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63
계획이 완전히 정해진 뒤, 강혁과 루카스 폴른, 니아 아리엘은 곧바로 협회 쪽에서 파견된 헌터들의 관리를 맡은 이와 대화를 마쳤다.
“정말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올 마스터라서 가능한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현자와 무신께서도 당신의 말에 힘을 실으셨으니 저흰 그 말에 따르겠습니다.”
“완벽한 결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행히도 미국에서 현자와 무신의 이름을 가지고 안 되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협회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들의 관리를 맡은 관계자 또한 그러했다.
덕분에 쉽게쉽게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강혁은 그제야 한숨을 토해냈다.
“후아, 이제야 출발선에 선 느낌인데.”
“출발선에 선 게 맞지. 지금부터 우리는 며칠 동안 죽어라 사냥을 해야하니까 말이야.”
“헹, 오히려 난 그게 더 좋은데? 마음에 들어. 오랜만에 몸 좀 풀겠어.”
강혁의 한숨을 바라보며 루카스 폴른은 긍정을 니아 아리엘은 즐거움을 드러냈다.
이번 협회 관계자에게 한 말을 결전 당일, 그랜드 캐니언을 완전히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색욕의 범위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물론 내가 제어할 수 있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다. 만약 다른 헌터들이 색욕에 영향을 받아서 어떤 행동을 벌일지는 미지수. 굳이 변수를 안고 갈 필요는 없지.’
칠죄 중 하나인 색욕은 이미 전 일본을 대상으로 자신의 힘을 내보인 전적이 있다.
그런 마당에 그랜드 캐니언은 작은 우물에 불과했다.
즉, 완벽하고 변수 없는 계획을 위해선 다른 존재는 불필요하다는 애기였다.
‘루카스나 니아는 내가 직접 조절한 색욕이라면 영향을 받지 않을 건 확실하니까 곁에 두지만 나머지는 필요 없다. 애초에 두 사람이 없으면 계획 자체가 성립이 안 되기도 하고.’
아무리 와이번과 드레이크 그리고 리자드맨들이 색욕에 눈이 멀어 상상만 해도 머리와 눈이 썩어버릴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처리할 사람들은 필요하다.
그리고 강혁은 처리할 사람으로 니아 아리엘과 루카스 폴른으로 낙점을 내린 상황이었다.
둘을 제외한 이들은 더 이상 강혁에게 필요 없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강혁은 채비를 갖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전 당일은 3일 후. 그 전까지 우리는 최대한 그랜드 캐니언에 있는 몬스터들의 수를 줄인다.”
그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결전 당일을 위한 그랜드 캐니언 청소를 시작했다.
*3일이란 시간은 꽤 빠르게 흘러갔다.
푹-
강혁 본인의 드래곤 스케일을 녹여 코팅한 검은 장검이 부드럽게 와이번의 목덜미를 뚫고 들어갔다.
마지막 남은 와이번이 창공에서부터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마무리를 맡은 헌터들이 빠르게 와이번을 해체해 나갔다.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차갑게 식어가는 와이번의 모습을 바라보며 강혁은 고개를 돌려 루카스 폴른을 바라보았다.
“상황은?”
“드래곤의 알이 있는 곳 주변을 제외한 그랜드 캐니언 대부분은 청소가 끝났다. 네가 색욕인가 하는 능력을 쓰더라도 주위에 있을 몬스터들이 반응하는 일은 없을 거야.”
“딱 좋게 정리가 됐네.”
그랜드 캐니언의 최심부에 위치한 드래곤의 알 주변에 모인 몬스터들에게 색욕을 사용하기 전에 다른 곳에 퍼져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일은 쉽게 끝이 났다.
지금은 협회 소속의 헌터들과 미국 소속의 헌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랜드 캐니언 최심부를 제외한 그랜드 캐니언 전역을 깨끗하게 청소한 강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바로 갈까?”
“나쁘지 않지. 그럼 니아를 부르겠다.”
“부탁할게. 아, 그리고 이제 다른 헌터들에겐 퇴각하라고 말해줘.”
“알겠다.”
강혁의 부탁에 루카스 폴른이 니아 아리엘을 데리러 사라지고, 혼자 남은 강혁은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절벽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정말 색욕이 먹힐까?’
-먹힌다.
‘먹히면 그 다음엔 저놈들을 내가 전부 다 잡을 수 있을까?’
-네놈이 걸어온 길 자체를 믿어라. 그런다면 넌 성공할 수 있을 거다.
‘....후우, 그래. 그래야지. 색욕, 준비는 됐어?’
-전 언제나 준비 만반이에요, 주인니이임~
앙큼하게 울려퍼지는 색욕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강혁은 나머지 두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니아 아리엘과 돌아와 루카스 폴른은 니아 아리엘에게 비행 마법을 걸어주며 입을 열었다.
“준비는 끝났나?”
“어, 난 끝났다. 곧바로 가도 돼.”
“좋아, 헌터들도 슬슬 퇴각하고 있으니 곧 연락이 올 거다.”
“좀만 기다리면서 휴식 좀 취하고 출발하는 걸로 하지.”
헌터들이 퇴각하는 동안의 시간을 고려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한 세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몸을 뉘였다.
허공에 붕 떠 버린 시간 동안 강혁은 루마니아로 갔던 두 사람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루마니아로 간 엘리자베스나 알마드는 무사하려나 모르겠네. 그랜드 캐니언에서는 드래곤의 알이 나타난 걸 보면 루마니아 쪽도 만만찮을 텐데 말이야.’
이번에 그랜드 캐니언 쪽의 일과 루마니아 쪽의 일이 동시에 터진 걸로 보아 이번에도 신과 악마들의 농간임을 얼추 파악한 강혁은 루마니어 쪽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는 본연의 일을 하느라 바빴지만 지금은 휴식 시간.
두 사람에 대한 걱정이 스물스물 올라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강혁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에 루마니의 상황에 대해서 물었다.
“루마니아는 어떻지? 별 일 없나?”
“루마니아? 아, 그러고 보니 그곳도 지금 고성 때문에 한창 난리였었지.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
“흠....근데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그곳으로 간 녀석들이 특별한데 특별한 내용이 없다니....이상한데?”
“....!!! 확실히 그건 그래.”
정곡을 찌르는 니아 아리엘의 말에 강혁은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알마드와 엘리자베스는 분명 뛰어난 이들이었다.
물론 엘리자베스와 알마드를 비교하기란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분명 뭔가 루마니아 쪽에서 소식이 들려도 단단히 들렸어야만 했다.
즉, 루마니아 쪽이 조용하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는 얘기.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강혁은 초조한 얼굴로 절벽을 바라보았다.
‘....젠장, 그랜드 캐니언만 처리하면 나머지는 둘이서 잘 해결할 줄 알았더니 루마니아도 가게 생겼네.’
그랜드 캐니언을 처리할 때쯤이면 루마니아 쪽에서도 처리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말짱도루묵이 되어버린 상황에 강혁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강혁이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결국 강혁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까닥거리며 휴식의 종료를 알렸다.
“슬슬 헌터들 다 빠졌지?”
“그래, 때마침 지금 전부 빠졌다고 하는군. 바로 들어가도 되겠어.”
“그럼 이번 일을 마치고나면 나랑 니아 좀 루마니아로 보내줄 수 있나?”
“루마니아? 흐음....안될 건 없지. 일단 알겠다. 지금 중요한 건 그랜드 캐니언이니 거기에 집중해.”
“고맙다.”
미국에서 루마니아까지의 거리는 워낙 멀기도 하고, 이번 루마니아 고성 일 때문에 비행기 또한 구하기가 어렵다.
가는 항공사도 별로 없고.
결국 만능 이동기인 루카스 폴른을 협조를 얻어낸 강혁은 감사를 표하며 자신의 날개를 펄럭이며 절벽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나보다 조금 뒤에서 쫓아와. 내가 신호를 주면 그대로 쫓아오고.”
“알았다.”
“알겠어.”
강혁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혁과 거리를 둔 채, 강혁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서서히 절벽에 가까워지며 절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어마어마한 수의 와이번과 드레이크들을 본 강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강혁의 모습에 와이번과 드레이크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내 그들의 감긴 눈이 떠지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수백 마리의 와이번과 드레이크를 바라보며 강혁은 색욕의 마기를 풀어냈다.
푸화아아악!
마기의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풀어지는 색욕의 마기가 그랜드 캐니언을 뒤덮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범위 안에는 강혁에게 날아오던 와이번과 드레이크들 또한 있었다.
강혁을 막아서기 위해서 다가오던 와이번과 드레이크들은 자신의 몸에 스며드는 마기에 움찔하며 저항했다.
하지만 마법 저항력은 뛰어날지언정 마기에 대한 저항력은 제로에 가까운 그들로서는 저항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하나둘 마기에 절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강혁은 손가락을 까닥였다.
“지금!”
약속했던 신호가 나오기 무섭게 루카스 폴른과 니아 아리엘은 단숨에 속도를 올려 강혁을 추월하더니 절벽의 정상을 향해서 빠르게 날아올랐다.
자신들이 지키는 절벽의 최정상을 향해 니아 아리엘과 루카스 폴른이 날아오르자 와이번과 드레이크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지만....
-키에에엑!
-캬아아악!
“....어우, 진짜 안 본 눈 사고 싶네.”
그들은 이내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저들끼리 몸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역겨움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들게하는 그들의 모습에 강혁은 헛구역질을 하며 천천히 절벽 위로 날아올랐다.
중간중간 와이번과 드레이크들을 처치해가며 천천히 정상에 도착한 강혁은 먼저 와 있던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 알이 있네.”
“우리의 가설은 사실로 입증된 거다. 강혁.”
“이야, 이게 깨지면 안에서 드래곤이 나온다는 거지? 새끼도 강하려나?”
그들 사이에 놓인 커다란 알의 모습에 강혁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설마설마했지만 정말로 드래곤의 알로 추정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게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루카스 폴른은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에 기뻐했고, 니아 아리엘은 알에서 나올 새끼 드래곤의 강함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혁은 일단 후퇴를 결심했다.
“일단 알부터 챙기고 도망가자. 언제 녀석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올지 모를 일이니까.”
“맞는 말이군. 그럼 네가 챙겨라. 이 알은 네 거니까.”
“....그래, 고맙다.”
앞서 했던 계약대로 순순히 알을 넘기는 루카스 폴른의 모습에 강혁은 고마움에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고, 루카스 폴른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어차피 계약을 한 이상 알의 소유권은 강혁에게 있었고, 무엇보다.
“어차피 드래곤 스케일을 많이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내게는 나쁘지 않으니까. 난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는 네가 지킬 차례다. 강혁.”
“좋아, 이번 일이 끝나면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그렇게 두 사람은 윈윈하는 거래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고.
“저기, 애들아. 말하는 건 좋은데 저기 좀 보지 않을래?”
“....뭐?”
“....저건 또 뭐야?”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대화는 이어진 니아 아리엘의 말에 산산조각 났다.
니아 아리엘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
그곳에는 두 마리의 몬스터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세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두 개의 머리를 지니고 일반적인 와이번과 드레이크보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몬스터.
“....변종 몬스터?”
“트윈 헤드 와이번과 드레이크군. 처음 보는 놈들인데?”
“왠지 쉽게 간다 했어! 좋으았어! 저놈들은 내 거다!”
트윈 헤드 와이번과 드레이크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키는 알이 우리의 손에 들려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토해냈고, 그들의 피어에 강혁과 루카스 폴른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오직 니아 아리엘만은 환한 미소와 함께 트윈 헤드 와이번과 드레이크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 니아 아리엘의 막무가내 같은 모습에 강혁과 루카스 폴른은 한숨과 함께 자리를 박찼다.
난교에 빠진 와이번과 드레이크 그리고 리자드맨들을 발아래에 둔 채, 보스 몬스터인 트윈 헤드 와이번과 드레이크와의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