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올 마스터-27화 (28/178)

나 혼자 올 마스터 #27

스걱-

“그런데 대체 왜 제 팬이 된 겁니까? 몇 개월 전까지의 저는 매력이라곤 하나 없는 인간이었는데.”

오크 군락의 보스 몬스터, 오크 족장까지 처리한 뒤 최건의 도축을 바라보며 강혁이 물었다.

그의 말마따나 강혁 본인조차 각성 전의 자신은 매력이 없다는 걸 알았다.

10년째 각성도 못하고 노력만 하는 미련한 인간.

이게 딱 자신에 대한 평가였고, 사람들은 그것보다 조금, 아니 많이 밑으로 평가했다.

그렇기에 강혁은 궁금했다.

‘시작부터 B급이면 꽤 준수한 재능을 가진 이일 텐데 그런 이가 나의 팬을 자처한다니 이상하잖아?’

최건은 유능했다.

짐꾼이지만 강혁과 전투에서 호흡을 잘 맞추는 건 물론 도축마저 잘했다.

창수와 비교하면 떨어지긴 했지만 보는 것만으로 강혁의 도축 재능이 조금씩 성장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그가 격변이 일어나고 10년 중에서 절반 이상을 자신의 팬으로 살아왔다는 것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당연할 일이었다.

하지만 강혁의 자조어린 질문에 도축을 하던 최건은 피가 묻은 도축용 칼을 붕붕 휘두르며 그 말을 부정했다.

“무슨 말이십니까! 형님은 제 이상이었고 우상이었습니다.”

“....왜죠?”

“처음엔 최강의 10인들 사이에 있는 비각성자라는 말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몇 번 형님을 보다보니 주변에 다른 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니아 아리엘, 한수연과 같은 쟁쟁한 이들이 있는데 굳이 왜 저였습니까?”

“노력하는 모습이 멋졌으니까요.”

“....”

뒷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남들에겐 폄하의 대상이었던 자신의 노력이 누군가에게 멋지고 존경할만한 것이었다는 사실에 강혁은 울컥했다.

‘....나는 몰랐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가 있었구나.’

10년.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수연조차도 자신을 위로할 뿐, 헌터에 어울린다고까지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신을 응원하는 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저도 형님이랑 다르지 않았습니다. 격변으로 고아가 되었고, 그 뒤로 뭐든 악착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운 좋게 몇 년 전에 각성을 했고, B급이 되었고, 또 다시 열심히 헌팅을 하며 A급이 되었습니다.”

“동질감인가.”

“그거랑 비슷하죠. 지금의 제가 있는 건 형님이 있기에 있는 겁니다. 형님을 보며 꿈을 키웠고, 형님의 노력을 보았기에 제가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의 웃음기는 쫙 뺀 상태로 말하는 최건의 모습에 강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강혁을 바라보며 강혁은 마지막 한 마디를 뱉었다.

“축하드립니다. 형님의 10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꼭 이 말을 형님에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말 편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동생이니까요. 저 이제 25살입니다.”

“감사합....아니, 그래, 고맙다.”

“그럼 이제 도축하고 나가죠. 배고픕니다.”

“고기 먹을까?”

“당연히 소주도?”

“좋지.”

짧지만 긴 대화를 마치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

강혁과 최건이 오크 군락에서 건조 식품만 먹으면서 헌팅을 할 때, 바깥은 난리가 나 있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나타난 거대한 탑.]

[건물형 던전의 등장. 역대 최고 크기!]

[헌터 협회장, 제임스 슈트로만 회장. ‘모든 헌터가 나서야 할 때.’]

[묵묵부답인 최강의 10인. 그들의 선택은 과연?]

[F부터 S급까지. 모든 계급의 헌터들이 탑을 향해 배에 오르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나타난 탑 형태의 던전.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들은 첫날부터 대대적으로 공고를 날렸다.

그리고 공고를 본 모든 헌터들이 곧바로 탑을 향해 나아갔다.

건물형 던전의 특징상 언제든 바깥으로 나올 수 있으며 클리어했을 시의 보상도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던전 계의 보물상자라고 할까?

덕분에 전 세계의 헌터의 관심을 끈 탑 던전은 많은 헌터들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비켜라. 우리부터 들어갈 테니까.”

“뭐? 양심 터졌냐? 우리가 먼저 왔거든?”

“우린 ‘칼날’ 소속의 길드원들이다.”

“칼날? 어쩌라고, 우린 ‘강철’ 소속이다. 한 판 뜰까?”

“나쁘지 않군. 이긴 쪽이 먼저 들어가는 걸로 하지.”

그 결과 전 세계의 길드들이 탑으로 헌터들을 보냈고,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벌여온 그들은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여겼다.

사상 최대 크기의 건물형 던전.

만약 그 안에 있는 ‘보물’을 얻을 수 있다면 자신도 혹은 자신의 길드가 단박에 강해지거나 커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건물형 던전에서 아티팩트나, 재능 혹은 특성을 얻고 강해진 이들은 꽤 많았다.

바로 그때였다.

“다들 비켜. 꼬우면 내 아래로 집합하던가.”

“....무신!”

“니아 아리엘까지 왔다고? 빌어먹을!”

나른함이 깃들었지만 그 안에 거부할 수 없는 막대한 힘마저 담겨진 목소리가 탑 앞에 모인 헌터들의 귀를 때렸다.

무신 니아 아리엘.

전 세계의 헌터 중에서 정점이라고 불리는 세 명 중 한 명의 등장에 좌중은 사일런스 마법이라도 당한 것 마냥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그녀가 탑 안으로 성큼 들어가며 한 마디를 남겼다.

“나 나올 때까지 따라 들어오면 엉덩이를 발로 차줄 테니까 들어올 생각하지 마. 여자의 사생활을 엿보면 알지?”

“....”

끄덕-

웃음기가 어린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깃든 흉폭함을 느낀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끝으로 니아 아리엘은 탑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좌중을 휘어잡은 폭군이 모습을 감추고 헌터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빌어먹을 무신.”

“하아, 괜히 왔나?”

“니아 아리엘이 저 탑을 클리어 하는 데에 얼마나 걸릴까?”

“그래도 하루는 잡아야 하지 않을까? S급 던전도 그 정도 걸렸잖아?”

“....그렇게 들으니 진짜 괴물 같네. S급 던전을 어떻게 하루만에 클리어해?”

“그러니까 무신이지.”

“그럼 하루에서 이틀 정도 걸린다는 거네.”

“그렇겠지?”

“혹시 모르니까 하루 이틀은 기다려보자고. 혹시 모르잖아?”

니아 아리엘이 사라지고 반응은 두 개로 갈렸다.

한쪽은 니아 아리엘이 클리어할 테니 돌아가자는 이들이었고, 나머지 한쪽은 그래도 기다려보자. 였다.

물론 두 쪽 모두 니아 아리엘이라는 존재가 가진 힘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클리어에 실패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기다려보겠다는 이들도 여기까지 온 것이 아쉬워서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그들도 설마 니아 아리엘이 클리어 실패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들의 생각은 하루도 아니라 본래 나라로 돌아가는 배가 돌아오는 3시간 째에 깨어졌다.

퉁-

“....이야, 이거 재밌네?”

“니아 아리엘?”

“뭐야, 왜 벌써 나오는 거야?”

“설마 벌써 클리어한 건가?”

“아냐, 니아 아리엘의 상태를 봐. 상처투성인데?”

“....대체 어떤 괴물이 도사리고 있길래 저 괴물을 상처투성이로 만든 거지?”

탑의 입구에서 포탄처럼 튕겨져 나오는 상처투성이의 니아 아리엘의 모습을 본 순간 모든 이들이 ‘실패’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물론 두려움도 들었다.

천하의 니아 아리엘마저 상처투성이로 만든 던전.

본인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으니까.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니아 아리엘은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뱉으면서 말했다.

“뭐해? 이제 너희도 들어가 봐. 이미 한 번 실패한 시점에서 내가 너흴 막을 명분은 사라졌으니까.”

“....그런데 안은 많이 위험합니까?”

입장을 허하는 니아 아리엘의 말에도 헌터들은 바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원초적인 두려움.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그들은 미친 듯이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본 것 중에 몬스터는 없었어. 그리고 내가 튕겨져 나온 거 보면 모르겠어? 죽기 직전까지 몰리면 알아서 탑은 도전자를 쫓아내는 시스템이다.”

“....그 말은?”

“안 죽으니까 가서 마음껏 휘저어 보라고. 뭐, 너희들이 깰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우오오오오!!!”

쿵쿵쿵!

헌터들의 뜀박질 소리에 탑이 생겨난 섬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쿵쿵거렸다.

탑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뛰어가는 마라토너와도 같은 모습에 니아 아리엘 또한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탑에서 빠져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상처투성이였던 그녀의 몸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사실에 니아 아리엘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체 치유 제약에 신체의 강함 따위는 제약되고 인형들의 공격은 변화무쌍하며 맞으면 죽을 것 같이 아프다니. 대체 저긴 뭐하는 곳이야? 뭐, 그래서 더 재미는 있지만.”

S급 헌터쯤 되면 그 치유력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그들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최강의 10인급이면 인간 트롤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치유력을 지녔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저 탑 내에선 그런 치유력에 제약이 걸리고 굳건한 신체 또한 마찬가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살생은 금지 되어 있는 것 같다만 탑을 찾은 도전자들을 시험하려는 듯한 목각 인형들은 무신이라고 불리는 니아 아리엘마저 섬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최강의 10인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그녀마저도 몇 시간만에 리타이어 당했으니 말다하지 않았는가?

물론 그녀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터벅터벅-

텅 비어버린 주위를 한 번 훑어본 뒤, 그녀는 다시금 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강혁, 너라면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이 탑을 클리어할 수 있을까?”

자신이 직접 가르친 제자이자 언젠가 자신을 넘어주길 바라는 유일한 존재.

강혁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니아 아리엘은 다시금 탑 안으로 사라졌다.

*

치이이익-

“마음껏 먹어. 월급은 많이는 못 줘도 밥 하나는 잘 챙겨줄 테니까.”

“헌터 생활이랑 길드 생활하면서 모아둔 돈 많습니다.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형님.”

“그래? 그래도 일단 많이 먹어. 3일 동안 수고했다.”

“예!”

3일.

처음 오크 군락을 토벌했을 당시 24시간을 살짝 넘겼던 것에 비하면 거의 3배 가까이 늘어난 클리어 시간이지만 강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때야 그냥 빠르게 클리어하려고 한 거고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처음에야 자신의 몸 상태 및 자신의 최고 상태를 확인해보기 위해서 미친 듯이 달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돈을 벌려도 들어갔기에 사냥 후, 도축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고 중간중간 휴식도 취해주었다.

최건 또한 A급 헌터라지만 강혁과 비교하면 두어 수는 처진 탓에 휴식은 필수였다.

덕분에 3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강혁은 만족스러웠다.

‘수십 구에 달하는 오크들의 뼈와 가죽. 이거라면 무두질과 대장일 재능을 갈고닦는 데에 충분히 쓸만하겠어.’

B급 몬스터의 가죽과 뼈.

비싼 가격도 가격이지만 무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나는 법.

그렇기에 강혁은 며칠 동안 친해진 최건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말했다.

“돈은 못 주지만 원하는 무구 있으면 말해. 오직 너만을 위한 무구를 만들어 줄 테니까.”

“....설마 최창수 장인께서 직접 제 무구를 만들어주시는 겁니까? 오 하느님 맙소사!”

“....창수 아재도 알아?”

“그걸 제가 모를 리가요. 한국에 있는 S급 이상의 헌터들에게 무구를 만들어주는....”

아는 게 나와서 좋다고 떠벌떠벌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최건의 모습에 강혁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경청했다.

굳이 그가 입을 무구를 만드는 게 창수가 아닌 본인이라는 것을 정정하지도 않은 채로.

‘나중에 네가 정말로 믿을 수 있는 놈이라고 생각하면 너도 다 말해주마.’

어차피 언젠간 밝힐 내용.

자신이 아끼는 주변 지인들에겐 미리미리 알려둘 생각이었다.

그저 거기에 최건 한 사람이 추가되는 것뿐.

아무튼 말하길 좋아하는 최건의 수다를 옅은 미소와 함께 경청할 때, 고깃집에 설치된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나타난 통칭 ‘시련의 탑’에서 많은 헌터들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치유력이 억제되고 신체 또한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과연 이 탑의 최상층엔 어떤 보물이 헌터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며칠 사이에 신기한 게 생겼네.”

뉴스를 듣고난 뒤, 강혁의 생각은 딱 그 정도였다.

격변 이후 저런 구조물 따위는 그저 ‘신기하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누군가의 목소리에 강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내의 던전이로군.

‘....분노?’

-왜, 보고 싶었나?

‘....묻고 싶은 게 참 많은데 안 말해줄 거지?’

-물론이다. 다만 네가 인내의 던전을 클리어하고 인내마저 얻게 된다면....그땐 조금 더 얘기할 수 있겠지.

블랙 오크 처치 이후로 말이 사라진 분노가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분노의 말을 전부 들은 강혁이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최건을 향해 말했다.

“건아.”

“네, 형님.”

“휴가다.”

“... .예? 저희 이제 던전 한 번 돌았는데요?”

“그래, 나 어디 갈 곳이 좀 생겼거든.”

최건에게 퇴사, 아니 휴가 통보(?)를 날린 강혁의 시선은 TV 속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게 치솟은 탑을 향해 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 최건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고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놀다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냐, 다녀오면 연락하마. 미안하지만 고기는 네가 다 먹어라.”

자신이 또 다시 강해질 방법을 눈앞에 둔 강혁의 눈엔 더 이상 고기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강혁의 시선에 최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저었다.

“배 터지게 먹고 가겠습니다.”

“고맙다.”

감사를 끝으로 강혁은 고깃집을 나섰다.

강혁이 떠나고 최건은 홀로 남아 남은 고기를 모조리 구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89,000원입니다.”

“....? 형님이 계산 안 하셨나요?”

“네, 뭐 잃어버리기라도 한 사람마냥 허겁지겁 나가시던데요?”

“....3개월 할부로 해주세요.”

너무 급하게 나선 나머지 저도 모르게 최건에게 고기를 얻어먹게 된 강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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