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49
“....벌써 며칠 째 이걸 먹는 지 모르겠네.”
“그래도 이제는 크게 탈이 나진 않아서 일상 생활을 하시면서 드셔도 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당연한 말이지만 고작 하루, 그것도 몇 시간 만에 리터 단위의 유리병에 든 용혈을 다 마시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용혈 자체가 극독이라는 점도 한몫하긴 했지만 중요한 건 피도 어찌보면 물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즉.
“배불러.”
배가 찬다는 얘기.
결과적으로 유리병 하나 정도의 분량을 다 마시면 배가 부르고, 그 이상을 먹는 건 불가능했다.
더불어 독이 중첩이라도 되는 건지 하루 유리병 세 병 이상 마시게 되면 강혁조차도 버틸 수 없는 극독이 되어버렸다.
‘....첫 날에는 끔찍했지.’
네 병째 용혈을 마시려는 순간 올라온 독기가 전신을 잠식하고 순식간에 붕괴되는 신체에 기겁하며 한계 초월을 사용했던 기억을 떠올린 강혁은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물론 며칠이 지난 지금은 그것이 조금은 괜찮아져 3.5병까지는 마실 수 있게 되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그나마 달라진 점이라면....
“상태창.”
[이강혁]
재능 : [올 마스터]
신체 : [반성반마(半聖半魔)] [사령강체(死靈强體)]
특성 : [한계 초월] [성자] [분노] [인내] [청출어람] [불완전한 만독불침] [불굴]
세부 재능 : 전투 예지[LV.MAX] 상급 독기[LV.7] 상급 무술[LV.4] 상급 몬스터 지식[LV.1] 중급 대장일[LV.4] 중급 무두질[LV.3] 중급 그림자술[LV.5] 중급 마법[LV.3]
[근력] : 332 [체력] : 328 [민첩] : 330 [지력] : 297 [마나] : 430 [신성력] : 370 [마기] : 370 [사기] : 412
레벨 4에 불과했던 독기의 레벨이 며칠 사이에 7레벨까지 급성장을 한 점 정도가 있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수준에 다다른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보며 한 차례 씨익 웃어보인 강혁은 상태창을 끄고 자신의 앞에 놓인 조그마한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오늘이 17번째 병이지?”
“분명 성공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게 성공하면 발터 밀란까지는 앞으로 한 걸음인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데에 지대한 지분이 있는 발터 밀란.
그가 가진 일부인 독기가 두어 단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음에 강혁은 감격스러웠다.
물론 니아 아리엘의 육감을 넘어선 전투 예지를 얻었을 때처럼 독기는 발터 밀란의 일부에 불과했다.
즉, 강혁의 독기가 발터 밀란과 동등하거나 그를 넘어선다고 한들 강혁이 발터 밀란 자체를 넘어서기란 아직은 요원하다는 얘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혁은 개의치 않았다.
‘언젠가는 내가 모든 이들을 넘어설 거다.’
지금은 가장 약한 일본의 음양사 미즈키 페이조차 이길 수 없겠지만 아직 나는 각성한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았다.
‘몇 개월. 혹은 1년만 더 지난다면....나는 정점에 설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심호흡과 함께 발터 밀란이 내게 주었던 20개의 독병 중 17번째에 해당하는 독을 단숨에 들이켰다.
“....컥!”
빛에 따라 여러 가지의 색깔로 변하는 기묘한 색깔의 독.
그걸 들이키는 순간 그 색깔과도 같은 여러 가지의 고통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망치로 발가락을 내리찍는 듯한 고통.
밤에 물 마시러 가다가 모르고 밟은 레고와 같은 고통.
책 넘기다가 종이에 손가락을 베이는 듯한 고통 등.
일상 생활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악질적인 고통들은 물론이고 전신이 타들어가거나 찌부라지는 듯한 고통까지.
수십, 수백 가지의 독들을 고작 몇 초만에 느낀 강혁의 두 눈은 충혈되었고, 입에는 게거품이 물렸다.
하지만.
으득-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고통에 강혁이 이를 악물고 마나와 마기 그리고 신성력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마나는 독들이 스며들지 못하게 혈관들을 코팅했고, 마기는 독들을 제거하는 백혈구와 같은 역할을 맡았으며 신성력은 이미 흡수된 독들을 정화해나갔다.
여기까지가 강혁이 독을 마시고 난 뒤, 정확하게 10초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정적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내부를 관조하던 강혁의 눈을 뜬 것은 1분여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파하!”
“....괜찮으십니까?”
“어, 괜찮아. 손끝이 조금 떨리긴 하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지.”
파르르 떨리는 눈과 함께 숨을 토해내는 강혁의 모습에 그걸 지켜보던 알마드가 걱정 어린 시선으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잠시 강혁의 괜찮다는 대답에 알마드는 파르르 떨리는 손을 주물러주었다.
능숙하게 손 안마를 시작하는 알마드에게 감사를 전한 강혁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상급 독기[LV.7]이 상급 독기[LV.8]로 성장하였습니다.]
지난 며칠 간의 노고가 빛을 바라는 모습에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던 강혁은 이윽고 자신의 방에 남아 있는 마지막 남은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맞습니다.”
30병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을 모조리 먹어 치우는 데에는 10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하루도 쉬지 않고 삼시세끼 먹는 것마냥 마셔댔기에 가능한 기적과도 같은 일.
그리고 그 대장정이 바로 오늘 마무리 되는 날이었다.
물론 며칠이란 시간이 흐르고 다시 한번 8레벨로 성장한 독기가 고작 한 병 마셨다고 레벨이 오르진 않겠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용혈이라는 것이 워낙에 특별한 물품이기에 다 마셨을 때에 일어날 일을 기대하며 강혁은 마지막 남은 용혈을 병 째로 들이키기 시작했다.
벌컥벌컥-
1리터를 훌쩍 넘는 양에 상당한 극독에 가까운 용혈이지만 이미 강혁은 10일의 시간 동안 수십 병은 해치운 전과가 있다.
10일 동안 드래곤 한 마리가 지닌 피를 거의 혼자 마셔버린 셈.
이제는 내성마저 생겨서 용혈은 강혁에게 제대로 된 효과마저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위험한 용의 인자 또한 며칠 전부터 잠잠했기에 용혈을 들이키는 강혁의 모습은 거침이 없었다.
알마드 또한 그걸 잘 알기에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고.
이내 강혁이 다 마신 유리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없나?”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메시지창도 떠오르지 않는 모습에 강혁이 아쉬움 담긴 목소리를 내뱉는 찰나.
[용의 인자를 한계까지 흡수하여 신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용의 인자가 당신의 피에 흡수 됩니다.]
[용의 인자가 당신의 뼈에 흡수 됩니다.]
[용의 인자가....]
“....컥!”
“주인님!”
좌르륵 떠오르는 메시지창과 함께 신체 전체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어마어마한 고통이 강혁에게 작렬했다.
마치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과 함께 시작된 신체의 변화.
용혈을 받아들인 피는 독이되 강혁의 기운들을 머금은 용혈로 바뀌었고.
용혈을 빨아들인 뼈는 강철보다 단단한 용골(龍骨)로 바뀌었으며.
용혈이 스며든 근육은 그 어떤 가죽보다도 쫀쫀함을 자랑했다.
순식간에 환골탈태를 거듭한 탓에 강혁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전신이 재조립되면서 발생하는 고통이 평범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혁의 환골탈태는 끝을 향해서 미친 듯이 달려갔다.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바뀌어 나가던 강혁의 신체가 우뚝 멈춰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ERROR.]
[중요한 ‘심장’을 확인할 수 없음.]
[신체 변화 종료, 신체 : 반룡체(半龍體)를 얻었습니다.]
[부족한 조각을 채운다면 신체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상급 독기[LV.8]이 용혈[LV.8]로 변경되었습니다.]
“후우....후우....”
“끝난 겁니까?”
“....그래, 마지막 하나가 부족하지만 얼추 끝나긴 했네.”
생물을 구성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심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으니 당연하게도 온전한 신체를 얻을 수 없었고, 강혁은 반룡체(半龍體)라는 살짝 모자란 신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혁은 반룡체(半龍體)의 설명창을 읽어보곤 만족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반룡체(半龍體)]
심장이 부족하여 완전한 용이 되지 못한 신체.
불안전하지만 용의 신체를 지녔기에 신체 능력은 물론이고 마나가 크게 성장한다.
마법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으며, 드래곤의 비늘을 언제든 소환할 수 있다.
추가로 모든 마법을 익히는 데에 보너스를 얻으며,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 필요한 마나가 대폭 감소한다.
근력, 민첩, 체력, 지력 + 50, 마나 + 150
단 하나의 새로운 신체를 얻었을 뿐인데 사대 스탯이 무려 50씩이나 올랐으며 다른 자원 스탯들에 비해 많이 낮았던 마나 또한 150이나 상승했다.
그 결과 강혁은 모든 스탯들이 300에 근접하거나 뛰어넘는 성과를 보였고, 마나는 400의 벽을 꿰뚫어버렸다.
거기에 추가로 강혁의 신체는 격변과 함께 더욱 단단해졌다.
용혈로 바뀐 독기 또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만 전보다 더 강해졌음을 강혁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강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심호흡을 하며 신체를 내려다보며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일어나라.’
언데드들을 소환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강혁의 그런 명령과 함께 강혁의 몸에 변화가 생겨났다.
드드드득-
마치 물고기의 비늘과 같은 것들이 강혁의 팔과 다리를 비롯한 전신에 돋아난 것이다.
그리고 그 비늘들은 결코 물고기의 비늘 따위와 비슷하지 않았다.
“....이게 드래곤 스케일.”
드래곤 스케일(Dragon Scale).
흔히들 용의 비늘이라고 불리는 것과 한낱 미물인 물고기의 비늘이 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실제로 드래곤 스케일은 그 단단함에 무기 재료나 방어구 재료로서 그 가치가 무척이나 높다.
시중에 풀린 드래곤 스케일이 함유된 무기나 방어구의 가격이 어마어마한 것만 봐도 그 가치를 알 수 있으리라.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뚝-
“....이게 떼어지네?”
바로 강혁의 몸에 돋아난 드래곤 스케일이 떼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드드득-
“....마나를 불어넣으니 복구도 되고. 이거 완전 개꿀인데?”
떼어진 자리에 마나를 집중시키니 떼어낸 비늘이 스멀스멀 복구되는 모습까지 본 강혁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세상에 둘도 없는 드래곤 스케일이라는 야금 재료.
그걸 거의 무한하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강혁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나중에 내가 뼈나 잘린 팔이나 다리까지 재생시킬 수 있게 된다면....팔과 다리를 떼어내서 검을 만드는 것도 괜찮겠어.’
누군가가 들었다면 섬뜩할만한 생각을 하면서 스산하게 미소를 짓던 강혁은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망치를 좀 두들겨야겠어. 좋은 재료가 생겼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2급 창고에 있을 드래곤 사체 따위는 더 이상 머릿속에 남아 있지도 않은 강혁은 곧바로 창수의 공방을 향해 바람처럼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