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38
“후우, 머리도 깨질 것 같고 몸도 만신창이군.”
“괜찮으십니까?”
“그래, 좀만 쉬면 되니까 잠시만 옆으로 비켜 있어.”
“그럼 편할 때, 불러주시길.”
“아, 그리고 중국에 퍼뜨린 언데드들 전부 회수해. 괜히 꼬투리 잡히면 안 되니까.”
“명을 받듭니다.”
고개를 조아리며 뒤로 물러서는 아크 리치, 알마드를 바라보며 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너도 진짜 미친놈이다. 어떻게 거기서 저놈을 구슬릴 생각을 해?’
-신과 악마놈들을 쳐 죽이려면 한 명이라도 강자가 필요하다. 저 녀석 정도면 충분하지.
‘방법은 있는 거냐? 말을 들어보니 저 녀석은 신과 악마에게 목숨을 저당 잡혀 있다고 하던데?’
-물론. 다만 나와 인내 녀석이 힘을 합쳐야 한다.
‘할 수 있으면 상관은 없네.’
자신도 없이 공수표를 남발한 건 아닐까 싶어서 걱정했지만 분노의 말을 통해 그에게 방법이 있음을 확인한 강혁은 비명을 내지르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미소를 지었다.
“진짜 이건 사람이 쓸 게 못 되는구나.”
일개 필멸자의 몸으로 반신의 격을 무려 두 번이나 취했으며 그걸로 전투까지 펼쳤다.
그 결과 강혁의 몸은 정말 아작이 났다는 표현이 옳을 정도로 망가진 상황.
다행히 신체가 붕괴되는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추가적인 전투 속행은 무리였다.
그렇기에 자리에 앉아 신성력으로 신체를 치유하기를 수십여 분.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해진 상태에서 강혁은 알마드를 향해 다가갔다.
“네 몸에 씌인 족쇄부터 풀자.”
“....예!”
희열마저 느껴지는 귀화의 일렁임에 강혁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분노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되는데?’
폼은 잡았지만 정작 족쇄를 푸는 방법은 모르는 강혁이었다.
*
-녀석은 악마와 신들이 직접 씌운 족쇄에 갇혀 있다. 일거수일투족의 파악은 물론이고 심할 경우 목숨마저 자신들이 취할 수 있게 되는 거지. 물론 녀석들이 반신급 정도 되는 장기말을 그냥 버리진 않을 테지만 빨리 족쇄를 부숴야 한다.
‘그래서 방법이 뭔데?’
-나의 마기와 인내의 신성력을 통해서 그 족쇄를 지워낼 거다.
‘가능한 거 맞지?’
-물론이다. 내 마기는 녀석의 신과 악마를 향해 분노와 복수심에 힘을 더해줄 것이고 인내의 신성력을 족쇄를 부술 때 발생하는 충격을 막아줄 테니까.
‘그래도 신과 악마의 파편이라고 강하긴 하구나?’
-....파편이라고 하지 마라! 우린 어엿한 하나의 존재니까!
파편이라는 말에 광분하는 분노를 달래며 강혁은 분노가 해준 말들을 그대로 알마드에게 전해주었다.
족쇄를 부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고통이 몸을 잠식할 것이라는 것까지 전부!
그리고 알마드는 뼈만 남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에 수긍했다.
“해주십쇼. 빌어먹을 족쇄를 지울 수만 있다면 죽는 것만 빼고 다 좋습니다.”
신과 악마에 대한 확고한 복수심이 절실하게 느껴졌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시술에 들어갔다.
푸화아악! 파아아앗!
현재 강혁이 끌어다 쓸 수 있는 모든 마기와 신성력이 일시에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300이 넘는 마기와 신성력이 빠져나가자 극심한 탈력감이 찾아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명색이 신과 악마가 만든 족쇄다. 아무리 우리의 격 자체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지만 가진 힘의 총량이 달라. 그러니 네가 가진 모든 걸 박박 긁어도 모자랄 지도 모른다. 애초에 넌 둘 중 하나만 적으면 망가지니 둘 다 전부 쓰는 거다. 알았나?
‘....죽을 것 같으니까 말 걸지 마.’
단 한 번도 마기와 신성력을 바닥까지 써본 적 없던 강혁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가만히 있다간 모든 일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기에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알마드의 이마를 콕! 하고 찔렀다.
“....!!! 크아아악!”
“버텨, 분노의 마기가 족쇄를 부수고 인내의 신성력이 너를 고통에서 자아와 신체를 유지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이마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강혁이 쌓아온 400에 가까운 마기들이 모조리 알마드에게로 흡수되었다.
그것도 칠죄 중 한 명인 분노가 깃든 마기였기에 그가 느끼는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더군다나 그의 영혼에 자리 잡은 족쇄를 부수는 과정에서 영혼마저 타격을 받았기에 그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영혼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고통 속에서 알마드는 이를 악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강혁은 신성력을 알마드에게 밀어넣었다.
치이이익-
“....크으으으.”
“이건 언데드라서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버텨라.”
“알겠....습니다....”
인내의 신성력은 영혼이 파괴되는 고통을 중화시키고 나아가 고통을 버틸 인내를 심어준다.
다만 그래도 신성력은 신성력.
언데드 중에선 최고봉인 아크 리치마저도 신성력에 공격당하는 것도 아니고 몸에 흡수하는 와중에 발생하는 ‘정화’는 막을 수 없었다.
강철보다 단단한 하얀 뼈들이 순식간에 부스러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강혁은 멈추지 않았다.
신성력을 빨아들이면서 그가 약해지더라도 방법이 없었다.
‘죽는 것보단 약해지더라도 살아남는 게 중요하니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무튼 마기와 신성력이 부딪치며 발생하는 충격과 영혼에 걸린 족쇄가 부서지는 충격 등이 더해지며 알마드의 백골에 쩌적- 금마저 갔지만 마기와 신성력의 주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를 수십여 분.
쩡-!
알마드의 전신에서 하얀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
하얀 충격파가 가라앉고 알마드가 있던 자리에는 금발의 사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기도의 주체는 신 따위가 아니었다.
엉금엉금-
바닥을 기느라 로브가 흙먼지에 뒤덮혔지만 알마드는 개의치 않았다.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이끌고 강혁의 발치에 도달한 그가 고개를 조아리며 경배했다.
“제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환영한다.”
짐꾼 1호 최건에 이은 노예 1호 알마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사령술을 배우고 싶으시다고요?”
“응, 안 되나?”
“아뇨,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주인님의 재능이라면 사령술 만이 아니라 그 어떤 금술이라도 가능하시겠죠.”
족쇄가 부서지고 강혁은 당분간 알마드의 동굴에서 생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마드의 거처는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데다가 강혁이 사기를 모조리 흡수하고 동굴의 주인인 알마드가 사기 자체를 꽁꽁 숨겨서 그 어떤 은신처보다도 은밀했다.
평범한 이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헌터조차 찾지 못할 정도.
즉, 알마드에게 새로운 재능을 배우기에는 그 어떤 곳보다 안성맞춤이라는 얘기.
‘이제 밖에 나가면 S급 헌터 승격 시험을 치루고 강해진 내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데 더 강해져도 모자라다.’
더군다나 솔로 플레이를 지양하는 강혁에게 있어서 언데드들을 부리는 사령술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강혁의 말을 듣고난 뒤, 리치가 되기 전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알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강혁이 새로운 재능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고생길도 함께였다.
*
“주인님의 재능이라면 제가 조금 도와드리는 것만으로 사령지체를 얻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사령지체?”
“예, 네크로맨서라면 바라마지 않는 신체죠. 하지만 주인님이라면 상극인 기운이나 신체 등도 무난하게 받아들일 것 같으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면 좋나?”
“좋다마다요. 모든 시체들을 부리는 데에 필요한 정신력 소모가 줄어들며 사기의 소모도 줄어드니까요.”
강혁이 알마드에게 사령술을 배우기 전, 먼저 한 것은 기틀을 닦는 것이었다.
그것도 남들에게는 천고의 기연과도 같은 걸 고작 초석으로 삼아버리는 강혁과 알마드였지만 둘 다 딱히 개의치 않았다.
강혁은 이미 이와 같은 상황을 여러 번 겪었고, 알마드 또한 태어날 때부터 사령지체를 가진 채로 태어난 천재 중의 천재.
그들에게 있어선 사령지체는 그저 기본에 불과했다.
“그럼 시작하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혁의 등 위에 손을 얹은 알마드의 손으로부터 다량의 사기가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사기를 흡수하였습니다. 사기 스탯이 10 올랐습니다.]
[사기를 흡수하였습니다. 사기 스탯이 10 올랐습니다.]
[사기를 흡수하였습니다....]
무려 한 틱 당 10씩 오르는 어마어마한 양의 사기에 강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어진 알마드의 말에 평정을 되찾았다.
“정신이 흐트러지면 안 됩니다. 사기를 전신에 퍼뜨려 피, 뼈, 근육까지 사기를 흡수시키십시오. 그래야 사령지체가 만들어집니다.”
순식간에 200을 돌파해 300을 향해 나아가는 사기 스탯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알마드의 말마따나 강혁은 사기를 신체에 흡수시키는 데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강혁은 성공적으로 사기를 자신의 신체에 녹여내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어진 결과는 강혁은 물론이고 알마드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사기를 전신에 녹여냈습니다. 신체 : 사령지체(死靈肢體)를 획득하셨습니다.]
“오, 사령지체를 얻었네.”
“경축드립니다. 그럼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
“어....?”
사령지체를 얻는 것.
여기까지는 분명 두 사람의 예상 내였지만 그 뒤부턴 아니었다.
[신체 : 강체(强體)가 신체 : 사령지체(死靈肢體)에 흡수됩니다.]
[신체 : 사령강체(死靈强體)를 획득하셨습니다.
[새로운 신체를 획득하여 스탯 : 사기를 100 획득하였습니다.]
본래부터 존재하던 강체가 사령지체와 합쳐지고, 그에 따른 파생 효과를 사기가 무려 100이나 추가되는 기연 중의 기연.
거기까지는 올 마스터 강혁도 천재 중의 천재인 알마드마저도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경축드립니다!!!”
“....얼떨떨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예상치 못한 일이더라도 그 일이 좋은 일이라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세상 사는 이치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동굴에서 오붓하게(?) 교습을 시작했다.
사령지체, 아니 사령강체는 기본 중에 기본에 불과했으니까.
*
드드득-
“이 정도면 적당한가?”
“충분합니다. 듀라한 정도면 어디 가서 네크로맨서라고 밝힐 정도는 되지요.”
일주일.
강혁이 알마드의 동굴에서 머무르며 사령술을 익힌 기간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강혁의 사령술은 좋은 선생을 만나 폭풍 성장을 거듭했고.
그 결과 평범한 네크로맨서라면 평생을 가도 소환하고 다루지 못하는 듀라한을 가뿐하게 소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급 사령술[LV.9]가 중급 사령술[LV.1]로 성장하였습니다.]
‘이제 스탯을 못 얻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군.’
전투 예지를 얻은 뒤부터 하급에서 중급으로 재능 성장으로 스탯을 얻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쉽진 않았다.
스탯 10을 얻는 것보다 전투 예지가 더 좋았으며 어차피 스탯은 지금도 꽤 높다.
그리고 중급에서 상급으로의 성장은 스탯을 얻을 수 있었기에 크게 걱정이 되지도 않았다.
“그럼 이제 슬슬 떠나도 되겠지. 같이 가겠나?”
“....무한한 영광입니다.”
어느 정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드디어 동굴 밖으로 강혁과 알마드가 나서려는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위험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혁과 알마드의 주위로 수십 개의 실드들이 전개되었고, 그 순간.
콰과과과광!
강혁과 알마드가 있던 동굴이 있는 산 전체를 날려버리는 유성우가 떨어져 내렸다.
“흠, 날파리들까지 한 번에 다 죽었나? 시시하군.”
무너져내리는 산의 전경을 바라보며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일주일 만에 중국에 방문한 현자, 루카스 폴른은 귀찮음이 역력한 얼굴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아니.
꿈틀-
떠나려고 했다.
무너진 흙더미가 꿈틀대면서 그 안에서 누군가 튀어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흙더미에서 튀어나오는 이의 모습에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루카스를 새로운 마법을 전개했다.
“....호오, 그걸 맞고 살았....”
튀어나오는 이가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이 아니었다면 그의 손에 맴돌던 수십 개의 상급 마법들이 주변을 강타했을 거다.
“루카스으으으으으!!!”
“....아니, 이강혁? 네가 왜 거기서 나오지?”
강혁이 철혈에 입단한 이후로 몇 년 만에 이루어지는 재회의 순간이었다.
물론 다짜고짜 마법을 처맞은 강혁의 입장에선 이가 바득바득 갈리는 짜증의 순간이기도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