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7
“....머리가 깨질 것 같군.”
분노와 인내를 받아들인 충격과 신체가 무너져내리는 고통에 기절했던 강혁이 눈을 떴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본 강혁은 놀람을 금치 못 했다.
“....집? 집이라고? 나는 분명 던전에서....”
다름 아니라 강혁이 눈을 뜬 곳은 집이었다.
자신이 10년 넘게 살아온 구식 아파트.
그곳에서도 거실에서 눈을 뜬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볼도 꼬집어보고 손등도 꼬집어보던 강혁의 머릿속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멍청아, 꿈 아니니까 바보 같은 짓 그만해라.
“....분노?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익숙한 목소리의 정체는 분노였다.
분노 덕분에 꿈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강혁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노도 있다는 건 꿈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럼 강혁은 집에서 한참 떨어진 강남 부근에서 눈을 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분노의 말에 강혁은 깜짝 놀랐다.
-너의 기억을 더듬어서 너의 집이 있는 걸 파악하고 너만 이곳으로 보낸 거다.
“....그게 된다고?”
보통 던전이 클리어 되거나 제한 시간 초과로 개방이 되면 그 안의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나타난다.
10년 동안 그 법칙이 깨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그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분노는 지금 자신이 그 법칙을 깼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강혁은 그 말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 자신이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었으니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터.
“그런데 내 무구들은? 던전에 남겨진 건가?”
그나마 아쉬운 점은 무구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죽 갑옷, 대궁, 장검 등.
좋은 무구들은 아니지만 10년의 정수가 모인 만큼 애틋한 마음은 분명 있었기에 아쉬운 강혁에게 분노가 코웃음쳤다.
-허리춤을 봐라.
“....허리춤?”
-말하지 않았느냐. 네 무구들은 내 선물에 잘 담아두겠다고.
“....아!”
분노의 말에 그제야 기절 전의 분노가 했던 말을 기억해낸 그가 반색하며 허리춤을 만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적당한 크기에 주머니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 장난해?”
-고맙다고 고개를 조아려도 모자랄 판에 부정이라니 짜증나는군. 싫으면 내놓던가.
장난을 치는 것 같진 않은데....
쌀쌀 맞은 분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강혁은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주머니의 상태창을 불렀다.
물건의 상태창은 아티팩트 급만 가질 수 있기에 그리 기대하지 않던 강혁은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아공간 주머니]
무한한 아공간이 응축된 주머니.
주머니에 각인된 분노의 마기가 주인을 가립니다.
주인의 마기를 주입하지 않으며 주머니를 열 수 없습니다.
주머니 안에 얼마나 물건이 들었든 사용자는 주머니의 무게만 느낄 수 있습니다.
“....미친.”
-이제야 알겠느냐! 이 분노의 위대함을!
“믿습니다!”
기고만장해하는 분노의 모습이 떨떠름하긴 했지만 눈앞의 아티팩트를 얻게 된 강혁은 몇 번이고 그를 찬양해줄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아공간 아이템이지 않은가?
막말로 분노가 아니라 철혈의 길드장인 김승태일지라도 찬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그건 좀 아닌가?’
머쓱함을 느끼며 머리를 긁적거리는 강혁에게 분노는 더 찬양하라면서 기쁨을 여실히 드러냈다.
참 할 짓 없는 악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강혁은 잊고 있던 한 존재를 깨달았다.
“인내는? 인내는 왜 목소리가 안 들리지?”
인내.
강혁이 얻은 특성은 두 개다.
하나는 지금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분노고 나머지 하나가 인내.
분노의 힘을 견딜 수 있게 도와줬던 만큼 솔직하게 분노보다 인내가 더 마음에 든 강혁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분노의 말에 강혁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인내는 자신의 던전으로 돌아갔다.
“돌아가? 왜? 나랑 계약도 했는데?”
-그건 그냥 나중에 만날 때를 대비해서 미리 도장이나 찍어둔 것과 다르지 않다. 온전한 인내를 얻으려면 직접 그 녀석의 던전으로 가 본체를 만나야 할 거다.
“....아쉽네.”
-아쉽긴! 인내 따위보다 몇 배는 더 훌륭하고 대단한 이 몸께서 있거늘!
물론 분노는 인내 따윈 필요 없다는 호언장담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다다익선이라는 게 괜히 있는 건 아니지.’
목숨을 걸고 두 개의 거대한 힘을 받아들였는데 하나가 반쪽이었다는 걸 깨달았으니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런 아쉬움도 잠시 강혁은 두 개의 힘을 얻고 바뀐 상태를 확인하고자 상태창을 확인했다.
“....뭐야? 뭐가 이리 많이 바뀌었어?”
기절 후, 약 1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강혁의 상태창은 격변을 맞이한 뒤였다.
[이강혁]
재능 : [올 마스터]
신체 : [반성반마(半聖半魔)]
특성 : [한계돌파] [성자] [분노] [인내]
세부 재능 : 상급 전투 감각[LV.1] 중급 몬스터 지식[LV.3] 하급 궁술[LV. 6] 하급 검술[LV. 9]....
[근력] : 30 [체력] : 25 [민첩] : 28 [지력] : 23 [마나] : 50 [신성력] : 50 [마기] : 50
“....미쳤네.”
재능이야 딱히 바뀐 건 없었다.
워낙에 많은 재능이 있었기에 뭐가 바뀐 건지 제대로 파악이 안 되기도 했고.
하지만 스탯이 크게 바뀌었으며 신체라는 새로운 란이 개방되어 있었고, 특성 또한 분노와 인내 두 개가 생겨나 있었다.
고작 한 시간 만에 바뀐 것치곤 어마어마하게 바뀌어 있는 셈.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마기 스탯이었다.
‘신성력이 절반 깎이고 마기 스탯이 그만큼 오른 건가?’
강혁의 예상대로였다.
정확하게는 그의 신체 : 반성반마(半聖半魔)의 능력이었다.
[반성반마(半聖半魔)]
신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성력과 마기를 합친 값의 절반만큼 각 스탯에 적용됩니다.
반신에 가까운 신체인 만큼 스탯들이 크게 상승합니다.
단, 마기와 신성력의 균형이 깨질 정도로 힘을 사용하면 신체가 붕괴할 수 있습니다.
* 붕괴를 버틸 수 있는 단단한 신체를 추가적으로 얻는 걸 추천드립니다.
“과연....성자 특성으로 얻은 스탯들이 마기에 절반 가까이 배분된 거였네.”
-쯧, 그런 더러운 기운 따윈 버리고 마기에 집중해라! 우리 칠죄들의 힘만 있더라도 넌 최강이 될 수 있으니까!
“됐어, 내 재능이 뭔지 잘 알면서 그런 말을 해?”
-....쳇, 전대랑 같은 얘기를 하는 모습이 보니 열불이 터지는군.
“전대? 무슨 전대?”
-됐다, 아직은 네가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궁금하게만 하고 대답은 안 해주네.
사람을 놀리나 싶은 분노의 대답에 강혁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그런 생각을 떨쳐냈다.
그의 말대로라면 말해주고 싶어도 못 말하는 성질의 내용일 가능성이 컸다.
‘언젠가는 얘기해주겠지.’
자신과 계약한 이상 언젠가 분노가 ‘전대’라는 이에 대해서 얘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강혁은 궁금증을 접었다.
괜히 알지도 못하는 걸 계속해서 붙잡고 있다간 괜한 심력만 소모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뭐부터 할 거냐.
궁금증을 떨쳐내는 강혁에게 분노가 물었다.
새로운 올 마스터인 강혁의 행보가 궁금했던 것.
그리고 그런 분노의 물음에 강혁은 씨익 웃어 보이며 자신이 가장 바래왔던 것을 말해주었다.
“말해서 뭐해? 헌터 라이센스부터 다시 따야지.”
각성도 했고, 강력한 능력도 얻었으며 스탯 또한 급증했다.
‘이 정도라면 시작부터 B급. 잘하면 A급도 가능하겠어.’
시작부터 B~A급이라니 누군가 들었다면 놀람을 금치 못했겠지만 강혁은 아니었다.
‘이미 10년이나 뒤쳐졌다. B가 나와도 손해야. 무조건 A를 딴다.’
강혁은 자신과 함께 출발했던 이들이 이미 결승전 근처에 도달했다는 걸 안다.
그에 반해서 강혁은 10년 만에 출발선에 서게 된 것.
그렇기에 더더욱 높은 등급을 갈망했고, 그 결과.
“일주일 뒤에 있는 필기 시험에서 만점을 딴다.”
던전에서 나온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강혁은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이 10년 동안 모아온 각종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하나둘 쌓여가는 몬스터들의 지식과 함게.
[재능 : 중급 몬스터 지식의 경험치가 오릅니다.]
[재능 : 중급 몬스터 지식의 경험치가....]
[재능 : 중급 몬스터 지식의 경험치가....]
강혁의 재능 또한 함께 성장했다.
‘목표는 5레벨이다.’
현재 강혁의 몬스터 지식의 레벨은 중급 3레벨.
일주일 동안 강혁은 그것을 2단계나 올릴 생각을 했고, 자신 또한 있었다.
그가 헌터가 되지 못한 건 끈기가 없어서도 의지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출발선에 설 재능이 부족했을 뿐.
그리고 재능이라는 입장권을 따낸 그에겐 그 어떤 스프린터보다도 빠르게 달린 준비가 되어있었다.
-쯧, 무료하군.
쉴 새도 없이 공부에 열중하는 강혁의 모습에 분노는 무료하다는 말과 함께 목소리를 감추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노력하는 강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빠져주는 것이었다.
분노라는 이름의 츤데레의 배려와 함께 일주일 뒤, 세상을 놀래킬 하늘이 버린 재능의 주행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강혁은 알지 못했다.
일주일 뒤, 필기 시험장에서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떨쳐질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이미 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확하게는 이강혁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가면의 존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었지만.
*
“....여긴?”
“살았다! 살았어!”
“흐하하하! 성녀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시간 가량의 시간이 지나고 밝은 빛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빌딩의 숲 한가운데에서 나타났다.
그녀의 주위에는 고작 몇 시간 사이에 추레해진 시민들이 함께였다.
그리고 3시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엘리자베스와 시민들에게 수십 대의 카메라와 녹음기가 들이밀어졌다.
고된 노동,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온 이들에게 할 법한 일은 아니었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들을 물리지 않았다.
‘알려야 돼. 우리를 구해준 영웅에 대해서.’
던전이 클리어가 됐다는 걸 깨닫자마자 주위를 둘러보고 가면의 존재가 없다는 걸 확인한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그는 모습을 감추었지만 살아남은 시민의 입이 수십이 넘는다.
언젠가 그에 대한 정체가 알려질 걸 생각하며 지금 이 자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을 때, 그에 대한 걸 밝히는 것이 옳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생각을 마치고 자신을 재촉하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엘리자베스가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는 자신에게 질문을 날린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성녀님! 혼자서 대체 던전 클리어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 던전의 난이도가 무척이나 쉬웠던 겁니까?”
안에서 겪은 고초도 모른 채, 던전이 쉬웠냐고 묻는 기자의 모습에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최소 D. 보스 몬스터까지 있었으니 C에서 B라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A일지도 모르죠.”
“하하, 그건 좀 비약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자신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너스레를 떠는 기자의 모습에 엘리자베스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그를 나무랐다.
“제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말입니다.”
“....”
엘리자베스 할론의 아버지 루터 할론.
그를 모르는 기자는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하다 못해 흠모하는 그녀가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힐 리가 없다는 것 또한 알았다.
그렇기에 기자들은 기대에 빠졌다.
‘이거....’
‘....특종이다.’
특종의 냄새가 솔솔 나는 걸 느꼈기에 기대감 가득한 두 눈으로 엘리자베스를 바라볼 때, 엘리자베스는 그들이 바라는 특종을 던져주었다.
“저희는 던전 안에서 한 명의 헌터를 만났습니다. 그 헌터가 저희 모두를 구한 영웅입니다.”
“....성녀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가능한 것 아닙니까?”
한 기자가 그녀를 치켜세우기 위해서 질문을 던졌지만 엘리자베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전 들러리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만 얹었을 뿐이고 보스 몬스터 또한 그 혼자서 처리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녀께서는 최대 A급에 달하는 던전을 헌터 혼자서 클리어했다는 겁니까?”
“예.”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에 기자들의 얼굴에 설마하는 기색이 떠올랐고,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던전을 솔로 클리어하려면 최소 1단계 이상 높은 등급을 가진 헌터만 가능하다.
즉,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헌터의 등급은....
“최소 S급. 어쩌면 제 아버지와 같은 최강의 10인급일지도 모르죠. 저는 오늘 어쩌면 최강의 10인이 11인으로 늘어나는 미래를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 S급이었다.
사람들은 전율에 빠졌다.
S급.
그 드높은 등급은 10년이 지난 지금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S급을 넘어선 천외천인 최강의 10인마저 거론된 상황.
하지만 그들은 그녀의 말을 믿었다.
그녀의 아버지 루터 할론의 이름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에 최강의 10인에 합류하게 될 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그녀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저와 시민들을 살려주신 가면의 존재께 보답하고자 헌터 라이센스를 전례 없는 성적으로 통과하여 그에 보답하겠습니다.”
“하지만 성녀께서는 보조에 특화되지 않으셨습니까?”
전례 없는 성적.
그건 전투 능력 없는 보조 헌터 따위에겐 주어지지 않는 영광.
그걸 잘 아는 기자가 그녀에게 가능하겠냐는 말을 돌려서 물었고, 그녀는 그에 응해주었다.
꽈드드득....퍼어어어엉!
주먹이 새하얘질 정도로 꽉 쥐었던 그녀가 허공을 향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빛기둥이 치솟으며 하늘의 구름을 조각조각내며 자신의 위력을 알렸다.
보조 직업이라곤 믿기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기자들이 턱이 빠진 것마냥 입을 헤- 벌리고 있을 때, 그녀는 한 마디의 말만을 남기고 모습을 감추었다.
“제 특성은 새롭게 진화했습니다. 자세한 건 필기가 끝나고 실기 때 보여드리죠.”
그 날 전 세계에 신문의 1면에는 ‘가면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와 ‘최강의 성녀’라는 이야기가 가득하게 되었다.
물론 구식 아파트의 자신의 방에서 열심히 공부 중인 강혁은 모르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