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화
성진이 고민하다가 왕자를 보고 말했다.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씀드리지요?”
왕자가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며 말했다.
“말하라.”
“지금, 드워프제 전투 의족과 전투 의수, 전투 의안을 기다리는 귀족이 20명이 넘습니다.”
성진의 말에 왕자가 기분이 나쁜 듯 말했다.
“그래서? 나에게 기다리라는 건가?”
성진이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고위 귀족들 상대 하는 건 싫다. 마음속으로는 왕자의 머리통을 성진의 주먹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아니? 제가 어찌, 왕자님에게 기다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데, 지금 기다리고 있는 고위 귀족 중에 상당수가 군부고 일부는 [대공급]도 있습니다.”
대공이라는 말에 왕자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대공이면 아버지인 황제도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고위 귀족이다.
왕자가 다시 성진에게 물었다.
“그, [대공급] 귀족은, 수술 순위가 몇 번째 인가?”
“다음입니다.”
“그가, 제일 먼저 왔나?”
“아니요? 제일 나중에 왔습니다.”
왕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아니? 그럼 힘으로 순서를 눌렀다는 거 아닌가?”
“그렇지요?”
왕자가 와인을 단숨에 마시고 소리쳤다.
“그 대공의, 이름이 뭔가?”
“예? 말씀드려도 될까요?”
“말해보게! 내가 가서 담판을 짓겠네.”
“예, 그럼 말씀드리지요. 이름은 모르겠고 첫 번째 가지라고 부르더군요?”
그 말에 왕자의 표정이 썩어 갔다.
“그분이 오셨다고?”
“예.”
왕자가 성진에게 화를 삭이며 말했다.
“와인 한잔만 더 주게.”
성진이 레드에게 말했다.
“지하 술 저장고에 가서 와인 한 병 좀 가지고 오게.”
“예, 공자님.”
레드가 주방 안으로 가서 와인 한 병을 가지고 왔다. 성진이 와인병을 잡고 차게 해주며 왕자에게 와인을 따라 주었다.
“드시지요.”
차가운 와인을 마시며 왕자가 화를 삭였다.
“후~ 그나마, 차가운 와인이 들어가니 속이 풀리는군?”
“딸기라도 드릴까요?”
“그 귀한 게 있나?”
“있지요? 제가 농장주인데요.”
“그래, 안주 좀 부탁하지.”
그러자 레드가 부엌에 가서 딸기와 여러 과일을 씻어서 접시에 담아 왕자 앞에 놓았다.
왕자가 포도와 딸기 등을 먹으며 화를 삭이고 말했다.
“성진 공자? 자네가 방법을 좀 마련해 보게.”
성진이 가만히 고민하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나서면, 저나 왕자님이나 오욕을 뒤집어씁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후~ 나는, 황좌 계승 순위에서도 밀리고 황좌에 욕심도 없네? 그런데 이 팔만은 어떻게 하고 싶다네. 내가 황궁에서 나와 있을 수 있는 시간 도 한 달 남짓이야. 그 안에 해결을 보고 돌아가야 하네.”
성진이 난감해하며 말했다.
“아니? 전투 의수 만드는 시간만 2주를 잡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들어서 아네. 그러니 부탁 좀 하세. 자네가 힘 좀 써보게?”
성진이 어이가 없었다. 성진은 아직 일반인이다. 그냥 강하고 거대한 농장의 주인일 뿐이다.
성진이 고민을 하고 있자니 성진의 감은 오른쪽 눈 의[광기의 공주]가 말했다.
-내가 말해도 되겠냐?-
왕자는 성진의 정보를 이 정도 까지는 알았는지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봐라?”
-성진이가 솔직히 접합 수술을 한 건 레드가 처음이다. 그래도 두 번째로 시술을 받겠냐?-
왕자는 이를 굳게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난 그를 믿는다. 레드도 저렇게 잘 움직이는 걸 보니 그는 충분히 실력이 출중하다.”
-그래? 성진이를 믿는다고? 그럼 성진아.-
“왜?”
-네가 군부의 첫 번째 가지를 설득해라?-
[광기의 공주] 말에 성진이 난감해했다.
“아니 그 양반도 한 고집해! 군부의 최전선의 군단장이 쉽게 굽히겠냐?”
-그러니까 내가 말해줄게?-
“뭘 어쩌라고?”
-솔직히 말해?-
“뭘 솔직히 말해?”
-이번 수술이 처음이었다고.-
성진이 배를 잡고 웃었다.
“야 [광기의 공주] 누나 너무했다. 나보고 내 얼굴에 침을 뱉으라고?”
-아니? 지금 왕자님은 당장 수술을 원하고 있지만 첫 번째 가지 대공은 아닐 거란 말이다.-
“그러니까? 나보고 첫 번째 가지 대공을 설득하라고?”
-그래!-
성진이 이번에는 자신이 와인을 따라 와인을 단숨에 마셨다.
“아~ 난 중립파라고요.”
왕자가 성진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왕자의 손이 여성처럼 고왔다. 성진이 속으로 [광기의 공주]에게 말했다.
‘누나 이 엘프 남장 여자지?’
[광기의 공주]가 속삭였다.
-그렇네? 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아, 몰라. 난 황궁하고 얽히기 싫어!’
왕자가 성진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이리 부탁하네. 난 검을 다시 잡는 게 정말 소원이라네. 검을 잡으면 그 좁은 황궁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네.”
왕자의 옆에 있던 기사가 성진을 보고 호통을 쳤다.
“왕자님이 이리 부탁하시는데? 한번 시도라도 해보게! 대공인 첫 번째 가지는 그리 막힌 사람이 아니네. 황실에 대한 충성이 깊은 분이니 만나 보게!”
성진은 속으로 욕을 했다.
‘X발 놈아! 그럼 네가 가보던지!’
성진은 첫 번째 가지 대공을 지나가다 보았었다. 딱 봐도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꼬장 꼬장한 늙은이다.
수십만의 군을 지휘하는 군부의 수장이니 당연한 것이다. 빈틈이 있으면 외적이 치고 들어온다.
성진은 일단 알았다고 말했다. 뭐 첫 번째 가지 공작의 설득에 실패하면 그때 가서 발뺌하면 된다.
왕자는 성진이 알았다고 하자 일이 성공이라도 한 듯 기뻐했다.
“내가, 비록 힘없는 왕자이지만, 자네의 공은 잊지 않겠네.”
왕자의 말에 성진이 기겁을 했다.
“아니요? 아직 진행도 안 되었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그러나 왕자는 무척 기뻐하면서 기사들과 성진의 집에서 나갔다. 성진에게 레드가 와서 조용히 속삭였다.
“공자님, 저 왕자? 여자였습니다. 조심 하십시오.”
“왜? 조심까지 해?”
“저렇게, 정체를 숨기는 이들 치고, 뒤가 깨끗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걸인으로 바닥에 십여 년을 뒹굴면서 몸으로 느낀 경험입니다.”
성진은 일단 알았다고 하고 3층의 자신의 방으로 갔다. 바로 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에는 저가?의 10만 골드짜리 일반 의수와 일반 의족, 일반 의안의 설계도를 그려 주고 있었다.
드워프 들도 응용력이 뛰어나지만, 설계 자체가 틀린 전투용과 일반용의 설계도를 그리지 못하고 있어서 도와주는 것이다.
1층에서는 레드가 소파에서 집에 누가 침입을 하는지 감시하며 창을 안고 잠을 청했다.
성진이 그러지 말라고 해도 레드가 자청해서 하는 것이다.
며칠 후……
성진은 다음 시술자인 첫 번째 가지 대공을 만났다. 대공은 영주성 안의 고급 호텔의 한 층을 독차지하고 쓰고 있었다. 그 층에는 대공의 근위대가 바글바글 했다.
변방을 책임지는 군부의 수장이다. 당연히 적국의 암살 기도도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첫 번째 가지 대공이 눈치도 빠르게 성진과 차를 마시며 말했다.
“나의 수술에 문제가 생긴 건가? 아니면 누가 끼어들었나?”
한쪽 안구에 안대를 차고 한쪽 팔이 어깨까지 날아간 대공은 전혀 위엄을 잃지 않고 말했다.
성진이 감은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뭐? 솔직히 말하지요? 제가 대공님 앞에서 수를 쓰면 뭐 합니까?”
“그래? 그건 마음에 드는군? 나는 정치적인 수를 쓰는 작자들만 보면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네!”
성진이 늙은 대공이 진짜 자신의 목을 비틀까 봐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대공님이 수술을 받는다면 제가 수술하는 두 번째 수술입니다.”
대공의 남은 한쪽 눈이 커졌다.
“뭐라고 했나? 저번 수술을 처음 한 거라고?”
성진이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다.
“예, 그래도 레드는 잘 걸어 다닙니다.”
대공이 분노를 참고 있자니, 수염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래 양심적으로 말해준 건 고맙구만? 그런데 레드라는 사내 좀 볼 수 있나?”
“예? 아 그러지요?”
성진은 문밖에 대고 레드를 불렀다.
“레드! 대공님이 보자고 하신다.”
그러자 레드가 대공의 근위대 기사와 같이 들어 왔다. 대공이 일어나더니 레드의 전투 의족과 전투 의수 그리고 전투 의안을 만져 보았다.
그리고 성진에게 말했다.
“성진 공자? 잠시라도 의수 안을 볼 수가 있나?”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육망성 모양의 나사로 잠겨 있는 의수의 1차 갑옷을 풀었다. 그러자 수백 개의 부속이 살아 움직이는 근육처럼 보였다.
대공이 감탄했다.
“이 회전 하는 작은 나선 케이블 하나하나가 모여서 근육 역할을 하는군?”
“예, 이 회전 하는 나선 케이블 하나하나가, 금보다 비쌉니다.”
“그럴 만도 하지? 이게 마나를 전달하는군?”
“예.”
“파괴되면 어떻게 되나?”
“일단은, 50% 정도까지는 [복구 마법진]이 복구를 시도하지만, 그 이상은 폐기해야 합니다.”
“이게, 얼마라고?”
“전투 의수는 20만 골드, 일반 의수는 10만 골드입니다.”
“일반인은, 상상도 못 할 가격이군?”
“솔직히, 일반인용은 아닙니다.”
“다시 갑옷을 채우게.”
성진이 다시 조립하고 레드가 나가고 대공이 성진과 자리를 앉았다. 그리고 대공이 성진을 지긋이 한참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천재야! 그런데 그런 자네의 수술 순위를 바꿔서 끼어들려는 자는 누구인가?”
성진이 감은 눈으로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뭐, 다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영지에 대공님의 정보부가 쫙 깔린 거 다 압니다.”
“알지? 그런데 자네 입으로 듣고 싶군?”
성진이 잠시 조용히 차를 마셨다.
“흠~ 뭐, 아시니 말씀드리지요? 황족입니다.”
“역시 그녀인가?”
“호오~ 그녀인지도 아시는군요?”
“안타까운 여걸이지? 그녀가 그런데 왜 이런 무리한 시도를 하지?”
성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도 대공님 순위를, 한 10번째로 두고 싶습니다.”
“왜? 자네는 천재 아닌가?”
“에이~ 천재는 실수 안 합니까? 그리고 저 전투 의수를 만드는 건, 이제 드워프입니다. 테스터가 되고 싶으신가요?”
성진이 솔직하게 털어놓자. 대공의 눈이 깊어졌다. 성진의 말이 맞다. 지금은 성진의 테스트 기간이다. 자신이 테스터가 될 수는 없다.
이건 -엘프 제국-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대공이 성진에게 물었다.
“그녀의, 수술은 자신이 있나?”
“뭐? 해봐야지요?”
대공은 말이 없이 한참을 생각했다. 국경선이 자신이 없이 얼마나 버틸까 고민 중인 것이다.
부군단장인 공작에게 맡겨 놓았으나, 그는 믿음을 못 받고 있다.
대공과 성진의 무거운 시간이 흐르고 대공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왕녀에게, 다음 순번을 양보하지? 대신에 조건이 있네.”
“예, 말씀하시지요?”
“내 수술도, 자네가 해주고, 내가 쓸 의수와 의안도 자네가 직접 만들어 주게.”
성진의 입이 벌어졌다. 의수 하나하나 부품을 성진이 다 만들면 한 달은 족히 걸린다.
“으~ 그럼 한 달이 더 걸리는 걸 아시는 겁니까?”
“알고 말하는 거네?”
“후우~ 역시 손해는 안 보시는 군요?”
“내가 손해를 보면? 그건 우리-엘프 제국-의 땅이 줄어드는 거야?”
대공이 시종에게 말해서 계약서를 만들어 오게 했다. 성진이 혀를 내둘렀다.
“와~ 철두철미 하시네요?”
“내가 자네를 좀 조사했더니? 매우 바쁘더군? 그래서 이렇게 계약으로라도 묶어야겠네.”
성진은 쓰게 웃으며 서명 란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왕녀와 대공 둘 다 만족시킬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성진이 사인을 하고 대공의 처소에서 나오자 레드가 창을 들고 따라붙었다. 이제 레드는 거의 전성기의 몸을 회복하고 [귀족급]에 들었다.
성진이 보기에는 [기사급]을 넘어서고 있지만 티를 안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영주가 레드를 자꾸 탐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프 블러드- 기사단 케인 단장도 레드를 살살 꼬시고 있었다.
성진이 영주성을 빠져나가려는데? 한 어린 남자 시종이 따라붙었다.
“성진 공자님?”
성진이 그를 살피니 레드가 말했다.
“영주성의 시종입니다.”
성진이 어린 시종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예, 영주님이 잠시 뵙자고 합니다.”
성진은 하는 수 없이 레드와 영주성으로 향했다. 오늘은 선화와 성기사들을 놔두고 나왔다. 정치적인 일이라, 그들이 곤란해 할까봐 서이다.
영주성에 들어가서 바로 영주실로 갔으나 영주가 없었다. 시종의 안내를 받고 영주성 연무장에 가니 설탕을 만드는 거대한 설비가 보였다.
영주가 나와서 성진에게 말했다.
“자네 덕분에, 황제인 형님에게 설탕을 보낼 수 있네.”
“예, 다행이네요?”
그러자 영주가 성진에게 붙어서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 대공은 설득했나?”
성진이 한숨을 쉬였다. 영주도 황족이니 왕녀의 편인 것이다. 자신의 조카가 빨리 시술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성진이 웃으며 말했다.
“예, 그런데 조건이 붙었네요?”
“엥? 무슨 조건?”
“제가 시술해주고 시술 받는 전투 의수나, 전투 의안을 직접 만들어 달랍니다.”
“허허~ 그거 난감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시간이 없는데. 몇 달은 드워프 공방으로 밤마다 출장 다니게 생겼네요?”
“미안하네!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해서.”
“뭐? 이 기회에 황실에 빚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겠지요?”
“그래 잘 부탁 하네?”
“그나저나 영주님?”
“응?”
“왜? 설탕은 100% 다 가지고 가십니까? 계약은 50%인데요?”
“응?”
영주가 찔리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버벅거렸다.
“일단, 황제인 형님에게 주고 내가 반드시 50%를 주겠네. 일단은 내가 돈으로라도 먼저 지급 하지.”
“아니? 설탕은 돈으로도 못삽니다.”
“조금만 참아 주게.”
“하여간 한 달 정도만 참아드리지요?”
영주는 성진을 웃으며 배웅해 줬다.
다음날부터 성진은 오전에는 수련 오후에는 사냥, 약초 채집 그리고 밤에는 드워프 공방에 가서 다시 전투 의수와 전투 의안을 만들었다.
드워프들은 모여서 다시 성진의 시범을 보려고 가뜩이나 더운 공방의 열기를 더해 주었다.
성진이 작은 부품을 만들다가 흐르는 땀에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아~ 좁고 덥다고요! 좀 떨어져서 봐요!”
“그게? 워낙 부품이 작아서 눈에도 안 보인다네.”
“아니? 그럼 안경을 쓰시던가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한 번씩 레티온 공자와 레오나 공녀가 와서 대련으로 성진의 스트레스를 풀어 주었다.
이들도 이제 실력이 많이 늘어서 덜 맞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 갈 때쯤에는 온몸이 멍이 들어서 실려 갔다.
오죽했으면 -하프 블러드- 케인 단장이 좀 봐주고 하라고 말렸다.
그리고 드디어 왕녀의 전투 의수가 완성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너 눈을 왜 그렇게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