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21
콰드드득-
‘....확실히 일반 오크보다 강하다. 아니, 어쩌면 A급, 나아가 S급 몬스터에 비견될지도 모르겠네.’
S급 몬스터.
하나하나가 재앙이라고 불리며 S급 헌터들조차 방심할 수 없는 상대.
당연히 그들의 강함은 S급 헌터 두엇에 필적한다.
즉, 지금 S급 언저리인 강혁에게는 꽤 강한 상대라는 얘기.
하지만.
스걱-
‘해볼 만하다.’
강혁은 그와 힘을 겨루며 포기라는 단어보단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분명 블랙 오크의 강함은 대단하긴 하다.
마기가 깃든 가죽은 질기기 그지없었고, 주먹을 내뻗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파공성은 섬뜩했으니까.
그렇지만 고작 그따위에 겁을 먹기엔 강혁이 걸어온 길이 아까웠다.
10년에 달하는 노력.
몇 개월 동안 최고의 스승들에게 가르침을 받아온 재능들.
그것들을 바로 이 자리에서 강혁은 남김없이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건 수연이의 몫!’
스거거거걱!
-....크아아악!
몇 주 동안 수연에게 배운 강혁의 검술이 블랙 오크의 질긴 가죽들을 난도질했다.
가죽 아래에 있는 부드러운 살마저 거친 검술 앞에 유린당하는 고통에 블랙 오크가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를 때, 강혁은 이격을 날렸다.
“....쾌(快)!”
파괴적인 힘을 내세우며 휘두르던 강혁의 검이 이 순간 모든 파괴력을 일점으로 모아 블랙 오크의 어깨를 꿰뚫었다.
가죽, 근육, 뼈.
세 가지를 모두 꿰뚫어버림과 동시에 강혁은 검을 손에서 놓고 몸을 뒤로 날렸다.
파앙!
“....맞았으면 죽었겠는데.”
방금까지 자신의 얼굴이 있던 곳에 정확하게 꽂히는 블랙 오크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공기막이 터져나가는 섬뜩한 소리에 강혁이 한 줄기 식은땀을 흘릴 때, 블랙 오크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핫!
왼쪽 어깨에 검이 꽂혀 있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을 가리키며 강혁을 도발했다.
네 무기는 여기에 있는데 너는 어쩔 거냐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블랙 오크가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스으읍....흡!”
-....!
팍- 퍼버버벅-
강혁의 무기는 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자신을 비웃는 블랙 오크의 도발을 무시한 채, 강혁은 순식간에 블랙 오크에게로 파고들었다.
당황하여 자신에게 멀쩡한 오른쪽 주먹을 뻗으며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했지만 강혁은 부드럽게 그 주먹을 쳐냈다.
그리고 오른손이 위로 붕 뜸과 동시에 텅 비어버린 블랙 오크의 가슴팍을 향해 수십 개의 권영(拳影)이 꽂혔다.
권영이 가슴팍을 때릴 때마다 강혁의 주먹 모양대로 움푹움푹 패였고, 그 고통에 블랙 오크는 다시 한번 신음을 내뱉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도 마냥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빠각-
“....!”
-크워어어어!
검에 의해 제동이 걸린 왼팔과 갈 곳을 잃은 오른 주먹을 버려둔 채, 자신의 통나무 같은 다리로 강혁의 다리를 걷어찬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데다가 근접해 있었기에 공격을 피하기란 무리가 있었다.
결국 처음으로 공격을 허용한 강혁의 얼굴에 고통이 퍼져나갔다.
아무리 마나로 신체를 강화하고 신성력으로 보호를 했다지만 그제서야 강혁은 블랙 오크와 같은 출발선에 선 것과 다르지 않았다.
즉, S급 헌터에 육박하는 강혁의 육체는 아무것도 강화하지 않은 블랙 오크와 비슷하다는 얘기.
그런데 마기가 깃든 블랙 오크의 발차기는 신성력의 보호를 무참하게 부숴버리고 강혁의 다리를 금 가게 했다.
‘....괜찮아, 부러지거나 부서지진 않았다.’
금이 간 덕분에 이동에 제약이 생긴 강혁은 멀쩡한 다른 쪽 발로 땅을 박차고 뒤로 몸을 날렸다.
잠시 거리를 벌린 뒤, 신성력으로 다리를 치유하려는 생각이었다.
그걸 모를 블랙 오크가 아니었고, 그는 강혁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크아아악!
활화산처럼 터져나오는 검은 마기와 함께 분노를 토해낸 블랙 오크의 신형이 강혁을 향해 쇄도했다.
투우의 그것과 닮은 저돌적인 돌진에 강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공간에서 면도날을 꺼내 입안에 던져넣었다.
으적-
그런 면도날을 씹어 쪼갠 뒤, 입안에 굴려 다량의 피를 순식간에 머금은 강혁은 그걸 전방을 향해 냅다 뱉었다.
“퉤! 이거나 먹고 꺼져!”
면도날 조각과 함께 뿜어지는 피와 침 세례에 블랙 오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그걸 피하지 않았다.
아무런 기운도 깃들지 않은 면도날 따위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짜는 면도날 따위가 아니라 강혁의 ‘피’에 있었다는 걸 블랙 오크는 알지 못했다.
치이이익-
-....크아아악!
버둥버둥-
별거 아니라고 무시했던 피가 자신의 몸에 닿자마자 질긴 가죽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식시켜버리자 블랙 오크가 기겁을 했다.
결국 돌진을 멈추고 뒤로 몸을 날린 블랙 오크가 두터운 손으로 피를 털어낼 때쯤 강혁은 치유를 마쳤다.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둘 다 처음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았다.
강혁은 대량의 마기와 신성력을 소모한 탓에 짙은 탈력감에 휩싸여 있었고, 블랙 오크는 강혁의 독혈에 의해서 전신이 드문드문 녹아내려 있었으니까.
둘 다 정상이라곤 보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둘은 처음처럼 저돌적인 맹공을 택할 수 없게 되었다.
서로 눈치만 보는 대치가 잠시간 이어졌고, 선공은 강혁이었다.
타다다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동굴 속에서 빠르게 속도를 올린 강혁이 블랙 오크의 코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슬슬 끝내자.”
-....!
강혁의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블랙 오크 또한 이번이 강혁의 마지막이라는 걸 눈치챘다.
즉, 이 공격이 성공하면 강혁의 승리, 실패하면 이어진 블랙 오크의 반격으로 인한 블랙 오크의 승리인 셈.
그걸 본능적으로 둘 다 느끼고 있었고, 블랙 오크는 방어를 강혁은 공격을 택했다.
콰득!
그리고 공격을 택한 강혁은 블랙 오크의 왼쪽 어깨에 박혀 있는 자신의 장검의 손잡이가 부서질 정도로 세게 쥐었다.
공격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갑자기 검을 쥐자 블랙 오크는 의아한 얼굴로 가드 너머로 강혁을 바라보았고.
자신을 바라보는 블랙 오크에게 강혁은 선물을 주었다.
“비싼 피다. 좋은 곳에 쓰이길 바랄게.”
-....! 크아아아악!
달려오면서 손바닥을 깊게 벤 탓에 강혁의 손엔 피가 모여 있었고, 그런 피가 검을 타고 블랙 오크의 상처에 스며들었다.
독혈의 성질과 블랙 오크와의 몇 번의 부딪침 때문에 장검은 서서히 부식되었지만 강혁은 개의치 않았다.
‘저놈의 뼈로 검을 만들면 아주 좋겠는데.’
대장장이의 눈으로 본 블랙 오크는 버릴 곳 하나 없는 완소(?) 재료였다.
그의 가죽은 질기기 짝이 없기에 갑옷으로 만들기에 아주 좋았고, 뼈 또한 마찬가지.
무엇보다 마기가 깃든 가죽과 뼈는 강혁에게 궁합이 아주 잘 맞았다.
자신을 재료라고 생각하는 줄도 모른 채, 블랙 오크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왼팔의 상처를 파고든 독혈이 전신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전신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블랙 오크가 몸부림 칠 때, 강혁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한 방.”
-....!
마기가 깃든 주먹이 자신을 향해 내려꽂히는 걸 바라보며 블랙 오크가 이를 악물면서 마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마기가 허공에서 부딪치며 상쇄되었다.
그 모습에 블랙 오크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강혁을 바라보며 코웃음쳤다.
네 최후의 일격은 허무하게 사라졌다고 주장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고맙다, 생각한 대로 움직여줘서.”
-....?!
마기가 상쇄되는 것이야말로 강혁이 바라마지 않았단 것이라는 걸 블랙 오크는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의 마기가 상쇄되어버리고 블랙 오크에게 마기라는 훌륭한 갑옷이 사라진 이상 블랙 오크는 벌거벗겨진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질긴 가죽이 강혁을 기다리고 있지만....
푸욱-
-....!!!
“미리 독을 뿌려놓길 잘했네. 아주 잘 들어가.”
방금 전 돌진을 막기 위해 뿜었던 독혈 덕분에 가죽의 무른 부분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 부분을 정확하게 수도(手刀)로 찔렀다.
독에 녹아버린 가죽을 뚫고 살 깊숙한 곳까지 강혁의 수도가 파고들었다.
베이는 것만 해도 고통스럽기 그지없건만 몸 내부까지 손이 휘저으니 그 고통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
강인한 정신력을 지녀 분노의 마기에도 이성을 잃지 않던 블랙 오크마저도 두 눈을 회까닥 뒤집을 수준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블랙 오크를 죽이기엔 모자랐다.
강혁의 팔은 블랙 오크의 심장을 얼마 남기지 않고 멈춰졌으니까.
블랙 오크가 자신의 내부로 파고든 강혁의 팔을 가슴 근육으로 붙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강혁은 개의치 않았다.
“잘 가라.”
-....?
“너 혹시 이런 명언 아니?”
잘 가라는 자신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함을 드러내는 블랙 오크를 향해 강혁이 물었다.
강혁의 물음에 블랙 오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고, 그런 그를 향해 강혁이 명언 하나를 알려주었다.
“예술은 폭발이다, 빌어먹을 흑돼지 새끼야. 폭(爆)!”
-....!!!
펑-!
욕설과 함께 내뱉어진 강혁의 말과 함께 블랙 오크의 내부에 파고든 강혁의 손에 생성된 신성력 구체가 폭발했다.
본래라면 마기로 신성력을 상쇄했겠지만 블랙 오크의 마기는 좀 전의 강혁의 마기와 함께 산화한 상황.
자신의 전신을 휘감는 신성력의 물결을 블랙 오크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 결과 신성력의 폭발에 거세게 몸을 흔들어대던 블랙 오크는 이내 추욱 늘어졌다.
“허억....헉....빌어먹을 흑돼지 같으니....”
블랙 오크가 완전히 죽었음을 확인한 강혁은 그제서야 그의 몸에 박아넣은 손을 빼내곤 숨을 헐떡였다.
그런 강혁을 향해 블랙 오크에게서 빠져나온 마기 덩어리가 흡수되었다.
“흐읍....!”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마기가 갑작스레 흡수되자 강혁은 당황했지만 분노가 그를 안심시켰다.
-여기서부턴 내게 맡겨라.
“....부탁한다.”
전문가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강혁은 마기에 관련해서 전문가나 다를 바 없는 분노에게 마기를 일임했다.
분노는 자신이 이 방면의 전문가(?)라는 걸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강혁의 몸에 스며든 거대한 마기를 조율했다.
그리고 강혁의 몸이 마기에 적응하는 사이 그의 신체 : 반성반마가 반응하여 마기를 신성력으로 치환시켰다.
거대한 마기는 감당할 수 있는 마기와 신성력으로 분할되었고, 이내 완전히 강혁에게 흡수되었다.
분노의 도움으로 완전히 마기와 신성력이 강혁의 몸에 안착하는 순간 여러 개의 메시지창이 강혁을 반겼다.
[중급 검술[LV.4]가 중급 검술[LV.6]로 성장하였습니다.]
[중급 무투[LV.5]가 중급 무투[LV.7]로 성장하였습니다.]
[신체 : 반성반마(半聖半魔)가 몸 안에 스며든 마기를 신성력으로 치환하였습니다.]
[마기 스탯 100과 신성력 스탯 100이 추가됩니다.]
[블랙 오크를 처치하고 그의 특성을 확인했습니다.]
[특성 : 불굴을 획득하였습니다!]
“....크으, 진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만.”
전신이 삐걱대는 고통 속에서도 강혁은 떠오르는 메시지창들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거기다가 한계돌파마저 사용하지 않고 승리했다는 사실에 더욱 기뻤다.
‘한계돌파 없이도 S급 몬스터를 잡아냈다. 만약 한계돌파를 사용한다면 어쩌면 그 이상가는 몬스터도 잡을 수 있을지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즐거운 상상과 함께 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던전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곧 바깥으로 이동합니다.]
“그럼 돌아가자고.”
자신이 쓰러뜨린 전리품인 블랙 오크의 사체를 강혁이 붙잡았고, 그런 강혁을 바라보며 분노가 한마디 말을 던졌다.
-신과 악마를 믿지 마라. 그리고 그들을 따르고 경배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뭐?”
의미를 알 수 없는 분노의 말에 강혁이 되묻는 순간 강혁은 던전 바깥으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강혁은 한동안 분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
“....미친, 24시간 38분 19초.”
“....이게 말이 돼?”
강혁이 던전을 클리어함과 동시에 바깥에서도 그 전조를 확인하곤 그들은 스톱워치를 멈추곤 기함을 토해냈다.
24시간 38분 19초.
역대 B급 던전의 클리어 기록들을 모조리 부숴버리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의 탄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혁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기록 따위를 생각할 수 없었다.
“힉, 저....저건 또 뭐야?”
“신종 몬스터입니다. 협회에 연락하세요. 마족보다는 조금 아래지만 S급 몬스터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놈입니다.”
“....네!”
그렇게 한 달 만에 모습을 드러낸 강혁은 자신을 둘러쌓던 모든 음모론과 의심들을 단번에 부숴버렸다.
물론 정작 본인은 그런 것도 모른 채로 창수의 공방을 향해 바삐 달려갔지만.
‘아, 블랙 오크로 검이랑 갑옷을 만들면 얼마나 좋으려나.’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해부되게 생긴 블랙 오크였다.
그리고 해부된 블랙 오크의 사체는 강혁이 잘 사용할 예정이었다.
본래부터 머금고 있던 마기는 물론 신성력의 폭발로 신성력마저 고루고루 스며든 블랙 오크의 사체는 강혁을 미소 짓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