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57
“아흥, 주인님 더 밟아주세요! 더!”
“....이런 놈한테 일본 전체가 놀아난 것도 모자라서 우리들이 놀아났다니 참 짜증나네.”
자신의 발밑에서 얼굴을 붉힌 채, 앙앙거리는 색욕을 바라보며 혀를 차는 강혁에게 분노가 반론을 펼쳤다.
-저 녀석 정도 되니까 너희들이 놀아난 거다. 저 녀석은 머리에 성욕 밖에 없는 놈이지만 능력 하나는 일품. 저 정도 수준의 존재는 흔치 않아.
“흔치 않긴 하지. 섹무새랑 다를 게 없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서 저 녀석은 어떤 신의 파편인데?”
-아프로디테.
“....미의 여신이 성욕의 화신이라. 신들이 왜 그렇게 너희들에게 집착하는지 이해도 가는구나.”
대표적으로 ‘미(美).’라고 하면 떠오르는 존재는 정해져 있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너무나도 많지만 신으로 한정 짓는다면 한 존재.
아프로디테만이 미의 여신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존재.
그리고 그런 아프로디테의 파편이 성욕의 화신으로 변해버렸다면 강혁 본인이 아프로디테라고 할 지라도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을 터였다.
물론.
“나와 계약하겠나?”
“주인님으로 모시게 해주세요!”
“....의미는 비슷하니 괜찮겠지.”
츠츠츠츠-
강혁은 강혁이고, 아프리디테는 아프로디테.
새롭게 강해질 방법이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 그걸 놓칠 정도로 강혁은 바보가 아니었다.
곧바로 색욕과의 계약을 체결한 강혁은 서서히 흩어지더니 점점 자신에게 흡수 되어가는 색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색욕의 흡수를 기다리는 강혁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칠죄 : 색욕과 계약하였습니다.]
[새로운 칠죄가 추가 됨에 따라 대량의 마기를 획득하였습니다.]
[마기 스탯 +200을 획득하였습니다.]
[신체 : 반성반마(半聖半魔)에 의하여 획득한 마기 스탯 중 절반이 신성력 스탯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칠죄 : 분노와 칠죄 : 색욕이 합쳐집니다.]
[특성 : 분노, 색욕이 합쳐져 특성 : 칠죄가 생성되었습니다.]
“....좋군.”
새로운 칠죄를 얻은 대가로 200에 달하는 마기 스탯을 얻었다.
물론 신체 : 반성반마로 인해 100이 신성력으로 전환되었지만 이것만 해도 큰 성과였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새롭게 얻은 특성 : 색욕이 기존에 있던 특성 : 분노와 합쳐져 특성 : 칠죄가 된 것은 앞선 스탯의 상승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큰 성과.
다시 한번 강해지게 된 강혁은 찌르르하게 울리는 성장의 기쁨을 누리며 함박미소를 머금었다.
꽈아아악....
한 발자국 더 자신이 목표로 하는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는 사실에 강혁의 기분이 고조되어 있을 때.
그런 강혁의 시선에 잡히는 존재가 있었다.
움찔-
“미즈키 씨?”
“....!”
색욕이 당하고 다른 이들이 모조리 쓰러진 것과는 달리 꽤 멀쩡한 모습의 미즈키 페이가 바로 강혁의 시선에 들어온 존재였다.
그녀는 강혁의 부름에 몸을 살짝 떨며 고개를 돌렸다.
“....헨타이.”
“....제가 원해서 한 게 아닙니다. 이건 방금 그 녀석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필요했던 선행 조건 같은 거였으니까요.”
거기서 ‘화풀이도 할 겸’이라는 뒷말을 냉큼 잘라먹은 채, 강혁은 대꾸했다.
변태라는 말을 듣고도 대꾸하지 않을 남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강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강혁의 말을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 일도 잘 마무리 되었으니 대가는 잘 처리해주시길.”
“....척 보니 일본에 일어난 일이 너와도 관계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네가 벌인 일은 네가 처리하는 게 올바른 일 아닌가?”
“뭐, 아니라고 부정은 못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저 때문에 일본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쳇.”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하고 혀를 차는 미즈키 페이의 모습에 강혁은 피식 미소를 터뜨리며 마지막 말을 건넸다.
“일도 끝났으니 저는 며칠 내로 일본을 떠날 겁니다.”
“꺼져버려. 대가는 잘 처리해서 보내줄 테니까.”
“대신 떠나기 전에 그런 종이 인형 말고 진짜 당신을 만나서 인사라도 나누고 싶군요.”
“....너 그걸 어떻게....?”
“저도 어엿한 음양사니까요.”
당혹감이 어린 미즈키 페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인 강혁은 이내 기절한 세 사람을 어깨에 들쳐 메고는 조용해진 대저택에서 빠져나갔다.
강혁이 사라지고 미즈키 페이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견디지 못하고 철푸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색욕에게 당해 본체에게도 색욕의 기운이 전달된 탓에 붉게 물든 미즈키 페이의 식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 인형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대저택에 남은 헐벗은 여성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상태를 확인한 뒤, 비명을 내지르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한 달여간 일본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괴현상이 어제부로 처리가 되었다는 속보가....]
[이번 일의 이면에는 최강의 10인 중 1인인 미즈키 페이 씨가 직접 나서서 처리한 덕분에....]
[대저택에서 발견된 수십 명에 달하는 여성들은 이번 괴현상의 피해자들로 외상 및 내상은 발견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삑-
연신 자신이 처리한 괴현상에 대한 보고와도 같은 뉴스들이 이어지자 지루함을 참지 못한 강혁은 TV를 꺼버렸다.
“참 재밌는 것도 안하네.”
“TV를 볼 기운이 있는 게 신기하군요. 어제 그런 일을 겪으셨는데 말입니다.”
“....뭔 일. 나는 어제 아무 짓도 안 했어.”
알마드의 핀잔에 강혁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어젯밤의 일들을 부정했다.
미즈키 페이의 의해서 강혁은 어젯밤 미즈키 페이의 저택에 나타난 헐벗은 남녀를 처리하는 것까지만 출현했다.
그 뒤부터는 모조리 미즈키 페이의 몫이 되었고.
그 결과 강혁은 어젯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일도 당하지 않은 셈이 된 것.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강혁 본인의 기억마저는 지울 수 없었기에 문득문득 어젯밤 보았던 니아 아리엘과 수연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모습에 강혁은 얼굴을 붉혀야만 했다.
“뭐해?”
“너 생각.”
“....! 무....무슨 생각 했는데?”
“어젯밤 생각.”
“잊어! 이 멍청아!”
고개를 삐죽 내밀며 생각에 잠긴 강혁을 놀리려던 니아 아리엘은 이어진 강혁의 대답에 얼굴을 붉히며 빽!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곤 명치에 꽂힌 주먹에 잠시 혼이 나갈 뻔 했던 강혁은 후다닥 도망치는 니아 아리엘의 뒷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
어젯밤의 일은 다른 이들의 기억에서는 사라졌지만 안타깝게도 니아 아리엘과 수연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기억에서까지 사라지진 않았다.
그 결과 세 사람과 현재 강혁의 사이는 무척이나 어색해졌다는 얘기.
털털한 니아 아리엘마저 저럴 지경이니 다른 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아, 내가 보고 싶어서 본 것도 아닌데 참 껄끄럽게 됐네.’
-이렇게 된 거 그냥 한 번 해버리는 건 어때?
‘넌 좀 닥쳐, 색욕.’
-헤에, 주인님의 마음 속에서 뭉클뭉클 솟아오르는 성욕을 보면 그건 아닌....켁!
자신의 머릿속에서 앵앵대는 색욕의 목소리에 강혁은 짜증을 담아 그녀를 탄압했다.
칠죄 중 하나라곤 하나 강혁의 몸에 빌붙어사는 세입자에 지나지 않는 그녀는 강혁의 탄압을 막을 수 없었다.
조용해진 색욕을 생각하며 한숨을 토해낸 강혁은 분노에게 말을 걸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같은 게 없을까?’
-싸워서 이기면 원래대로 지내자고 하는 건 어때? 결투는 언제나 옳지.
‘....누가 전신(戰神)의 파편 아니랄까 봐 싸움으로 다 해결하려고 하네. 너에게 물은 내 잘못이다.’
하지만 분노라고 해서 명쾌한 해답을 내려줄 정도로 똑똑하거나 지식이 많진 않았다.
결국 바뀌는 거 하나 없는 상황에 강혁이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똑똑-
“들어가도 되나?”
“마음대로.”
누군가 강혁의 방에 찾아왔다.
물론 그 누군가가 들어오기도 전부터 강혁은 이미 누군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현재 저택에 있는 이들 중에서 강혁의 방을 찾아올 수 있는 존재는 딱 두 명.
방금 도망친 니아 아리엘과 미즈키 페이 뿐이었다.
알마드는 지금도 함께 있으니까 논외이고, 니아 아리엘은 도망쳤으니 선택지는 단 하나.
“미즈키 씨가 왠일이십니까.”
미즈키 페이였다.
강혁의 방을 방문한 미즈키 페이는 제 머리를 빙글빙글 꼬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네가 진짜 나와 인사라도 나누고 싶다며? 곧 떠날 거 아니야?”
“그건 그렇죠.”
진짜 미즈키 페이.
눈앞에 있는 식신을 조종하는 진짜와 만나는 건 꽤 중요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미즈키 페이의 강함을 마주할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그녀와 강혁만이 아는 비밀을 만드는 게 된다.
둘만 아는 비밀은 서로의 유대에 접착제를 발라주고, 미즈키 페이급 강자와의 친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것.
그렇기에 강혁은 그녀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알마드 내 방을 지키고 있어라.”
“명을 받듭니다.”
한가로이 강혁의 옆에서 귤이나 까먹던 알마드는 강혁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곤 방에 결계를 펼쳤다.
알람 마법을 비롯한 방어 기능이 내장된 결계가 펼쳐진 것을 확인한 강혁은 곧바로 미즈키 페이의 뒤를 따랐다.
구불구불 만들어진 저택 내부를 따라 움직이던 강혁은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저택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서 지난 일주일 동안 자신이 보지 못한 부분마저 존재하며 기관진식 또한 존재하는 저택의 모습은 마치 영화나 애니에 등장하는 저택과 같았다.
한참을 저택 내부를 빙글빙글 돌아다닌 끝에 강혁은 다다미 방 문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
“내 본체가 있는 곳이야. 들어가 봐. 내 안내는 여기까지니까.”
펑-!
그 말을 끝으로 강혁이 알던 미즈키 페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식신을 만들 때의 필수품인 종이 인형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혼자가 된 강혁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곤 어떤 모습을 한 이가 있든 놀라지 않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다미 방의 문을 드르륵- 열었다.
“아....안녕!”
“....! 미즈키....씨?”
“마....맞아! 내가....내가 미즈키 페이야!”
그리고 그런 다짐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방안에 들어가자 마자 강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중고등학생 정도 되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목소리는 떨렸고, 식신과는 달리 화장기는커녕 비비 같은 것조차 바르지 않은 생얼이었다.
식신과는 정반대의 모습에 강혁은 혼란에 빠졌다.
더군다나 작고 아담한 키와 우물쭈물대는 그녀의 모습은 귀엽게마저 느껴질 정도였으니 혼란에 빠지지 않는 게 이상할 터.
‘....식신의 성격과 행동은 본래의 자신과 정반대로였나 보군.’
자신이 알던 미즈키 페이란 존재는 만들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강혁은 미즈키 페이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진짜 미즈키 페이는....히키니트였구나.’
미즈키 페이는 의외로 날카롭게 화장 진한 30대의 여성이 아닌 20대 초중반에 동안이며 방안에 콕! 틀어박혀 지내는 히키니트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