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44
푸화아악!
“그림자를 다룰 때에는 정신을 분리한다는 느낌으로 하셔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분신이죠.”
그림자가 가장 강해지는 대낮의 훈련장에서 빈센트는 그림자들의 공격을 뿌리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빈센트의 태연한 설명 속에서 오직 강혁만이 이를 아득바득 갈아가며 그를 맞추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쉽게도 강혁의 공격은 빈센트에게 닿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빌어먹을, 그림자를 이용해서 어떻게 맞추라는 거야?”
“그림자술을 갈고 닦을 때에는 그림자만 다루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다루는 방법도 빠르게 느니까요.”
“....젠장, 할 말이 없네.”
빈센트 또한 S급 중에서 상위에 속하는 헌터.
거기에 그림자술 또한 그의 독문기술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그런 빈센트를 상대로 그림자술로만 공격해서 그를 맞추라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
결국 강혁은 빈센트와 타협을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도 함께 움직이거나 무기에 겹치는 걸로 하자. 그거라면 승산이 있을 것 같으니까.”
“흐음, 뭐 좋습니다. 어차피 이래서야 아무런 이득도 못 볼 것 같으니까요.”
타협은 성공적이었다.
빈센트는 흔쾌히 강혁의 말에 동의했고, 그때부터 강혁은 그림자를 검에 두르거나 혹은 직접 공격을 내지르는 와중에 그림자를 통한 공격을 이어나갔으니까.
당연하게도 그것들은 하나같이 쓸만한 공격들이었고, 평범한 이였다면 제대로 막아내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정도의 위력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라는 것만 두고 보면 절대로 저를 제대로 공격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더 다양한 방법을 논해보거나 아예 위력 자체를 높혀서 그림자에 대한 제어권을 강화시키는 데에 주력해보시죠.”
“....진짜 답도 없군.”
그 공격들을 빈센트는 손쉽게 받아 치는 걸로도 모자라서 강혁이 다루는 그림자의 제어권마저 강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강혁의 패배.
정신력이 고갈난 강혁은 바닥에 나뒹구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만, 잠시 쉬었다가 가지.”
“그러시죠.”
결국 강혁은 휴식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놓인 물병 하나를 그림자를 이용하여 가져온 강혁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그림자술을 보며 만족함과 동시에 실망했다.
‘이 정도로는 제대로 전투에서 쓸 수 없을 것 같은데.’
현재 강혁의 그림자술의 레벨은 하급 9레벨.
본격적으로 전투에 쓸모가 있으려면 최소한 중급은 달성해야만 했다.
하지만 무언가 하나가 부족하여 강혁은 중급에 도달하지 못했다.
상급도 아니고 중급에서 막혀 있다는 사실에 짜증을 금치 못한 강혁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고민에 빠져들었다.
‘빈센트는 분명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 거라고 그랬지. 자신의 방법은 자신의 것이고 내게는 나만의 방법이 있을 거라고 했으니 나는 빈센트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현재 강혁이 그림자를 다루는 방법은 총 세 개였다.
첫 번째는 그림자에 몸을 숨기는 은신 방법.
두 번째는 그림자를 검에 둘러 검기와 같이 사용하는 방법.
마지막 세 번째는 그림자를 빚어 자신의 상상을 구현화 시키는 방법이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쓸모 있는 걸 고르라면 강혁은 첫 번째를 고를 터였다.
이유는 하나.
‘....다른 건 너무 쓸모가 없어.’
두 번째 방법은 검기나 마기를 사용하면 되었고, 세 번째 또한 그냥 사령술을 사용하는 게 편했다.
물론 마나나 마기가 떨어지면 유용할 지도 모르고, 사령술과는 달리 모양을 자기 마음대로 빚을 수 있다는 점도 큰 메리트이긴 했다.
문제는 여태까지 강혁이 마나나 마기가 부족한 적도 없었고, 소환수의 중요성을 크게 느낀 적 또한 없다는 것이었다.
추가로 어느 정도 자율적인 이지를 지닌 언데드와는 달리 그림자로 만든 소환수는 하나의 분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컨트롤할 게 너무 많았다.
결국 힘들게 익히는 그림자술에 대한 회의감이 강혁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강혁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키에에엑!
-그어어어....
“흡! 하앗! 핫!”
“쟤넨 저기서 뭐하는 거야?”
시원한 물을 들이키며 강혁이 빈센트에게 물었다.
자신이 훈련하고 있는 훈련장 한켠에서 좀비와 스켈레톤을 비롯한 언데드를 부리는 알마드와 그런 언데드들과 대련하는 최건을 바라보며 빈센트는 성심성의껏 대꾸했다.
“훈련입니다.”
“훈련? 최건이 왜?”
“강혁님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좋은 마음가짐 아닙니까? 저번 습격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긁적긁적-
좀비에게 긁히고 스켈레톤에게 베이면서도 의지를 잃지 않고 검을 휘두르는 최건의 모습에 강혁은 살짝 감동했다.
분명 최건은 자신에게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렇기에 저번에 자신과 같은 곳에 서겠다는 최건의 말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고.
그런데 정말 죽어라 달려드는 최건의 모습을 보자니 그가 정말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려고 한다는 것이 짙게 느껴졌다.
“함께 가도 좋겠지?”
“충분합니다. 부족한 무력은 채워주기만 하면 되지만 없던 충성심을 만들어내는 건 힘드니까요. 그리고 재능도 출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 우릴 넘어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이제 나도 다시 한번 힘을....아!”
열심히 힘을 기르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최건의 모습에 질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수련에 힘을 쏟으려 하던 강혁은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런 강혁의 모습에 빈센트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이거 괜찮은데?”
새롭게 생각해낸 그림자의 활용 방안에 강혁이 미소를 지으며 빈센트를 바라보았다.
“빈센트.”
“예.”
“다시 한번 해보자. 왠지 이번엔 다를 것 같거든.”
“얼마든지요.”
자신감 넘치는 빈센트의 모습에 강혁은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고안해낸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
툭툭-
흙으로 된 훈련장의 바닥을 발로 차며 강혁의 준비를 기다리던 빈센트는 준비가 끝난 강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엔 안 봐드립니다. 저도 공격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마나까지만 허용합니다. 마기나 신성력은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오로지 마나와 재능까지만 사용하셔야 합니다.”
“알았다니까.”
유난히 자신감 넘치는 강혁의 모습에 빈센트는 다시 한번 유의 사항을 강조했다.
네 개에 달하는 자원 스탯 중에서 오로지 하나 마나만 허용한다는 것이 바로 빈센트가 강혁에게 건 제약이었다.
대신 재능은 딱히 제약하진 않았다.
애초에 그림자술 또한 재능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강혁의 몸에 여러 재능들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유난히 자신감 넘치는 강혁의 모습에 빈센트는 뭔가 달라졌음을 확신하곤 처음으로 맹공을 날렸다.
푸화아아악!
아직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만큼 그림자의 강력함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거기에 숙련된 조교인 빈센트의 그림자술은 단연 발군.
강혁의 발밑에서 튀어나온 그림자들이 순식간에 하나의 족쇄가 되어 강혁의 발을 묶었다.
하지만.
“....?”
“뭐해? 계속 해.”
자신의 발이 묶였음에도 불구하고 강혁은 태연하게 빈센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격의 시작과 끝은 발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발이 완전히 붙잡혔음에도 빠져나오긴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는 강혁의 모습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이들이 있긴 했다.
‘....마법사?’
바로 마법사란 부류가 그러했다.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마법을 난사하는 이들.
그들은 지금처럼 자신의 발이 묶였다고 해서 당황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공격하려 들어 오는 이들을 향해서 마법 폭격을 날릴 뿐.
하지만 빈센트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사용한 전법일 텐데?’
강혁은 이미 마법을 이용해서 빈센트에게 겨룬 적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결과는 강혁의 대패(大敗).
이유는 간단했다.
마법과 그림자를 그다지 시너지를 발휘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저 조용하고 은밀해질 뿐 공격 자체는 평범하다는 얘기.
즉, 그림자술에 능통하며 암살자인 빈센트 앞에서 조용하고 은밀하기만 한 기술은 결코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미 한 번 실패한 걸 다시 한번 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빈센트는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강혁의 도주는 봉쇄 되었고, 이건 분명히 자신에게 기회였기 때문이다.
‘마나와 재능만 사용한다는 제약이 없었다면 내가 필패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빈센트는 강혁을 상대함에 있어서 단 한 번도 방심한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의 강혁은 그를 넘어서는 강자.
아무리 제약이 있다고 한들 그의 재능의 가짓수가 남다르다는 사실은 이미 며칠 동안의 대련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상황.
‘방심은 없다. 확실하게 끝낸다.’
그렇기에 방심이란 생각을 머리에서 지운 빈센트의 그림자가 강혁을 덮쳤다.
퍼서석-
물론 강혁이 내뿜은 그림자와 맞부딪치며 상쇄되었지만 빈센트는 개의치 않았다.
강혁의 마나량이 자신과 비견되는 만큼 그림자의 상쇄쯤은 예견한 상황.
‘멈추지 않고 바로 가야 한다.’
그림자가 사라졌음에도 놀라긴커녕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오히려 속도를 높혀 순식간에 강혁에게 다가간 빈센트가 단검을 휘둘렀다.
쐐에에엑!
순간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휘둘러지는 단검을 바라보며 강혁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콰드드득!
그와 동시에 빈센트와 강혁의 사이에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벽에 솟아올랐고, 빈센트의 공격 또한 당연하게도 뼈 벽에 가로막혔다.
카가가각-
듣기 싫은 소리가 훈련장에 울려 퍼지고 빈센트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소리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공격이 가로막히고.
-키키키킥!
-케헤헤헥!
서서히 훈련장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언데드들이 빈센트를 짜증나게 한 장본인들이었다.
‘고작....고작 사령술이었습니까?’
암살자인 빈센트는 사령술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약함.
물량을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저 방법이 강함을 추구하는 빈센트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그렇기에 기껏 강혁이 준비한 방법이 사령술이라는 생각에 인상을 찌푸릴 때, 뼈 벽 너머에서 강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짓궂음마저 느껴지는 웃음기에 빈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대체 뭐 때문....이런!’
자신이 무언가 놓친 것이 있었나? 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빈센트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푸화아아악!
언데드들의 발밑에 생겨난 그림자들.
그것들이 언데드들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림자들이 사라진 언데드들이 서 있던 자리에는 시커먼 그림자들을 뒤집어쓴 그림자 병사들이 서 있었다.
“가라.”
뼈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강혁의 목소리와 함께 수십 마리가 넘는 언데드 병사들, 아니 이제는 그림자 병사가 된 것들이 빈센트를 향해 쇄도했다.
“허....제어권도 안 뺏기네?”
당황감에 존대마저 잊은 빈센트가 당황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그림자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언데드들에게 들러 붙어 하나가 된 그림자는 더 상위의 그림자 술자인 빈센트의 제어권 탈취도 통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수십 마리의 그림자 병사들은 빈센트 앞에 무사히 설 수 있었고, 하나 같이 빈센트의 발목을 잡기엔 충분한 이들의 합공 앞에 빈센트의 발이 완벽하게 묶였다.
그리고 그런 빈센트의 앞에 그림자가 깃들어 검게 물든 강혁의 검이 드리워졌다.
“내가 이긴 거지?”
“....참 대단하십니다.”
허탈함마저 맴도는 빈센트의 패배 선언과 함께 강혁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하급 그림자술[LV.9]이 중급 그림자술[LV.1]로 올랐습니다.]
‘....준비는 끝났다.’
하급에 머무르던 그림자술이 중급으로 올랐다는 메시지창을 보는 순간 강혁은 발터 밀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내일 나는 승격 시험을 치루고 세상에 나를 드러낸다, 발터.”
-....그것 참 기다리다 못해 목이 빠질 지경이었다고 친구.
웃음기가 가득 배여 있는 발터 밀란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혁은 철혈 길드가 있는 한국을 바라보며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김승태, 기다려라.’
칠죄와 칠선들을 얻고, 본신의 강함마저 길러 최강의 10인에 필적하거나 그를 넘어서는 순간.
자신과는 다른 무형의 가면을 쓴 채 다른 이들을 능욕하던 승태를 무릎 꿇리겠다고 강혁은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