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18
털썩-
“자, 그럼 말해봐라. 듣고 판단해주지.”
2층으로 올라와 아무렇게나 놓여진 나무 의자에 걸터앉은 발터 밀란의 말에 강혁은 순순히 자신이 바라는 걸 털어놓았다.
“요즘 독기가 잘 성장을 안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무래도 이쪽 방면으론 네가 선구자 아니겠어?”
“맞는 말이긴 하군.”
발터 밀란.
암살과 독과 관련해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에 선 인물이 바로 그다.
더불어 그의 독기는 다른 이들의 독기를 수십 배는 압축한 듯한 파괴력마저 지니고 있을 정도.
그렇기에 그의 끄덕임은 옳았다.
그런 만큼 강혁은 자신이 해왔던 독기 수련법을 그에게 말해주며 해결 방안을 물었다.
“....참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야.”
“아, 그런 건가.”
“그래, 몸 안에 독기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독을 처먹는다는 발상을 한 게 놀랍군. 그런데 그게 성공한 게 더 놀라워.”
“....내가 틀린 거였구나.”
“틀리다마다. 본래 독기는 그렇게 성장하다간 몸이 먼저 망가져서 죽는다. 아마 네 트리플 에너지가 도움이 됐을 거라고 추측은 된다만....정확한 건 아무도 모르겠지.”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발터 밀란의 조언에 강혁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의 말대로 강혁이 가진 트리플 에너지.
그중에서 신성력이 아니었다면 강혁의 몸은 강해지는 독기를 이기지 못하고 한줌의 핏물로 변해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런 사실도 모른 채, 강혁은 발터 밀란에게 조언을 구했다.
“난 더 강해져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네 도움이 꼭 필요해.”
“....”
간절함마저 느껴지는 강혁의 모습에 입술을 꾹 깨물던 발터 밀란의 입이 열렸다.
“왜 그렇게까지 하려고 하지? 지금 네 수준이면 천천히 성장해도 언젠간 우리 곁에 다시 설 수 있을 거다. 우린 정체되었고, 너는 성장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굳이 무리를 하는 이유가 뭐냐.”
최강의 10인.
사람들은 그들을 밝게 빛나는 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이고 고여서 결국에는 썩어버린 물.
그들의 성장은 진즉에 정체되었다.
이미 몇 년 전에 멈춰버린 성장세는 다시 뛰어오를 기미 따윈 보이지 않았고, 그들은 멈춰버리고 말았다.
즉, 파죽지세로 성장을 거듭하는 강혁이라면 몇 년 안에 최강의 10인의 이름을 최강의 11인으로 바꿀 수 있을 터.
그렇기에 발터 밀란은 궁금증을 숨기지 않았다.
강혁이 이토록 간절하게까지 애원하면서 강해지고 싶어하는 이유를 말이다.
그리고 강혁이 강함을 갈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10년의 세월을 보답받고 싶다. 늦게 달린 만큼 더 빨리 결승점에 도달하고 싶다. 그리고 나아가 너희라는 결승점을 넘어서 그 너머에 있는 진짜 결승점까지 도달하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야.”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끈기 하나는 유별난 녀석이라니까.”
굳센 결의마저 느껴지는 강혁의 눈을 바라보며 발터 밀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격변이 시작하고 몇 년 뒤.
어느 정도 헌터라는 틀이 잡혔을 때, 발터 밀란은 강혁을 처음 만났다.
각성조차 하지 못했지만 최고의 헌터들 틈바구니에서 악착같이 버티던 강혁을 말이다.
처음에 그를 봤을 때만 하더라도 며칠 못 가서 나가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전전하는 전장은 각성을 한 헌터마저도 죽어 나가기 일쑤였으니까.
하지만 강혁은 버티고 버텼다.
상처를 입으면 신성력을 가진 헌터에게 치유를 받았고, 싸우기 위해 마기를 다루는 이의 마기를 받아들였다.
몸이 터져나가는 고통을 계속해서 느껴가며 자신들의 곁을 지키던 강혁의 모습.
그 모습을 오랜만에 다시금 본 것 같다는 생각에 발터 밀란은 강혁의 앞에 컵 하나를 내려놓았다.
탁!
“....? 뭐지? 술이라도 한 잔 하자는 건가?”
“그럴 리가. 네 끈기는 잘 봤다. 그럼 네 자질을 볼 차례 아니겠어? 난 네가 가진 일부분밖에 모른다. 네가 미친 것처럼 성장시킨 너의 독기. 확인해보겠다.”
스걱-
그 말을 끝으로 발터 밀란은 자신의 손바닥을 단검으로 그어버렸다.
무척이나 깊게 베인 듯 철철 흘러내리는 붉은 피가 유리잔을 서서히 채워나갔다.
하지만 고통스런 내색 하나 없이 잠자코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발터 밀란은 피가 절반쯤 찼을 무렵 상처를 없애버렸다.
트롤을 생각나게 하는 회복력에 강혁이 속으로 혀를 내두를 때, 발터 밀란이 피가 담긴 잔을 강혁에게 쭈욱 밀었다.
“한 모금을 마셔라. 네가 먹을 수 있게 어느 정도 중화도 했고, 해독제도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발터 밀란의 피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지간한 독보다도 강력하다.
S급 던전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들마저 그의 독에 당하면 핏물만 남긴 채로 녹아내릴 정도니까.
보는 것만으로 절로 식은땀이 날 정도로 어마어마한 독.
자신의 독 따위는 설탕 취급해버려도 이상할 게 없는 발터 밀란의 피를 바라보던 강혁이 유리잔을 붙잡았다.
“한 모금을 마시면 어떻게 되지?”
“한 모금을 마시면 네 성장 정도에 따라 버티거나 죽을 수 있고, 두 모금을 마시면 생사를 넘나들 거고 세 모금을 마시면 죽는다. 참고로 반컵 분량은 다섯 모금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태연하게 입에 담는 무뚝뚝한 발터 밀란을 바라보던 강혁이 이를 드러내며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거 다 마시고 살아남으면 너, 내 스승하는 거다?”
“....뭐? 잠깐....!”
의미심장한 강혁의 말에 발터 밀란이 몸을 날렸지만 강혁이 한 발 빨랐다.
고작해야 피(?)를 마시기 위해 마나로 신체까지 강화한 강혁을 발터 밀란은 붙잡지 못했고, 컵을 반쯤 채웠던 발터 밀란의 피가 강혁의 목구멍 너머로 넘어갔다.
“....컥!”
“....주사위는 던져졌다. 하아, 대체 어쩌자고 그런 미친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잘 살아봐라. 정말로 살아남는다면....네 스승이 되어 나를 넘는 독기를 가지게 만들어줄 테니까.”
착잡함이 가득한 얼굴로 파래진 강혁의 얼굴을 바라보며 발터 밀란이 말했다.
하지만 반컵 분량의 피를 들이킨 강혁의 귀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기다리던 메시지창을 확인함과 동시에 강혁은 눈을 감았다.
[몸에 들어온 독을 확인했습니다.]
[올 마스터의 재능이 독을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하급 독 저항[LV.8]이 성장합니다.]
[저항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특성 : 만독불침이 생성 중입니다.]
[현재 진척도 1%....]
-버텨라, 이 멍청한 자식아! 감히 내게 아무런 말도 없이 극독을 처먹어? 네가 뒤지면 지옥 끝까지 찾아가서 죽여버릴 거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듯한 분노의 목소리와 함께 말이다.
‘버티는 거....하나 만큼은....자신 있으니까....걱정 말라고.’
-....믿겠다.
벌벌 떨리는 강혁의 목소리를 들으며 분노가 수긍하는 순간 강혁의 정신은 어둠 깊숙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
“....30초가 지났군. 끝인가.”
독을 먹고 30초 만에 죽는다.
만약 독을 먹은 이가 헌터일 경우 사람들은 그를 보며 비웃을 것이다.
헌터가 되면서 얻은 마나와 굳건한 신체가 어지간한 독은 중화시키고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등급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저항력 또한 높아지는 법.
준 S급이라고 불리는 강혁 정도라면 어지간한 독 정도는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있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만약 발터 밀란의 피를 마시고 30초나 버텼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를 더 이상 비웃지 못할 것이다.
일반인은 물론 같은 헌터들에게도 재앙과도 같은 S급 몬스터들.
그들마저도 발터 밀란의 독 앞에선 30초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대단한(?) 일을 해낸 강혁을 내려다보는 발터 밀란의 시선에는 착잡함이 가득했다.
‘멍청했다. 저 녀석이 아무리 무대뽀라지만 설마 그걸 모조리 들이킬 줄이야. 내 실수였어.’
툴툴대긴 했지만 발터 밀란은 강혁은 존중했고, 응원했다.
그가 격변 당시에 보여준 끈기와 오기는 충분히 존중받고 응원받을 자격이 충분했으니까.
뭐, 지금까지 각성을 하지 못하고 노력만 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손가락질 했지만 그는 그를 믿었다.
언젠간 그의 재능이 만개할 것이라고.
그런데 만개한 그의 재능을 자신의 손으로 뭉개버렸으니 그가 느끼는 착잡함은 어마어마했다.
바로 그때였다.
꿈틀-
“....? 방금 움직인 것 같은데?”
죽은 줄 알았던 강혁의 몸이 살짝이나마 움직인 것이었다.
그 사실에 깜짝 놀란 발터 밀란이 강혁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살아 있다.”
이미 30초를 훌쩍 넘어 1분대에 돌입했음에도 강혁은 살아 있었다.
아니,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해독하고 있는 건가? 내 독을? 나조차 이루지 못한 만독불침도 아닌 이상에야 그럴 리가....”
발터 밀란의 독에는 해독제가 없다.
그가 가진 해독제도 미량의 피만 해독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강혁이 마신 반컵 분량의 피는 그조차도 해독할 수 없는 극독.
그런데 강혁은 그런 극독을 스스로 해독해내고 있었다.
발터 밀란 본인조차 해내지 못한 위업에 발터 밀란이 놀람 가득한 얼굴로 서서히 안색이 돌아오는 강혁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단 하나.
“지켜보겠다. 네가 나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 그러니 눈을 떠라, 이강혁.”
만약 강혁이 눈을 떴다면 분명 강혁의 눈앞에는 이런 메시지창이 떠 있었을 것이다.
[뛰어난 스승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특성 : 청출어람이 활성화됩니다.]
[지금부터 발터 밀란이 가르치는 모든 재능에 대한 성장 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라는 내용의 메시지창들이 말이다.
그렇게 연신 꿈틀거리며 서서히 안색을 회복해나가는 강혁의 모습을 발터 밀란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가만히 바라볼 따름이었다.
*
“....커헉! 쿨럭쿨럭!”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뜬 강혁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마치 평생 동안 숨을 쉬지 못했던 사람처럼 한참을 심호흡하며 숨을 고를 때,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로 살아남았구나. 놀라워.”
“....발터. 얼마나 지난 거지?”
누군가는 다름 아니라 발터 밀란이었다.
처음 피를 마셨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의 모습에 강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안 지났구나.’
자신이 피를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발터 밀란의 대답을 기다리는 강혁에게 발터 밀란이 현실을 알려주었다.
“72시간이 지났다.”
“....? 7시간도 아니고 72시간이라고?”
72시간.
무려 3일이나 지났다는 강혁이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발터 밀란은 무언가를 잔뜩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각양각색의 병에 담긴 액체들을 강혁이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뭐지?”
“오늘부터 오른쪽에 있는 독부터 왼쪽에 있는 독까지 차례대로 마셔라. 만약 네가 맨 왼쪽에 있는 독마저 버텨낸다면....나조차도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룰 수 있겠지.”
“....뭐?”
“왼쪽으로 향할수록 내 피와 비슷하거나 더한 독들도 있으니 주의해서 마시도록. 독의 양은 충분하니 마신 독에 완전히 저항할 때까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마라. 이번 같은 오만은 두 번 다시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아니, 잠깐 그게 무슨....”
방금 전 독혈(毒血)을 마시고 황천길에 올랐다가 내려온 사람에게 또 다시 독을 마시라는 말도 안 되는 사람에 강혁이 발끈할 때였다.
“네가 원한 것 아니었나? 스승이 되어달라더니 가르쳐줘도 뭐라하는 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마저 찌푸리며 말하는 발터 밀란의 대꾸에 강혁은 깨달았다.
발터 밀란은 자신을 놀리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자신을 가르치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공과 사는 확실한 강혁의 말투에 발터 밀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강혁도 마냥 아무런 생각없이 독을 마시려는 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중급 독기[LV.2]가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특성 : 불완전한 만독불침이 생성되었습니다.]
[불완전한 만독불침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더 강한 독을 섭취해야합니다.]
[당신의 특성이 완성되는 날, 특성 : 불완전한 만독불침은 신체 : 만독불침으로 진화합니다.]
[재능 : 중급 독 저항[LV.3]이 특성 : 불완전한 만독불침에 흡수되었습니다.]
[뛰어난 스승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특성 : 청출어람이 활성화됩니다.]
[지금부터 발터 밀란이 가르치는 모든 재능에 대한 성장 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눈을 뜨자마자 눈앞을 가득 메웠던 메시지창들.
그중에 섞여 있는 불완전한 만독불침에 대해서 확인하는 순간 강혁의 독극물 레이스는 예정되어 있던 셈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강혁은 가장 오른쪽에 있던 병을 집어들곤 단숨에 들이켰다.
“커허억....”
“버텨라. 내 독도 버텼으면서 그까짓 저급한 독에 지지 마라!”
“....전혀 저급한 것 같지가 않은데.”
목구멍부터 시작해서 전신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강혁의 독극물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죽다 살아나더니 다시 죽으려고 환장을 하는구나. 미친 놈 같으니.
툴툴대면서도 기쁜지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한 ‘분노’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