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48
드래곤.
이 단어가 의미하는 존재는 단 하나밖에 없다.
10년이라는 강산도 변할 시간에도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았던 지상 최강의 생물체.
나아가 현 최강의 10인 전부를 상대로도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압도할 정도였으며 목숨을 걸었기에 이길 수 있던 강적.
바로 그 드래곤의 시체가 2급 창고에 자리하고 있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거체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2급 창고의 3분지 1가량을 채울 정도로 커다랬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시체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트윈 헤드 오우거를 마주했을 때와 비슷할 정도였다.
‘....정말 드래곤이 맞긴 맞자 보군.’
다른 친구들의 입을 통해서만 들었던 드래곤의 생김새와 똑닮은 모습을 통해서 저것이 정말 드래곤임을 확신한 강혁의 시선은 드래곤의 사체에게만 향해 있었다.
다른 물건 따위에는 눈길조차 안 주는 강혁의 모습에 그를 안내했던 관계자 또한 쓴웃음을 머금었다.
“역시 드래곤을 택하시는군요. 하지만 당연한 일이지만 저 드래곤 시체 전부를 가져가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거기까지 바라진 않았습니다.”
수십 미터가 넘는 거체는 이미 군데군데 뜯겨져 나간 부분이 보였다.
무언가에게 뜯겨나간 것이 아닌 날카로운 것에 썰려져 나간 모습으로 보아 2급 창고를 방문한 이들이 가져간 것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양의 사체가 남아 있었다.
“만약 사체를 택하신다면 원하는 부위 등을 말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직접 해당 부분을 잘라서 건네드릴 테니까요. 추가로 제련을 바라신다면 장인급의 대장장이 또한 알선을....”
“필요 없습니다.”
장인급 대장장이의 알선.
그 정도 되는 이와 연이 없다면 모를까 강혁은 이미 장인급 대장장이를 알고 있다.
나아가 자신의 재능을 성장시킬 수도 있는 드래곤의 사체를 직접 제련할 기회를 날릴 이유 또한 없었다.
‘안 그래도 갑옷과 무기가 애매했는데 잘 됐군. 비늘은 녹여서 갑옷과 검에 코팅하고 뼈는 새로운 검을 만들면 딱이겠어.’
리치, 데스나이트에 이은 알마드와의 전투.
거기에 템플러들과 악마 숭배자와까지 싸우면서 장비에 대한 강혁의 열망은 커져만 갔다.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
그것만큼 개소리가 없다는 걸 강혁은 잘 알고 있다.
‘....검성 수준이 아니고서야 장비는 언제나 중요하다.’
검성은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로 성벽을 베어내는 미친 놈이기에 논외지만 강혁은 아직 그 급이 아니었다.
만약 한계 초월을 통해 악마화나 신성화를 할 경우에는 다르지만 평상시를 생각하면 아직 멀었다.
즉, 뛰어난 무구가 아직까지는 강혁에게는 절실하다는 얘기.
그런 면에서 볼 때, 드래곤의 사체로 만든 무구는 더 이상 업그레이드가 필요없는 말 그대로 끝판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
‘드래곤의 시체로 만든 무기라면 반신의 격을 내가 직접 얻고 나서도 충분히 쓸만한 무기일 터. 역시 드래곤의 사체 중 일부를 택하는 것 옳은....’
생각을 마치고 강혁이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드래곤의 사체 일부인 뼈와 비늘 등을 택하려고 할 때였다.
강혁의 눈에 들어온 투명하고 커다란 유리병에 담긴 붉은 무언가가 들어왔다.
마치 붉은 보석과도 같은 무언가의 모습에 홀린 듯이 그 앞으로 다가간 강혁이 이것의 정체를 물었다.
“이건....이건 뭡니까?”
그리고 강혁의 물음에 관계자는 목록을 뒤져보더니 어색한 미소를 입에 머금으며 대꾸했다.
“....드래곤 블러드라고 적혀 있네요.”
“드래곤 블러드? 설마 이게 용혈이라고?”
좌르륵 놓여 있는 수십 개의 유리병들.
그것들 전부가 드래곤 블러드, 용혈(龍血)이라는 말에 강혁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본래 드래곤과 관련된 것들은 하나 같이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런 용혈들이 커다란 병에 수십 개나 넘게 있다는 사실이 강혁은 놀라웠다.
그리고 왜 저렇게 많은 양의 용혈이 남아 있는지 또한 궁금했다.
“분명 드래곤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귀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저건 뭐죠?”
“음, 사실 드래곤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귀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당장 저 드래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살들은 그저 썩어가는 고깃덩어리 불과하니까요.”
“그럼 용혈도?”
“예, 원래 몬스터들의 혈액은 뛰어난 마법 연구 물품으로 마법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희도 마법사들에게 연구를 맡겼는데....”
“그닥 좋지 않은 결과를 얻으셨나 보군요.”
“맞습니다. 저건 그냥 아름다운 독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추가로 용의 인자가 너무 강력해서 그런지 다른 마법 물품들과 함께 사용할 경우 용혈에 마법 물품의 위력이 잡아 먹힐 정도였죠.”
아름다운 독.
그것이 용혈에 주어진 딱 한 가지의 쓸모라는 사실을 듣는 순간 강혁은 결정을 내렸다.
“저거 그럼 제가 다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드래곤의 뼈? 드래곤의 비늘?
다 필요 없었다.
무구야 언제든지 새로 만들면 그만이지 본신의 강함인 재능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혁은 놓치지 않았다.
최근 벽에 가로막힌 듯 성장이 더딘 독기.
그것을 폭풍 성장시킬 방법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강혁의 요구에 협회 관계자는 반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좀만 기다려주시죠. 워낙 양이 많아서 위에 요청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에 무르실 수는 없습니다.”
“얼마든지요. 그럼 잘 좀 부탁 드리겠습니다.”
협회로서도 쓸데없이 2급 창고에 명성에 걸맞지 않는 용혈을 버리고 싶었지만 드래곤이라는 이름 값 때문에 골치를 썩이던 물건이 바로 용혈이다.
그런 용혈을 2급 창고에 방문한 대가로 전부 가져가겠다고 하니 그들로서는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둘 다 윈윈하는 셈.
당연하게도 협회의 상부는 그런 윈윈하는 방안을 놓치지 않았고.
“자택으로 전부 보내드리겠습니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온 허락에 강혁과 관계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짙게 미소를 지었고, 손을 마주 잡았다.
완벽한 거래였다.
*“후우, 전부 들어왔나.”
수십 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용혈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웠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는 진귀한 경험을 하는 강혁의 뒤로 머리 세 개가 쏙하고 돋아났다.
“이건 또 뭐야?”
“오빠, 저것들은 뭐에요?”
“....궁금하네요.”
“너희는 대체 왜 집으로 안 돌아가는 거야?”
차례도 니아 아리엘, 수연, 엘리자베스로 이루어진 세 개의 머리가 내뱉는 질문 세례에 강혁은 골머리를 싸맸다.
그도 그럴 것이 승격 시험 이후로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세 사람은 강혁의 집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알마드마저 함께 살고 있었기에 강혁의 집의 용량은 이미 터질 지경.
더군다나 지금부터 할 일들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들이었기에 강혁은 그녀들을 집밖으로 밀어냈다.
“잠시만 나가서 기달려. 아니, 그냥 오늘 하루 동안 들어오지 말고 여자들끼리 오붓한 대화라도 나누고 있어.”
“우리끼리 무슨 오붓한 대화야!”
“....그건 그렇네. 그럼 육체의 대화라도 나누고 있던가.”
평소 집이든 밖이든 가리지 않고 싸워대던 세 사람의 모습을 상기한 강혁은 말로 하는 대화보단 육체로 하는 대화가 어울릴거라 생각하며 그리 대꾸했고, 이내 세 사람은 그에 응하기라도 하듯 모습을 감추었다.
저기에 낀 엘리자베스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강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알마드.”
“부르셨습니까?”
“지금부터 이것들을 마실 건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
“이것들은....? 용혈이로군요. 쓰잘데기 없는 독혈인데 이걸 굳이? 딱히 얻으실 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아크 리치답게 보자마자 용혈임을 눈치챈 알마드의 말에 강혁은 그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독혈. 말 그대로 독이나 다를 바 없는 피라는 얘기지. 그리고 내 재능 중에는 독기라는 재능이 있어. 즉, 드래곤이 피가 지닌 수준 높은 독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을 거야.”
“드래곤의 피가 지닌 독은 상당히 강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같은 언노운급이지만 드래곤보다는 약한 알마드는 드래곤의 무시무시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강혁에게는 다 생각이 있었다.
“정 안 되면 한계 초월로 불안전한 만독불침을 초월하면 돼.”
최악의 경우 불안전한 만독불침을 초월하여 임시적으로 만독불침 상태로 만든다면 드래곤의 피가 지닌 강력한 독일지라도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강혁의 노림수였다.
거기까지 들은 알마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추가로 바라시는 건....?”
“내 주위로 누구도 오지 못하게 막아.”
“명을 받듭니다.”
독을 먹는 와중 누군가 습격 혹은 공격을 한다면 위험해진다.
심지어 독의 해독에 실패할 수도 있고.
한계 초월이라는 노림수가 있긴 하지만 언제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정말 최악일 때만 사용해야 한다는 걸 강혁은 알고 있다.
그런 만큼 만일에 대비를 위해 알마드를 곁에 둔 강혁은 심호흡과 함께 유리병의 뚜겅을 열었다.
“....감미롭군.”
“향긋한 독이지요.”
뚜겅을 열자마자 올라오는 달짝지근하면서도 향긋한 냄새에 강혁은 미소를 머금으며 그릇으로 용혈을 적당하게 푼 뒤, 입안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독에 중독....]
미친 듯이 점멸하는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강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크게 떠진 두 눈은 서서히 빨갛게 변해가고 있었고, 안색 또한 창백해져갔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은 강혁은 이를 악물면서 다시 한번 용혈을 펐다.
그릇 한 가득 푼 용혈을 강혁이 다시금 입안에 털어넣는 순간 오래도록 벽에 막혀 있던 독기가 드디어 성장했다.
[상급 독기[LV.3]이 상급 독기[LV.4]로 상승했습니다.]
그 순간 느껴지는 상쾌함과 시원함이 강혁의 머리를 시원하게 만들었다.
전신을 좀 먹어가던 용혈의 독기 또한 주춤하는 것을 느끼며 강혁은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군. 이만큼이나 먹었는데 아직도 저 만큼이나 남아 있다니 말이야.”
주르륵 놓여 있는 수십 개에 달하는 유리병들과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용혈들을 바라보며 짙은 미소를 머금은 강혁이 다시 한번 유리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벌컥벌컥-
마치 동네 어르신들이 막걸리를 마시듯이 미친 놈처럼 용혈을 들이키는 강혁을 바라보며 알마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 주인님이지만 정말 미쳤군.’
드래곤의 흉포함이 그대로 내재된 용혈은 독도 독이지만 그 피 안에 담긴 용의 인자 자체도 강력하다.
자칫 잘못하면 용의 인자가 가진 흉포함에 잡아 먹힐 지도 모른다는 얘기.
하지만 그런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용혈을 퍼마시는 자신의 주인이 알마드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비단 독기의 성장만을 위해서 시작했던 용혈 마시기가 새로운 신체를 얻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는 걸 지금의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