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52
한국에서 일본까지의 거리는 약 두세 시간 가량.
그 시간을 강혁은 가만히 보낼 생각이 없었다.
물론 서로 떨어져서 자신의 옆자리만 노려보고 있는 세 여자와 보낸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이번 일본행은 미즈키 페이와 함께 하게 되겠네.”
“미즈키 페이? 그 화장 진한 여자랑은 왜요?”
“왜긴 왜야, 미즈키 페이가 일본의 협회장 역할도 함께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이번에 우리 입국 허가내준 것도 그 여잔데 새삼스레.”
“....전 그 아줌마 별로 마음에 안 드는데.”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수연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강혁은 미소를 지었다.
“나에겐 좋은 일이지. 너도 알잖아? 내 재능이 뭔지?”
“....그 아줌마 재능이라도 배우려는 생각이에요?”
“응, 충분히 좋은 재능이니까.”
“....그건 부정할 수는 없네요.”
자존심 강한 수연마저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미즈키 페이의 재능은 음양도.
점술과 제사와 같은 것들을 주류로 다루는 것으로 쉽게 말해서 샤머니즘과 비슷했다.
하지만 음양사의 재능 중에서 가장 탐이 나는 건 점술도 제사도 아닌 ‘식신’이었다.
‘음양사가 마법사와 같은 만능 직업으로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어떻게 보면 네크로맨서와도 비슷하지.’
식신.
종이 인형에 자신의 힘을 불어넣어 일정 시간 혹은 일정 데미지를 받기 전까지 다양한 형태를 유지하는 물체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식신의 유용함을 나열하자면 입 아플 정도였고, 강혁 또한 그런 식신이 무척이나 탐이 났다.
‘유사시에 나와 식신을 바꿔치기하거나 고기 방패로 쓸 수도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꼭 배워야지.’
음양사는 비단 미즈키 페이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강혁의 기준에 드는 음양사는 미즈키 페이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번 일본행에서 갑은 어디까지나 강혁이다.
즉, 이번 일본행을 빌미로 강혁은 갑의 위치에서 미즈키 페이에게 재능을 배울 생각이었다.
음양도는 비단 식신만이 아니라 생활에 전반에 크게 도움이 되는 재능인 만큼 강혁은 또 다시 강해질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강혁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안 그들을 태운 비행기는 일본의 나리타 공항에 내려섰다.
철컥-
비행기의 문이 열리고 놓여진 계단을 걸어내려가며 강혁은 감탄을 내뱉었다.
“....엄청 많은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이런 거 한 번도 안 받아봤어?”
“....응.”
“....쏘리.”
자신만만하게 기본이라며 말하던 니아 아리엘은 처음이라는 강혁의 의기소침한 모습에 사과를 건넸다.
하지만 의기소침한 모습도 잠시 강혁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걷기 시작했다.
현재 비행기 앞에 쫙 깔린 일본의 인사들부터 총리와 미즈키 페이까지 있는 마당에 기 죽어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어쩌면 그런 모습을 바라고 이런 걸 준비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짐을 마치고 지상에 도달한 강혁은 자신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 미즈키 페이를 볼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몇 년만인지 모르겠네.”
“일본에 온 걸 환영해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환영한다는 말을 내뱉는 미즈키 페이의 모습에 강혁을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미즈키 페이는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득과 실의 구분이 무척이나 철저한 사람이며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면 결코 미소를 짓지 않는다.
물론 그 말은 곧.
‘내게 미소만 짓는다면 훌륭한 아군이 된다는 얘기지.’
미즈키 페이의 마음을 여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그녀가 직접 문을 열고 마중을 나온다면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 훌륭한 동료가 된다.
최강의 10인이라는 타이틀에 일본 협회의 협회장까지 맡고 있는 그녀의 힘은 총리와 천황을 넘어선다.
즉, 일본에 일어난 괴현상들을 처리하는 데에 그녀가 나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얘기.
‘아마 이번 사건 마무리만 잘 되면 그녀의 일본에서의 입지 상승 다시 한번 이뤄질 거고....그렇게 되면 일본은 미즈키의 손바닥 위에 올려지게 되겠군.’
하나의 나라가 한 명의 손에 올라가는 상황.
강혁이 정의감 넘치는 인물이라면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필사적으로 그녀를 견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때? 나만 공격 안하면 되지. 오히려 그 힘을 나를 위해서도 사용해주면 땡큐 아닌가?’
워낙 상대해야 하는 적들의 스케일이 큰 강혁에게 있어서 미즈키 페이란 강자는 큰 도움이 되면 되었지 결코 적으로는 돌려서는 안 되는 이였다.
그녀 정도의 적은 김승태 한 명이 충분한 강혁이었다.
그렇기에 강혁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저희 ‘함께’ 일본을 정화시킵시다.”
“....그러죠.”
유독 함께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는 강혁의 모습에 미즈키 페이의 입에 흥미로움이 가득한 미소가 걸렸다.
현 최강의 10인과 곧 최강의 10인이 손을 잡는 순간이었다.
*부우우웅-
일본의 헌터 협회로 향하는 리무진 안에서 강혁은 미즈키 페이와 단둘이 앉게 되었다.
다른 여성진들의 극심한 반발이 이어졌지만 강혁의 부탁과 미즈키 페이의 꼭 필요한 일이라는 말에 그들은 결국 뒤이어 따라오는 리무진에 타는 신세가 되었다.
앞자리에 알마드를 태운 채,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다.
“오랜만이지?”
“이미 한 얘기 두 번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미즈키 씨는 그렇지 않으신가 봅니다.”
“넌 언제나 똑같구나.”
아까와 달리 편한 말투와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
이것이 본래의 미즈키 페이임을 잘 아는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뀌었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 네가 바뀌어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네가 나와 마주 보고 앉아 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걸 은연 중에 내비치는 그녀의 모습에 강혁은 피식 미소를 터뜨렸다.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아직도 제가 미즈키 씨의 아래로 보이신다면....전 지금 여기서 내려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츠츠츠츠....
말과 동시에 뿜어지는 강혁의 기운에 미즈키 페이의 희미한 미소가 걸린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결코 그 질 자체가 자신보다 떨어지지 않는 강혁의 모습에 미즈키 페이의 놀람 가득한 모습을 꽤 오래 지속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내 앞에서 이빨 드러내는 건 싫어하는데?”
후우우웅-
창문마저 전부 닫힌 차 안에서 생겨난 바람이 그녀의 너풀너풀한 옷을 잔뜩 펄럭였다.
마치 미즈키 페이의 분노를 표현하기라도 하듯이 거칠게 펄럭이는 흰 옷을 바라보면서도 강혁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서면 갑의 위치는 사라지고 동등한 위치가 된다.
그리고 동등한 위치에서의 미즈키 페이는 결코 강혁 본인에게 득이 되는 걸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서 노력할 인물이었다.
그건 결코 강혁이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무료 자원 봉사는 원하지 않는단 말이지.’
-일단 한 대 치는 건 어떠냐?
‘일본 전체랑 싸울 일 있어? 기다려. 어차피 그녀도 나랑 척 지는 건 바라지 않을 거야.’
그녀는 이미 일본의 전력을 끌어다가 칠죄 : 색욕의 탐사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했기에 그녀는 일본만의 힘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힘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대가 지불 또한 어마어마할 터.
그런 마당에 강혁이나 니아 아리엘 그리고 수연 같은 강자들의 참가는 그녀의 지갑을 거덜내기에 충분했다.
‘최대한 싸게싸게 부려 먹으려고 하겠지만 그건 안 되지.’
비싼 인력을 압박 한 번으로 싸게 부릴 수 있으면 그녀의 입장에선 이득이다.
더군다나 같은 최강의 10인을 제외하곤 전부 아래로 보는 그녀의 성격상 다른 최강의 10인을 이끌면서 자신보다는 약할 거라고 생각되는 강혁은 쉬운 먹잇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단둘, 정확하게는 알마드까지는 태우긴 했지만 둘만이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던 그녀는 결국 리무진에서 대화를 나누는 걸 택했고,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것.
여기서 밀려나는 쪽은 서로를 위로 인정하는 셈이었기에 팽팽하게 신경전을 나누었고, 거기서 강혁은 강수를 던졌다.
“일본에 벌어진 괴현상....그거 제가 백프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구조대들? 싹 다 돌려보내도 됩니다. 그들 전부와 저희들을 가치에 올리면 얼추 비슷할 것 같은데....그래도 그렇게 강짜를 부리실 겁니까?”
“....어떻게 그걸 확신하지? 더군다나 만약 네가 실패한다면 일본은 분명 큰 피해를 입을 거다. 그에 대한 손해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무조건 해결한다.
이 말에 담긴 힘은 천하의 미즈키 페이조차 한 발자국 물러서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만큼 현재 일본에 닥친 괴현상이 일본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고.
미즈키 페이가 살짝 물러난 걸 확인한 강혁은 쐐기를 박았다.
“실패하면 다른 이들은 모르겠고, 저와 저기 앞에 있는 김알마드 헌터. 일본에 귀화해서 미즈키 씨의 힘이 되어드리죠. 이래도 부족하다고 하시면....더 이상 할 말은 없을 것 같군요.”
“....!!!”
곧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오를 강혁과 그런 그의 부하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알마드.
두 명 모두를 자신의 품에 안게 되었을 때의 가치를 계산기에 두들겨 본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후욱-
그와 동시에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바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금 차분해진 자신의 옷가지들을 정리하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거면 충분해.”
“대신 성공했을 때의 대가 또한 확실하게 지불하시길. 저흰 5명이서 다른 나라의 구조대 전부를 합한 것보다 더한 성과를 치룬 것이니까요.”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협회와 일본 정부가 가진 것들은 꽤 많거든.”
노골적으로 자신이 돈 많다고 피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강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흰 돈 부족한 사람들 아닙니다. 고작 돈 몇 푼 벌자고 최강의 10인급 존재가 3명이나 움직였어요. 그런데 그걸 돈으로 해결한다? 수지타산이 안 맞죠. 안 그렇습니까?”
“....그럼 바라는 게 뭔데?”
짙은 화장 너머로도 느껴지는 미즈키 페이의 당황에 강혁은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손가락을 펼쳤다.
“미즈키 페이. 전 당신을 원합니다.”
“뭐....뭐라고?”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미즈키 페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강혁은 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나갔다.
“내 재능은 ‘올 마스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능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재능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당신의 음양도 재능을 높이 보고 있었고, 그걸 배우고 싶습니다.”
“....아.”
그제야 자신이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걸 깨달은 미즈키 페이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아....’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다시 한번 주판을 튕겨본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재능의 전수는 모든 일이 마무리 된 이후....”
“재능 전수는 선금입니다.”
“....영악하기는.”
끝까지 제 이득을 놓치지 않으려고 드는 강혁의 모습에 미즈키 페이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미즈키 페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강혁은 빙그레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흰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퍽이나.”
밝게 웃음을 짓는 강혁의 모습 미즈키 페이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무심하게 대꾸했다.
일본에 도착한지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일본의 온 목적의 절반을 달성해버린 강혁이었다.
‘그럼 이제 남은 절반만 취하면 일본행은 성공적이겠네.’
100중 절반이 미즈키 페이와의 연합 및 재능의 전수였다면 나머지 절반은 말할 것도 없이....
‘....색욕, 넌 내 거야.’
칠죄 : 색욕이 바로 나머지 절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