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42
‘이강혁. 최근 급성장을 거듭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신들께서 제거를 하라는 신탁을 내리시다니 어쩔 수 없지. 이강혁, 넌 오늘 여기서 죽는다.’
템플러 하호준은 어릴 적부터 교단에서 직접 데려와 기른 아이로 살벌한 훈련을 마치고 신에게 선택받아 각성까지 마친 진짜배기 템플러였다.
또한 그와 함께한 일고여덟 명에 달하는 다른 템플러들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함도 성장 배경도 말이다.
교단에서 세뇌에 가까운 가르침을 받고 자란 그들은 신의 명령이라면 대상이 세상에서 가장 독실한 성자라고 할 지라도 일시에 처죽일 수 있는 이들이 되었다.
바로 그런 그들에게 신들은 강혁을 죽이라는 신탁을 내렸다.
같은 한국인이며 한국의 복이라고도 불리는 강혁을 죽이라는 신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준은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물론 악마교 소속의 악마 숭배자들까지 나선 것은 의외였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들 또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숭배하는 악마가 내린 명을 받고 이곳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였으니까.
즉, 평소에는 적대하는 관계였다면 지금은 협력하는 관계인 셈.
실제로 그들에게 명을 내린 신조차도 강혁과 그 주변인을 제외한 어떤 이들도 죽이거나 싸우라고 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마주치기 무섭게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협력 관계의 구축 이후 강혁과 그의 동료들이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곧바로 그들을 습격했다.
만약 강혁의 그림자와 건물 사이에 있는 어둠에서부터 나타난 정체불명의 이들이 그들 앞을 막아서지 않았다면 그들은 성공적으로 습격에 성공했을 터였다.
강혁이 탈 S급 강함을 보여주고 그의 부하 역시 뛰어난 A급 헌터이며 다른 한 명 또한 뛰어난 네크로맨서라고 하지만 그들의 수는 무려 15명이다.
그것도 전원 S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나에 더불어 신성력 혹은 마기를 사용하는 템플러와 악마 숭배자들의 강함은 일반적인 S급들보다도 강력했다.
하지만.
“....너흰 누구냐.”
고작 10명에 달하는 이들.
그들이 자신들의 기감조차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들은 습격을 멈추고 닫았던 입을 열었다.
그리고 상대는 숨길 생각도 없다는 듯이 순순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암조(暗潮)다. 너흰 보스께서 하신 말을 귓등으로 안 처들었나보군. TV도 안 봤다는 변명은 받지 않겠다.”
“....암조. 설마 발터 밀란이 자신의 제자에게 그 정도로 애정을 기울일 줄은 몰랐군.”
암조(暗潮).
헌터 업계에 조금이라도 발을 디디고 있는 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그 누구도 그들의 본래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알려진 신비로운 집단.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다.
아무도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본 이들이 모두 죽었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즉, 저들이 순순히 자신의 정체를 밝힌 데에는 자신들을 모조리 죽이겠다는 대답이나 다름없다는 얘기.
그 사실에 호준을 비롯한 다른 템플러들은 물론이고 본래부터 성격 안 좋기로 유명한 악마 숭배자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네놈의 시체를 갈갈이 찢어 그분께 직접 공양하겠다 빌어먹을 암살자 나부랭이가 감히!”
특히 악마 숭배자 쪽에선 분노에 몸을 맡기고 무리에서 벗어나 암조에게 달려들 정도였다.
템플러들은 명령을 더 우선으로 하지만 악마 숭배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했다.
다만 그런 막무가내 모습조차도 허용될 정도로 그들의 강함 진짜였다.
평범한 S급 헌터들조차 그들의 앞에선 다른 급 낮은 헌터랑 다르지 않았을 정도니까.
하지만.
“막내야.”
“....후우, 이런 건 언제나 제 몫이군요.”
“너 임마 나 때는 말이야 막내면....”
“예예,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10명의 이들 중에서 가장 짬이 딸리는 빈센트가 선배들의 말에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앞으로 걸어나왔고.
귀찮음이 역력한 얼굴로 그가 손을 한 번 휘젓자 그의 손을 따라 주변에 드리운 그림자들이 빈센트의 명령에 따라 악마 숭배자를 덮쳤다.
“이게 무슨....컥!”
“귀찮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었으면 내가 나설 일도 없었잖아? 먼저 가라. 나머지는 곧 보내줄 테니.”
“....크아아악!”
으적! 으적! 으저저적!
그 말을 끝으로 악마 숭배자의 몸을 묶은 그림자가 그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에 울려 퍼지는 섬뜩한 피륙음에 템플러들은 물론이고 악마 숭배자들마저 짜게 식은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저 녀석들까지 제가 처리하라고 하진 않겠죠?”
“인당 1마리 정도씩만 잡으면 될 것 같군.”
“나머진 보스의 제자께서 처리하면 되지 않겠어?”
“가능하시겠습니까?”
저들끼리 대화를 마치고 인당 1명씩 맡기로 결정한 암조의 일원들이 고개를 돌려 강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들끼리 이미 다 정하고 자신에게 답을 묻는 그들의 모습에 강혁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합니다. 이 녀석도 있으니까요.”
텁-
암조의 물음에 알마드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것으로 대답을 마친 강혁은 검을 빼 들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암조가 굳어 있는 템플러들과 악마 숭배자들에게 쇄도하는 순간 적막이 내려앉은 뒷골목이 시끄러워졌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강혁은 최건을 등 뒤로 숨기며 말했다.
“위험하니까 나서지 마라.”
“하....하지만....!”
“괜찮아,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잘 아는 것도 우리 같은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아니었나? 지금은 나서지 말아야 할 때야.”
“....”
꽈아아악....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최건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말아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의 두 눈은 살아있었다.
“지켜보겠습니다. 어떻게 싸우는 지를 제 머릿속에 모조리 새겨 넣겠습니다. 그리고....다음 번에는 어떨 때에도 나설 수 있게 되겠습니다.”
“그래, 그때만 기다리마.”
툭툭-
결연한 얼굴로 그리 대답하는 최건의 어깨를 두들겨 준 뒤, 강혁 또한 자신에게 달려드는 템플러와 악마 숭배자를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강혁의 어깨 너머로 최건은 강혁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위해서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모든 전투 장면을 머릿속에 저장시켜 나갔다.
*
카앙-
‘....역시 도시 괴담 속 주인공 답게 강하긴 강하군.’
-만약 암조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없었다면 당했을 지도 모르겠구나.
‘그건 또 모르지. 한계 초월을 사용해서 반신의 격을 취했다면....’
-멍청한 소리하지 마라. 그랬다가는 네 몸이 먼저 무너져 내렸을 테니까. 되도 않는 자존심 부릴 생각 말고 눈앞에 적에게나 집중해라.
‘....그러지.’
분노의 따끔한 일침에 강혁은 수긍했다.
그의 말마따나 얼마 전에 겪은 한계 초월의 여파로 몸은 건강해졌을지언정 다시 한번 한계 초월로 악마화나 신성화를 할 경우 신체가 붕괴했을 가능성이 무척 컸기 때문이다.
결국 암조가 없었다면 오늘 강혁이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건 사실인 셈.
그리고 눈앞의 템플러와 악마 숭배자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강혁은 시선을 돌려 암조의 전투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저런 강자들이 내 곁에 숨어 있음에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다니 진짜 대단하긴 대단해.’
-확실히 은신 하나만큼은 알아줄 만한 것 같군.
일반적인 S급을 뛰어넘는 강함을 보유한 템플러들과 악마 숭배자들이 1대1로 암조의 상대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걸로 미루어 볼 때, 지금의 자신이라면 암조 전원이 달려들 경우 패배할 가능성이 높을 거라는 결론까지 내린 강혁은 이를 갈았다.
‘....아직도 나는 멀었구나.’
최강의 10인.
10년 동안 공고했던 그 벽에 거의 다 다가왔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그곳에 도달하기란 요원하다는 사실에 강혁은 절망했다.
그리고 상쾌했다.
‘더 강해지겠다. 이번 위기를 발판으로 또 다시 강해져서 다시 한번 최강의 10인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겠어.’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운 상쾌함에 미소를 지으며 강혁은 검을 휘둘렀다.
쾅!
검과 검이 부딪치고 그에 담긴 힘을 이기지 못한 템플러의 몸이 붕 떠서 벽에 처박힘과 동시에.
강혁은 이격을 날렸다.
“....파(破).”
“....!”
울컥-
마기로 몸을 보호하여 충격에 대비했던 것에 무색하게도 마기의 보호를 뚫고 내부를 진탕시키는 강혁의 신성력에 악마 숭배자가 검은 피를 토해냈다.
악마 숭배자인 만큼 짙은 마기로 인해 마족과 비슷한 몸이 된 그에게 신성력은 독이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부에 파고든 신성력을 몰아내기 위해 허겁지겁 몸을 빼는 악마 숭배자를 놓아줄 생각 따위 없는 강혁을 그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빠각-
무쇠와 같이 단단한 다리가 도망가는 악마 숭배자의 종아리를 걷어찼고, 상급 무술의 힘이 담긴 발차기는 그의 종아리를 부숴버렸다.
“....크아아악!”
뼈가 조각나는 고통에 악마 숭배자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지만 거기서 강혁은 멈추지 않았다.
“폭(爆).”
쩌어엉-!
눈앞에서 터진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구(球).
그런 구가 터져나가면서 짙은 신성력의 파도가 주변을 휩쓸었다.
당연하게도 템플러들은 아무런 피해도 없었지만 암조와 악마 숭배자들은 아니었다.
“흠....상처가 치유 되는군.”
“나쁘지 않은데?”
전투 도중에 입은 상처들이 말끔히 치료 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 암조의 조원들.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악마 숭배자들의 모습은 끔찍했다.
“끼에에엑!”
“캬아아악!”
마치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피부가 일그러지고, 녹아내리는 기괴한 모습을 한 악마 숭배자들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물론 강혁의 앞에 있던 이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각막은 녹아내려서 허옇게 변해 있었고, 살갗은 녹아서 그 안에 근육과 뼈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보기만 해도 끔찍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강혁의 검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내렸다.
스걱-
마치 단두대처럼 악마 숭배자의 머리 위로 떨어져내린 검이 그의 머리와 몸을 분리시켰다.
몸과 떨어진 머리가 바닥을 굴러다니는 모습을 끝으로 강혁은 벽에 처박혀서 신음을 흘리는 템플러에게로 다가가며 그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네가 믿는 신들이 지금 나를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너라도 들어라. 지금 가는 너희들 외롭지 않게 교단이든 신들이든 모조리 너희들 곁으로 보내줄게.”
“....!!!”
섬뜩함이 담긴 그의 목소리에 자신들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것도 모른채, 두려움 섞인 눈으로 강혁을 바라보던 템플러의 최후는....
우득-
강혁의 악력에 의해서 목 뼈가 분질러지는 것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강혁이 자신의 몫으로 배정된 템플러와 악마 숭배자를 처리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군.”
“....전 2명이지 않았습니까?”
“뭐, 그건 그거지. 그럼 보고를 위해서 안가로 가야 하는데....같이 가겠나?”
모든 템플러와 악마 숭배자들은 시체가 되어 주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은 채로 같이 가겠냐고 묻는 암조의 조원 중 한 명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스승 겸 친구도 보고 좋겠군요.”
“그럼 먼저 가지. 나머지 애들도 금방 따라올 테니까.”
“그러죠.”
그렇게 암조의 조장이 강혁과 함께 사라지고 남은 이들이 주변 정리를 시작할 때, 멍하니 전투를 바라보던 최건에게 빈센트가 다가왔다.
“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보스의 제자와 꽤 친한 관계라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넌 약하다.”
“....”
정곡을 찌르는 빈센트의 말에 최건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강자존의 세상.
그곳에서 약함은 곧 죄악이며 자신이 따르는 강혁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기도 하니까.
‘나를 형님과 떼어 놓으려고 하려나....’
그렇기에 최건이 하는 생각도 당연했다.
강혁에게 폐가 되지 않게, 족쇄가 되지 않게끔 미리 최건과 강혁을 떼어 놓는 것.
눈앞의 강자, 빈센트는 충분히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수준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빈센트의 말은 최건의 상상을 뛰어넘는 말이었다.
“강해져라. 아까 보니 보스의 제자의 전투는 물론이고 우리의 전투까지도 힐끔힐끔 쳐다보던데. 보는 눈은 있는 것 같으니 그 눈을 따라올 몸만 만들면 되겠어.”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자신들이 도와주겠다는 뉘앙스의 말에 최건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강혁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아까 전에 했던 말을 지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파르르 떨리는 최건의 물음에 빈센트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강이 되게 해주겠다고는 하지 않겠다. 애초에 우리조차 최강은커녕 그 문턱조차 가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품속에 품은 비수 정도는 되게 해주지. 다만 그 과정은 지옥과도 같을 거다. 그래도 괜찮겠나?”
상상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더 힘든 여정이 기다릴 거라는 말 앞에서 최건은 고민 따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이 제게는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마음에 드는군.”
정답에 가까운 훌륭한 대답에 빈센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따라와라. 이제부터 우린 안가로 간다. 그곳에서 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조해주도록 하지.”
“....예!”
자신을 훈련시켜주겠다는 빈센트의 말에 최건은 활짝 미소를 지었고.
‘....드디어 나도 막내 생활을 청산하는 구나!’
막내에서 탈출하게 된 빈센트 또한 속으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