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올 마스터-24화 (25/178)

나 혼자 올 마스터 #24

“빌어먹을 갑자기 폭발형이라니!”

헌터 협회의 당직자인 박태현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하필이면 자신이 당직을 서는 이때 전 세계로 따져도 손에 꼽을 만큼의 발생 숫자를 가진 폭발형이 일어났다.

그것도 한적한 시골이 아닌 번화가이자 부자 동네라고 소문이 자자한 강남 한복판에서 말이다.

“폭발 확정입니다!”

“등급은? 등급은 어느 정도 수준인데?”

자신의 부사수의 외침에 태현은 다급하게 던전의 등급을 물었고, 절망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A급입니다.”

“....시발!”

자연스레 내뱉어지는 태현의 욕설에도 그 누구 하나 태현을 나무라지 못했다.

A급.

평범한 던전이 강남 한복판에 나타나도 문젠데 그게 A급에 폭발형이라면 말 다했다.

‘전례 없는 재앙이 벌어질 거야. 젠장, 그리고 나는 부자들에게 질타를 받고 모가지겠지.’

헌터 길드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들의 본부에 모든 전력이 상시대기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해외에 파견을 간 이들도 있고, 휴식을 취하는 이들도 있으며 무엇보다 지금은 퇴근 시간대인 8시.

태현과 마찬가지로 당직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갔을 시간이다.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은 태현은 서둘러 부사수와 나머지 당직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단 주변 헌터 길드들에 모조리 공문 내려. 집에서 쉬고 있는 놈이든 던전 들어가려고 대기 중인 놈이든 모조리 강남으로 오라고 그래!”

“....철혈도 있는데 똑같이 보낼까요?”

“철혈이 아니라 철혈 할애비라도 보내야지. 걔네가 가장 주 전력인데 걔네를 빼? 너 미쳤냐? 나 잘리라고 그러는 거지? 응? 차라리 상부에게 찌르지 그래?”

“....보내겠습니다.”

이까지 빠득빠득 갈아가며 자신을 노려보는 태현의 모습에 그의 부사수는 얼굴을 굳힌 채, 길드들에게 몬스터 웨이브에 대해 알리러 떠났다.

그 모습을 뒤로한 채, 태현은 아직 살아있는 몇몇 CCTV를 바라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젠장젠장젠장....제발 아무라도 좋으니까 빨리 좀 나타나 줘.’

이미 몬스터 웨이브는 시작되었다.

A급 몬스터인 트롤들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들은 무력한 시민과 죄 없는 건물들을 부수며 도시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평소 안전의 상징과도 같던 강남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에 태현이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였다.

“팀장님! 저....저기 누가 나타났습니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고 던전이 터져나가기 직전에 모습을 드러낸 한 존재.

전신을 가죽 갑옷으로 무장하고 등에는 대궁을 매단 채,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쓴 존재를 보는 순간 태현의 머릿속에 엘리자베스의 인터뷰가 스쳐지나갔다.

-전 들러리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만 얻었을 뿐이고 보스 몬스터 또한 그 혼자서 처리했습니다.

‘....시작부터 A급을 달성한 괴물 신인의 말이었지만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가 정말로 S급, 아니 그 너머의 존재들과 비등한 존재라면....이 상황을 끝낼 수 있을까?’

두근대는 심장과 어느새 곱게 모아진 두 손까지.

하지만 그와 당직실에서 상황을 확인하던 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우워어어어!

“....빌어먹을. 하필....하필 나와도 오우거라니!”

A급 보스 몬스터.

A급 던전이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보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 존재가 오우거라는 사실에 그들은 절망했다.

‘저 가면의 존재가 정말 S급 헌터 그 이상가는 존재라도 오우거는 힘들지도 모른다. 누군가....누군가 한 명이라도 지원해줄 수 있다면 다를 텐데....’

A급 보스이지만 S급마저도 진땀을 흘리게 하는 강력한 몬스터.

엘리자베스의 말로 미루어보아 S급보다 살짝 강할 것으로 추정되는 그에겐 힘든 상대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가면의 존재가 도망치더라도 그를 나무랄 수 없었다.

헌터 또한 목숨은 하나이고 주변엔 도와줄 이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깬 가면의 존재는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오우거를 향해서 선공을 날렸다.

“그래! 보여줘! 보여달라고!”

“제발 저 빌어먹을 오우거 새끼만 잡아줘!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네 편이 되어줄 테니까!”

지금 강남에 벌어진 몬스터 웨이브에 대한 책임은 헌터 협회 당직들이 져야만 한다.

그것이 대비할 수 없는 재앙이라고 할 지라도 몬스터 웨이브 당시에 자리에 있던 건 그들이었으니까.

사수, 부사수. 팀장, 사원 가리지 않고 당직실의 모인 이들이 떨리는 눈빛과 손을 모은 채 신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들의 간절함이 닿았는지 오우거와 가면의 존재의 전투가 끝이 났다.

-푸화아아악!

감시 카메라 너머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막대하고 질 높은 마기.

그 마기가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강남의 일대를 완전하게 뒤덮는 것을 끝으로 카메라의 화면이 꺼졌다.

오우거가 죽었는지까지 나오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이 순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우거는....’

‘죽었다....!’

끝까지 보지 못했음에도 오우거가 죽었음을 모든 이들이 확신하는 순간 길드들에게 연락을 돌렸던 부사수가 입을 열었다.

“팀장님, 철혈 소속 헌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길드장도 함께 있다는데요?”

철혈의 길드장.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헌터, 김승태.

그가 직접 나섰다는 말을 듣는 순간 본래라면 모든 이들이 환호를 내질렀을 터.

하지만 그들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고, 그건 팀장인 태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하러 왔대? 야, 그냥 집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고 그래라.”

자신들을 징계에서 구원해준 카메라 너머 가면의 존재를 생각하며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면의 존재에게 줄 보상 책정해 봐. 우리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으로.”

“오늘 이강혁 헌터가 새로운 몬스터를 발견한 대가로 3급 창고에 들렀던 기록이 있습니다. 이걸 바탕으로 가면의 존재의 활약상을 본부에 알리고 몇 없는 폭발형 던전까지 막아낸 것까지 알린다면 2급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나쁘지 않네. 현장에 있는 트롤들 시체랑 오우거 시체 있지? 그것도 전부 수거해와. 본부에 뇌물이라도 좀 찔러줘야 빠릿빠릿하게 일하지 않겠어?”

“네, 그러면 철혈 쪽에 연락해서 트롤들과 오우거의 시체를 챙겨오라고 연락하겠습니다.”

“그래, 대가는 협회가 지불할 거라고 연락하고~”

천하의 철혈 길드가 시체수거반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강혁을 위한 시체 수거를 말이다.

*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상황을 파악해.”

“....가면 쓴 놈팽이 하나가 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시발! 내가 눈이 없나? 그거 하나 못 보게? 너 지금 날 무시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평소 자리에 맞는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면 늙은이 같은 목소리와 톤을 유지하던 승태는 지금 이 순간 가면을 벗어던졌다.

협회에서 공문이 내려오자마자 승태는 기회라고 여기고 자기가 직접 현장에 나섰다.

전 세계로 따져도 손에 꼽는 발생 수를 가진 폭발형 던전.

그리고 안전 구역으로 평가 받는 강남의 위험.

‘이거라면 최근 떨어졌던 입지를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저 빌어먹을 자식은 누구냐고!’

강혁을 내보낸 일부터 일들이 하나씩 꼬이기 시작했다.

그를 짓누르기 위해서 오우거마저 소환했지만 그는 보란 듯이 그걸 잡아냈다.

같은 최강의 10인 중 한 명인 루터 할론의 딸 엘리자베스 할론과 함께.

덕분에 자신의 공작이 강혁을 침몰시키긴커녕 오히려 그를 빛내주었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수연이의 낌새도 이상하다.’

철혈의 흔들림은 사실 별 문제가 없다.

최강의 10인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둘이나 존재하는 길드는 세상에 철혈이 유일하니까.

말이 두 명이지 자신과 수연의 합공이라면 1위라고 평가받는 검성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승태는 생각했다.

물론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기에 강혁의 퇴출과 강혁의 새로운 별이 되어가며 철혈의 안목 등이 욕을 먹어도 승태는 개의치 않았다.

수연만, 수연만 철혈에 남아 있다면 철혈은 세계 1위의 길드라는 타이틀을 뺏기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최근 강혁이 각성한 뒤, 점점 입지를 다져가는 모습과 함께 종종 멍을 때리는 수연의 모습을 승태는 확인했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승태의 단단하던 마음에 의심이라는 씨앗이 발아하는 것은.

그때부터 승태는 결심했다.

‘빌어먹을 놈을 죽여야 한다.’

10년 동안 무재능이던 둔재.

처음부터 A급, 준 S급이라는 과분한 등급을 받은 존재.

아직까진 괜찮았다.

그가 죽더라도 세상은 잠시만 아쉬워할 거고 금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질 테니까.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 것도 그가 그에 맞는 업적을 세웠을 때나 있는 거다.

그리고 지금의 강혁은 그 정도의 위치에 서지 않았다.

‘....그 놈과 똑같아. 저 빌어먹을 놈도 이강혁과 똑같은 부류라고!’

물론 가면의 존재와 강혁이 동일인물이라는 것도 모르는 그는 오우거와의 전투로 힘이 빠진 가면의 존재를 노려보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우린 트롤들을 처치한다. 너희들은 시민들을 보호해라.”

“그럼 길드장님은....?”

“지금 트롤따위를 잡는 데에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시정하겠습니다.”

두 눈을 부라리는 승태의 말에 A급에서 S급까지 고루고루 분포된 철혈의 길드원은 모조리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리고 승태의 분노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시민들이 있는 곳으로 흩어지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승태는 자신의 전화를 꺼내들었다.

뚜르르르- 딸칵!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승태가 건 전화를 누군가 받았다.

-아이고~ 우리 고객님 아니십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칼을 좀 쓰고 싶은데 되겠나?”

-물론입죠! 그때 말했던 애송이를 죽이면 됩니까?

가볍게 입에 죽음을 담는 전화기 너머 상대의 언사에 승태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혁도 죽여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강남에 상처 입은 먹잇감 한 마리가 있다. 잡을 수 있겠지?”

-강남? 아, 설마 가면의 존재인가 하는 놈팽이 말입니까?

“그래. 할 수 있나 없나?”

-당연히 가능합니다. 대신 수당은 좀 쌜 겁니다.

“....처리해.”

-저희 살(殺)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곧 아이들이 출동할 겁니다. 맘 편히 기다려 주시길.

세계 2위의 암살 집단 살(殺).

그들의 전화 업무를 맡은 사내의 밝은 목소리를 끝으로 전화를 종료한 승태는 그대로 손에 힘을 주었다.

빠드득-

헌터용으로 만들어져 그 단단함은 A급 몬스터의 뼈에 비견되는 핸드폰이 순식간에 우그러졌다.

하지만 그에 개의치 않은 승태는 그대로 고철이 되어버린 핸드폰을 아예 발로 짓밟아 가루로 만들었다.

그제야 뒤처리를 끝낸 승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사라지는 가면의 존재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넌 끝이다. 그리고 이강혁 그 새끼도 네 곁으로 보내주지.’

끝까지 둘이 동일인물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승태였다.

그리고 현재 강혁의 뒤를 누가 따르고 있는지도 마찬가지였다.

*

“후우, 형님 고작 한 놈 잡는 데에 저희가 전부 가는 건 너무 존심 상하지 않슴까?”

“조용히 해. 의뢰주가 원하고 돈만 내면 우린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야 좋은 일 아니냐? 고작 S급 한놈 모가지 따는 대가로 수십억이 넘으니까.”

“키히힛, 그건 그렇죠.”

“너도 이젠 조용히 하고 다들 주의해라. 놈은 상처 입었지만 A급 보스를 일격에 격살한 존재. 그러니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마라. 네놈들 뒤진다고 슬퍼 해줄 놈은 없으니까.”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의 말에 후드를 뒤집어쓴 나머지 4명의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세계 2위에 빛나는 암살 집단 살(殺)의 소속원들로 전원 A급 이상으로 이루어진 이들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들을 이끄는 대장격 존재는 무려 S급에 달하는 이로 그는 이미 S급 헌터 여럿을 암살한 전적이 있었다.

추가로 다른 이들도 비슷했다.

최소 한 명 이상의 S급 헌터를 암살해 본 이들로 그들의 암살 실력은 제일이었다.

그들 위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암살 집단을 제외한다면.

다짐을 마친 그들이 저 멀리 보이는 상처 입은 맹수를 향해 몸을 날리려고 할 때였다.

푹! 푸부부북-

“....컥!”

“크아아악! 암....암습이다!”

“그림자! 그림자에서 공격이....크헉!”

“아아아악! 대....대장!”

‘....? 이게....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전원 A급에 암살이라면 S급도 암살해볼만한 실력자들.

그들이 몇 초 지나지도 않아서 모조리 죽었다.

그것도 그들의 전문 분야인 암살에 당해서.

믿을 수 없는 일에 대장이라고 불린 이가 몸을 돌려서 도망치려던 순간이었다.

꽈아아악-

“....! 그림자가....설마 이건?”

“잘 알면 도망갈 생각을 하지 마라.”

“빈센트!”

자신의 발목을 단단히 부여잡은 그림자의 모습에 대장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사내의 이름을 외쳤다.

빈센트.

자신과 함께 동종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S급 헌터.

본인은 살(殺)에 입단했지만 그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빈센트, 적당히 처리하고 와라. 우린 보고하러 갈 테니까. 그리고 저분의 호위는 네가 이어서 하고.”

“옙! 선배님 들어가십쇼!”

천하의 빈센트마저 막내 취급을 면치 못하는 명실상부 세계 1위의 암살 집단이자 한 사람의 개인 친위대인....

“모든 건 보스의 뜻대로.”

“....보스의 뜻대로.”

암조(暗組)였다.

자신이 노리려고 했던 대상이 암조의 비호를 받는 존재라는 걸 깨달은 대장의 두 눈이 휘둥그레질 때, 그의 발목을 붙잡은 빈센트가 씨익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넌 곱게 죽진 못할 거야. 살(殺)에 대한 정보는 물론 저분을 노린 이에 대한 모든 정보를 토해내고 나서야 죽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잘 가라고 옛 라이벌.”

“자....잠깐!”

“굿바이.”

푸화아악!

그 말을 끝으로 대장을 붙잡고 있던 그림자 치솟아 올라 대장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사람 한 명이 사라지고 그림자들이 다시금 본래의 모습을 갖추었을 때쯤 빈센트의 모습 또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조용해진 음습한 골목에서 그림자 하나가 강혁의 뒤를 다시금 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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