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36
파아앗-
“....한결 낫군.”
이제 400을 바라보는 신성력 스탯은 과연 대단했다.
데스나이트와의 전투를 통해서 만신창이가 된 강혁의 신체를 말끔하게 고쳤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 별개로 소모된 신성력도 꽤 많았지만 마기와의 균형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한 100 정도는 쓴 것 같은데....확실히 신성력과 마기가 느니 좋긴 좋네.’
거의 4분의 1에 달하는 양이지만 고작 4분의 1이기도 하다.
아직 4분의 3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든든하게 강혁을 받쳐주기에 반성반마의 패널티는 강혁을 압박하진 못했다.
뭐, 애초에 전투 중에 반성반마의 패널티까지 생각하며 싸우는 것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해결책은 분명 존재했다.
[한계 초월]
재능 혹은 신체를 한 단계 초월시킵니다.
ON/OFF.
* 주의! 너무 장시간 초월 상태를 유지할 경우 신체가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이거라면 반성반마의 패널티를 완화시킬 수 있겠지. 아니, 완화 수준이 아니라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다.’
전투 예지를 얻었을 당시 진화한 한계 돌파의 새로운 모습인 한계 초월.
한계 돌파 때와는 달리 재능은 물론이고 신체에도 사용할 수 있으며 온오프 계열로 바뀌어 언제든, 얼마든 초월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주의 사항에 적혀 있듯 오래 유지할 시, 신체가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는 문구 때문에 여태까지는 딱히 사용하진 않은 특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부턴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다.’
물론 사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는 으슥한 산어귀에 숨어져 있는 동굴 앞에 서 있는 강혁은 더 이상 한계 초월을 방치할 수 없었다.
언노운급으로 추정되는 괴물이 이 동굴 안에 있고, 그자를 잡기 위해서 힘을 숨기긴커녕 바닥까지 박박 긁어내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강혁은 눈앞에 떠오른 한계 초월의 설명창을 지워내곤 동굴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그어어어....
-크아아악!
퍼석- 퍼석! 퍼서서석-!
동굴 안은 과연 리치와 데스나이트를 부리는 이가 기거하는 만큼 언데드로 가득했다.
물론 데스나이트나 리치급의 존재는 없었지만 만약 일반 헌터가 왔다면 파도처럼 쏟아지는 언데드들 앞에 잡아먹혔으리라.
다만 강혁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주먹을 한 번 내지를 때마다 스켈레톤은 뼛가루만 남긴 채, 박살이 났으며.
검을 한 번 휘두르며 좀비의 상체와 하체가 단박에 분리가 되었다.
전투 예지는커녕 육감조차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강혁은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것처럼 편한 발걸음으로 동굴 내부를 활보했다.
그렇지만 그와 반대로 얼굴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찡그려진 상태였다.
“....지독하군.”
-내게는 향긋하다만.
“누가 죄악 중 하나 아니랄까 봐.”
동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죽음의 기운.
평범한 이라면 이곳에서 숨만 쉬어도 죽을 정도로 지독하고 짙은 죽음의 기운이 동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혁조차 자신의 몸을 파고들려는 죽음의 기운들을 마나로 태워버리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태우기만 해서는 끝이 없다는 걸 깨달은 강혁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 내가 흡수할 수도 있나?”
-....미친놈.
발상의 전환.
굳이 동굴 안을 가득 채우는 사기(死氣)를 태우는 것보다 그걸 흡수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혁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분노의 핀잔에도 강혁은 한 번쯤 시도해 볼만 하다는 생각과 함께 검을 휘두르며 사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사기 또한 어찌 보면 독과 비슷한 면도 있었고, 무엇보다 동굴 내부의 사기를 넘어서는 신성력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일.
그리고 검을 휘두르며 한참 동안 사기 흡수에 열을 올리던 강혁은 동굴의 끝자락에 도착할 때쯤 성과를 얻었다.
[사기(死氣)를 흡수하여 몸에 정착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지금부터 사기(死氣)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스탯 : 사기(死氣)가 생성되었습니다.]
“....오.”
-진짜 넌 미친놈이다. 알지?
“칭찬 고맙다.”
고작해야 10에 불과한 적은 양이었지만 강혁은 개의치 않았다.
일단 얻긴 했으니 앞으로 재능을 성장시키면 사기 또한 함께 성장할 것이고 무엇보다....
[사기를 흡수하였습니다. 사기 스탯이 1 올랐습니다.]
[사기를 흡수하였습니다. 사기 스탯이 1 올랐습니다.]
[사기를....]
동굴 안에 가득한 사기는 가만히 숨만 쉬어도 차곡차곡 강혁의 몸 속으로 빨려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혁은 동굴 끝에 존재하는 거대한 뼈로 만들어진 문을 앞에 두고 사기 파밍을 시작했다.
“아, 여기가 노다지네. 노다지.”
문 너머에서 강혁을 기다리는 아크 리치가 들었다면 문을 부수고 바깥으로 뛰쳐나와도 이상하지 않았을 광경이 펼쳐졌다.
*
“꺼억.”
-내 생각에 이 세상에 너만큼 미친 종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거, 듣는 사람 부끄럽게 왜 자꾸 칭찬을 하고 그래.”
-....미친놈.
자신에게 낯부끄러운 칭찬(?)을 건네는 분노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강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미 바다와 같던 언데드들은 모두 처치했고, 동굴 내부에 있는 사기 또한 남김없이 흡수한 상황.
덕분에 강혁은 정말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경지에 이르렀다.
[이강혁]
재능 : [올 마스터]
신체 : [반성반마(半聖半魔)] [강체(强體)]
특성 : [한계 초월] [성자] [분노] [인내] [청출어람] [불완전한 만독불침] [불굴]
세부 재능 : 전투 예지[LV.MAX] 상급 독기[LV.3] 상급 무술[LV.4] 상급 몬스터 지식[LV.1] 중급 대장일[LV.4] 중급 무두질[LV.3] 중급 은신[LV.3]
[근력] : 282 [체력] : 278 [민첩] : 280 [지력] : 247 [마나] : 280 [신성력] : 370 [마기] : 370 [사기] : 108
“....크, 벌써 108이라니 앞으로가 기대가 되네.”
처음 얻었을 때만 하더라도 10에 불과했던 사기 스탯은 어느새 100을 돌파한 지 오래였다.
그 사실에 강혁은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사기를 사용해보았다.
푸스스스-
손바닥 위에 생겨난 잿빛과 검은빛을 뒤섞은 듯한 기운.
사기가 강혁의 손 위에 둥그렇게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수박만한 크기의 사기의 구를 동굴 외벽을 향해 강혁은 툭- 하고 던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리 평범하지 않았다.
푸쉬시식-
“....좋은데?”
닿은 곳을 부식시키는 사기의 구는 이윽고 수십 미터 정도를 더 녹이고 나서야 사라졌다.
참 만족스러운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 강혁은 거대한 뼈로 만들어진 문을 천천히 밀기 시작했다.
“이 정도라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이 문 너머에 있는 놈이 어떤 녀석인지도 모르니까.
강혁은 기대를, 분노는 우려를 표했다.
분명 강혁은 강했다.
한계 초월과 전투 예지라는 조커와 사기라는 새로운 스탯을 얻으며 적의 홈그라운드에 완벽하게 적응까지 해냈으니까.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강혁의 적은 언제나 강했다.
블랙 오크, 리치, 데스나이트 등.
당시의 강혁보다 강했던 존재들을 상대로 강혁은 언제나 한계의 한계까지 자신의 것들을 끌어다 썼다.
문 너머에 있을 존재는 강혁이 여태까지 만난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강력할지도 모르고.
그걸 잘 알고 있음에도 강혁은 문을 미는 걸 멈추지 않았다.
문 너머의 존재를 죽이지 않으며 자신이 죽을지도 몰라서? 아니었다.
자신을 노리려고 했다는 사실이 괘씸해서? 그것 또한 아니었다.
그저 강혁은 지금 이 순간이 즐거웠다.
“강해지고, 강해진 만큼 더 강해진 적과 싸워서 또 다시 강해진다. 이것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어?”
-....
이젠 할 말조차 없는지 입을 닫아버린 분노를 뒤로한 채, 강혁은 뼈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와 동시에.
푸화아아악!
“드디어 왔구나. 어리석은 자여.”
그 안에서 짙은 마기와 사기가 칠판을 벅벅 긁는 듯한 소리와 함께 파도처럼 쏟아져나왔다.
*
치이이익-
동굴 내부에 있던 사기와는 그 질과 양이 비교조차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양의 사기에 강혁이 입은 가죽 갑옷이 빠르게 부식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갑옷은 부식되어도 강혁의 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이었다.
추가로 사기를 갑옷에 두르는 것으로 갑옷의 부식 또한 막은 강혁은 꼿꼿하게 서서 마기와 사기의 파도를 막아냈다.
애초에 마기량에 자신이 있는 강혁이었기에 마기는 사기에 비하면 더 손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신성력이라는 상극의 기운 또한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
그 모습에 강혁을 바라보는 던전 보스, 아크 리치의 귀화가 거세게 일렁였다.
일개 인간에 불과한 진혁이 가지고 있는 기운들은 반신급에 가까운 그조차도 불가능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크 리치에 도달하고 나서야 사기와 마기를 함께 지닐 수 있었건만 일개 필멸자가 마기에 신성력도 모자라 마나와 사기까지 지녔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며 수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아크 리치인 그조차도 본 적이 없는 존재였다.
물론 수천 년 중 대부분을 신과 악마들에게 붙잡혀 노예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는 점이 그의 정보 부족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놀라운 건 놀라운 거였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그는 다시 한번 거세게 귀화를 불태우며 미소를 머금었다.
“죽이기 전, 잠시 연구와 해부 정도는 해도 되겠지.”
신과 악마들은 눈앞의 존재를 죽이라고 했을 뿐, 어떻게 언제 죽이라고까지 말하진 않았다.
반신에 가까운 그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신과 악마에게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아크 리치는 처음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눈앞에 전 차원을 뒤져도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실험체를 연구하고 해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뭘 중얼거리는 거야. 해골바가지. 잔말 말고 덤벼.”
“....네놈 곱게 죽지는 못할 거다.”
강혁의 험한 말을 듣는 순간 귀화의 일렁임은 사그라들고 그 자리엔 짜게 식은 시선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자신을 능멸한 강혁을 곱게 죽지는 못할 거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스태프를 한 번 휘둘렀다.
콰드득- 푸확! 화르륵! 쩌적-!
한 번 스태프를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펼쳐지는 수십 개의 마법들.
그 마법들은 강혁의 팔다리를 묶고, 움직임을 방해하며, 시야를 차단했고, 불길과 얼음들이 강혀을 덮쳤다.
이게 아무런 캐스팅도 없이 단 한 번의 스태프를 휘두른 것만으로 발현된 마법이라는 사실에 강혁은 더 이상 지체할 것도 없다는 듯이 한계 초월을 사용했다.
“한계 초월 사용, 반성반마(半聖半魔).”
[반성반마(半聖半魔)의 초월은 두 개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악마화(惡魔化)와 신성화(神聖化) 중에서 선택하십시오.]
[주의! 신체가 변하는 데에서 오는 고통은 무척 큽니다.]
한계 초월을 사용함과 동시에 떠오른 두 개의 선택지.
그중에서 강혁은 볼 것도 없이 한 가지를 택했다.
“신성화를 택하겠다.”
강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기와 마기로 가득했던 동굴 내부를 막대한 신성력의 파도가 휩쓸기 시작했다.
불안전한 반신 강림의 여파였다.
불안전하다곤 하지만 반신은 반신.
아크 리치인 알마드 페트로비치와 비슷한 격을 이뤄낸 강혁은 등 뒤에 돋아난 8쌍의 신성력 날개를 펄럭이며 손을 뻗었다.
“죽어.”
콰과과과과광!
신벌(神罰).
강혁의 선언과 함께 그 말을 이행하기라도 하듯 아무것도 없는 동굴 안에서 수십 개의 신성력 기둥이 알마드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