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4
버스의 승객들이 모조리 밖으로 도망친 이후, 홀로 남은 강혁은 자신의 무구들을 모조리 착용했다.
‘만약 내가 대장장이 재능을 가지고 만들었다면 이것들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대장장이의 재능.
무구를 만드는 데에 뛰어난 능력이 보이게 해주는 재능이 있었다면 코볼트와 고블린 따위를 잡는 데에 걱정 따윈 필요 없었을 터.
하지만 아쉬워하진 않았다.
‘어차피 재능빨이다. 전투에 관련된 재능만 있다면 과도만 들고도 몬스터를 잡을 수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재능.
오로지 재능만 있다면 무구는 아무래도 좋았다.
더군다나 압도적인 재능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물론 나중에 위험한 던전,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선 필수였지만.
관리를 철저히 한 덕분에 녹이 슬거나 한 부분은 전혀 없었고, 강혁은 빠르게 무구들을 착용했다.
‘가죽 갑옷, 스몰 실드, 가면, 접이식 대궁, 강철 검 한 자루. 적당하군.’
하반신을 보호할만한 방어구가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나쁘진 않았다.
대장장이 재능이 없는 강혁이 만들었기에 마나 전도도 별로고 방어구로서의 성능도 별로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그리고 강혁은 자신의 기술을 믿었다.
‘재능만 있었으면 어지간한 대장장이보다 좋은 무구가 됐을 거야. 내 무구들을 믿자.’
자신의 무구가 약한 이유.
그건 무구들 탓이 아닌 자신의 재능 부재 탓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부족하지만 확실한 방어구들의 착용이 끝나고 버스에 달린 천장 통로를 열고 천장에 올라선 강혁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저긴가?”
척 보기에도 몬스터들이 떼로 몰려든 곳.
거기서 우윳빛의 보호막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강혁은 살짝 놀라했다.
“....루터 아재? 아니, 루터 아재의 딸내미인가. 하긴 최근 말이 많긴 했지.”
어디서 많이 보던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 능력의 본래 주인은 다름 아니라 최강의 10인 중 한 명 루터 할론이었다.
만약 루터 할론 본인이 이곳에 있었다면 저까짓 코볼트와 고블린 따위에 몇 분이나 잡혀 있지도 않았을 터.
아마 던전은 들어온 지 1분도 되지 않아서 클리어 됐을 거다.
더군다나 거리가 멀지만 헌터의 눈은 꽤 좋다.
우윳빛 보호막 안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순백의 법복을 입은 사람은 척 보기에도 여자.
즉, 루터 할론일 리가 없다는 것.
추가로 강혁은 이미 얼마 전부터 루터 할론의 딸이 한국에서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 방문했다는 걸 뉴스와 기사로 접했다.
‘강남 쪽 길드들과 만나러 온 거였나? 하긴 루터 아재의 딸이라면 데려갈 사람이 넘치고 넘치겠지.’
최강의 10인 루터 할론의 딸 엘리자베스 할론.
성녀라는 칭호에 B~A가 확정이라는 말까지 있는 상황.
제아무리 철혈이라고 할 지라도 엘리자베스를 데려가려고 눈에 불을 켜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강혁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처저저적-
몬스터들의 위치도 파악했다.
이제 남은 건 사냥 뿐.
접이식 대궁이 강혁의 손길이 닿기 무섭게 펼쳐지며 순식간에 그 몸집을 불렸다.
거의 배에 달하는 크기로 커진 대궁을 가볍게 손에 쥔 강혁은 등에 멘 화살통에서 화살을 만지작거렸다.
‘10개....적당하군.’
딱히 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화살을 많이 구비하지 않은 게 아쉽긴 했지만 아깝진 않았다.
어차피 저기 보이는 코볼트와 고블린의 수는 다 합쳐봐야 2~30마리.
성녀라는 거창한 칭호까지 달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지원이 있다면 장검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
‘....하급 재능이라는 게 살짝 걸리긴 하지만 괜찮겠지.’
보통 재능은 각성하자마자 어마어마한 위용을 보인다.
거기서 더 갈고 닦고 스탯들을 키워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그래도 적당한 전투 재능에 스탯도 준수하다면 코볼트와 고블린 정돈 손쉽게 잡는다.
최악의 상황은 접어둔 채, 강혁은 가면을 얼굴에 썼다.
‘얼굴이 드러나는 건 바라진 않으니까.’
각성하자마자 수십의 몬스터를 상대로 승리한다.
추가로 시민들마저 구출한다면 신문 1면은 따 놓은 당상.
최대한 모습을 감춘 채로 힘을 키울 생각인 강혁에겐 그리 좋지 못한 일이었다.
‘다행히 던전 출현으로 주위의 전자기기는 모조리 마비되었을 테니 나에 대한 모습은 아무도 모를 터. 나쁘지 않군.’
던전이 생기면 반경 수십, 수백 미터의 전자기기가 마비된다.
적어도 강혁의 모습이 담긴 CCTV나 블랙박스의 메모리 등은 모조리 아작났을 터.
생각을 마치고 가면을 얼굴에 쓴 강혁이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꽈드드득....
각성을 하며 발달한 근력이 대궁의 시위를 끊어지기 직전까지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한계까지 당겨진 시위를 강혁이 놓는 순간.
피잉!
강혁의 손을 떠난 화살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보호막을 두들기던 코볼트의 머리통에 박혔다.
즉사.
화살대가 절반 가까이 박혔음에도 살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코볼트 또한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보호막을 두들기던 주먹질이 멈추고 픽 쓰러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강혁은 다시금 시위에 화살을 먹였다.
꽈드드득-
‘정확도가 살짝 비틀어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팽팽하게 당겨지는 시위와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생각을 마친 강혁은 다시금 시위를 놓았다.
핑-!
포식자와 피식자의 위치를 바꾸는 소리가 던전 내에 울려 퍼졌다.
*
퍽! 퍽! 퍼버버벅!
“....헌터?”
“성녀님! 성녀님께서 말씀하신 구조대가 왔어요!”
“저흰 살았다구요!”
보호막을 두들기던 코볼트와 고블린의 몸이 허물어진다.
뇌수가 바닥을 적시고 피가 강을 이루는 끔찍한 모습.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것 때문에 패닉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폐쇄형 던전인데 구조대가 왔다고? 그럴 리가....’
그녀는 이 던전이 폐쇄형 던전인 것을 알고 있다.
즉, 구조대가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다는 얘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저 사람 함께 휘말렸던 거야!’
생존자 모두를 파악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한 명이 남아 있던 것.
그 사실에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환희가 번져나갔다.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어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전투 계열 헌터임은 확실하다.
정확하게는 궁술 쪽이겠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녀가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던 찰나였다.
“어....아....안 돼!”
-케륵!
-케에에엑!
코볼트와 고블린.
엘리자베스의 보호막을 부수는 것이 지상과제인 것마냥 덤벼들던 그들이 목표를 바꾼 것이었다.
‘....눈앞에 사람들을 두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고? 몬스터가? 그것도 코볼트랑 고블린 따위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급 몬스터일수록 눈앞의 적과 본능에 모든 걸 맡긴다.
수십의 사람과 멀리 떨어진 한 사람.
당연히 가까이에도 있고, 수도 더 많은 엘리자베스 쪽에 코볼트와 고블린들의 어그로가 끌리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그 당연한 일이 눈앞에서 부정 당한 것.
하지만 중요한 건 당연한 일이 부정 당한 게 아니었다.
“저 사람을 구해야 해요! 저 사람이 없으면 저흰 모두 죽는다고요!”
유일한 희망이나 다를 바 없는 저 가면의 존재.
저 존재가 없다면 이 던전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
그걸 잘 아는 엘리자베스가 저 자를 구해야한다며 소리쳤지만....
“예? 하....하지만 여기서 나가면 저희는....”
“헌터이기도 하고 강해 보이는데 그냥 놔두면 알아서 살아남지 않을까요?”
“....”
사람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자신의 안전은 엘리자베스 덕분에 확보 되어 있고, 저 멀리서 화살을 쏘아대던 존재는 무척이나 강해보였다.
즉, 자신들의 도움 따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그걸 믿어버린 것이다.
만약 저자가 죽게 된다면 자신들에게 미래가 없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극히 멍청한 일이었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들을 탓할 수 없었다.
꾸욱....
‘내가 더 강했더라면....그랬더라면 저 사람이 나타나기도 전에 내가 모조리 처치했을 텐데.’
헌터란 몬스터와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자들.
시민들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헌터를 존경하고 그들을 응원한다.
오히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엘리자베스 쪽에 더 책임이 큰 셈이었다.
물론 그걸 탓하는 이들은 없었다.
만약 엘리자베스가 없었다면 사내가 나타나기도 전에 몬스터의 먹잇감이 되었을 테니까.
자신의 무력함에 엘리자베스가 한탄을 하고 있을 때였다.
파아앗-
“....어?”
그녀의 신성력보다도 환한 빛이 그녀에게서 나오기 시작했다.
생존자들은 그 모습에 그녀가 저 멀리 있는 사내에게 버프라도 주나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지금 이 빛은 그녀가 의도한 빛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그녀와 사내 사이의 거리는 무척 멀다.
버프를 주고 싶어도 못 주는 셈.
그렇기에 그녀가 의문을 가지고 밝게 빛나는 빛무리를 바라보고 있을 때, 변화가 나타났다.
띠링-
처음 각성 했을 때, 들었던 청아한 그 소리.
그 소리가 다시금 그녀의 귀에 울려퍼진 것이다.
‘설마?’
메시지창이 떠오름을 알리는 이 소리는 첫 각성 때와 헌터가 새로운 무언가를 얻었을 때, 들려온다.
[계기가 발생했습니다. 특성이 진화합니다.]
[특성 : 성녀가 진화합니다.]
[특성 : 성녀가 특성 : 잔다르크로 변경됩니다.]
[특성이 변경됨에 따라 새로운 재능 : 신성 전투술이 생성됩니다.]
‘이거면....이거면 가능할지도 몰라.’
자신이 바라마지 않던 전투 관련 재능.
그것이 자신에게 생겨났음을 알게된 그녀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직 무언가와 싸우는 게 두렵긴 하지만 괜찮았다.
“모두 여기에서 기다리세요. 이 막은 제가 없어도 유지되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부들부들....
전투.
그것도 사람 간의 전투가 아닌 몬스터와의 전투다.
목숨까지 걸린 진짜 전투.
아직 어린 소녀에겐 너무나도 무겁고 무서운 일일 터.
생존자들을 어르고 달래는 그녀의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막 바깥으로 나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말리는 생존자들을 뒤로한 채, 그녀가 버스 위의 사내를 도우려던 순간.
‘....늦었다.’
이미 수십에 달하는 코볼트와 고블린은 버스 밑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전력으로 달린다고 하더라도 수십 초는 걸릴 상황.
버스라는 고지대를 점했다고 한들 궁술 재능을 가진 이가 근접전에서 수십의 코볼트와 고블린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화살도 쏘지 않는 걸로 보아 화살 또한 떨어진 듯 했다.
그 사실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내가 겁에 먹었기 때문에 저 사람이 죽는다. 나 때문에 사람이....’
자신의 실책으로 인해서 누군가가 죽게 된다는 사실에 그녀가 절망할 때, 코볼트와 고블린들이 버스 위로 올라갔다.
-케르륵!
-켁켁!
즐겁게 웃음을 짓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과 함께 그녀가 두 눈을 질끈 감는 순간이었다.
서걱!
“....?”
비명 소리가 아닌 무언가가 잘려나가는 듯한 섬뜩한 소리에 그녀는 의아해하면서 눈을 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에 비치는 모습은 다름 아니라....
“검성?”
마치 최강의 10인 중 한 명 검성을 떠올리게 하는 검술이었다.
얼굴을 가린 채, 평범한 장검을 들고 코볼트와 고블린들 사이에서 검술을 펼치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런 것도 잠시 한 가지 사실을 추가로 떠올린 그녀의 얼굴에 놀람이라는 꽃이 피어올랐다.
“더블 탤런트?”
궁술과 검술.
가면의 존재가 두 개의 재능을 지닌 어마어마한 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가면의 존재, 강혁이 가진 재능은 고작(?) 두 개 따위가 아니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