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50
“아재, 저 왔어요.”
“쯧, 최근에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뭔 일이냐?”
“알잖아요, 저 유명인 된 거.”
“유명인은 개뿔. 세상이 망할 징조인 거지.”
“아무튼 오늘 좋은 재료 들고 왔는데 쫓아낼 겁니까?”
“....재료? 뭔 재료?”
최근 바쁨을 핑계로 공방엔 나타나지도 않던 강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창수는 화부터 내고 봤다.
하지만 이어진 ‘재료’라는 말에 창수는 게슴츠레한 얼굴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장인급 대장장이인 창수의 기준으로도 좋은이라는 단어를 붙일 정도라는 이유이기 때문에 창수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세상이 안정화 되면서 안전함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강한 몬스터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격변 시기에 S급 몬스터는 정말 발에 채이도록 많았고, S급과 비견되는 A급 몬스터들 또한 부지기수였으니까.
당연하게도 그런 몬스터들의 부산물은 최고의 무구를 만드는 데에 사용됐다.
그때 당시를 추억하는 창수에게 있어서 요즘 시대의 부산물은 성에 차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무엇보다 창수는 그 ‘드래곤’의 부산물로 검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
즉.
‘뭐, 쓸만한 재료라도 구해왔나 보지? 저 녀석이 유명해지고 강해지니 그건 좀 좋구나.’
창수의 식어버린 마음을 들뜨게 만들기엔 충분했다는 얘기다.
자주 방문하지 않는 강혁 때문에 화도 나고 그랬지만 대장장이인 창수에게 있어서 좋은 재료란 그런 마음을 눈 녹듯이 녹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 저번에 던전에 들어간 영상은 이미 유명해서 다 봤다. 뭐, 트윈 헤드 오우거의 힘줄이나 가죽 같은 거라도 가져온 게냐?”
강혁의 승격 시험 영상은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었다.
협회 측에서 직접 편집 및 광고를 때린 덕분에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강혁의 승격 시험 현장을 영상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트윈 헤드 트롤과 트윈 헤드 오우거를 상대로 무쌍을 찍는 강혁의 모습은 이미 전 세계 사람이 보았고, 그건 창수 또한 마찬가지.
승격 시험 당시의 몬스터들의 부산물은 전부 강혁의 것이 되었고, 그 가치는 수십 억에 달한다는 것 또한 창수는 잘 알고 있었다.
며칠 동안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은 미안함에 그 부산물들을 가지고 왔을까 창수가 기대를 하고 있을 때, 강혁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다 팔았는데요.”
“....뭐?”
“저 이사했잖아요. 니아에 수연이에 엘리자베스까지. 지금 다 제 집에서 얹혀살고 있는데 그 좁은 집에서 어떻게 살아요? 곧바로 팔아치우고 이사했죠.”
“이....이....미친 새끼가! 그 돈 주고도 못 사는 걸 돈 주고 팔아?”
“돈이 없는데 어떡해요!”
“썅노무시키! 당장 내 공방에서 나가! 난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침까지 튀겨가며 소리치는 창수의 모습을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지켜보던 강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진까 가요?”
“꺼지래도!”
“가지고 온 재료도 안 보고 그냥 이렇게 쫓아내도 되는 거에요? 후회하실 텐데?”
“.....”
꿀꺽-
자신감 어린 강혁의 말에 창수는 마른 침을 삼키면서 의아해했다.
‘대체 뭘 가져왔길래 저렇게 당당하지?’
저런 자신감 어린 모습은 창수는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자신이 헌터로서 성공한다고 말했을 때.
그때와 비슷한 자신감에 창수의 기세가 살짝 수그러들었다.
“큼, 뭐 보여주기나 하던가.”
그가 아무리 화를 내고 강하게 나간다고 할 지라도 장인이기에 앞서 한 명의 대장장이인 그는 저렇게 자신만만한 강혁이 가져온 재료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화를 지우내고 무안한 듯 헛기침을 내뱉을 때, 강혁이 자신을 팔을 내밀며 말했다.
“가져가세요.”
“....뭐하는 거냐?”
“뭐긴요,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재료를 드리는 건데요?”
“진귀한 재료? 너 내가 무슨 재료를 만져본지는 알고 하는 소리지?”
“그럼요, 그 유명한 드래곤을 만져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수연이가 쓰고 있는 검이 그 드래곤으로 만든 검이고요.”
“그걸 아는 놈이 내 앞에서 팔을 내밀고 있는 이유는 뭐냐? 네 팔이라도 잘라다 쓰라는 거냐?”
“....그런 끔찍한 말씀을.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지금은 좀 시기상조네요.”
“그럼 팔을 내밀면서 최고의 재료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
이제는 짜증마저 어린 창수의 모습에 강혁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일어나라.”
“....? 그건 또 뭔 개소....허억!”
갑자기 일어나라고 하는 강혁의 모습에 참다못한 창수 개소리하지 말라며 소리치려는 순간 벌어진 일에 창수는 기겁했다.
드드드득-
“....이거 설마 내가 아는 그거 맞냐?”
“드래곤 스케일을 생각하시는거면 맞습니다.”
“....하느님 맙소사.”
“....제 앞에서 신에게 기도하지 마세요.”
“너 무신론자였나? 요즘 세상에 무신론자도 있구나.”
“아니, 신이 존재하는 건 아는데 알아서 더 짜증이 나네요.”
신과 악마가 정말 존재하며 신탁도 내리는 걸 모르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강혁은 다른 이유로 신들을 언급하는 걸 꺼려했다.
‘그놈들이 보낸 템플러랑 악마 숭배자 때문에 죽을 뻔한 걸 생각하며 영원히 보기도 싫다.’
템플러와 악마 숭배자.
인간들의 머리 위에 선 이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데 좋아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터.
그런 강혁의 반응에 창수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잊고 강혁의 팔을 쓰다듬으며 얼굴을 붉혔다.
“다 늙어서 남자 팔 만지면서 얼굴 붉히는 영감님은 창수 아재 밖에 없을 겁니다.”
“나 여자 좋아한다. 요즘 최씨랑 얼마나 사이가 좋은 줄 알아?”
“모릅니다.”
“모르겠지, 요즘 공방에 나왔어야 알지 이 자식아!”
딱!
모른다고 단언하는 강혁의 뒤통수는 효자손으로 후려친 창수는 다시 한번 강혁의 팔에 집중했다.
정확하게는 강혁의 팔에 돋아난 검은 비늘들에 집중했다.
하나하나가 다이아몬드보다 비싸다는 용의 비늘이 가득한 모습에 다시 한번 창수가 전율에 빠질 때.
“일단 보는 건 여기까지.”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좀 더 보여주면 덧나냐? 그리고 나한테 주려고 온 거 아니야?”
“그건 맞는데 일단 제 몸의 일부를 드리기 전에 약속 하나만 받고 싶어서요. 아직 제 실력으로 드래곤 스케일을 다루는 건 무립니다. 아시죠?”
“알지, 아직 새싹 주제에 그런 귀한 재료를 다루는 건 재료에 대한 모욕이다. 그러니 넌 나한테 맡겨두고 가만히 지켜나 보고 있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신 건 알죠? 전 재능을 갈고 닦아서 강해집니다. 이런 귀한 재료를 다루고 다룰 방법을 배울 기회를 날릴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씨....설마 너 지금 나한테 드래곤 스케일을 다룰 방법까지 알려달라는 거냐? 아주 내 밑천을 다 빨아 먹으려고 작정했구나?”
“밖에 나가서 드래곤 스케일은 무한하게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실래요 아니면 저한테 며칠, 몇 달이 걸리든 드래곤 스케일을 직접 재련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실래요? 선택은 창수 아재 몫입니다.”
“....싸가지 없는 놈. 대장장이 앞에서 기술과 재료를 두고 논해?”
대장장이에게 있어서 기술과 재료는 떼어놀래야 떼어놀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강혁이 등을 떠밀고 있었으니 그로서는 짜증을 토해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그의 결정은 이미 정해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미 그는 강혁을 제자로서 인정했고, 먼젓번에 대장장이의 기초를 잡아준 전적이 있다.
한 번 했으니 두 번 하는 게 어려울 리가 없다.
물론 기초를 잡아주는 것과 드래곤 스케일을 직접 다룰 수 있는 수준까지 가르치는 건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드래곤 스케일에 눈이 멀어버린 창수에게 그건 더 이상 머릿속에 없었다.
“가르쳐 주마. 가르쳐 주면 될 것 아니냐 망할 자식아.”
“감사합니다. 스승님.”
“에잉, 지 좋을 때만 스승이고 선생님이지. 싸가지 없는 놈.”
“제가 직접 다룰 때까지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드래곤 스케일.
대장장이로서 다룰 수 있는 거의 끝자락에 위치한 재료를 어느 정도나 걸릴 것이냐는 강혁의 물음에 창수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반년. 아니, 그것도 길어. 아니, 애초에 나한테 맡기며 며칠이면 새롭게 바뀐 방어구랑 무기를 볼 수 있을 텐데 굳이 그렇게 긴 시간을 허비하다니....이해가 안 간다. 이해가 안 가.”
반년.
6개월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기간이다.
거의 강혁이 각성하고 보낸 시간과 비슷할 정도로 긴 시간에 강혁은 살짝 놀랬지만 이내 미소를 머금으며 검지를 쫙 펼쳤다.
대뜸 검지를 펼치는 강혁의 모습에 창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했다.
“그 손가락은 뭐냐? 엿 먹으라는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반년이 뭡니까? 반년이. 한 달. 한 달 안에 드래곤 스케일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겠습니다.”
“....미친 놈.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하냐?”
드래곤 스케일은 최소 장인에 버금가는 실력까지는 되어야 다룰 수는 고급 재료.
당연하게도 두어 달 전까지만 조금 무기 좀 만들 줄 아네? 수준이던 이가 고작 한 달 집중 강의를 받는다고 드래곤 스케일을 다룬다?
‘말도 안 되지. 녀석이 올 마스터니 뭐니하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지만 그건 불가능해.’
올 마스터.
세간에 알려진 강혁만이 가진 유일한 재능.
여태까지 강혁이 전례 없는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재능에 있었다는 걸 세상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창수는 고작 한 달 만에 기본에서 중급자 재능 정도에 불과한 강혁이 드래곤 스케일을 재련할 것이라고 창수는 생각하지 않았다.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참고로 말하지만 난 불가능하다는 쪽에 건다.”
“편한대로 하시죠. 그럼 바로 강의 시작하셔도 됩니까?”
“빨리 해. 난 빨리 너 가르치고 드래곤 스케일이나 만지려니까.”
“....남의 몸을 그렇게 만지작거리고 싶으셨다니 변태셨군요.”
“닥치고, 펜이나 들어. 네 입으로 한 달이라고 그랬다. 한 달 뒤에 강습은 끝이야. 끝!”
“좋습니다.”
대장장이 일을 무시하는 듯한 강혁의 모습에 창수는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로 그리 선언했고, 강혁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본래라면 강혁으로서도 창수가 말하는 경지, 상급 대장일 경지에 오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것도 한 달만에는 말이다.
하지만 강혁에게는 든든한 구원자가 존재했다.
[특성 : 청출어람이 활성화됩니다.]
‘자, 지금부터 꿀 빨아보실까?’
청출어람.
배움에 있어서 그 성장 속도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특성이 활성화되었고, 강혁은 물 만난 스펀지처럼 창수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한 달.
강혁이 예견했던 시간에 정확하게 도달하는 날 창수의 공방에선 창수의 욕설이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쉽네.”
“이건....이건 말도 안 돼....고작 한 달만에 애송이가 드래곤 스케일을....”
흰 머리를 붙잡고 부들부들 떨며 현실을 부정하는 창수를 뒤로한 채, 강혁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갑옷과 검 그리고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강혁의 갑옷은 드래곤 스케일을 녹여 코팅하여 검은빛이 번들거렸고, 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과 같이 강한 힘과 부딪쳤다고 해서 금이 가거나 깨지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현재 강혁이 미소를 짓는 이유는 갑옷과 검도 아니었다.
[중급 대장일[LV.9]가 상급 대장일[LV.1]로 성장하였습니다.]
[모든 스탯이 30씩 상승합니다.]
상급의 벽을 부숴버리고 오랜만에 상급에 경지에 이른 대장일 재능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창 재능 성장에 대한 여운으로 강혁이 미소를 머금고 있을 때, 그런 강혁의 귀로 뉴스가 들려왔다.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괴현상들은 전문가들로서는 규정할 수 없는 이상한 일입니다.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던전이 터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발언을....
척 듣기에도 괴상한 일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던전과 몬스터가 생겨나고 워낙 괴상한 일들이 많이 생겼기에 강혁은 딱히 뉴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강혁, 새로운 칠죄다.
“....이러면 말이 달라지지.”
이어진 분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한 달여의 시간 동안 공방에 박혀 있던 강혁의 다음 행선지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