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58
히키니트.
히키코모리와 니트족을 합친 신조어로 짧게 줄여서 말하자면 일할 마음도 그럴 생각도 없는 답도 없는 인간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미즈키 페이는 자신의 식신을 이용하여 바깥을 돌아다니고 일(헌팅)도 하지만....
‘식신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걸 바깥에 나간다거나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
결과적으로 본체인 미즈키 페이는 자신의 집 깊숙한 곳에 숨어서 TV, 컴퓨터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널부러진 이부자리, 다 먹은 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쓰레기들이 그녀의 이런 생활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아....안녕?”
“성격이 많이 다르시네요, 미즈키 씨.”
그것과는 별개로 미즈키 페이는 강혁에게 제대로 인사를 건네왔다.
오랫동안 외부인을 만나지 않아서인지 눈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하는 인사였지만 그래도 인사를 한다는 것 자체에 강혁은 만족하기로 했다.
‘거의 10년을 저런 식으로 살아왔다면 저럴만도 하지. 아니, 잠깐 10년이 아닐 수도 있잖아?’
격변 이전에도 저런 식으로 살다가 격변 이후에서야 식신을 이용하여 살아왔다면 그녀 히키니트력은 무려 수십 년 단위일 게 분명했다.
그 사실에 강혁이 놀라워하고 있을 때, 미즈키 페이는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실 거라도 줄까?”
“....네, 주시면 감사하게 마시죠.”
“히히, 여기!”
치익-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편의점에서 볼법한 거대한 냉장고에서 콜라 하나를 꺼내 건네주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지은 강혁은 단숨에 콜라 비우곤 자리에 대충 앉았다.
그리고 미즈키 페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갑작스런 눈싸움에 미즈키 페이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했지만 강혁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결국 미즈키 페이가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왜 그러는 건데?”
“우린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좋은....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 미즈키 페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기에 강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을 뻔 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걸 견뎌냈다.
그리곤 자신이 생각해 온 말들을 하나둘 꺼내놓았다.
“미즈키 씨의 능력이 필요한 순간이 올 겁니다. 그때, 저를 위해 나서주세요.”
“나서? 그건 내 식신이....”
“아니요,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미즈키 씨 본인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중대한 문제입니다.”
“....!!!”
히키니트에게 바깥으로 나오라고 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는 걸 잘 아는 강혁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즈키 페이의 힘을 두 눈으로 본 이상 그녀의 힘은 강혁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
‘승태 녀석도 위험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앞으로 마주하게 될 신과 악마들이다. 그들과의 전쟁을 벌이려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군들이 필요해.’
신과 악마.
초월적인 존재들은 너무나도 많고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동료들이 필요했다.
니아 아리엘과 수연 또한 충분히 강한 이들이었지만 그들로도 부족했고, 그들도 더 강해져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신과 악마들을 상대로 싸움다운 싸움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강혁의 말에 미즈키 페이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이곤 다시금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노력은 해볼게.”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히키니트에게 곧바로 나가겠다는 말을 듣는 것보단 지금처럼 노력이라도 해보겠다는 말을 듣는 게 더 나은 대답이라는 것을 강혁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기보다는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환하게 미소 짓는 강혁을 바라보며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몸을 배배 꼬는 미즈키 페이의 모습에 강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어제 나도 저택에 있었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네 모습을 보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이 뜨거워지고 얼굴이 붉어졌어. 이건....무슨 감정이야?”
“....”
듣자마자 무슨 감정인지 눈치챈 강혁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사랑 혹은 좋아함이라는 감정.
아마 색욕과의 만남 이후, 마기에 대한 영향 때문에 저런 감정이 생긴 걸 보면 거의 확실했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정답을 알고 있지만 밖으로 꺼내기가 애매해서 강혁이 입을 닫고 있을 때.
“....내 머리. 쓰다듬어주면 안 돼?”
“....!!!”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다가와 작은 키로 닿지 않는 자신에게 닿고자 까치 발까지 들어가며 부탁하는 그녀의 모습에 강혁의 손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혁의 손이 미즈키 페이의 머리에 닿는 순간....
“하응-!”
“....?”
-주인! 주인! 내가 내 마기를 심었어! 잘 했지!
미즈키 페이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토해지고,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색욕의 목소리에 강혁이 이를 갈았지만.
“....좀만 더 쓰다듬어줘어....”
“....망했네, 이거.”
이미 두 눈으로 하트를 쏘고 있는 미즈키 페이의 모습에 강혁은 한 시간 내내 미즈키 페이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미즈키 페이의 저택의 고용인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야릇한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는 건가.”
“가야죠. 이미 시간도 많이 흐르기도 했고.”
“아쉽네.”
공항에서 마주한 미즈키 페이, 아니 미즈키 페이의 식신의 아쉬움 담긴 말에 강혁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며칠 동안 만져드린 걸로도 모자란 겁니까?”
“....이런 데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대꾸하는 그녀의 모습에 강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휘저으며 비행기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나중에 봤을 때는 그런 종이 인형 말고 진짜 몸으로 봤으면 좋겠네요. 밖에서.”
“....노력한다고 했잖아.”
부루퉁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미는 미즈키 페이의 모습에 하하 웃음을 터뜨린 강혁은 이내 비행기 안으로 사라졌다.
그런 강혁을 태운 비행기가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미즈키 페이는 비행기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어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나도 할 일을 하러 가볼까.”
한국으로 돌아간 강혁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들.
신과 악마에 대한 조사를 미즈키 페이는 시작했다.
*부우우웅-
최고급 방음 시설이 내장되어 있음에도 미약하게 들리는 비행기의 엔진음 소리를 들으며 강혁은 길고 길었던 일본행 여행이 드디어 끝났음을 실감했다.
“하아, 힘들었다. 힘들었어.”
“수고하셨습니다.”
그런 강혁의 옆자리에 앉은 알마드의 대답에 강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얻은 게 아예 없진 않으니 만족스러울 따름이야.”
“얼마 남지 않았군요.”
“그래, 반신의 격을 얻을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어.”
현재 강혁이 가진 칠죄와 칠선은 합쳐서 총 셋.
분노, 색욕, 인내.
그리고 색욕을 얻는 순간 강혁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곧 반신의 격을 이룩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적어도 2개. 많으면 4개 정도의 칠죄와 칠선을 얻으면 난 한계 초월 없이도 반신의 격을 이룩할 수 있다.’
물론 그와 함께 세상이 빠르게 격변을 맞이하고 있긴 했다.
강혁을 잡기 위해서 신과 악마들이 술수를 펼치고 있는 까닭.
결국 강혁은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져야 하고 무엇보다 격변보다 더 빠르게 강해져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강혁은 도태되어서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반신의 격을 취하시고 나면 뭘 하실 겁니까?”
“글쎄....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없는데. 아, 그래도 하고 싶은 건 하나 있네.”
“뭐죠?”
궁금증이 담긴 얼굴로 대꾸하는 알마드의 모습에 강혁을 자신이 오랫동안 바래왔던 것을 말해주었다.
“김승태를 최강의 10인 자리에서 끌어내릴 거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굴욕도 주고.”
“평범하군요.”
“평범하지.”
최강의 10인급 존재를 끌어내리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딱히 대단하다거나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두 사람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만만찮았기 때문.
아무튼 그렇게 자신의 포부(?)를 밝힌 강혁이 한국까지 가는 동안 눈을 붙이려던 찰나.
“오빠! 아까 그 여자랑 무슨 대화 했어요? 아주 정답게 대화를 나누던데?”
“그러게~ 나도 궁금해서 죽겠다. 빨리 말해봐. 안 말하면 비행기 문 부숴버릴 거야.”
“....저도 좀 궁금하네요.”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세 여성의 모습에 강혁은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세 사람은 며칠 동안 색욕과의 기억을 대부분 지워내는 데에 성공했고, 지금은 곁에서 하하호호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세 사람은 며칠동안 제대로 대화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한이라도 풀려는 생각인지 강혁에게 집착했고, 결국 미즈키 페이와의 대화 내용마저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그냥 좋은 동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 뿐이야.”
“헤에, 그거 완전 거짓말 같은 거 알죠?”
“우리 강혀기 거짓말 완전 못하네~ 누나랑 저어기 독방에 들어가 볼까?”
슬금슬금 자신의 어금니를 드러내는 그들의 모습에 강혁이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
그런 강혁을 누군가 구원해주었다.
[갑작스레 세계 곳곳에서 이상 현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현재 이상 현상이 발생한 곳은 루마니아와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현재 그곳에서는....]
누군가는 다름 아니라 뉴스였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긴급 속보에 강혁을 노리던 세 명의 하이에나들은 물론이고 강혁과 알마드마저 그 뉴스에 주목했다.
이상 현상.
어떻게 보면 이번 일본과도 같은 현상이지만 두 곳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을 달랐다.
[그랜드 캐니언에서 폭발형 던전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폭발형 던전은 용종 몬스터들이 있는 던전으로 추정되며 현재 그랜드 캐니언 일대는 와이번과 드레이크를 비롯한 용종 몬스터들로 가득한....]
첫 번째로 그랜드 캐니언에선 S급 폭발형 던전이 나타나 그랜드 캐니언이 드래곤 캐니언으로 뒤바뀌었으며.
[루마니아에 나타난 검은 고성은 건물형 던전으로 추측됩니다. 현재 고성 주변의 마을 처녀들이 잇달아 사라진 걸로 보아 뱀파이어들이 있던 던전으로 추정되는 상황입니다.]
두 번째로 나타난 검은 고성은 뱀파이어들의 소굴로 추측되었다.
용종과 뱀파이어 모두 최소 A급에서 S급 사이를 오가는 강력한 몬스터들.
그런 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사실에 비행기 내부에서 그 모습을 보던 다섯 사람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 끝나고 결정을 내린 강혁이 입을 열었다.
“난 그랜드 캐니언으로 갈 생각인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그랜드 캐니언.
강혁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