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33
쿠르르릉-
“....탑이.”
“....무너진다.”
시련의 탑 바깥에서 클리어하는 이가 나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무너져내리는 탑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크아아악!
-떠....떨어진다!
꽤 높은 10~20층 대에서 추락하는 헌터들과 입구에서 튕겨져 나오는 헌터들.
그들의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기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클리어한 건가?”
“가면의 존재가 정말로 탑을 클리어했다고?”
니아 아리엘이 클리어를 공언한 이가 탑을 클리어했음을 말이다.
실제로 떨어지거나 튕겨져 나오는 이들 중에서 가면의 존재의 모습을 포착되지 않았다.
헌터들이 자신이 클리어하던 층수에 머무르고 있던 걸 생각하면 탑을 클리어한 가면의 존재는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부터 떨어질 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기자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고.
터벅터벅- 쿠르르릉!
가면의 존재는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흙먼지가 가득 묻은 채로 입구에서 걸어나왔다.
그가 빠져나오기 무섭게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탑의 모습은 가면의 존재를 돋보이게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빠져나온 본인은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무튼 하늘에서 내려올 거라는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기자들은 앞다투어 달려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인터뷰를 조금이라도 한다면 특종은 확정이기에.
그들이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탑 하나 뿐인 외딴 섬에 머무른 이유는 단 하나.
탑을 클리어 한 이를 만나고 그에 관한 인터뷰를 따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 한 달의 결실이 코앞에 있는데 그걸 포기할 이들은 없었다.
실제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가면의 존재의 상태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그들은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탑은 정말 클리어하신 겁니까?”
“탑의 정상에는 뭐가 있었습니까?”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 탑에서 얻은 걸 보여주시죠!”
개중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경우 없는 질문들이 있었지만 가면의 존재는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다 이내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탑은 내가 클리어했다.”
“....!!!”
짧지만 강렬한 한 마디에 기자들은 질문을 던지는 것도 잊은 채로 연신 플래쉬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전 세계 헤드라인을 수놓을 제목과 사진이 정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단독은 아니었다.
“뭐? 중국?”
“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탑을 클리어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아니, 잠깐만 중국 수도 한복판에 폭발형 던전?”
“그것도 S급 이상이라고?”
한 마디 내뱉기 무섭게 이 자리에 모인 기자들의 전화가 불이 난 것처럼 울려대었고.
그들의 전화 내용을 들은 가면의 존재, 강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자신이 탑에서 나오기 무섭게 중국에서 S급 이상의 폭발형 던전이 터져나갔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기 때문이다.
‘....설마 벌써? 내가 인내를 얻은지 얼마나 됐다고?’
탑의 정상에서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십여 분.
그 사이에 자신을 노리는 이들이 중국에 폭탄을 떨구었다는 사실이 강혁은 놀라웠다.
하지만 이어진 분노의 핀잔에 강혁은 이해할 수 있었다.
-너를 노리는 상대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
신과 악마.
현재 강혁을 찢어죽이고 분노와 인내를 다시금 봉인하기 위해 혈안이 된 이들이다.
그들이 가진 힘과 명성 등은 일개 헌터가 감당하는 건 불가능.
인류의 최정점에 선 최강의 10인보다 일개 신 한 명의 명성이나 힘이 더 강력한 걸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물론.
‘상위 3인쯤 되면 정말 신을 노려봄직 하겠지만....나머지는 힘들겠지?’
모두가 신에게 쳐지는 건 아니였다.
검성, 현자, 무신.
어딘가 하나에 정점에 이른 세 사람은 어쩌면 신조차 능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다만 그들조차 수십이 넘는 신들의 관심을 받고도 살아남기를 힘들 테지만.
아무튼 중국에 일어난 던전이 자신을 겨냥한 신들의 사냥 방식임을 분노를 통해서 알았지만 강혁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중국인데 뭐.’
자신의 주 활동지는 한국.
더불어 중국에는 앞서 말한 최강의 10인 중 상위 3인인 중 한 명인 ‘검성’이 있는 곳이다.
뭐, 워낙에 독불장군이기도 하고 위치 파악에 힘들어서 모셔오는 게 힘들다 뿐이지 그라면 S급 폭발형 던전 따위는 순식간에 처리할 게 분명했다.
‘신들이 건드린 만큼 일반적인 S급 던전보다는 더 급이 높겠지만....그래도 검성이 도사리는 중국이면 상관할 바 아니지.’
검성이 잘 막아주리라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 강혁에게 분노의 호통이 떨어졌다.
-멍청한! 신들이 너에 대해 알고서도 중국이라는 나라를 택한 것에는 분명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그들을 무시하지 마라. 그들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으며 멍청하지만 그에 합당한 무력을 지니고 있고, 개중에는 무력보다 뛰어난 지식을 지닌 이들이 존재하니까.
‘....그건 그렇네. 하지만 내 말도 맞잖아? 내 주 활동 무대는 한국이고 중국은 옆 나라에 불과해. 그들의 선택은 분명 틀렸을 거야.’
-그건 지켜보면 알겠지.
퉁명스레 대답하는 분노의 모습에도 강혁의 생각은 굳건했다.
“뭐? 언데드 몬스터들 다수 등장?”
“데스나이트에 리치까지 존재한다고? 대체 던전 보스가 누군데!”
“그건 더 이상 S급이 아니야. S+급? 대체 뭐라고 불러야하지?”
“....!!!”
저 말들을 듣기 전까진 말이다.
전화기와 씨름하던 이들의 입에서 탄식과 함께 터져 나온 말에 강혁의 생각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언데드.
몬스터들의 한 종류이자 죽음을 몰고 다니는 그들의 존재를 듣는 순간 강혁은 신과 악마가 왜 하필 중국을 골랐는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굳이 더 가까운 일본을 두고 하필 중국이었는 지를 말이다.
‘인구수....’
-거봐라. 내 말이 맞지?
‘이거 완전 외통수에 사면초가인데?’
외통수.
도망칠 곳이 없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강혁의 얼굴에 초조함이 번져나갔다.
언데드의 무서운 점은 전염성에 있다.
좀비와 스켈레톤 그리고 각종 유령형 몬스터들까지.
그들은 사람의 영혼과 시체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던전 내에서는 크게 위험하지 않지만 만약 그들이 던전 밖으로 나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 말이 달라진다.
거기에 하필이면 어마어마한 인구수를 자랑하는 중국의 수도 한복판에 언데드들이 풀려났다?
그것도 일반 헌터로서는 대처하기도 힘든 데스나이트와 리치들과 함께?
‘....X됐다.’
슬슬 상황이 제대로 꼬여가고 있음을 느낀 강혁은 식은땀을 흘렸다.
중국은 한국과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중국에서부터 머릿수를 불린 죽음의 군대가 북한을 타고 남한으로 넘어오게 되면 그땐 정말 막을 수가 없을 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데스나이트와 리치가 여러 기 등장했다는 걸로 보아 평소라면 보스급인 녀석들보다 상위의 존재가 보스로 있다는 얘기.
‘....최강의 10인급이 나서야 할 수도 있겠는데.’
앞서 기자가 말했던 것마냥 S급이 아닌 S+ 혹은 그걸 넘어선 무언가라고 봐도 무방했다.
어쩌면 격변 초기에 등장했던 등급 따윈 존재하지 않는 언노운(Unknown) 등급일 수도 있었고.
-이제 어쩔 거냐? 중국으로 네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검성이니 뭐니하는 녀석이 처리해주기만을 기다릴 거냐?
‘검성은 분명 중국을 돕긴 할 테지만 찾는데 오래 걸릴 거야. 자기 발전을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쏟기 위해 심산유곡을 돌아다니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말이 좋아 심산유곡이지 전파가 터지지 않는 오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곳은 정말 중국 고위인물들이 보낸 이들이 발로 뛰어가며 그를 찾아야하니 며칠은 소모될 지도 모른다.
언데드란 말을 듣기 전엔 며칠이 지나도 어느 정도 피해 후, 검성이 그것들을 진압하는 모습을 그렸었지만 이젠 아니다.
며칠 사이 리치와 데스나이트를 앞세운 죽음의 군단은 그 수를 불리고 나아가 한국으로 넘어올 터.
그때쯤 되면 중국 쪽도 자기 관할이 아니게 되니 검성의 호출도 취소할 지도 모른다.
‘안 돼. 한국에서는 그만한 대군을 감당할 수가 없어. 무조건 중국 내에서 끝내야 한다.’
리치와 데스나이트. 그리고 그들을 부리는 알 수 없는 던전 보스까지.
중국인들의 시체와 영혼을 발판으로 그 세를 불린 죽음의 군대를 한국이 막아내기란 요원하다.
특히나 자기 보전을 위하는 김승태라면 주요 인원들을 데리고 다른 나라로 도망가버릴 지도 모른다.
‘....결국 답은 하나 뿐인 거네.’
이미 정해져 있는 대답을 두고 너무 오랫동안 고민했다는 사실에 강혁은 한숨과 함께 땅을 박찼다.
“어....어어!”
“가면의 존재님, 중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언데드 사태를 막으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대답해주십시오! 가면의 존재님!”
갑작스레 사라지는 강혁을 잡기 위해서 전화기를 붙잡고 씨름을 하던 기자들이 허겁지겁 강혁을 쫓았지만 이미 강혁은 육지로 향하는 배에 올라탄지 오래였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선장에게 감사를 전하곤 목적지를 말했다.
“중국으로 갑시다.”
말을 하는 강혁의 두 눈을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
-키에에엑!
-그어어어....
스켈레톤과 좀비.
영화에서 많이들 출현하는 그들이 현실로 나타나 도시를 누비며 산 자의 목숨을 취했다.
“헌터! 헌터는 어딨는 거야 대체!”
“젠장, 여기 사람 있어요! 사람 있다고!”
갑작스레 나타난 몬스터들에 시민들은 대피할 시간을 얻지 못했고, 그 결과 시민들은 헌터들에게 버려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던전이 터진 곳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
당연히 고관대작들이나 대기업들의 본사 혹은 헌터 길드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즉, 돈 되고 평소 연이 있던 그들을 위해서 먼저 움직였다는 얘기.
당연하게도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구원을 손길을 뻗는 헌터들은 없었다.
평소 개인주의가 강하며 인맥 등으로 강하게 구축된 중국이기에 벌어진 참사였다.
그 결과 자신들의 사병(헌터)로 회사를 지키던 대기업과 고위 공무원들은 더욱 안전해졌고, 나약한 시민들은 그대로 위험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언데드들은 결코 위험 부담이 높은 곳을 노리지 않았다.
본래라면 산 자를 찾아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졌겠지만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지휘관격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산산자자들들을을 모모두두 죽죽여여라라....
덜덜 떨리는 목소리이지만 그 안에 담긴 죽음의 기운이 퍼져나가며 언데드들을 휘감았다.
평범한 언데드들이 데스나이트의 힘을 받아 검은 사기(死氣) 휘감아 강해졌다.
그리고 강해진 몸을 이끌고 언데드들은 베이징 곳곳을 누비며 산 자들을 공격했다.
당연하게도 강한 기운이 있는 곳을 노리지 않았고, 철저하게 약자들을 노리는 방식이었다.
자신들의 세를 불리기 위해 최적화된 모습으로 베이징 곳곳을 휘젓고 다니는 건 비단 데스나이트만이 아니었다.
-두려움에 떨어라! 산 자들이여! 파이어 스톰!
화르르륵! 콰앙!
해골 스태프를 휘두르며 온갖 마법들을 쏟아내는 리치 또한 함께였다.
본래라면 S급 던전에서 보스로서 위용을 떨쳤을 그가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베이징 한복판을 휩쓸고 다녔다.
그와 함께 해골 스태프에서 뻗어져나간 불의 폭풍이 시민들을 덮쳤다.
C~B급 정도 되는 헌터조차 정통으로 맞으면 큰 피해 혹은 죽음을 면치 못할 정도로 강력한 마법.
일반 시민들은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인 마법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닥쳐오는 죽음의 불꽃을 바라보며 시민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고도 수십 초가 지났건만 전신을 불태우는 뜨거움이 느껴지지 않자 시민들은 의아해하며 눈을 떴고.
그 자리엔.
푸화아아악-
“모두 피하세요. 여긴 제가 맡습니다.”
“....이강혁?”
등에 검은 마기와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날개로 불의 폭풍을 막아낸 강혁이 검을 든 채, 꼿꼿하게 서 있었다.
마기의 날개와 신성력의 날개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악마 혹은 신처럼 느껴지게 하는 그의 모습에 시민들은 강혁에게 감사와 경외 등을 보내며 안전한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 시민들의 모습을 한 번 힐끗 바라본 강혁이 손잡이를 꽈악 쥐며 입매를 비틀었다.
“해골바가지. 네 주인은 어디에 있지?”
-....네놈. 그 분께서 말씀하신 죽여야 할 자로구나.
강혁의 등 뒤에 돋아난 마기와 신성력의 날개를 본 순간 리치가 붉은 귀화를 일렁이며 해골 스태프를 강혁에게 겨누었다.
리치답게 순식간에 마법을 캐스팅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강혁 또한 꼿꼿하게 세운 몸을 앞으로 비스듬하게 숙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섬(閃)”
중얼거림이 끝남과 동시에 베이징 한복판에서 검은빛과 흰빛이 뒤섞인 뇌광(雷光)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