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22
깡! 깡! 깡!
“너도 참 어련하구나. 그렇게 질 좋은 재료는 처음 봤다.”
“뭐, 제가 한 대단하긴 하죠.”
“....싸가지 없는 놈.”
“칭찬으로 들을게요.”
블랙 오크의 사냥에 성공한 후, 강혁은 곧바로 창수의 공방으로 달려왔다.
이유는 하나.
-이거 도축 좀 해주세요.
블랙 오크의 뼈와 가죽을 조금이라도 빨리 분해하기 위함이었다.
죽은 직후부터 가죽 등의 질은 빠르게 떨어진다.
즉,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죽을 살과 분리해야 그나마 나은 상등품의 가죽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강혁이 아는 한 가장 뛰어난 몬스터 도축업자는 창수였다.
장인급 대장장이답게 창수는 도축에도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강혁이 블랙 오크 사냥 직후 창수에게로 곧바로 달려온 것과 연관이 있었다.
창수 또한 좋은 몬스터 시체를 얻었을 때, 조금이라도 빨리 도축하기 위해서 직접 도축을 배웠다.
‘덕분에 나도 도축 재능을 얻긴 했지만 아직 내가 하기엔 무리가 있지.’
놀랍게도 창수는 도축 재능 또한 보유하고 있었다.
대장일에 무두질에 도축까지.
대장장이 한수연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으리라.
뭐, 최강의 10인급 정도 되면 재능 서너 개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 덕을 톡톡히 본 강혁 또한 하급의 도축 재능을 획득했지만 아직 창수에게 미치진 못했다.
결국 모든 사체를 창수가 직접 도축을 해주었고, 그 대가로 뼈와 가죽 일부를 창수에게 넘겼다.
“이걸로 가죽 갑옷이랑 검을 만들 생각하니까 두근대서 잠도 안 오더라니까요.”
“....솔직히 부정할 수 없구나.”
블랙 오크의 가죽과 뼈는 창수가 본 그 어떤 재료와 비교하더라도 상위권에 속할 정도였다.
즉, 창수 또한 강혁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
만약 강혁의 무두질과 대장일을 옆에서 봐주지 않았다면 그도 이미 자신이 얻은 가죽과 뼈로 대장일에 몰두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가죽과 뼈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창수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강혁을 도았고, 그 결과....
[분노의 마기가 깃든 가죽 갑옷 세트]
숙련된 장인과 재능이 개화된 대장장이의 합작품이다.
마기가 짙게 깃든 가죽에 분노의 마기가 스며들어 만들어진 가죽 갑옷 세트.
죽기 직전, 치명적인 신성력에 당하여 신성력을 잘 받아들인다.
갑옷, 하의, 장갑, 부츠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부 착용 시 보정 효과가 존재.
만든 본인이 착용 시, 보정 효과 발생.
* 보정 효과 : 피격 시, 일정 확률로 공격 대상에게 상태 이상 : 광란과 광분 적용.
[분노의 마기가 깃든 뼈 장검]
숙련된 장인과 재능이 개화된 대장장이의 합작품이다.
고위 마물의 뼈로 만들어져 무척이나 튼튼하며 신성력을 상대로 뛰어난 위력을 발휘한다.
죽기 직전, 치명적인 신성력에 당하여 신성력을 잘 받아들인다.
마기를 더욱 잘 받아들이며 받아들인 마기를 증폭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만든 본인이 착용 시, 보정 효과 발생.
* 보정 효과 : 일정 확률로 신성력 확정 무시, 마기 증폭율 증가 (2배 -> 3배).
“....완벽하네.”
왜 이름난 헌터들이 돈만 생겼다 하면 값비싼 장비에 돈을 처바르는지 이해가 가는 강혁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만든 블랙 오크의 가죽 갑옷 세트는 강혁의 마기를 받아들여 분노의 성질을 지니게 됐다.
분노의 마기가 깃든 가면처럼 보는 것만으로 확정적인 상태 이상을 유발하진 않지만 이것도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전투에선 이게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
가면이야 어찌어찌 시선을 돌리면 된다지만 전투 중에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 방법은 없다.
공격을 하지 않고 상대방을 이긴다? 그런 방법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 수가 적었다.
즉, 때릴 때마다 상대방은 상태 이상에 걸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의미.
‘거기에 장검도 마음에 든다.’
블랙 오크와의 전투로 인해서 부식된 탓에 새롭게 만든 장검 또한 가죽 갑옷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마나 전도율 상승이라는 효과는 없었지만 마기 증폭이라는 특수한 효과가 새롭게 각인된 상황.
거기에 일정 확률로 2배에 달하는 증폭 효과가 3배까지 뻥튀기까지 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거기에 일정 확률 신성력을 확정 무시하는 어마어마한 옵션까지 달려 있으니 강혁으론 좋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물론 본인 착용 시라는 단점이 붙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나만 착용할 건데 뭔 상관이야.’
이런 좋은 무구들을 외부에 유통시킬 생각 따윈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대장장이와 관련된 재능마저 있다는 게 알려지는 건 원치 않기도 했고.
아무튼 며칠 내내 무두질과 대장일을 한 결과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 강혁은 흐뭇하게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띠리리리-
“여보세요?”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에도 강혁은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런 전화기 너머에선 굽신거림마저 느껴질 정도로 저자세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강혁 헌터님. 얼마 전에 새롭게 생겨난 몬스터의 표본 관련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혹시 시간 되십니까?
“아, 네네. 말씀하셔도 됩니다.”
뼈와 가죽을 발라내기 전, 카메라로 대충 블랙 오크를 찍어서 협회에 보낸 후에 도축이 끝난 블랙 오크의 사체마저도 강혁은 협회로 보냈다.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인 만큼 협회에서는 강혁에게 무척이나 고마워한 것은 덤이 없다.
그리고 바로 오늘 새로운 몬스터를 협회에 알리고 그 사체마저 일부 건네준 강혁에 대한 보상이 오늘 주어졌다.
-협회 창고에서 물건 하나를 가져가라고 협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협회 창고.
모든 헌터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협회의 창고는 온갖 보물들로 가득하다는 소문은 이미 널리 퍼져 있다.
당연히 강혁 또한 그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고, 그렇기에 두근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소문에 따르면 드래곤 사체라도 있는 것 같던데 정말이려나.’
드래곤.
딱 한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전 세계에 ‘멸망’이라는 단어를 심어주게 한 몬스터.
다행히도 현 최강의 10인 전원이 달라붙어서 처리하긴 했지만 그가 남긴 상처는 무척이나 컸다.
그런 드래곤의 사체라면 시간이 오래 지나긴 했어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터.
‘만약 드래곤의 비늘이나 뼈로 갑옷과 무기를 만든다면....상상만 해도 오싹하군.’
블랙 오크는 마물이다.
아무리 강하다곤 하더라도 S급 수준을 면치 못한다.
그런데 드래곤은 S급 몬스터 따윈 가볍게 압살하는 최강의 10인 전원이 달라붙어서 간신히 처리한 존재.
격 자체가 다르다.
물론 고작해야 신종 몬스터 한 마리 등록한 것으로 드래곤의 사체를 얻는 건 무리겠지만 기대해 볼 만한 것은 확실했다.
“저 협회 좀 다녀올게요.”
“그래, 빨리 가라. 이제 나도 오랜만에 망치 좀 잡아보게. 손이 근질근질해서 죽을 것 같다.”
“....이따 뵙죠.”
“오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망치부터 집어 드는 창수의 모습에 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공방을 빠져나갔다.
‘어련하시다니까.’
본인도 블랙 오크의 사체를 얻자마자 며칠 내내 망치를 쥐고 있던 건 벌써 잊어버린 강혁이었다.
*
“이강혁 헌터?”
“맞습니다.”
“아, 맞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왠일로 한적한 협회에 모습을 드러낸 강혁은 자신의 안내를 맡은 사내의 뒤를 따라갔다.
“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합니까?”
“음, 그냥 오늘은 이강혁 헌터가 협회 온다는 걸 아무도 몰라서가 아닐까요?”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강혁이 협회를 방문할 때마다 강혁의 방문 소식은 미리 알려졌고, 그 결과 기자들은 물론 스카우터들마저 강혁을 보기 위해서 협회에 찾아왔다.
결국 협회가 북적했던 이유 모두가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된 강혁은 쓰게 웃었다.
‘10년 동안 못 받은 관심을 한 번에 받은 셈이었군.’
헌터 협회가 북적거렸던 이유.
그 이유가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오늘 헌터 협회가 조용했던 이유를 알게 된 강혁은 협회 직원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협회의 지하에 대해서 아십니까?”
“빌런들을 수감 시키는 지하 감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빌런.
헌터와 마찬가지로 재능을 각성했지만 그 재능을 몬스터를 잡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닌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는 이들.
당연하게도 그건 범죄였고, 애초에 그들도 자신의 재능을 범죄에 사용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헌터 협회는 정확하게 따지자면 각성을 한 모든 이들을 관리하는 곳.
빌런 또한 마찬가지였다.
강혁의 말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협회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빌런들을 잠시 대기시키는 감옥도 분명 존재하죠. 하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들을 수감 시키는 곳은 협회 본부에 존재하니까요.”
“....그럼?”
“중요한 건 그 밑에 있는 아공간 창고입니다.”
“....아공간 창고?”
아공간 주머니라면 강혁도 가지고 있다.
아니, 어느 정도 능력 있는 헌터라면 하나 정돈 가지고 있는 게 아공간 주머니다.
그런데 아공간 창고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 강혁이기에 강혁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춰섰다.
“이강혁 헌터에게 허락되는 창고는 3급이지만 나중엔 1급까지 들어오실 수 있는 권한을 얻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도 직접 이곳에 와보는 건 처음이군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협회 직원은 굳게 잠겨 있는 철문을 열었고 그 너머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척 보기에도 진귀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로 가득한 창고에 강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볼 때, 협회 직원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어떻게 얻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협회에게는 아공간 창고가 있습니다.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으며 인가를 받은 곳에서 키를 사용하면 자동으로 지정된 창고로 이동할 수 있죠.”
“그게 총 3단계. 3급, 2급, 1급으로 나뉘어져 있는 건가?”
“정확합니다. 현재 이강혁 헌터의 도움을 협회에선 3급 수준으로 파악했고, 이곳에서 하나의 물건을 가지고 나가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요.”
척 보기에도 귀하기 그지 없는 것들로 가득찬 창고에서 그 어떤 것이든 하나를 가져갈 수 있다.
그 사실에 강혁은 전신이 부르르 떨리는 쾌감을 느꼈다.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2급, 나아가 1급에 해당되는 창고에는 어떤 물건이 있을 지가 기대가 된 것이다.
“그럼 마음껏 골라주시길.”
“....시간 제한은 있습니까?”
“설마요, 설령 제 퇴근 시간이 다가오더라도 전....전 꼭 옆에 있겠습니다.”
....잠깐 망설인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협회 직원의 얼굴에 서린 칼퇴 욕구를 애써 무시한 채, 강혁은 천천히 창고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8시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