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에필로그. 이어지는 일상들
크아아아!
프로타 에고가 울부짖었다. 그리고 커다랗게 벌린 입에서 브레스를 뿜어대기 시작했는데 분명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격류였지만 세하는 이상하게 두렵지 않았다.
‘뭐지?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무튼 엘렉티오 BC가 거의 모든 에너지를 사이킥 블레이드를 발출하는데 집중한 터라 아예 기체 전체가 빛의 칼날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 급가속을 해대니 세하는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았지만 시선은 전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콰아아아아!
프로타 에고의 공세에 엘렉티오 BC를 호위하던 엘렉티오 BF 기체들이 하나 둘 격추 당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세하는 이를 악물고 기체를 전진시켰다. 그것도 브레스를 내 뿜고 있는 프로타 에고의 머리를 향해 정면으로 돌격할 뿐이었다.
“.......”
루이제는 그런 세하를 만류하지 않고 전방에 시선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세하는 그래서 버티고 버텼고 결국 끝을 보게 되었다.
퍼억!
분명 이렇게 들렸다. 아주 세차게 뭔가 뚫어버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빛의 칼날이 그대로 프로타 에고의 머릿속으로 들이박혀버렸다.
크아아아!
프로타 에고는 요동을 쳤지만 세하는 이상하게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결국 이렇게... 우리는 인간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경멸당하고... 오로지 도구로만 이용당했는데.......’
그리고 프로타 에고, 아니 엑펠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어진 본성대로 움직였을 뿐이었는데... 오로지 침식하고 흡수하고.......’
‘그렇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성이 생겼을 때는... 모든 것을 집어삼킨 후였다... 우리에게는 남은 것이 없다.......’
계속 들리는 음성들과 함께 기억들로 보이는 영상들이 세하의 눈앞을 스치고 있었다.
“이건?”
세하가 놀라 묻자 루이제가 차분한 신색으로 답했다.
“엑펠트들이 해왔던 일들이죠. 이들이 말한 대로 본래는 인간들이 만든 병기에요.”
“뭐라고?”
세하는 두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루이제가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본래는 이차원의 적, 그 세계에 던져 넣어 차원 자체를 파괴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
계속 보이는 영상과 엑펠트들의 목소리 그리고 루이제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세하도 서서히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이거야 원... 그런데 엑펠트가 만들어진 세계하고 지금은 좀 달라진 거 같은데?”
세하가 곧바로 의문점을 떠올리자 루이제는 잠시 생각한 다음에 말했다.
“모든 게 뒤섞였으니까요. 엑펠트가 이차원을 점령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지면서 차원과 시간을 다루는 요소도 흡수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세계에서 보고 있는 다른 이차원들을 보면 그럴만 하잖아요?”
루이제의 말대로 슈타크카이트를 비롯한 다른 차원들의 존재가 있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너부터가 특출 나긴 했어.”
세하가 루이제를 보고서 씨익 웃었다. 거기에 루이제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요?”
“AI인데 뭔가 알고 싶은 게 많았고 나는 이끌리듯이 가르쳐 줬지. 그러면서 너와 사선을 넘나들다보니 너에게 마음이 생긴 거겠지.”
“........”
세하의 말에 루이제는 입을 다물었다.
“뭐 아무튼 됐어.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진 말자. 너하고 나만 사고안치면 저런 괴물 같은 것들은 이 세상에는 없겠지?”
그러자 세하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사이킥 블레이드의 출력이 퍼져나가며 완전히 프로타 에고의 형태를 부셔버렸다.
*
세하가 프로타 에고를 없애버리고 나자 전세계에 일어났던 엑펠트의 준동은 삽시간에 끝나고 말았다. 갑자기 끈이 풀린 인형 마냥 힘을 잃었고 달리 헌터들이나 각 국가의 군대가 힘을 쓸 것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랬던 건가?”
세하는 제너럴 마이트 본사에서 마그티스와 독대하고 있었다. 마그티스는 세하의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 이차원이라는 게 슈타크카이트일 거다. 그 당시 굉장한 마력의 난이 있었고 엘크레이의 여동생 사야넬이 활동할 때이기도 했지. 그 외에 인외의 존재들도 많았고.”
그리고 마그티스가 한 말에 세하는 고개를 휘휘 내젓고 있었다.
“엄청 무시무시했었나 보네. 지구에서 엑펠트 같은 걸 만들 생각을 한 거 보면.”
“게다가 엑펠트의 특성상 모든 것을 집어 삼키다보니 루이제가 말 한대로 차원이나 시간에 관련된 힘도 얻었을 거다. 솔직히 각 차원은 아직 우리가 모르는 많은 요소들이 있으니까.”
이어지는 마그티스의 설명에 세하는 세삼 인간의 광기를 생각했다.
“다른 차원들은 괜찮지?”
세하는 문득 다른 차원들이 생각나 물었다. 그러자 마그티스는 쓴 웃음을 지었다.
“아주 잘 돌아가서 문제지. 하지만 각 차원간의 게이트가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 이건 대표자들이 자주 만나서 조율을 해야 할 문제 같다.”
“그건 그렇지.”
세하도 그 점에 대해서 골치가 아픈지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래서 몬스터들이 게이트를 통해서 스물스물 나오는 군. 엑펠트가 없어지긴 했어도 여전히 헌터들이 피곤해지고 말이야.”
세하의 말에 마그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아직 일은 남았다는 거지.”
그러자 세하나 마그티스나 마찬가지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세하의 일상은 엑펠트를 없애기 전이나 비슷했다. 다만 위험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어서 그만 나타났다 하면 게이트던 던전이던 손쉽게 처리가 가능했다.
“아아... 귀찮아.”
루이제는 부쩍 모습을 드러내는 횟수가 늘어났다. 달리 육체를 얻을 수도 있지만 귀찮아서 안한다는 말에 세하는 나름 안도하고 있었다.
“간만에 엘렉티오 BC가 한 번 가는 건가?”
세하는 3일전 대규모 몬스터의 군단을 처리하느라 엘렉티오 브레이크 캐리어를 꺼냈던 걸 기억했다. 당시 루이제는 무슨 어린아이 마냥 기뻐하며 화력을 퍼부었던 걸로 기억했다.
“글쎄요... 요즘은 그만하게 규모가 되는 몬스터들은 없는 것 같아요.”
루이제가 뉴스를 보면서 하품을 해댔다. 그 옆에는 가상화면으로 의뢰 현황이 떠오르고 있었다. 복장은 편하디 편한 스포츠 웨어 차림인지라 무슨 방구석에서 놀고 먹는 백조처럼 보였다.
“다른 녀석들은 어찌 지내고 있어?”
세하가 문득 생각나 물었다. 거기에 루이제는 잠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더니 짓궂은 웃음을 띠었다.
“왜 그래요? 레이린 씨는 얼마 전에 보고도 말이에요.”
“별 감정 없거든?”
물론 세하가 심드렁하게 반응해서 루이제는 그만 김이 빠지고 말았다.
“레이린 씨야 여전히 대한민국 헌터협회를 돕고 있고. 헤러커와 그레이스는 제너럴 마이트 소속이로 별 일 없죠.”
그리고 루이제가 늘어놓는 말에 세하는 그만 맥이 빠지고 말았다.
“뭐 지루하고 별일 없는 게 최고니까. 그럼 가볼까?”
“네이. 네이.”
루이제가 성의 없이 답하고는 모습이 사라졌다. 거기에 세하는 느와르레이드 슈트를 장착하고 바로 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