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61
“....그 비늘들은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나?”
“맞을 걸. 이건 전부 드래곤 스케일이니까.”
“....믿을 수가 없군. 일개 인간에 불과했던 네가 어떻게 용의 신체를....”
“완전한 건 아니야. 아직 가장 중요한 부품이 빠졌거든.”
“....심장이군.”
루카스 폴른은 강혁의 몸을 더듬어보다 이어진 강혁의 말에 곧바로 빠진 부품을 파악했다.
심장.
드래곤이 드래곤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심장에 있다.
하지만 강혁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그런 심장의 기운은 빠져 있었기에 루카스 폴른은 그 사실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불가능한, 오직 드래곤과 직접 마주해본 경험이 있는 루카스 폴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루카스 폴른의 대답에 강혁은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난 절대로 이번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다. 내 모든 걸 받아낼 자신이 네게 있을까? 루카스?”
“....크흠, 네가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나도 한 발짝 정도는 물러나줄 용의가 있다.”
“그래? 그럼 한 번 들어보지.”
자신만만한 강혁의 태도에 루카스 폴른은 일단 한 발자국 물러서기로 결정했다.
용의 신체를 지닌 강혁은 분명 이번 그랜드 캐니언 토벌 계획에서 꽤 우위에 서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불어 마법을 제외하고 검술, 무술 등 다양한 재능을 지닌 강혁에게 이번 토벌전은 무척이나 유리하게 작용한다.
즉, 루카스 폴른의 무력 자체는 강할지 모르더라도 용종 몬스터라는 한정된 전투에서라면 그가 밀릴 가능성도 크다는 얘기.
더군다나.
‘....숨겨진 힘이 분명 있을 거다. 나를 상대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정도의 숨겨진 힘이 말이야. 그것까지 전부 꺼낼 생각이라면 지금의 나로서도 강혁을 상대하긴 힘들 것 같군.’
강혁의 숨겨진 힘이 루카스 폴른의 경계심을 대폭 강화시켰다.
루카스 폴른 본인 또한 숨겨둔 힘이 많이도 있었지만 강혁과 자신 사이에 있는 벽을 뛰어넘을 정도의 힘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한 발짝 물러나서 자신의 실리를 챙기기로 결정한 루카스 폴른이 강혁에게 제안을 건넸다.
“네 드래곤 스케일. 그걸 내게 제공해준다면 이번 토벌전에서 드래곤의 알이 만약이라도 발견된다면 네게 그걸 넘기겠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제공이라하면 얼마만큼?”
“최소한 드래곤의 알에 대한 가치 만큼은 줘야겠지. 하지만 강제할 생각은 없다. 내가 필요하다고 말을 하면 일정 기간 내에만 내게 보내주면 되니까. 정 급할 경우엔 내가 순간이동으로 가지러 가겠다.”
“흐음....그런 조건이라면야....”
드래곤의 알.
세상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그 물건을 구할 수 있다면 언제든 재생시킬 수 있는 드래곤 스케일 정도는 충분히 건네줄 의향이 있었기에 강혁은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겨보곤 이내 입을 열었다.
“좋아. 대신 드래곤의 알이 없을 경우에는 줄 수 없어.”
“....조금도 안 되나?”
“너 하는 거 보고.”
“....좋아, 그럼 이걸로 계약은 성립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카스 폴른과 강혁 사이에 마나로 이루어진 푸른 기류가 한차례 맴돌더니 두 사람에게 나뉘어 흡수되었다.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강혁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루카스 폴른에게 방금의 푸른 기류에 대해서 물었다.
“방금 그건 뭐지?”
“계약의 마나다.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약속’이지.”
“약속?”
“그래, 방금 우리가 나눈 건 마나의 이름 앞에서 한 약속이 되었고, 방금의 푸른 마나들이 그 약속이 무조건 이루어지게 서로를 구속한다. 즉, 나는 너에게 드래곤의 알이 있다면 무조건 줘야 하고 반대로 너 또한 내게 드래곤 스케일을 제공해야만 하지.”
“....편리한 계약이네.”
“좋은 계약이지.”
계약의 마나 덕분에 자질구레한 서류 작업은 할 필요가 없게 된 강혁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곧바로 그랜드 캐니언으로 가볼까? 나도 일단 내 눈으로 직접 상황을 확인해보고 싶거든.”
“그러지. 안 그래도 슬슬 돌아갈 시간이 되긴 했다.”
“좋아, 나도 오랜만에 제대로 몸 좀 풀어볼까?!”
일본에서는 죽이면 안 된다는 제약이 붙어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던 니아 아리엘은 참아왔던 투쟁심을 모두 토해내겠다는 듯이 밝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런 니아 아리엘과 강혁, 루카스 폴른은 다시금 손을 붙잡았고, 이내 세 사람의 모습은 루카스 폴른의 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랜드 캐니언.
이제는 드래곤 캐니언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모습이 된 그곳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명해진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내게 배정된 막사다.”
“크고 안락하고 좋군.”
“주인이 워낙 대단한 탓 아니겠나?”
피식 미소를 머금으며 자기 자랑을 곁들이는 루카스 폴른의 모습에 강혁은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 폴른.
흔히들 현자라고도 불리는 그의 명성은 이미 지구촌 전역에 퍼져 있었다.
명성만 따지자면 검성, 무신보다 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막사가 아니라 여기에 최고급 스위트룸을 지어주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이 막사 또한 고급 호텔을 연상케 할 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막사를 대충 둘러보던 강혁은 이내 소기의 목적을 상기하곤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전황은 어떻지?”
“지상에는 리자드맨들이 가득하다. 내가 한 번 쓸어내긴 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많은 리자드맨들이 존재하지. 일단 그들을 먼저 처리하는 게 문제다. 정말 드래곤의 알이 존재한다면 그 주변으로 모일 어마어마한 리자드맨들에게 포위당할 여지가 있으니까.”
“확실히....드래곤의 알을 지키기 위해서 본성마저 억누르는 녀석들이니 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야. 그렇다면 내가 지상을 맡아야 하나?”
리자드맨들 또한 하위 용종이긴 하지만 A급에 해당하는 강력한 몬스터.
일반 헌터들에게 맡겼다가는 큰 피해가 나올 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루카스 폴른의 말은 긍정이 아닌 부정이었다.
“아니, 넌 지상이 아니라 하늘 쪽을 맡는다. 나와 함께 말이지.”
“....왜지? 지상은 나나 니아 정도가 아니라면 불가능할 텐데?”
“그래, 원래대로라면 내 계획에 강혁, 너는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지상을 맡고 니아가 하늘을 맡게하려고 했지. 하지만 네가 온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설마?”
“네 생각대로다. 니아를 지상으로 보낸다.”
“에....리자드맨 같은 쩌리나 잡으라고? 너무한데?”
와이번이나 드레이크 같은 S급 몬스터들과의 혈전을 기대하던 니아 아리엘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리자드맨들도 충분히 강하고 와이번과 드레이크보다 훨씬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기에 위험도는 충분했다.
다만 그 위험도가 니아 아리엘에게는 그저 미지근할 뿐.
그렇지만 루카스 폴른은 계획을 수정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안 돼. 니아 너는 하늘을 못 날잖아. 그건 공중전에서 큰 패널티다. 굳이 강혁이라는 좋은 대체재를 놓고 굳이 널 쓸 필요는 없지.”
“....쳇, 네가 날 띄워주면 되잖아! 그 잘난 마법으로!”
“맞아, 본래라면 그러려고 했지. 하지만 방금 말했다시피 강혁이라는 좋은 대체재가 있는데 내가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는?”
“으으....짜증 나. 맞는 말이라서 더 짜증 나!”
루카스 폴른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비행 마법을 써가며 니아 아리엘을 공중전에게 맡길 이유가 강혁의 존재만으로도 그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
마법사답게 실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루카스 폴른에게 있어서 이번 선택은 무척이나 합당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저 당사자인 니아 아리엘에게는 자신에게 귀찮은 일만 몰아주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말이다.
“니아,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하지만 이어진 강혁의 부탁에 니아 아리엘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행에서 겪은 일들 때문에 강혁에게 한층 더 약해진 니아 아리엘이었다.
물건 하나 부수지 않고 니아 아리엘에게 지상전을 맡기게 된 루카스 폴른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번엔 강혁 덕분에 무언가 부숴지진 않았군. 다행이야.’
이미 분노한 니아 아리엘에 의해서 연구실이 아작이 났던 경험이 있는 루카스 폴른에게 강혁의 존재는 구세주와 같았다.
물론 그와 달리 강혁은 태연자약한 얼굴로 다음 계획의 물었다.
“그럼 나랑 루카스 네가 공중을 맡는 건가?”
“그래, 지상 최강의 마법사가 직접 보조를 맡아주지.”
지상 최강의 마법사.
본인의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그걸 딱히 부정할 이유도 증거도 없기에 강혁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따름이었다.
그리고 사실 강혁도 기대가 되긴 했다.
마법사랑 성직자와 비슷할 정도의 보조 능력을 보여주는 직업.
공격도 공격이지만 숙련된 마법사의 보조는 성직자의 그것을 아득하게 뛰어넘는다는 말은 헌터 업계에서 유명한 사실.
그런 마법사 중에서도 정점을 찍은 인물이 바로 루카스 폴른이다.
실제로 그의 진짜 능력은 전투가 아닌 보조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최강의 10인마저 있을 정도로 그의 보조 능력은 뛰어났다.
그렇기에 자신도 이제는 그의 보조를 받을 정도의 수준에 올랐다는 사실에 찌르르하게 울리는 감각을 느끼며 미소를 지은 강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곧바로 토벌 시작해도 될까?”
“물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만약 정말 드래곤의 알이 존재하고 그 알이 부화까지 해버린다면....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갈 테니까.”
“....그건 그렇군.”
드래곤.
지상 최강의 생물체에게는 가장 약한 새끼 때조차도 방심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가 부릴 수 있는 용종 몬스터들이 지천에 널린 상황 속에서 드래곤의 부화는 그리 유쾌한 상황만은 아닐 터.
그걸 잘 아는 루카스 폴른과 니아 아리엘의 얼굴이 살짝이지만 딱딱하게 굳는 것만 봐도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막사를 빠져나가는 강혁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또 다시 성장할 기회가 찾아오는군. 마음에 들어.’
일본에서 색욕을 얻은 뒤, 곧바로 이어진 또 다른 성장의 기회.
그건 강함에 목마른 강혁에게 있어서 마약과도 같은 쾌감을 자랑했다.
-변태 자식.
-주인놈 최고오오오!
머릿속에서 울리는 두 개의 목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하긴 했지만 지금의 강혁의 기분은 최고.
두 사람의 시비 따위로 다운될 정도로 텐션이 낮지만은 않다는 얘기.
기분이 좋아질대로 좋아진 강혁이 막사를 나가고, 눈앞에 들어온 것은 저 멀리 보이는 그랜드 캐니언의 기암괴석들 위를 날아다니는 와이번과 드레이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강혁의 성장을 위한 계단이 될 것이었고, 그걸 깨달은 강혁은 짙은 미소를 머금으며 마기와 신성력의 날개를 펼쳤다.
주위의 빛을 전부 빨아들이는 칠흑의 날개와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순백의 날개.
그 두 개의 날개가 활짝 펴짐과 동시에 제자리를 박차고 강혁은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빨리 따라오라고, 루카스!”
“....성질머리 급하긴. 니아랑 점점 닮아가는구나.”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루카스의 말을 뒤로한 채, 강혁은 저 멀리 보이는 와이번과 드레이크들을 향해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두 눈에 훤히 담기는 순간, 아공간 주머니에서 빼든 칠흑의 검을 빼내며 입을 열었다.
“섬(殲).”
눈앞의 보이는 모든 이들을 죽이는 검의 연무가 지독하게 푸른 창공 위에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