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25
“그래서 내 제자를 노리는 녀석들은 모두 처리했다고?”
“예, 막내 녀석이 한 녀석을 생포했으니 배후를 모조리 털어낼 수 있을 겁니다.”
“뭐....기대하진 않는다만. 어차피 짐작이 가기도 하고. 아니, 그러고 보니 그놈이 아닐 수도 있나?”
두 사람을 동일시하는 존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자신 앞에 도열한 이들의 보고를 받던 존재.
발터 밀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가면의 존재라니....이강혁 네 녀석은 대체 얼마나 큰 힘을 숨기고 있는 거냐. 성녀가 갇힌 폐쇄형 던전 시기는 네 각성 시기와 비슷하니....후, 나중에 제대로 탈탈 털어봐야겠어.’
강혁이 들었다면 뒷목을 서늘했을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하며 발터 밀란은 손을 내저었다.
“일단 알았으니 다시 호위에 전념해라. 괜히 비싼 마석 값 축내지 말고.”
“....예!”
분명 자기가 보고를 하라고 했건만 마석 값 축내지 말라는 잔소리만 들은 암조였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저게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마석 값이 아깝다고 보고를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서 있는 게 아니라 바닥에서 기고 있었을 터.
그걸 잘 알기에 그들은 깍듯하게 목례를 하곤 발터 밀란의 집무실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 한복판에 마련된 발터 밀란의 집이자 집무실에는 세계 각지의 안가로 이어지는 순간이동 포탈이 마련되어 있다.
한국에서 강혁이 방문했던 술집 또한 그런 안가였다.
당연하게도 여권 등이 필요 없는 포탈의 존재는 분명 국가나 협회에 알려야하고 알리지 않으면 범죄다.
하지만 발터 밀란은 전 세계에 수없이 퍼진 안가 중에서 단 한 군데도 정부나 협회에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그것이 최강의 10인이 가진 초법적인 힘이었기에.
실제로 정부나 협회도 발터 밀란의 안가를 몇 군데 파악하고 그 안에 알려지지 않은 포탈이 있음에도 발터 밀란을 압박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 거지.’
정확하게는 못하는 것이었다.
그를 법적으로 혹은 힘으로 구속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그를 제외하면 단 9명 밖에 없으니까.
물론 재야에 숨은 최강의 10인급 존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숨어 있는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모습을 드러내겠는가?
뭐, 지금 발터 밀란에게 중요한 건 다음 달에 새롭게 충전해야 할 마석 값이 아니었다.
‘가면의 존재는 어차피 이강혁이고 이강혁은 내 제자. 나중에 녀석이 알리기 전까지 가면의 존재를 양지에서 보호해줄 순 없지만....이강혁은 다르지.’
끼익- 끼익-
검정으로 점철된 마룻바닥의 끼익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발터 밀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누군가를 불렀다.
누군간 그 모습을 보고 발터 밀란이 미쳤다고 할지도 몰랐다.
“칼리.”
“예, 보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말이다.
대답과 함께 검은색 천으로 전신을 휘감은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칼리 헥토르.
세간에 아주 잘 알려진 발터 밀란의 왼팔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은 그를 오른팔로 알고 있지만 실제 그의 오른팔은 칼리 헥토르가 아닌 그의 형 칼튼 헥토르였다.
아는 이들이 그리 많진 않은 비밀이었다.
아무튼 발터 밀란이 그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오랜만에 모습을 좀 드러내야겠어.”
“기자 회견을 준비하겠습니다. 손님은 누굴 부를까요?”
여기서 말하는 손님은 기자를 비롯한 발터 밀란의 입맛에 맞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발터 밀란은 최근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던 칼리 헥토르를 놀래켰다.
“내 제자를 건드리지 말라고 아주 제대로 도장을 찍어야겠어.”
“....예?”
칼리 헥토르는 눈앞의 이가 자신이 알던 보스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는 매사에 철저했고, 정을 주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제자가 공격당했다고 잘 나서기 싫어하는 그가 나서는 것까지 감수하게 됐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채, 칼리 헥토르는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칼리 헥토르의 모습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발터 밀란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빠져나갔다.
자신의 왼팔인 칼리 헥토르가 나선 이상 그가 기자 회견장에 도착할 때쯤이면 세계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 모두 도착해 있을 테니까.
늦은 이들?
그들은 발터 밀란이 마련한 기자 회견장에 발 하나 들이지 못할 터였다.
자신보다 늦게 온 자에게는 지위의 고하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발터 밀란이었다.
*
[대한민국의 신성이 된 이강혁 헌터는 나의 유일한 제자이니 건드릴 생각이 있는 이들은 나를 감당할 수 있는 지부터 고려를 해볼 것을 추천한다.]
“푸흡! 콜록콜록! 발터 저 미친 새끼가 지금 무슨....!”
“....너 대체 뭘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아니, 창수 아재가 생각하는 것처럼 깊은 사제 지간은 아닙니다. 그냥 독에 대해서 가르침 비슷한 걸....”
“그게 사제 지간 아니냐?”
“....그렇긴 하죠?”
“후우, 공방 시끄럽게만 하지 마라.”
“....예.”
대장일을 마치고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식힐 겸 튼 TV에서 흘러나오는 속보에 강혁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지금 당장 발터 밀란의 안가인 술집을 향해 쳐들어가고 싶을 정도.
하지만 그래봤자 그곳에 발터 밀란은 없을 것을 잘 아는 강혁이기에 그러진 않았다.
그저 자신도 모르게 폭탄을 던져버린 TV 속 발터 밀란을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후우, 그래. 덕분에 승태 녀석이 보낼 암살자 같은 존재들에게 시달리진 않아도 될 테니 그건 다행이겠네.’
이미 승태가 자신에게 암살자를 보냈단 건 까맣게 모른 채 강혁은 최대한 현실을 좋게 받아들였다.
승태를 곁에서 부모보다 오래 봐온 만큼 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강혁이었다.
엿도 먹이고 자신 때문에 철혈의 위상이 많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나가던 사람 사이에 철혈이 보낸 암살자가 섞여 있다가 자신에게 칼침을 놔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
그렇기에 강혁은 좋게 생각했다.
발터 밀란의 이름을 듣고도 자신을 노릴 암살 집단은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세계 2위의 암살 집단 살(殺)은 TV에서 흘러나오는 발터 밀란의 연설, 아니 선포를 바라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강혁을 한 차례 노린 바 있으니까.
바로 그때였다.
똑똑-
공방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레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을 꺼내드는 것도 잊지 않은 그가 공방 문을 확! 열었을 때 그곳에는....
“....편지?”
편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편지 주변 그림자가 거칠게 일렁이긴 했지만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한 강혁은 조심스레 편지를 집어들곤 공방으로 돌아왔다.
“그건 뭐냐? 러브레터?”
“러브레터는 무슨....저한테 온 건 맞는데....발터네요?”
“넌 어째 남정네한테 러브레터를 받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구나.”
“....아, 글쎄 러브레터 아니라니까요.”
덕분에(?)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건 물론이고 창수에게 남자에게 러브레터 받는 이가 된 강혁이 몸서리를 치며 편지를 확인했다.
-네 스승으로부터.
“....쯧.”
스승이라는 시작 부분에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는 강혁이었지만 그것도 맞는 말이었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뒤,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시작부터 그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가면의 존재라는 걸 알았을 때는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즉에 사람 붙였구만?”
자신이 가면의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흠칫한 것과는 별개로 강혁은 그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밝힐 정체였고, 니아 아리엘이나 한수연 그리고 발터 밀란 정도까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밝힐 수 있었다.
강혁이 정체를 숨기는 건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 분명한 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내가 모두에게 정체를 밝히는 건 내 몸 하나 정도는 건사할 수 있을 때다.’
그리고 그것은 강혁은 진짜로 S급에 오를 때가 될 터였다.
S급에 오를 때쯤엔 그를 가뿐하게 상회하는 존재가 되어있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강혁은 편지를 마저 읽어내려갔다.
-얼마나 오래 숨긴 건지 네 숨겨진 능력들은 무엇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언젠가 네가 말해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참고로 네가 강남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살(殺)의 암살자들이 너를 노렸지만 내가 붙인 암조가 잘 처리했다.
“....! 미친, 그 미친 놈들은 언제 나를 치려고 한 거야? 소름 끼치네.”
살(殺).
헌터 업계는 물론이고 일반인에게도 악명이 자자한 집단이었다.
괜히 우는 아이에게 살(殺)이 잡아간다고 으름장을 놓는 게 아니었다.
아무튼 그런 암살 집단이 자신을 노렸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은 강혁은 빠르게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배후는 암조 중 한 명이 파내고 있으니 걱정하진 마라. 다만....승태 녀석일 가능성이 높으니 조심은 하도록.
콰득-
발터 밀란의 손편지(?)가 강혁의 손아귀 힘에 순식간에 구겨졌다.
철혈의 길드장, 김승태.
이미 예상은 했지만 예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정말 자신의 목숨을 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혁은 이를 갈았다.
그것도 잠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강혁은 다짐했다.
‘절대로 죽지 않을 거다. 몬스터들 손에 갈기갈기 찢겨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적어도 네 손에는 죽지 않을 거다.’
불사(不死).
자신을 노리는 승태를 가장 엿 먹일 수 있는 방법.
죽지 않는 것.
그걸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상에 단 하나였다.
‘강해진다. 최강의 10인이라도 나를 죽일 생각을 들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강해진다.’
강해진다.
원초적이면서도 확실한 방법.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강혁은 곧바로 핸드폰을 켜고 헌터넷에 접속했다.
헌터넷.
쉽게 말해서 옛날에 유행했던 알바 어플과 유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혁은 구인 광고를 작성했다.
“B~A급 갈 짐꾼 구함....돈은 많이 줄 수는 없지만 짐 잘 들고 힘 세고 입 무거운 사람으로 급구....”
현재 헌터들 수준으로 봐도 극악에 가까운 곳이 B~A급이다.
S급이야 워낙 수도 적고 짐꾼은 정말 극소수만 포함되기에 제외이기 때문.
즉, 현존하는 최고 난이도인 만큼 위험도는 어마어마하게 높으며 당연히 짐꾼마저 최소 C급으로 구성된다.
당연히 그 몸값은 비싼 게 당연한 일.
애초에 그 정도면 짐꾼이 아니라 본대에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언제든 전선에 뛰어들 수 있는 예비 헌터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런 이를 고용하면서 돈도 많이 주지 않으며 짐도 들어야 하고 힘도 세야하며 입도 무거워야 한단다.
지나가던 사탄도 ‘아, 저건 좀....’하면서 고개를 흔들 법한 악덕 업주의 전형인 셈.
구인 광고를 작성하는 강혁 본인조차도 이건 좀 아닌지 딱딱한 얼굴로 발터 밀란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날.
“돈도 안 주셔도 됩니다! 데려가만 주십쇼!”
“....어?”
“등급도 A급입니다!”
“....진짜?”
강혁은 무급 노예를 자처하는 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A급이라는 특급 노예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