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28
-고깃값 289,000원입니다. 형님.
“아쉽군....이 아니라 보내줘야겠네. 돈도 제대로 못주는데 이거라도 잘 챙겨줘야지. 인내의 던전이라는 말에 너무 정신이 회까닥 돌아버렸나.”
-말 없었으면 안 줬을 거잖나.
“....너 내 몸에서 나가!”
딴지를 거는 분노에게 가볍게 장난(?)을 던진 강혁은 자신의 집 앞에서 내렸다.
챙겨야 할 물건들만 빠르게 챙겨서 곧바로 태평양으로 향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 앞에 내린 순간 강혁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강혁씨! 이번에 태평양에 생긴 시련의 탑에 도전하실 생각 있으십니까?”
“만약 있으시다면 클리어하실 수 있으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뭔놈의 기자들이 이리 많아?’
자신의 집 앞에서 대기라도 타고 있던 건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이미는 기자들의 모습은 강혁이 아니라 그 누구를 데려와도 비슷한 반응일 터였다.
그들이 강혁에게 바라는 건 단 하나.
‘시련의 탑이라....인내의 던전을 그런 식으로 부른다고 했었지? 반응이 뜨겁긴 하네.’
오면서 찾아본 결과 시련의 탑에 도전 중인 헌터 중에서 최강의 10인은 무신 니아 아리엘 한 명 뿐.
추가로 한국은 한수연과 김승태 덕분에 헌터 강국이다, 세계 1위 길드 보유국.
이런 식의 거창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둘을 제외하면 뛰어난 인재는 많지 않다.
피라미드로 따지자면 최상위는 튼튼하고 단단한데 중간이 없는 느낌.
그렇기에 기자들은 최근 한국에서 막강한 유명세를 떨치는 강혁에게 집중했다.
‘이강혁이라면 뭐가 다르지 않을까?’
‘탑에선 신체나 등급 같은 건 없이 오로지 재능만 따지잖아. 그럼 이강혁이라면....?!’
시련의 탑에서 각종 제한이 걸리고 오로지 헌터 개인의 기량만을 평가하는 건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즉, F급이든 A급이든 최강의 10인이든 자신의 능력 하나만을 믿고 등반을 해야한다는 얘기.
그래서일까?
아직은 A급에 불과한 강혁에게 대한민국이 거는 기대는 엄청났다.
기자는 물론이고 정부에서 보낸 관계자마저 강혁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강혁에게 그들이 원하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전 탑 안 오를 겁니다.”
분명 인내의 던전, 시련의 탑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위해서 집으로 왔건만 강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반대되는 말이었다.
굳이 기자들과 관계자들마저 속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요즘 너무 유명해졌어. 이걸 조절할 필요가 있다.’
발터 밀란의 예상치도 못했던 제자 선언.
그것 때문에 최근 강혁에 대한 인지도가 폭증한 상태다.
솔직한 말로 현재 강혁에게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집중한 이유가 여태까지의 업적 때문이 아니라 발터 밀란의 제자라는 타이틀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안 그래도 활활 타오르는 마당에 시련의 탑에 관해서 장작을 넣어줄 필요는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강혁은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답변을 했다.
물론 그저 ‘안 간다.’라고 하면 의심하는 이들도 있을 거고 욕하는 이들도 있을 터.
그렇기에 강혁은 장작 하나 정도는 던져주었다.
“대신 다음번에는 A급 던전에서 S급 승급 시험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지금 그 말씀은 S급 승급 시험에 자신이 있다는 걸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이강혁 헌터! 다음은 대체 언젭니까!”
“아, 그리고 제 팬임을 자청하는 분들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하트 붙어있는 게 진짜랍니다. 저도 모르던 팬카펜데 팬카페 회장이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사랑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최건이 회장직을 맡고있는 ♥이강혁 팬클럽♥의 홍보까지 끝낸 강혁은 자신의 집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날 밤,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 위를 검은 뿔 가면을 쓴 검은 제복 차림의 이가 빠르게 주파하기 시작했다.
*
부오오옹-
시련의 탑이 나타난 이후로 전 세계의 항구는 호황을 맞았다.
물론 어업 등 때문이 아니라 태평양에 위치한 시련의 탑이 존재하는 섬이 있는 곳까지 헌터들을 이동시키는 것이 주된 수입이었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헌터는 길드 소속이고 길드 소속에 꽤 등급이 있는(C 이상) 헌터들은 돈을 잘 번다.
프리랜서는 A급이든 S급이든 빈곤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
덕분에 그들은 시련의 탑까지 향하는 며칠 간의 항해에 큰돈을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가면 따블, 따따블까지 부르는 머니 러쉬마저 이어질 정도.
하지만 강혁은 달랐다.
‘천천히 가도 상관은 없지.’
시련의 탑이라고 불리는 인내의 던전.
분노의 말에 따르면 일반인들이 그곳을 클리어하는 일은 요원할 것이라고 답했다.
칠죄와 칠선.
그들이 있는 던전 자체만 하더라도 녹록치 않으며 인정을 받지 못하면 탑을 전부 올라도 소용이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걱정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니아 아리엘. 그 녀석은 왜 또 탑을 오른다고 설쳐가지고....’
현재 탑을 오르는 이들 중에서 가장 높은 층까지 오른 이가 바로 무신 니아 아리엘인 터였다.
그녀라면 신체가 얼마나 제약을 받든 간에 등반을 멈추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아니, 오히려 오랜만에 재밌는 장난감이 나타났다고 즐거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강혁의 생각대로 탑을 오르는 니아 아리엘의 원동력이 되는 감정도 즐거움이었으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그런 니아 아리엘을 제외하면 탑을 클리어조차 할 이가 없다는 것이 강혁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내가 깬다.’
이미 강혁 본인은 특성 : 인내를 지니고 있었으며 인내와도 가계약을 한 상황.
어떤 역경과 고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들 확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 한 강혁은 포기하지 않을 터.
‘니아보다 느려도 상관 없다. 결국 웃는 건 내가 될 테니까.’
어차피 니아 아리엘은 탑 최상층에 있을 인내에 관심조차 없을 게 분명했다.
그저 자신을 재밌게 만든 탑 내의 설치물, 구조물들과 같은 게 더 없냐고 따지지 않으며 다행일 터.
그리고 강혁이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미소를 지을 때쯤.
“도착했습니다, 손님.”
“....대갑니다.”
강혁은 시련의 탑이 있는 섬에 도착했다.
섬에 도착한 순간 강혁은 며칠 동안 자신을 시련의 탑까지 데려다준 선장에게 배값을 치루곤 배에서 내렸다.
배에서 내려 섬에 발을 들인 강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 없이 많은 헌터들과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이들과 마지막으로....
“크긴 크군.”
-칠선이라는 놈들은 허영되기 그지 없단 말이지. 나를 봐라. 간결하고 필요한 것만 딱!
“그런 녀석이 다른 일반인들까지 휘말리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네 녀석이 들어왔으니까 된 거다.
자신의 핀잔에 툴툴대는 분노를 무시한 채, 강혁은 시련의 탑의 입구를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십, 수백 쌍의 시선을 느끼면서 시련의 탑 입구에 도착한 강혁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탑 안으로 입장했다.
섬에 발을 들이고 나서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강혁을 지켜보던 이들마저 강혁이 곧바로 탑에 입장할 줄은 몰랐는지 강혁이 사라지고 나서 몇 분이 지난 뒤에야 놀람을 금치 못한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시련의 탑에 가면의 존재 떴다!]
[와, 포스 장난 아닌데....]
[최소 S급이라는 거지?]
[무신에 가면의 존재까지. 둘 중에 누가 탑을 클리어할까?]
[난 무신에 건다. 솔직히 짬밥이 있지. 몇 개월 전에 나타난 애가 무신을 제친다고? 말도 안 돼.]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무신은 이미 며칠 전부터 탑을 등반했어. 이미 20층을 넘겼다는 말마저 들리는데 가면의 존재가 상대나 되겠어?]
[20층? 미친 거 아니야? 그 미친 목각 인형들 20마리를 뚫었다고?]
헌터 전용 커뮤니티, 헌터북.
그곳에 가면의 존재에 사진과 함께 올라온 게시글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신 쪽으로 의견이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선발대라는 조건과 최강의 10인이라는 기본기가 단단하다는 점 등.
니아 아리엘에게 유리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며칠 사이에 아직 한 명도 통과하지 못한 20층을 넘었다는 진실인지 모를 유언비어까지 있으니 사람들은 무신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야, 이거나 보고 생각해봐라. ‘영상’]
[....실화냐? 오우거를 일격에?]
[근데 저거 보니까 이강혁이랑 비슷하다는 생각 들지 않아? 헌터 라이센스 시험 당시에 영상에서도 이강혁이 일격에 오우거를 잡았잖아.]
[윗댓 머리 없냐? 홀로그램이랑 실제랑 같아? 너 몇 급이냐? C급이야?]
강남역에서 발생한 폭발형 던전.
그곳에 있던 헌터인지 일반인인지 모를 이가 촬영한 가면의 존재의 오우거 사냥 영상이 올라오면서 상황은 급물살을 탔다.
검은 마기가 응축된 일격이 오우거에게 닿은 것까지만 해도 ‘오오...’하는 수준이었다면.
그 마기가 터져나가며 강남 일대를 마기로 물들이는 모습에선 S급 헌터들마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최강의 10인에게 비비기에는 분명 급이 낮긴 했지만 시련의 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만큼은 ‘혹시나...?’하는 생각을 들게 하기엔 충분한 모습.
결국 그 날 시련의 탑에 모인 헌터들은 탑에 입장은커녕 니아 아리엘과 가면의 존재를 두고 갑론을박을 나누었다.
*
“흠, 인스턴스 던전과 비슷하다는 말이 맞네.”
-괴상하고 괴팍한 성격인 거지. 지들이 뭐라고 남을 시험하려고 드는 건지. 이래서 그놈들은....
“아까도 말했지만 네가 할 말은 아니라니까 그러네.”
-....
삐진 건지 입을 꾸욱 다문 분노를 무시한 채, 강혁은 주위와 자신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탑 내부의 평범한 방안.
적당한 크기에 2층으로 향하는 계단만이 놓인 방이었다.
그리고 강혁의 상태는 들어오기 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랐다.
먼저 얼굴에 쓰고 있던 ‘분노의 마기가 깃든 가면’을 비롯한 장비들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투박한 가죽 갑옷만을 장비하고 있었다.
만약 이곳이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인스턴스 던전 방식이 아니었다면 꽤 난감했을 상황.
아무튼 빠르게 주변과 자신을 확인한 강혁의 손에는 어느새 목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적당하게 단단하며 그립감이 좋은 목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쯤 많은 헌터들에게 지옥을 맛보여준 목각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삐걱- 삐걱-
관절에서부터 들려오는 삐걱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비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목각 인형의 모습을 본다면 그 누구도 웃을 수 없으리라.
빠각-!
“....컥!”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특성 : 인내가 활성화됩니다.]
‘....이런 미친.’
어지간한 상황에선 발동조차 되지 않는 인내가 발동될 만큼의 충격이 강혁의 어깨에 강타했다.
눈으로 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빠른 목각 인형의 공격에 강혁은 이를 악물었다.
“고작해야 목각 인형 주제에 나를 막으려고 들지 마라!”
시작하자마자 얻어맞은 강혁이 이를 갈며 목각 인형에게 덤벼들었고.
그 날 강혁은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목각 인형에게 두들겨 맞았다.
상처만이 가득한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