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궁극의 힘
세하는 일순 고민했다.
‘루이제의 존재 때문인 것 같은데.’
프로타 에고와 대화를 언제까지 이어가야 할 지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루이제와의 연결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지?’
세하는 더욱 강하게 프로타 에고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눈앞에 떠있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얼굴들은 저절로 기가 눌리는 광경이었다.
‘어차피 네 놈이 무얼 했던 어떤 존재였던 상관없다. 우리에게 줄기차게 저항했고 위협적이었지만 결국 이렇게 잡히고 말았지. 이제 정신의 말단에서부터 침범해서 네 놈을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뻔한 소리를 하며 세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하는 이번만큼은 정말로 잘 못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작정하고 함정 판 거 였네. 나는 그런데 무식하게시리......’
세하는 스스로의 한심함에 자책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우위를 가지고 엑펠트와 싸워왔던 것에 너무 자만하지 않았나도 생각했다.
‘계속 생각하니 자기비하에 온갖 망상이 떠오르네. 젠장.......’
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속에 있는 걸 몽땅 게워낼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은 프로타 에고에서 흡수 돼서 인류나 다른 차원의 존재들에게 재앙이 될 것 같았다.
“아! 정말 못 말리네요!”
하지만 무척이나 귀에 익은 외침이 들려왔다. 거기에 세하가 놀라 시선을 돌리니 거기에는 느와르레이드 슈트를 장착한 루이제가 보였다.
“마스터! 뭘 망설이는 거예요?”
“너... 괜찮은 거냐?”
인류와 수많은 지적 존재들의 역사와 참상들이 사방에서 보이고 있었고 세하의 머릿속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루이제가 나타난 이상 세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너... 너는?’
프로타 에고도 루이제의 출현에 놀란 것 같았다. 거기에 루이제는 콧방귀를 끼며 외쳤다.
“그래요! 말들 잘 하네요! 하지만 그거 알아요? 나도 당신네들 못지않게 꼬이고 꼬인 상태에서 진화한 가능성이라고요! 그리고 마스터를 위해서 존재해왔어요! 그러니 마스터를 망치려는 당신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루이제가 외치자 강렬한 파장이 일어나며 사방에 일던 온갖 형상들을 전부 소멸시켜버렸다.
“이야! 루이제! 결국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 존버 하고 있던 거냐?”
세하는 그 광경에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프로타 에고는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수많은 얼굴들의 집합으로 화한 상태인지라 그 여파는 상당히 커보였다.
‘마...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우리들의........’
프로타 에고가 힘겹게 말을 이었지만 루이제는 강하게 받아쳤다.
“탄생 자체가 비틀리고 그 쓰임새 자체가 문제였으니 이해는 해요. 하지만 거기까지 일 뿐.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들을 파멸시키고 그 자신들도 무너질 것들이니 어떻게 보고 있겠어요? 자아. 마스터. 쓸어버리죠!”
루이제가 외치기 무섭게 세하 주변의 광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눈부신 빛과 함께 세하는 어느새 커다란 조종석 내부에 앉아 있었다.
“엘렉티오? 아니... 이건......”
처음에는 엘렉티오의 조종석인가 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가상 화면 외에도 실제 하는 스크린들이 굉장히 많았고 세하의 뒤편 파일럿 시트에는 마치 전생 전처럼 헬멧에서 뒤로 연결되는 사이킥 링크 케이블이 보였다.
“엑펠트들의 감정을 먹이 삼아 사이킥 에너지를 키우다보니 결국 꺼내게 됐어요. 대 엑펠트 최종병기 PSGZ- F999 엘렉티오 브레이크 캐리어입니다. 조작이 좀 어려워서 사이킥 에너지로만 조종해야 하니 그 집중을 위해서 헬멧은 불편해도 쓰시고요. 제가 잘 보조해 드릴게요!”
루이제는 여전히 느와르레이드 슈트 차림으로 옆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텐션이 어느 때보다 높아보였다. 세하는 거기에 헬멧을 썼고 사이킥 에너지 링크 드라이브가 작동하면서 그 에너지 흐름과 고양감이 가득 느껴지는 지라 세하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좋아! 간다!”
쿠우우우!
엘렉티오 브레이크 캐리어. 줄여서 엘렉티오 BC가 가동하기 시작했다. 전면부에는 엘렉티오의 기체가 돌출되어 있었지만 그 양옆을 감싸는 거대한 메인암 2개가 있었고 각 메인 암에는 대구경 사이킥 캐논 포구가 중앙에 있었고 고출력 사이킥 블레이드를 뿜어낼 수 있는 포트들이 포구 주변을 둘러싸듯 4개씩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주포인 브레이크 버스터 캐논이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루이제의 설명에 의하면 출력 조종에 따라 사이킥 블레이드로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거 엄청난데?’
그 외에 4개의 거대한 웨폰 컨테이너들이 장착되어 있었고 이를 둘러싸든 6문의 대구경 체인건들이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압권은 그 뒤로 길게 뻗어 있는 캐리어 파트인데 이 조차도 그 표면에 수많은 체인건들과 압축된 사이킥 캐논의 포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워낙 엘렉티오 BC의 위용이 살벌해선지 프로타 에고는 놀라고만 있었다. 거기에 세하는 바로 공격에 들어갔다.
파콰콰쾅!
웨폰 컨테이너들이 일제히 열리면서 수 없는 미사일의 향연이 쏟아졌고 사이킥 체인건 6문과 메인암 두 개의 사이킥 캐논도 빛을 토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캐리어 파츠의 체인건과 사이킥 캐논들도 발사되기 시작해서 순식간에 사방은 폭발의 빛과 충격파로 휩싸여 버렸다.
‘크아아아!’
프로타 에고가 절규를 토했다. 그 많았던 얼굴은 죄다 부셔지고 빛의 파편으로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물론 그 주변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가히 상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총집합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막대한 대군이 눈앞에 나타나고 있음에도 세하는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글쎄요. 정말 마스터 말대로 존버하고 있어서 겠죠. 저것들이 마스터를 어찌하려고 했을 때 일단은 숨죽이고 있었어요. 저도 엑펠트의 영향을 받아서 진화했으니까. 예전에 마스터가 헤러커를 상대할 때처럼 특유의 저항력에 그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그리고 지금 결실이 이거죠.”
루이제는 더 이상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세하의 옆에 자리한 채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걱정 없이 퍼부어요. 그리고 대화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아요. 저것들은 한이 맺혀서 나중에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거예요.”
“라져.”
세하는 대답하고 다시 엘렉티오 BC의 제어에 집중했다. 다시 한 차례 화력 투사를 해서 1파로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대군을 휩쓸어버렸고 이제는 후면의 캐리어 파츠를 개방했다.
그러자 그 안에서 10기의 유닛들이 튀어나왔다. 디스트로이어 플롯을 좀 더 키워 놓은 것 같은 기체들이었는데 그 기체들이 기동하면서 사방에 미사일을 뿌리고 사이킥 캐논을 퍼부어대며 몬스터들을 쓸어버리자 그 화력의 시너지가 지독할 정도였다.
“이래서 캐리어라는 거군.”
세하는 유닛들의 활약을 보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PSGZ- FB1에서 10까지의 탑재기들입니다. 디스트로이어 플롯을 좀 키웠다고 보시면 되요. 자체 AI도 있고 고화력에 근접전 능력도 있으니 염려마세요. 엘렉티오 FB라고 불러 주시면 되요.”
루이제가 친절하게 설명하며 다시 세심하게 엘렉티오 BC의 제어에 나섰다. 그녀의 눈앞에서 현란하게 떠오르는 가상 화면들에 세하도 다시 정신을 차렸다.
‘크아아아!’
루이제의 말대로 엘렉티오 FB들은 단순히 화력 지원만 하는 게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 양 메인 암에서 고출력의 사이킥 블레이드를 뽑아내며 아예 근접전까지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사이 본체인 엘렉티오 BC가 화력 전개를 이어가니 엑펠트 군세는 도저히 배겨나갈 수 없어 보였다.
“마스터.”
그렇게 나아가는 중에 루이제가 세하의 귓가에 다가가 말했다.
“일단 이 공간을 탈출... 아니 찢어버리는 게 중요해요. 전방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세요. 저는 브레이크 버스터 캐논을 예열할게요.”
“알았어.”
세하도 사이킥 링크 시스템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혼자서 어지간하게 화력 전개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계속 엘렉티오 BC와 엘렉티오 FB 10기를 전진시켜 나갔다.
그 사이 엘렉티오 BC의 후면에 장착된 브레이크 버스터 캐논이 예열을 시작했다. 모여드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들이 벌써부터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 막아라!’
프로타 에고도 그 위험성을 안 것 같았다. 가히 몬스터들의 대군이 지면과 하늘 자체를 메워 버릴 지경이었고 그 자체가 달려드는 것처럼 맹공이 이어졌다.
‘아주 필사적이네.’
솔직히 좀 힘겨운 게 세하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만치 프로타 에고와 엑펠트가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엘렉티오 BC를 몰았다.
탑재기이긴 엘렉티오 FB 10기도 자체 AI를 내장한 덕분에 세하의 부담을 상당히 덜어줬다. 그렇게 11기의 기체가 지지 않고 화력을 퍼부었고 각기에 강력한 사이킥 필드도 발생할 수 있어서 엑펠트 군의 각종 투사 공격과 원거리 광선 공격 등도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었다.
“마스터. 브레이크 버스터 캐논 충전 완료됐어요.”
그리고 생각 외로 주포의 충전이 빨리 이루어졌다. 그래서 세하는 바로 발포했다.
콰아아아아!
강렬하다 못해 사선에 위치한 공간 자체를 찢어발기는 빛의 광선에 세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루이제가 말 한대로 공간 자체가 파괴되며 훤한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입니다. 계속 갑니다.”
“알았어!”
세하는 더욱 기세를 올렸다. 엘렉티오 BC와 엘렉티오 FB 10기가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 와중에 브레이크 버스터 캐논은 다시 빛을 내뿜었다.
‘이럴 수가.......’
프로타 에고의 탄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세하와 루이제는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다.
*
“허이구. 개판이네.”
하지만 세하가 본래의 세계로 돌아와서 본 풍경은 수많은 엑펠트의 대군이 하늘과 지상을 가득히 덮은 상태였다.
“음. 전세계적으로 같은 상황이네요.”
그 사이 검색을 끝낸 루이제가 말했다. 얼핏 듣기에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루이제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타 에고의 전력은 이곳에 있죠.”
루이제의 말대로 엘렉티오 BC가 빠져나온 구멍에서 거대한 존재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본격적이네.”
그 모습을 보고서 세하가 감탄을 표했다. 루이제는 거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쟁이라니까요.”
프로타 에고가 갖춘 형상은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가 전면에 돌출되어 있었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엘렉티오 BC와 비슷했다. 그리고 캐리어 파츠로 보이는 부분에서는 정말로 거대한 용족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말 진득할 정도네. 저러는 게 그만치 지금의 엘렉티오가 위협적이기 때문이겠지?”
세하는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한 가운데 미소 지으며 물었다. 거기에 루이제도 답했다.
“네. 하지만 급한 마음에 흉내 낸 거라서 제대로 몰아붙이면 될 거예요. 어때요? 근접전으로 가시겠어요?”
루이제가 제안했다. 솔직히 세하가 보기에는 한차례 화력 지원을 해서 지금 한창 밀리고 있는 지구의 병력을 돕는 것도 좋아보였지만 지금 프로타 에고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여서 전방을 주시하게 되었다.
키아아아아!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가 울부짖었다. 보통은 이런 포효는 상대에게 위협과 각종 디버프를 거는 일이 잦았는데 지금 세하는 프로타 에고가 상당히 불안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사방에 깔린 엑펠트 군들의 움직임도 이상했다. 분명 세하가 귀환했을 때는 맹공을 펼치는 것 같았지만 엘렉티오 BC가 모습을 드러내고 프로타 에고가 포효를 하자 오히려 혼란해 하는 모습이 역력해보였다.
“네 말 대로네. 그럼 가보자.”
세하가 작정하자 메인 암 양 쪽에서 사이킥 블레이드의 칼날이 세차게 분출되었다. 게다가 원래 주포를 담당한 하부의 브레이크 버스터 캐논도 강렬한 빛의 칼날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건 탑재기인 엘렉티오 FB들도 마찬가지였다. 각기 1쌍의 사이킥 블레이드를 고출력으로 뿜어내며 돌격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거기에 세하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