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37
콰과과광!
어둠만이 가득한 동굴 안을 가득 채우는 빛기둥들의 향연에 아크 리치 알마드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수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그가 당황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반신? 저 필멸자가 반신이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일개 필멸자에 불과하던 그에게서 미약하지만 신격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완연한 신격은 아니었고, 반신보다도 살짝 더 쳐지는 격이었지만 신격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신과 악마들이 굳이 나까지 이용해가면서 필멸자를 죽이려고 하는지 이유를 몰랐는데....저런 괴물이라면 이해가 가는군.’
그제야 어지간하면 자신을 움직이려 하지 않던 엉덩이 무거운 이들이 왜 자신을 보냈는지 이해를 한 알마드는 귀화를 일렁이며 강혁을 바라보았다.
마치 지고의 대천사와 같이 8쌍의 성익(聖翼)을 펄럭이며 자신을 내려다보며 단죄를 내리겠다는 그의 모습에 그는 입매를 비틀었다.
‘반신이면 어쨌느냐. 나 또한 신과 악마들에게 저당한 잡힌 몸이라지만 나 또한 반신이다.’
강혁이 일순 반신의 격을 취한 것이 놀랍긴 했으나 두렵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 또한 수천 년의 삶을 살아온 노괴물임과 동시에 반신의 격을 이루한 아크 리치였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강혁의 모습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려와라, 건방진 녀석아.”
“....!”
쿠구구구-
언령.
말에 깃든 힘이 반신의 격을 품고 강혁을 짓눌렀다.
동굴의 천장에 가깝게 떠 있던 강혁을 향해 수천 톤에 가까운 중력이 서서히 강혁은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강혁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을 내저었다.
파아앗-
그와 동시에 강혁을 감싸는 우윳빛의 신성력이 중력을 해소하고 강혁은 여유롭게 지상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알마드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혁이 내려서자마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스태프를 살짝 휘둘렀다.
후웅-
전방을 가르는 스태프의 모습과 함께 강혁은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수십 개의 마법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기초 수준의 마법이 아닌 최소 중급에 달하는 마법들로 이루어진 폭격에 강혁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날개로 자신을 감쌌다.
콰과과광!
처음 강혁이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빛기둥들로 알마드를 강타했을 때와 비슷한 폭음이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폭음이 가라앉고, 자욱하던 먼지구름마저 사라진 곳에는 너덜너덜해진 신성력의 날개로 자신을 감싼 강혁이 웅크린 채로 앉아 있었다.
-괜찮냐?
‘....후우, 버틸만 해. 확실히 신과 악마가 보낸 암살자답네. 아니, 저걸 암살자라고 봐야 하나.’
걸어 다니는 마법 병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능력.
‘저 정도면 루카스랑 비슷하다고 봐야 하나.’
-루카스란 녀석이 얼마나 강한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압도할 정도로 강하진 않을 거다.
‘그건 그렇지.’
현자 루카스 폴른.
마법사로서는 정점이 이른 그이지만 눈앞에 있는 리치를 완전히 압도할 만큼의 실력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는 모르지만 최강의 10인들의 성장이 멈춰버렸다는 걸 생각하면 강혁의 생각은 퍽 옳을 터였다.
-어쩔 수 없군. 비켜라.
‘....?’
최소 루카스 폴른과 동급인 리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강혁이 고민에 빠졌을 때.
그런 강혁의 귀로 비키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켜? 어딜?’
의아한 얼굴로 강혁이 대꾸하자 분노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네 몸에서 비켜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강혁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
‘저 정도면 충분히 상대할만 하군.’
처음 자신을 폭격한 빛기둥들.
그건 충분히 막을만 했다.
언데드라는 성질 때문에 큰 피해를 예상하긴 했지만 힘을 다루는 주체가 너무 애송이였기에 가능한 일.
이미 완연한 반신의 격을 이루어낸 알마드에게 강혁은 이제 막 격을 얻은 어린아이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그런 격조차 불안정해 보였으니 알마드가 콧방귀를 뀌는 것도 당연했다.
추가로 강혁의 현재 상태를 완벽하게 꿰뚫어 본 알마드는 공격보단 방어로 태세를 전환했다.
‘어차피 제 풀에 지칠 놈. 내가 굳이 장단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겠지.’
분에 넘치는 힘.
알마드는 강혁의 현재 상태를 그렇게 평가했다.
고작해야 필멸자가 반신의 격을 이룩했다는 것에 놀라서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만 강혁의 몸은 언제 터져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그걸 본인 또한 잘 알고 조절하겠지만 결국엔 한계가 찾아올 것이라는 게 알마드의 판단이었다.
실제로 그의 판단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넘쳐나는 신성력을 주체하지 못한 강혁은 초월 상태를 해제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엔 반신의 격을 잃은 채로 알마드를 상대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찾아온다.
그걸 알고 있기에 알마드가 실드를 겹겹이 쌓아 방어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였다.
푹-
“....? 뭐냐.”
갑자기 눈을 회까닥 뒤집고는 고개를 푹 숙이는 강혁의 모습에 알마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전투 상황에서 눈을 감은, 아니 정확하게 따지자면 기절하는 그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
‘분명 한계까진 시간이 좀 더 남았을 텐데?’
곧 한계가 찾아오고 알아서 격을 상실할 것이라는 자신의 계산과는 너무나도 다르자 알마드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게 마법사들의 단점이었다.
똑똑한 두뇌를 맹신하고 자신의 계산에서 벗어난 상황이 나타나면 그에 당황을 감추지 못한다.
그것이 바뀐 강혁의 상태를 알마드가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일에 이르렀다.
번득-
그리고 그 사실이 알마드에게 최악으로 작용하기엔 충분했다.
“....기분 나쁜 기운 따윈 필요 없지.”
푸확!
“....뭐냐. 대체 뭘 하려는 거냐!”
갑자기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날개들을 모조리 떼버리고 본래의 필멸자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강혁의 모습에 알마드는 당혹스러웠다.
반신의 격조차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남은 건 적당히 강한 필멸자 한 명뿐.
‘뭐지? 삶을 포기한 것인가? 대체 왜?’
알마드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강혁이 죽음을 택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천재 중의 천재라고 불리던 그조차도 강혁의 판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강혁이 다시금 행동을 개시했다.
“악마화를 선택하겠다.”
신성화와 악마화.
반성반마의 한계 초월에서 두 개의 선택지.
그중에서 강혁은 신성화를 해제하고 악마화를 택한 것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따지자면 악마화를 택한 이는 강혁이 아니라....
“내가 바로 투신이다!”
푸화아아악!
강혁의 몸을 차지한 분노였지만 말이다.
강혁, 아니 분노의 선택과 함께 강혁의 전신에선 아까의 신성력과 비슷한 양의 마기가 뿜어져나왔다.
그리고 떨어졌던 신성력 날개를 복구하듯 8쌍의 마익(魔翼)이 강혁의 등 뒤에 돋아났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분노는 붉게 물든 눈을 번뜩이며 알마드를 바라보며 오만하게 중얼거렸다.
“같은 반신에도 격의 차이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마.”
좀 전까지 유지되던 강혁과 알마드 사이의 관계가 역전이 되는 순간이었다.
*
콰챵! 콰챵! 콰챵!
“....말도 안 된다!”
자신이 전개한 수십 개의 실드가 천천히 파괴되어 나가는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며 알마드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가 전개한 실드는 아까 강혁이 뿜어낸 빛기둥들을 거뜬하게 막아내고도 남을 정도의 단단함을 지녔다.
그러했다.
‘아까’ 강혁이 뿜어낸 ‘빛기둥들’이었다면 그의 실드는 분명 거뜬하게 막아내고도 남았을 터.
하지만 지금 강혁의 공격은 신성력이 깃든 빛기둥들이 아니었다.
“크하하핫! 부수는 맛이 있구나!”
‘다르다. 저건 아까 그 필멸자가 아니다.’
마기가 응축되고 응축되어 하나의 창이 되었다.
강혁은 바로 그 창을 쥐고 휘두르며 알마드가 전개한 실드들을 말 그대로 개박살내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제서야 알마드는 눈치챌 수 있었다.
겉의 껍데기는 좀 전과 같지만 그 내용물은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알마드는 내용물이 바뀌었을 시점의 강혁이 내뱉은 말을 상기해냈다.
‘투신....분명 투신이라고 그랬다. 설마....!’
투신.
신 중에서 저런 신명을 지닌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더불어 전투에 미친 것 같은 모습을 보아할 때, 알마드가 떠올린 신은 단 한 명이었다.
“아레스!”
“....쯧, 짜증나니까 그딴 이름 언급하지 마라.”
아레스.
그리스 신화에서 두 명의 전쟁의 신 중의 한 명이자 전쟁광인 존재.
알마드는 눈앞의 존재를 바로 그 아레스라고 생각했고, 강혁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분노의 반응에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물론.
“짜증나는 이름을 말했으니 넌 더 맞아야겠다.”
분노의 본래 모습을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안 좋았던 과거를 떠올린 분노에 의해서 알마드는 자근자근 짓밟혀야만 했다.
분노가 처음 전투를 시작할 당시에 말했던 ‘반신에도 격의 차이가 있다.’라는 말이 절절하게 이해가 가는 알마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이 반신의 격으로 힘을 휘두르는 것과 반신이 반신의 격을 사용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분노가 아무리 파편에 불과했다곤 하지만 그건 과거의 일.
지금의 분노가 가진 격 자체는 신의 파편이라고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 내가....! 이 알마드가 복수조차 완수하지 못하고 쓰러지는가!’
아크 리치답게 라이프 베슬만 보존하면 다시금 살아날 수 있다지만 눈앞의 존재가 그걸 모를 것 같지 않았다.
애초에 반신급의 기감이라면 동굴에 숨겨진 라이프 베슬 따위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기도 했고.
실드는 생성하는 족족 부서지고 공격은 짙게 둘러진 마기의 갑옷을 뚫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알마드는 모든 자존심을 버렸다.
“살려주십쇼!”
아직 그에게 이뤄야 할 복수가 남아 있었다.
그 복수가 끝나지 않는 한 그는 살고 싶었기에 그는 신과 악마들에게 붙잡힌 후에도 버리지 않았던 자존심을 바로 오늘 버렸다.
“살려주면 넌 내게 뭘 해줄 거지?”
알마드가 항복하는 순간 그의 코앞에 마기의 창이 멈추어졌다.
그리고 서늘한 분노의 목소리가 알마드의 이젠 썩어 문드러져 사라진 고막을 두들겼다.
여기서 무슨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음을 저절로 알게 된 그는 자신이 가장 값비싼 것을 걸었다.
“저. 저를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곁에서 당신을 보필하며 당신을 노리는 모든 적들을 섬멸하겠나이다.”
그리 말하며 머리를 숙여 자신의 이마를 신발코에 가져다대는 알마드의 모습에 강혁, 아니 분노가 호탕하게 웃어젖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하지만 내 적이 누군지는 네가 더 잘 알 텐데?”
“....예, 잘 압니다. 잘 알지요. 제가 직접 그들을 쳐 죽이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죽일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했으니까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절절한 진심과 짙은 분노에 강혁의 몸을 차지한 분노가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내 노예 해라.”
“....감사합니다.”
강혁에게 언데드 노예 1호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최강의 10인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를 더 뛰어넘는 노예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