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6
“....정말 혼자 가셔도 괜찮겠어요?”
1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재능을 복구한 강혁은 자신을 걱정하는 엘리자베스를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모를 위험에서 저들을 지키려면 네 힘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이 일은 나 혼자서만 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저희를 위해서 희생하신다니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후우, 망할 나도 혼자 오라고만 하지 않았어도 같이 가는 건데.’
보스 몬스터.
통상적인 몬스터보다 배, 혹은 몇 배나 강력한 몬스터를 혼자 만나러 간다?
솔직한 말로 자살 시도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 혼자 가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걸 강혁은 알고 있었다.
‘저 화살표는 좀 안 보였으면 좋겠군.’
한 시간 전 메시지가 떴을 때부터 깜빡거리며 빨리 오라는 듯이 재촉하는 화살표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며 강혁은 정보들을 정리했다.
‘일단 엘리자베스는 나에 대해서 모른다. 그리고 던전에 대한 정보는 오로지 나만이 볼 수 있다.’
검술 재능이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강혁은 엘리자베스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강혁은 던전의 이름이라도 볼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는 걸 알아냈다.
‘XX의 던전이라고 했지?’
강혁이야 이곳이 분노의 던전이라는 걸 알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던전의 주인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강혁은 설마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 던전은 나 때문에 생긴 건가?’
올 마스터의 재능을 각성하고 던전에 말려들었다.
거기에 던전의 정보 및 던전의 주인 등의 모습을 보아 할 때, 자신에게 무언가 기대를 하고 있음은 확실했다.
즉, 이 일련의 사태가 강혁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 사실이 알려지면 해부라도 당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
던전 생성을 일으키는 헌터.
당장에 정부나 헌터 협회에서 잡아가서 감옥에 가두거나 생체 실험을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무조건 숨겨야겠어.’
자신의 재능의 일부 등은 밝히더라도 이와 같은 사실은 영원히 묻어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강혁은 화살표를 따라갔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강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엘리자베스는 두 손을 모으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저와 다른 이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영웅의 앞길에 축복만이 가득하길.’
물론 정작 강혁은 필사적으로 가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중이었지만 그녀가 그 사실을 알 길은 없었다.
*
“....전신이 찌릿찌릿하군.”
화살표는 목적지에 도달하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무저갱처럼 어두운 동굴 앞.
그 앞에 서자 강혁은 감전이라도 된 것마냥 전신이 찌릿찌릿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동굴 내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낀 강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기....’
기운의 정체는 다름 아니라 마기였기 때문이다.
마기.
악마들이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 혹은 계약자에게 내리는 힘이다.
당연하게도 그 힘은 발군.
신성력이 방어에 치중된 힘이라면 마기는 공격에 치중된 힘이었다.
강혁 또한 마기를 아주 미량이지만 가지고 있었다.
상태창에 표시조차 안 될 정도의 미량이긴 하지만.
아무튼 마기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강혁인 동굴 안의 마기가 얼마나 질이 높고 양이 많은지 직감적으로 느꼈다.
추가로 강혁에게 전투의 새로움을 느끼게 해준 전투 감각 또한 미친 듯이 경고를 울렸다.
즉.
‘....보스 몬스터는 악마와 관련된 무언가인가.’
보스 몬스터이자 던전의 주인인 존재.
그의 정체는 아마 악마와 관련된 무언가일 터였다.
하지만 여기서 하루 종일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한숨을 내뱉은 강혁이 장검을 꽈악 쥔 채로 동굴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와 함께.
[던전의 주인이 꾸물대지 말고 빨리 들어오라며 재촉합니다.]
“....좀 닥쳐라, 제발.”
세 살배기 어린애처럼 빨리 오라며 재촉하는 던전의 주인의 메시지가 강혁을 반겼다.
*
“아무것도 없군.”
바깥에서 느껴지는 질 높은 마기와 달리 동굴 안은 평범했다.
물론 짙은 마기 탓에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하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 흔한 몬스터 한 마리 없는 동굴 안의 모습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전진하는 강혁을 던전의 주인이 재촉했다.
[던전의 주인이 굼뱅이를 삶아 먹었냐며 타박합니다.]
[던전의 주인이 그냥 다 죽일까? 하는 고민을 시작합니다.]
[던전의 주인이....]
“....간다, 가. 빌어먹을 자식아.”
마치 심해에라도 들어와 있는 것처럼 심장은 답답하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던전의 주인은 강혁의 상태 따윈 개의치 않았다.
결국 강혁은 성자 특성으로 얻은 신성력으로 전신을 보호하고 마나로 신체를 강화했다.
[던전의 주인이 자기 집에서 더러운 기운을 내뿜지 말라고 합니다.]
“아, 몰라. 이것도 안 쓰면 그냥 죽여라, 죽여.”
하다하다 이젠 신성력조차 쓰지 말라고 협박하는 그의 모습에 강혁은 배 째란 듯이 신성력을 사용하며 동굴 깊숙이 들어갔다.
배 째라 전법이 통했는지 강혁은 그 뒤로 메시지를 보지 못 했다.
“진즉에 이렇게 할 걸 그랬네.”
조용해진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린 강혁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의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입가에 맺힌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항거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했습니다.]
[공포가 전신을 지배합니다.]
[올 마스터의 재능이 당신을 보호합니다.]
[재능 : 하급 공포 저항 [LV.5]를 획득하셨습니다.]
[저항할 수 없습니다.]
[거대한 마기가 당신을 짓누릅니다.]
[재능 : 하급 마기 저항 [LV.8]을 획득하셨습니다.]
[저항할 수 없습니다.]
“....컥!”
제대로 된 형체조차 알 수 없는 검은 구와 같은 무언가.
그걸 보는 순간 자리에 주저앉은 강혁은 검은 피를 한 바가지 토해냈다.
-왔는가, 올 마스터의 재능을 가진 자여.
하지만 상대는 그런 강혁의 모습 따위에 개의치 않은 채로 미소를 머금은 목소리로 강혁을 반겼다.
이것이 강혁이 ‘칠죄’에서 ‘분노’의 자리를 차지한 거악과의 첫 만남이었다.
*
-긴말하지 않겠다. 나를 받아들여라.
‘....크으, 뭐 이딴 미친 존재가 다 있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재능이 반응하여 저항 재능마저 만들어냈다.
저항 재능의 위력은 강혁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하급이라지만 재능은 재능이다.
그런데 그런 재능이 있음에도 강혁은 전신을 좀 먹는 공포와 전신을 짓누르는 마기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눈앞의 존재를 악마보다 낮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강혁은 그 생각을 수정했다.
‘....이건 악마보다 낮은 마족 같은 게 아니야. 저놈은 악마다.’
마족.
악마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아 몬스터와 같은 존재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마족 따위가 아니었다.
진짜 악마.
사람들에게 마기라는 기운을 나누어주고 그들의 찬양을 받는 존재.
물론 악마 중에서 ‘분노’라는 존재는 처음 들어보지만 눈앞의 존재가 악마라는 것까지 부정할 순 없었다.
그리고 강혁은 생각에 빠졌다.
‘....받아들이라고? 자신을?’
분노라는 이름을 가진 악마가 자신을 받아들이라며 종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무슨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이게 뭔 짓이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마기에 짓눌린 강혁의 성대는 말을 토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강혁의 귀에 살짝 톤이 높은 카랑카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노, 넌 그게 문제야. 무조건 강압적으로만 대하려고 하니까 문제라고. 내가 좀 도와줄게.
따뜻함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강혁은 떠오르는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특성 : 인내(임시)가 생성되었습니다.]
[마기를 인내하여 저항하였습니다.]
[공포를 인내하여 저항하였습니다.]
[인내(임시)는 누군가의 마음으로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가볍다.’
좀 전의 공포와 중압감은 거짓이라는 듯이 몸이 한결 가벼워진 강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강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분노와 비슷한 생김새이지만 환한 빛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내 이름은 ‘인내’. 칠선 중의 한 명이야. 저런 이상한 애 말고 나를 받아들이는 건 어때?
-인내! 이곳은 나의 구역이다!
자신을 인내라고 소개한 광구(光球)의 말에 암구(暗球)가 분노를 토해냈다.
듣기만 해도 토악질이 나오는 힘이 서려 있는 목소리에 강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언성 높인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네가 선택하라, 올 마스터의 재능을 지닌 자여.
-그래, 어차피 네 결정이 가장 중요한 거니까.
자신들끼리 대화를 해봤자 진전이 없겠다고 생각한 둘은 강혁에게 선택의 권리를 맡겼다.
갑작스런 책임 전가에 당황하던 강혁은 이내 고민에 빠졌다.
‘받아들이란 말은 방금 전, 인내와 같은 특성을 주겠다는 것과 비슷하겠지. 그것도 임시가 아닌 영구적인 특성. 이거....대박인가?’
한 명은 악마, 다른 한 명은 잘은 모르지만 신에 비견되는 존재일 터.
그런 이들의 힘을 지닌 특성을 얻을 수 있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일장(一長)이 있으면 일단(一斷)이 있는 법.
신적인 존재들의 힘을 받아들였을 때의 패널티가 강혁은 고민이 되었다.
물론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정했다.”
-나지? 내 인내의 힘은 대단하다고!
-흥, 말도 안 되는. 고작해야 버티기만 해선 승리할 수 없다. 내 힘이라면 너를 최강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잘 선택하도록.
명랑함이 깃든 인내의 목소리와 츤츤(?)대는 분노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혁은 자신의 선택을 말했다.
“너네 둘 다 내 거 해라.”
-....
-....
그와 함께 광구와 암구의 목소리 뚝 멈췄다.
조용해진 주위를 바라보며 강혁은 가면을 벗고 씨익 웃어 보였다.
“고르라고 했지, 한 명만 고르라곤 안 했잖아?”
-....너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어. 알아?
걱정 가득한 인내의 목소리에 강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난 내 재능을 믿는다.”
-....이번 올 마스터도 미친 놈이군.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진 않은데.
분노의 중얼거림에 강혁은 속으로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그에 반박하진 않았다.
사실 강혁도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신과 악마에 비견되는 무언가의 힘.
그걸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되는 걸 이제 막 각성한 헌터가 얻었다간 무슨 변고를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글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안 돼?”
-....나, 인내는 새로운 올 마스터 이강혁과의 계약에 동의한다.
-아니, 된다. 모든 걸 집어삼키겠다는 욕망이 마음에 드는군. 탐욕 녀석이 좋아하겠어. 나, 분노는 새로운 올 마스터 이강혁과의 계약에 동의한다.
인내는 살짝 떨떠름한 목소리로 계약에 응했고, 분노는 놀란 것과는 별개로 지금의 상황이 꽤 마음에 드는지 살짝 들뜬 목소리로 계약에 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인내와 분노.
그러니까 광구와 암구가 강혁의 가슴팍으로 흡수되었다.
“....컥!”
인내와 분노의 계약이 성사되고 강혁은 자신의 가슴팍을 그러쥐며 바닥에 허물어졌다.
전신이 박살나는 듯한 고통과 함께 강혁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특성 : 인내가 생성되었습니다.]
[특성 : 분노가 생성되었습니다.]
[오류!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특성이 존재합니다.]
[신체가 무너집니다.]
[오류! 사용자의 재능이 공존할 수 없는 특성을 공존하게 합니다.]
[신체가 재구성됩니다.]
[신체 : 반성반마(半聖半魔)가 생성됩니다.]
[재구성율, 1%....5%....18%....]
-클리어 시간은 한 시간 뒤로 조정해주마. 새로운 올 마스터여. 그때까지 단잠을 즐기라고. 네 장비들은 내가 준비한 선물에 넣어두도록 하지.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분노’의 목소리와 함께 강혁은 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