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26
‘진짜 뭐지?’
자신의 눈앞에서 상기된 얼굴로 콧김마저 내쉬고 있는 사내의 모습에 강혁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강혁 본인도 짐꾼을 자처하는 이가 나타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유는 하나.
‘굳이 저 정도 대우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대부분은 다 길드 소속일 테고.’
대우가 너무나도 안 좋았기 때문이다.
강혁이 말한 조건대로라면 충분히 능력 있는 헌터일 거고 그 정도면 어딜가든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즉, 길드에 가입했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할 만큼 능력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인 셈.
둘 다 강혁에게 짐꾼으로 고용될 일이 없는 이들이었다.
길드에 가입했다면 자신의 길드 동료들과 던전을 돌면 되고 프리랜서라면 굳이 다른 이들 수발이나 들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프리랜서 중에는 강하지만 빈곤한 이들이 많았다.
앞선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발터 밀란 쪽이나 수연 혹은 정 안 되면 니아 아리엘에게까지 손을 벌려볼 생각까지 하던 강혁이었다.
‘한 3일 정도만 두고 본 다음에 부탁을 하려고 했는데 하루도 안 돼서 나타났단 말이지....수상해.’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연락을 보낸 사내가 강혁은 무척이나 의심스러웠다.
발터 밀란의 편지를 통해서 이미 살(殺)이 자신을 노렸다는 건 알고 있다.
눈앞의 사내 또한 그런 암살 집단에서 보낸 살수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결국 눈앞의 사내를 분석하는 데에 실패한 강혁은 한숨과 함께 그를 공방 안으로 들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내 코가 석자니까 어쩔 수 없지.’
현재 강혁은 돈이 없다.
프리랜서들은 던전 클리어 보상금을 타 먹는 걸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던전 구매 비용 등을 생각하면 솔직히 손해다.
추가로 강혁의 경우에는 대장일 재능도 성장시켜야 하니 재료값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지금이야 창수의 공방에 있는 재료들은 조금씩 사용한다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만도 없는 일.
강혁은 돈이 필요했다.
“일단 면접이나 봅시다.”
강혁과 노예 1호, 아니 최건과의 면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우선 제가 말했던 조건들이 맞는지부터 확인해보죠.”
“네!”
“힘 셉니까?”
“셉니다. 저 전사 계열 헌터라서 힘 하나는 믿어주셔도 됩니다.”
“음....짐은 잘 들고요?”
“태생 B급입니다. 곧바로 A급 던전으로 들어갔고, 짐꾼으로 헌터 일을 배웠습니다.”
“....아, 이름이랑 그거 들으니까 생각나네. 몇 년 전에 루키로 이름 날린 분 맞죠?”
“헤헤헤, 형님에게 비할 바는 아닙니다.”
“....형님?”
자신에게 친근함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에 강혁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친해져서 긴장을 풀게 할 생각인가? 뭐지?’
이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뜬금없는 상황.
강혁의 눈치를 살피던 최건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곤 고개를 푹 숙이면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전후 사정도 말씀 안 드렸네요. 전 이런 사람입니다.”
스윽-
A급씩이나 되는 이가 말실수 하나에 쩔쩔매며 무언가를 건네는 모습이 퍽 특이했던지라 강혁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무언가를 받아들었다.
“....명함?”
무언가는 다름 아니라 명함이었다.
명함.
누군가에게 자신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리기에 명함 만큼 좋은 것도 없다.
이름, 전화번호, 일하는 곳 등.
다양한 정보를 명함 한 장으로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혁도 그가 명함을 건네며 자신을 설명할 거라는 건 눈치챘다.
헌터들 또한 자신의 정보가 적힌 명함을 파 가지고 다닌다.
예를 들면 눈앞의 최건과 같은 경우는 A급, 전사, 검술 재능 보유.
이런 식으로 말이다.
중요하면서 불필요한 정보는 쳐낸 일종의 포트폴리오인 셈.
하지만 최건이 건넨 명함은 강혁이 보던 것과는 좀 다른 명함이었다.
[이강혁 팬클럽 회장, 최건]
“....? 팬클럽? 그러고 보니 요즘 내 팬클럽이 생겼다는 얘기는 듣긴 했는데.”
유명하고 잘 나가는 헌터들에겐 팬들이 생기기 마련.
옛날 연예인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가는 팬덤을 이끄는 헌터마저 있을 정도이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강혁 본인은 딱히 말을 꺼내진 않지만 강혁은 꽤 잘생겼다.
다만 여태까지 강혁에게 팬클럽이 없던 이유는 하나.
헌터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헌터로서의 힘 때문에 팬이 생기는 법.
애초에 잘생긴 사람 찾아서 팬질할 이들이었으니 강혁이 아니라 다른 연예인들의 팬질을 하는 게 나았다.
즉, 몇 개월 전의 강혁은 전혀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 법한 이가 아니었다는 얘기.
물론 지금은 아니었지만.
‘전 세계의 사람들로 구성된 팬클럽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녀석이 그 팬클럽의 회장이었을 줄이야.’
수만 명은 가뿐하게 넘기는 어마어마한 팬클럽이 생겼다는 말을 창수에게 들었던 강혁은 경계를 살짝 풀었다.
하지만 강혁의 말에 최건은 오히려 인상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팬클럽이 아닙니다!”
“....? 그럼 뭡니까?”
팬클럽이 팬클럽이 아니라.
이 무슨 홍길동 같은 일이란 말인가?
그 사실에 강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분을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켜 ‘이강혁 팬클럽’을 검색했다.
그리고 떠오른 두 개의 검색어.
[♥이강혁 팬클럽♥]
[이강혁 헌터 팬클럽]
“....뭐가 다른 거지? 하트가 있는 게 최근에 생긴 건가?”
“아뇨, 그게 제가 회장으로 있는 7년 전에 만든 팬클럽입니다.”
“....”
“....저 여자 좋아합니다. 그럼 의미로 한 게 아니에요. 그저 제 뜨거운 팬심을 보여주기 위한 하트인 겁니다!”
당황하며 손을 내젓는 그의 모습에 강혁은 핸드폰을 넘겨받아 ‘♥이강혁 팬클럽♥’을 들어가 봤다.
그리고 몇 분 동안 팬클럽을 둘러본 강혁은 핸드폰을 돌려주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합격.”
“....예? 정말입니까? 면접 더 안 봐도 되는 겁니까?”
“힘이랑 짐 잘 드는 건 증명 됐고, 입 무거운 것만 증명하면 됐는데....카페 내역을 보니까 안 해도 될 것 같네요.”
“가....감사합니다. 제 팬심이 드디어 인정을 받는군요!”
“아니, 뭐....그런 건 아닌데 그런 거라고 칩시다.”
강혁이 최건을 짐꾼으로 받아들인 결정적인 이유인 카페 내역.
그곳은 참으로 참담했다.
가입 회원 단 1명에 만들어진 7년부터 글을 써온 이가 눈앞에 있는 최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거기에 아무도 댓글을 달아주지 않는 팬카페에서 그는 매일 같이 수십 개의 글을 작성했다.
그걸 보는 순간 강혁은 그가 아닌 다른 짐꾼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돈은 많이 못 줍니다.”
“무급이라도 좋습니다! 마음껏 부려먹어주십쇼!”
구인 공고 마지막에 붙여둔 문구를 수정할 생각은 없는 강혁이었다.
A급 헌터를 무급에 가까운 돈으로 짐꾼으로 부려먹게 된 순간이었다.
*
최건과 짐꾼을 계약을 맺고 난 뒤, 며칠 후.
강혁은 그와 함께 던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저희가 들어갈 던전은 B급 던전입니다.”
“....과연, 처음부터 B급이라니 이강혁 헌터답습니다!”
“....하나하나 반응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의 초창기 팬이자 유일한 팬이라고 봐도 무방했을 최건의 신격화에 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는지 강혁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던전 앞에 서서 정비를 하며 강혁이 경고를 날렸다.
“안에서 본 걸 그 어떤 곳에서도 말하면 안 됩니다. 말했다간....죽을 수도 있습니다.”
“각오했습니다. 칼침 맞아도 절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좋네요.”
두 눈에 넘치는 열의를 읽은 강혁은 마음에 든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던전에 입장했다.
‘우선 헌터 이강혁의 모습을 먼저 보인 뒤, 점차 사람의 됨됨이 등을 확인한 뒤에 가면의 존재까지 드러낼지 말지 고민해보면 되겠군.’
던전 내에선 본신의 힘 대부분을 꺼내쓰던 강혁이기에 최건의 존재는 족쇄와도 같았다.
모든 힘을 쓸 수 없게하는 족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혁은 최건을 짐꾼으로 고용했다.
그가 믿을만 할 것 같다는 생각과 짐꾼 없이 던전을 클리어하며 돈을 버는 건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공간 주머니가 몇 배는 더 컸다면 말이 달랐겠지만 어쩔 수 없지.’
최강의 10인급 정도 되는 이들은 어마어마한 양을 보관할 수 있는 아공간 주머니를 들고 다닌다.
그들이 홀로 S급 던전을 돌고 다니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다만 강혁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강혁의 아공간 주머니는 몬스터 수십 마리 분의 시체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용량이 크진 않았으니까.
결국 강혁은 짐꾼의 고용을 택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강혁은 짐꾼의 쓸모를 확인하기 위해 던전 소탕을 시작했다.
“갑시다.”
“예!”
-취이이익!
강혁의 말에 힘차게 대답하는 최건의 목소리와 함께 ‘취익!’하는 오크 특유의 소리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저번에 블랙 오크와 맞닥뜨렸던 오크 군락과 비슷한 형태의 던전.
이미 비슷한 곳을 클리어 해본 곳을 강혁은 시험장으로 택했고, 이내 두 사람은 오크들이 가득한 숲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오 마이 갓!”
“태평양에서 마나 폭주 현상 발생. 던전이 생성되는 것 같습니다.”
“....저건 더 이상 던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헌터 협회의 본부.
그곳에서 희끗한 흰머리가 듬성듬성난 금발의 노인이 마른세수를 하며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가 바로 헌터 협회의 협회장 자리를 맡고 있는 제임스 슈트로만 협회장이었다.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람들에게 그 모습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주의자와 같은 그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간단했다.
태평양 한복판에서 관측된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
던전의 발생 전조 현상과 비슷했지만 처음만 하더라도 그가 직접 올 정도는 아니었다.
끽해야(?) S급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았다.
일주일에서 한 달 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S급 던전은 다섯 개 정도 된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S급 던전 정도는 언제나 있는 일 정도인 셈.
물론 터지면 난리가 나긴 하지만 터지는 데에 시간도 걸리고 최악의 경우엔 최강의 10인에게 도움 요청을 하면 된다.
하지만 태평양에서 관측된 마나는 S급 던전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점점 더 치솟았고, 그 결과 제임스 협회장마저 관측실로 찾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이내 서서히 안정되어가는 마나와 함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제임스 협회장은 주위 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건물형 던전 발생. 역대 최고 크기의 던전으로 그 형태는 탑의 형태에 가까움. 지금부터 태평양에 나타난 탑 형태의 던전을 ‘탑’이라고 지정. 전 세계의 헌터에게 클리어 공고를 날리세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자신의 말을 허겁지겁 받아적는 직원들을 뒤로한 채, 제임스 협회장은 관측실을 빠져나왔다.
주륵-
최근 들어 흘려본 적 없는 식은땀이 등 뒤에서 흐르는 것을 느끼며 그는 이를 앙다물었다.
‘세상이....망하려고 하나 보군.’
한국의 B급 던전에서 나타난 S급에 가까운 마물형 몬스터에 한국 한복판에서 A급 폭발형 던전이 터졌다.
거기에 이번에는 태평양에 전례 없는 크기의 건물형 던전마저 나타났으니 그의 머릿속에 멸망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앞선 두 개는 몰라도 지금 나타난 ‘탑’은 누군가를 위해서 준비된 안배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안배를 받을 존재는 지금 열심히 오크 군락을 헤집고 다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