 같은 미소를 눈앞에 두고도 엘리자베스는 이를 앙 다물 뿐.

그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도 없는 두 사람의 모습에 블라드는 혀를 차곤 손가락을 까닥였다.

푸화아아악!

그와 동시에 5명의 사람 분에 더한 본래 블라드가 지니고 다니던 거대한 피들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블러드 스톰.”

피로 이루어진 붉은 폭풍이 고성 내부의 헌터들을 강타했다.

쩍- 쩌적-

“크으아아아악!”

“버텨요! 제발! 버텨주세요, 알마드 씨!”

알마드가 전력을 다해 전개한 실드가 간신히 블러드 스톰을 막아내곤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부숴질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그 사실에 엘리자베스 또한 두 손을 꼬옥 모으고 신성력을 방출했다.

포옹-

우윳빛의 신성력이 부드럽게 실드 위를 감싸고, 깨진 부분을 메꾸며 블러드 스톰을 막아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제 힘을 다한 블러드 스톰이 스르륵 사라지고, 본래의 피로 되돌아가자 엘리자베스와 알마드는 제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고작해야 잽에 가까운 가벼운 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 지칠대로 지친 두 사람에겐 막기 버거운 공격에 가까웠다.

말 한 마디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두 사람의 모습에 블라드는 광소를 터뜨리며 나머지 헌터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푹-

“....컥!”

한 명.

푹-

“사....살려!”

두 명.

“....꺄아아악!”

....열 명.

마지막 남은 여성 헌터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를 끝으로 엘리자베스와 알마드의 곁에 남은 헌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남은 헌터들의 시체를 뱀파이어들에게 던져준 블라드는 엘리자베스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궁금했어. 성녀의 피는 얼마나 달콤할지. 신성력이 듬뿍 들어간 그 피가 얼마나 짜릿할지!”

“....당신은 곱게 죽지 못할 걸요.”

“흐하하핫! 나를? 누가 죽인단 말이냐. 신? 악마? 그 작자들은 나를 보내기만 할 뿐 나를 건드리지 못해! 그리고 이곳에선 내가 신이고 내가 악마다.”

광소와 함께 서늘한 미소를 지어보인 블라드의 손이 엘리자베스의 가늘고 흰 목을 콱! 붙잡았다.

“끅....끄흡....”

“며칠 동안 쥐새끼처럼 도망치고, 처음 만났을 때는 꽤 괜찮은 공격도 했었지만 그것도 끝이다.”

그렇게 말을 하는 블라드의 조각 같은 몸에는 엘리자베스가 만든 상처가 길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신성력으로 인한, 회복 되지 않을 흉터와도 같은 상처.

자신의 조각 같은 몸에 상처를 낸 엘리자베스를 살려둘 생각 따위 블라드는 없었다.

콰득-

“....끄으으.”

가느다란 목에 블라드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틀어 박히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피를 빨아냈다.

마음만 먹는다면 손가락을 한 번 까딱하는 것으로 모든 피를 빨아낼 수 있음에도 블라드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에게 상처를 낸 그녀를 천천히 말려 죽이려는 잔혹한 속셈이 숨어 있던 것이었다.

바로 그때, 그런 블라드를 향해 알마드가 남은 힘을 모조리 끌어 모아 공격을 날렸다.

쾅!

집채만한 파이어 볼이 터져나가며 엘리자베스와 블라드는 덮쳤다.

엘리자베스 또한 파이어 볼의 충격에 화상과 충격을 입었지만 덕분에 블라드와 떨어지게 된 그녀는 목덜미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피를 대량으로 빨린 탓에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 없었으며 뱀파이어에게 빨리면 뱀파이어가 되는 저주를 생각하며 바닥까지 박박 긁은 신성력으로 정화를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을 모습을 바라보며 좀 전까지의 유들유들한 미소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 블라드가 야차 같은 얼굴로 분노를 토해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조금 놀아줬더니 기어오르는구나. 죽어라 벌레들아.”

까닥-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미증유의 힘이 자신들의 몸안의 체액을 남김 없이 뜯어가려는 것이 느껴지자 두 사람이 발버둥쳤다.

발버둥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영화 관람하듯이 지켜보던 블라드는 무언가 섬뜩함을 느끼고 몸을 뒤로 날렸다.

하지만.

쐐에에엑-! 퍽!

저 멀리서부터 날아온 순백의 창.

오직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창은 그런 블라드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내가 너무 늦었나?”

“....주인님!”

“....아저씨!”

그리고 순백의 창이 가슴팍에 꽂힌 블라드가 비틀비틀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알마드와 엘리자베스의 앞에 내려앉은 강혁은 검을 빼들었다.

“넌 좀 맞아야겠다. 신성화.”

자신의 동료와 부하가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본 순간 강혁은 분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계 초월을 사용했다.

그 순간 검은 고성 전체를 밝히는 순백의 신성력이 해일처럼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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