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15
“이번에는 꽤 괜찮은 이들이 많은 것 같네.”
“그러게나 말이야. 특히 철혈에서도 제대로 준비를 한 것 같아 보이는데?”
백여 명에 달하는 수 많은 이들이 헌터 협회 내부에 마련된 라운지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수백 개가 넘는 감시카메라가 보내오는 영상들을 보여주는 커다란 스크린이 놓여 있었다.
전부가 헌터는 아니었지만 전부 헌터와 관련된 직종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길드의 스카우터, 협회의 직원, A급 헌터 등.
다양한 이들이 얽혀서 이번 시험에서 골라갈만한 신인들을 빠르게 훑었다.
물론 시선이 쏠리는 곳도 분명 존재했다.
“성녀는 조금 아쉽네.”
“성기사단으로 들어갔다고 했나? 루터 할론의 딸 다운 선택이로군.”
성기사단.
한국에 존재하는 길드 중에 한 곳으로 중견급으로 취급받는 길드였다.
다만 중요한 점은 성기사단이 루터 할론이 길드장으로 있는 ‘신전’의 산하 길드라는 점이었다.
즉,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의 하청 회사에 입사한 것과 비슷한 셈.
덕분에 시작부터 A급이 될 거물 신인을 놓친 스카우터들과 길드장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나머지 한 사람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강혁이라....”
“트리플 에너지라는 화제성과 필기 시험 만점으로 던전 내 정보에도 빠삭하고....데려올 수만 있다면 확실히 길드에 도움은 되겠어.”
이강혁.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던 존재가 바로 백여 명의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존재였다.
스카우터들은 물론이고 꽤 이름이 알려진 길드장과 강혁의 소식을 듣고 그를 영입하기 위해서 외국에서 온 이들까지.
참으로 다양한 이들이 강혁의 모습을 바라보며 영입 욕구를 불태웠다.
뭐, 모두가 강혁에 대해 좋은 생각만 가지고 그를 지켜보는 건 아니었다.
“저 녀석 별 같잖은 능력 좀 얻었다고 건방지게 나서는 꼴 좀 보라지.”
“쯧, 철혈을 동네 개처럼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하게도 그들은 철혈 소속의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강혁이 협회에 들어오자마자 기자들에게 했던 말을 모조리 들어서 알고 있었다.
철혈은 오늘 아무도 통과하지 못한다.
정확하게 철혈을 엿 먹이려는 의도가 다분한 강혁의 모습에 그들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얼마 가지 않았다.
‘어차피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우리들이 직접 가르치고 버스를 태워준 녀석은 평범한 C에서 B급 헌터보다도 강해. 이강혁 같은 반푼이 따위가 그들을 탈락시킬 순 없다.’
‘기껏해야 C급 유망주 몇 명 정도가 이강혁의 한계일 게 분명해!’
강혁의 각성 검사 결과는 훤히 아는 그들에게 있어서 강혁의 말은 그저 오기로 내뱉은 말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강혁이 철혈의 C급 유망주 조호수에게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유지되었다.
물론.
-조호수 지망생 탈락했습니다. 가까운 출구로 이동해주세요.
“....!!!”
“....미친, 방금 봤어?”
조호수가 정말 순식간에 탈락 당하는 모습을 본 순간 그들은 모든 생각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알던 이강혁은 더 이상 이곳에 없었기에.
추가로 조호수를 탈락시킬 때, 강혁이 보인 움직임을 제대로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B~A급 헌터가 득시글거리는 이곳에서조차 말이다.
이강혁의 움직임을 제대로 본 곳은 S급 이상들에게 따로 준비되는 라운지에만 존재했다.
“이강혀어어어어억!”
S급들 이상에게 준비된 라운지.
그곳에서 이강혁이 처참하게 망가질 모습을 기대하며 술을 마시던 김승태는 시뻘개진 얼굴로 목청을 높혔다.
뭐, 그의 옆에서 강혁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연은 옛일을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옛날 생각나네.’
10년 전.
아직은 학생이던 수연이 동네에서 잘 생기기로 유명했던 강혁의 편의점 알바 모습을 보기 위해 편의점에 갔을 때.
몬스터들이 나타났을 때, 강혁이 전신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자신을 지켜주었던 그 모습.
왠지 모르게 스크린에 비치는 강혁의 모습은 10년 전 그 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일까?
수연은 옛 생각에 빠져서 옆자리에 있던 승태가 어디론가로 사라지는 걸 보지 못했다.
*
-탈락했습니다.
-탈락했습니다.
-탈락....
“후우, 이제 철혈은 얼추 처리한 것 같은데.”
조호수를 시작으로 강혁은 눈에 보이는 철혈의 유망주들을 모조리 탈락시키고 다녔다.
C급은 물론이고 B급 유망주들마저 그의 상대는 아니었다.
오로지 검술 하나 만으로 달성한 위업에도 강혁은 개의치 않았다.
‘수준이 너무 낮았어.’
자신이 상대했던 이들의 수준이 너무나도 낮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정말 이들이 C급, B급이 맞는지조차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들은 허술했다.
물론 일주일 내내 무신과 대련을 해댔으니 강혁의 눈이 높아진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지만.
아무튼 철혈 사냥을 마친 강혁은 약간의 심호흡을 끝으로 피로를 떨쳐냈다.
사실 체력적으로 문제될 건 없었다.
현재 강혁의 사대 스탯은 A급 수준.
고작해야 C~B 정도의 유망주들을 탈락시키는 게 힘든 일은 아니었으니까.
약간의 숨 고르기를 마친 강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해볼까.”
시험이 시작하고 30분.
남은 시간은 고작 30분에 불과 했지만 강혁은 오히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A급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A급 구역을 향해 내달렸다.
*
강혁이 A급 구역을 향해 내달리는 그 시각 승태는 누군가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A급 보스 소환해.”
“....예? 하지만 시험에서 A급 보스의 소환은 금지 되어....”
“닥치고 하라면 해! 응시자들의 수준이 높아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서 했다고 변명하면 되잖아.”
“아....알겠습니다.”
서슬퍼런 승태의 기세에 일반인에 불과한 헌터 협회 직원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최강의 10인.
그중에서도 하위권에 위치한 승태라지만 일반인에게 있어선 그나 니아 아리엘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다급하게 손을 놀리면서 새로운 몬스터를 던전에 소환시키는 협회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승태가 미소지었다.
“이강혁....넌 절대로 헌터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앞에 거대한 녹색 괴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우워어어어어!
쩌렁쩌렁하게 포효를 터뜨리는 5M에 육박하는 거대한 녹색 괴물.
그의 정체는 A급 헌터 도살자라고도 불리는 A급 최강의 몬스터인 오우거였다.
소환이 끝나고 완전해진 모습과 함께 오우거는 A급 구역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실제 오우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에 승태는 입가에 완연한 미소를 띄운 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승태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흐응, 더 재밌어질 것 같으니까 놔둘까?’
니아 아리엘.
오우거녀, 아니 무신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같은 최강의 10인 승태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은신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확인할 것을 모두 확인한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캬아아악!
플래쉬 스파이더.
흔히들 점멸 거미라고 불리는 이 개체는 강철만큼 단단한 외골격을 지닌 거미형 몬스터로 A급에 랭크되어 있었다.
그 강함은 단단한 외골격에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바로 점멸 능력이었다.
눈앞에서 휙휙 순간이동을 하는 점멸 거미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몬스터로 정평이 나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런 점멸 거미를 상대로 강혁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스거거걱-
한 번의 일격으로 2마리의 점멸 거미를 양분해버리는 놀라운 모습마저 보여주었다.
A급 몬스터답게 빠르게 포인트가 치솟는 것을 확인한 강혁은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 기세라면 충분히 A급은 달성하겠군.’
본래 A급 헌터라면 B급 라인에서 놀아도 충분하다.
B급 보스 몬스터만 잡는다면 A급은 거의 확정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혁이 A급 라인에서 사냥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A급에서 멈출 생각이 없다. S급, 나아가 다른 최강의 10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B급으론 임팩트가 부족해.’
A급을 넘어선 미래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기 위해서는 이 정도 위험 정도는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생각도 잠시 고개를 내저어 잡생각을 떨쳐낸 강혁은 나머지 점멸 거미를 모조리 처리한 뒤, 자리를 옮겼다.
타다닥-
바로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강혁의 고개가 홱 돌아갔고 거기에는....
“....이강혁 씨?”
“루터 아재 딸내미군.”
“....?!”
어디서 많이 본 성녀, 엘리자베스 할론이 있었다.
강혁의 말에 흠칫한 그녀가 강혁을 바라보았지만 강혁은 자신의 실수를 아는지 모르는지 손을 내저었다.
“난 A급이 될 생각이니까 어지간하면 동선이 겹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저도 마찬가지에요.”
A급.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그 등급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여야한다.
더군다나 철혈 사냥 때문에 30분이란 꽤 긴 시간마저 소모한 강혁에 동선이 겹치면 큰 손해다.
물론 강혁 만큼의 파괴력이 없는 엘리자베스 또한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곤 놀랐던 것도 잠시 다시금 각자의 사냥에 집중하기 위해서 자리를 떠났다.
‘루터 아재 딸내미....분명 그 말은 그 날 던전에서....’
다시금 사냥을 위해서 반대편으로 몸을 날리며 방금 강혁이 한 말을 곱씹던 엘리자베스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쿵-!
“....오우거? 대체 오우거가 왜 여기에?”
A급 보스 몬스터.
하지만 A급 보스 몬스터인 주제에 S급이 없으면 공략이 안 되는 기형적인 몬스터.
오우거가 그녀의 앞길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는 사실에 엘리자베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침착성은 가지고 있는 지식에서 비롯되는 법.
갑작스런 돌발 상황은 엘리자베스에게 당황을 주기엔 충분했다.
그렇지만 오우거는 엘리자베스가 정신을 차릴 시간 따위는 주지 않았다.
-오우워어어어!
괴성과 함께 엘리자베스를 향해 오우거가 성인 머리통보다 큰 주먹을 내질렀다.
어마어마한 파공성과 함께 막대한 질량을 가진 오우거의 주먹을 보는 머릿속이 새하얘진 엘리자베스가 신성력 보호막을 전개하며 두 눈을 질끈 감을 때였다.
“앞에 봐라!”
쾅-!
검과 주먹이 부딪쳤다곤 믿기지 않을 폭음이 눈앞에 들려왔고,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강타했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뜬 엘리자베스의 앞에는 강혁이 평범해보이는 장검으로 주먹을 막아내고 있었다.
“....왜죠? 왜 저를....역시 당신은....”
자신을 구해준 강혁의 모습에 엘리자베스가 한 달여 전 자신을 구해줬던 가면의 존재를 그릴 때였다.
“뭔 소리 하는 거야! 빨리 도와줘!”
“....아, 넵!”
당혹감이 잔뜩 깃든 강혁의 목소리에 머릿속에 그려지던 가면의 존재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래, 아버지를 연상케하는 강함을 지닌 존재가 고작 오우거에게 밀릴 리가 없지.’
강혁과 가면의 존재 사이에 존재하는 ‘강함’을 다시 한번 상기함 그녀가 강혁을 도왔다.
빠각-
강철 건틀렛을 낀 그녀의 주먹이 오우거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그 충격에 오우거가 잠시 휘청인 사이 강혁은 주먹과의 대결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손목이 저릿저릿한 충격에 손을 잠시 풀던 강혁을 바라보며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도망가죠.”
도망.
확실히 엘리자베스의 선택은 옳았다.
주최 측이 미친 게 아닌 이상 저 괴물이 다른 라인까지 침범하게 두진 않았을 터.
지금부터 B급 라인으로 도망가 사냥을 이어나가는 편이 더 좋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었으니까.
실제로 그녀의 판단은 옳았고, 그렇게 한다면 두 사람의 A급 라이센스는 확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왜?”
“....예?”
“방금 전, 내가 한 번 구해줬으니 이번엔 네가 나를 도와줘.”
“아니, 그게 무슨....설마 당신은....”
설마설마하는 생각과 함께 떠오르는 강혁의 다음 말에 안 그래도 하얗던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이어진 강혁의 말은 그녀가 생각한 말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우린 오우거를 잡는다. 기브 앤 테이크 알지? 이번엔 네 차례야.”
강혁이 위험을 무릎 쓰고 엘리자베스를 구한 이유.
그건 그녀가 루터 할론의 딸이라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빠르게 S급 헌터가 되기 위한 제물인 오우거를 잡기 위해서였다.
S급 헌터조차도 진땀을 빼게 만드는 강력한 몬스터인 오우거.
‘저놈을 받으면 준 S급 판정이다.’
A급보다도 한 단계 위.
어쩌면 실기 시험을 치루자 마자 S급에 다다르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당사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강혁은 미소를 지었다.
‘누군진 모르지만 고맙다!’
자신에게 선물(?)을 보내준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던지며 강혁은 자신이 직접 만든 장검을 꽈악 쥐며 소리쳤다.
“공격은 내가 한다. 방어에 집중하면서 어그로를 끌어줘!”
“....예에?!”
그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진귀한(?) 대접에 엘리자베스의 무표정한 얼굴에 당황과 놀람이라는 감정이 번져나갔다.
물론 강혁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한방에 끝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그것을 단 한방에 담을 준비를 시작한 강혁에게 더 이상 엘리자베스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