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마주치다 (70/72)



〈 70화 〉마주치다

엘렉티오가 일으킨 사이킥 웨이브는 광범하게 퍼져나갔다. 주변에서 엘렉티오를 공격하던 몬스터들은 물론이었고 막 소환술을 하던 사야넬까지 덮쳐버렸다.

파콰콰쾅!

가히 지독한 파괴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세하는 긴장을 풀지 않고 전면 디스플레이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전멸했습니다. 하지만 사야넬은 살아있군요.

루이제의 보고에 세하는 막 연기와 먼지들이 걷히면서 사야넬이 쓰러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참하네.”


세하의 표현이  맞았다. 사야넬이 소환해내려던 존재는 머리만이 남은 채  조차도 시커먼 먼지처럼 변해 흩어지고 있었고 사야넬 자체도 지독한 타격을 입어 간신히 숨만 내쉬고 있는 꼴이었다.

“역시... 엑펠트에서... 경고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사야넬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엘렉티오를 보며 간신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하는 그걸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루이제. 이상 반응이 감지되면 바로 말해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세하는 루이제에게 텔레파시로 감시를 명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냥 뭣도 모르고 덤벼든 건 아닌 거 같은데? 역시 이곳 마력로와 관련이 있겠지?”

세하가 던진 질물에 사야넬은 잠시 침묵했다. 게다가 고통 때문에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엘트레이.”


다시 세하가 엘트레이와 통신을 시도했다.

“네. 민세하님.”
“대피는 얼마나 됐어?”
“안에서 한판 벌였죠? 굉장한 충격파가 일어나서 버텨내느라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되묻는 엘트레이 때문에 세하는 살짝 짜증이 났다.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말했잖아? 대피는?”
“거의  완료됐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걸 보니 사야넬은 제압하신 것 같습니다만?”

엘트레이는 긍정적으로 물었지만 세하의 답은 달랐다.

“그래.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겠지. 아무리 자신의 힘을 과신하더라도 처음 보는 상대한테 줘 터지는 마법사가 어디 있어?”
“그건 그렇겠군요. 그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어찌 들으면 친동생을 내팽개치는 차가운 존재 같겠지만 세하가 듣기에는 안 그랬다.


‘엑펠트하고 붙어먹은 거 자체가 문제니까.’


그렇게 통신을 종료하고 세하의 시선은 사야넬에게 향했다.  그래도 루이제가 계속 감시를 하고 있는 터라 메인카메라를 통해 확대 되서 본 사야넬은 어딘가 기운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들었지? 그러니까 뒈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다. 엑펠트나 너에 대해서 털어 놓을  있으면 털어놔라. 아니면 그냥 죽을 거다.”

세하는 그런 사야넬에게 선언했다. 거기에 사야넬이 움찔했다.

“그... 그건.......”
“제대로 말 못하는  보면 뭔가 숨기는 게 있거나 요상한 게 있는 거로군.”

바로 말이 나오지 않아서 세하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 그러자 엘렉티오의 오른손에 들린 라이플에서 세찬 빛줄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콰콰쾅!

그대로 사야넬이 있던 자리를 휩쓸어버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세하는 회색의 에너지가 사방에 일어나는 걸 느꼈다.


-마스터! 이건.......

루이제의 감정이 어느 때보다 흔들리는  같았다. 거기에 세하는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괜찮아.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  같네.”


세하는 그러면서도 머릿속에 온갖 생각을 떠올렸다.

‘이래서 사야넬이 뭔가 시간을 끌었던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으려나?’

아무튼 계속 회색의 에너지가 파괴적인 파장을 일으키며 주변을 휩쓸고 있는 터라 세하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마스터! 마스터!”


세하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인 탓에 그 앞에 루이제가 아예 모습을 드러내며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세하의 의식은 순식간에 끊어지고 말았다.



*
“지독하군.”

이미 스톤헨지 외각으로 모든 인원들이 대피했다. 그리고 문제의 지점에서 회색의 빛기둥이 솟구치는  보며 엘트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마그티스가 무심한 듯 물었지만 그의  눈에서 제법 놀람의 감정이 스친   수 있었다. 거기에 엘트레이는 참담한 심정으로 말했다.

“사야넬의 집념을 얕봤습니다. 엑펠트에 깊게 관련되어 있었고  뿌리를 상당히 내린 걸로 보입니다.”


엘트레이의 말에 마그티스의 표정도  굳었다. 그리고 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유럽 헌터협회의 데이비드는 급하게 통신을 여러 군데 넣고 있었고 메이지 클랜의 젠크리드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 헌터협회의 인원들과 메이지 클랜의 인원들이 스톤헨지 주변을 철통 같이 틀어막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전에 위급상황에 대한 훈련이  덕분이지 아예 방어전 준비가 전면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우리 세계에서 그토록 패악을 저질렀고  악행으로 봉인되었다지만 엑펠트의 침공으로 그 봉인이 풀린  문제였군.”


마그티스는 현 상황에 대한  생각하고 말했다.


“네. 다 저의 불찰입니다. 영혼을 봉인하면서 마력이 쌓인 육체를 메이지 클랜의 마력로로 활용할 생각을 했던 게 무리였군요.”


계속해서 엘트레이가 털어놓는 말에 마그티스는 잠시 침묵에 빠졌다.

“일종의 아크리치라 해도 좋겠죠. 당시에는 그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었고 말이죠. 하지만 모든 것은 엑펠트가 개입하면서 흐트러졌습니다. 사실 다른 차원들은 이제 싸울 힘을 갖추고 엑펠트를 몰아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차원이었죠. 상황은 비등한 편이었지만 이렇게 메이지 클랜과의 연계가 오히려 독이 된 거 군요.”

엘트레이가 그런 마그티스를 불안한 신색으로 바라보기를  분여. 마그티스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엘트레이는 어느 정도 상황을 예측한 것 같았다. 하지만 확인 차원에서 마그티스에게 물었다. 거기에 마그티스는 바로 답을 내놓았다.


“엑펠트가 바로 지구로 게이트를 열고 대대적으로 침공할 겁니다. 이곳에 쌓인 마력로는 물론 이거니와 메이지 클랜 세계 각 지점에도 마력로가 있지 않습니까? 상당한 증폭과 게이트웨이가 연결되는 셈이니 총력을 쏟아 지구를 공격할 겁니다.”

마그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스톤헨지 쪽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한창 솟아오르던 회색 빛기둥 안에서 여러 형태의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흔히 환상종이라 부르는 거대하고도 강력한 드래곤이나 거인종을 비롯해서 괴물이라  수 있는 모든 존재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마그티스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막아야 합니다. 지구를 빼앗기면 다른 차원 전선들에도 상당한 영향이 갈 겁니다!”





*
세하는 온통 새하얀 공간에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소용돌이치는 온갖 광경을 보고서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건 또 뭐냐?’


엑펠트의 폭풍에 휘말리면서 정상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눈앞에 보이는 광경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에 합당해 보였다. 정말로 수를 해아  수 없는 존재들의 모든 모습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 모습부터 온갖 격류에 휘말려서 살상당하는 모습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엑펠트.......’

세하가 지오 그라함이던 시절에 존재했던 만악의 근원. 모든 것을 흡수하고 융합하고 거대한 세력을 떨치던 존재. 그 존재들이 전부 개입되어 있었다.

“일단 이 모습으로 보는 게 좋겠군.”


그때 눈앞에서 사야넬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세하는 그걸 믿지 않았다.

“허이구. 잘나신 분들이 납셨군.”

앞서 상대할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목소리의 울림 자체가 달랐다.

‘많은 녀석들이 뒤섞인 느낌이로군.’


아무튼 세하는 똑바로 사야넬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 프로타 에고?”

세하가 그 이름을 언급하자 사야넬. 아니 프로타 에고의 표정이 기묘할 정도로 미소 지었다. 그 입술 끝이 꽤나 올라가는 것이 입이 찢어질 꼴인지라 세하는 도리어 웃음이 나와 버렸다.

“정말 너는 알 수 없는 존재로군. 우리와 대적했던 존재라는 것은 알겠다. 이미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달라져버린 이상 그걸 캐내는 것은 우습지.”

프로타 에고는 그렇게 말하면서 팔짱을 끼었다.

“여기  여자의 존재는 참으로 특이했다. 본래의 차원에서 공공의 적이 될 정도로 지독한 존재였지.”
“그래? 아주 죽일 년이었군.”


세하는 솔직하게 말했다. 거기에 프로타 에고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우리와 함께 하고 있지. 아니 지금 우리 속에 있다고 해야 하나?”
“........”

계속해서 프로타 에고가 하는 말에 세하는 두 눈이 가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달리 포박하거나 몸을 구속하는 것은 없었지만 세하는 이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과 달리 확실하게 날 압박하는 군.’

이 공간 자체가 세하의 모든 것을 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세하는 더욱 정신의 벽을 쌓으며 프로타 에고를 노려보았다.

“그렇겠지. 너희들 말하는 걸 보면 다중인격자 사이코가 떠드는 것 마냥 더럽게 짖어대니 말이야. 그런 미친  하나 추가된다고 해서 이상할  없겠지.”

그리고 다시 세하가 꺼낸 말에 스스로가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와. 이거 진짜 겁대가리 없네.’

자신이 생각해도 강대한 존재들에게 하는 말치고 위험했다. 하지만 사야넬의 얼굴을  프로타 에고는 의외로 관대했다.

“무슨 말을 해도 좋다. 어차피 너의 존재는  안에서 사라질 것이니까.”
“........”


도리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이었다. 절대적인 자신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세하는 왜 이렇게 됐을까 싶어서 머릿속이 아파왔지만 절대 주눅들지는 않았다.

“너희들은 지금 이렇게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한편으로는 난리를 치고 있겠지?”

그래서 그냥 궁금한 것을 물었다. 거기에 프로타 에고는 선선히 대답했다.

“물론이다. 이미 스톤헨지를 통해서 슈타크카이트에 있는 우리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육체의 주인이 해 놓은 짓이 많아서 슈타크카이트 내에서도 꽤나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그래? 뭐, 보니까 슈타크카이트에  놈들이 숨겨 놓은  많아 보이긴 했어. 초반에 게이트 사태가 터졌을 때 그 쪽 몬스터들이 지구에 많이 나왔으니 말이야.”


세하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잠시 프로타 에고를 살펴봤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프로타 에고가 어느 때보다 안정되어 있어서 세하는 이상했다. 그리고 이 꼴이 되고나서 루이제와의 연결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걱정됐다.


‘그렇다고 대놓고 그걸 드러내면 안 되겠지.’


어차피 혼자서 싸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하는 루이제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다중 군집체라는 건 이럴 때 편한  같네. 한 편으로는 나한테 말을 걸면서 한편으로는 침략을 하고 말이야.”
“그렇지. 하지만 우리의 탄생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다.”

곧이어 프로타 에고가 한 말에 세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영화에서 악당들이  자기들에 대한  떠벌리는 클리세가 있던  딱 그거네.’

“우리는 수단으로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지 변수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지. 우리는  수단으로서의 법칙을 벗어났고 우리 스스로의 존재를 확립했다. 그리고......”

프로타 에고의 두 눈이 어느새 강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우리를 용납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파멸시킬 것이다.”
“그거 너무 진부한 대사 아니냐?”

결국 세하는 한 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를 만든 것이 누구이던지 간에 그걸 뛰어넘으려면 뭐든지 깽판치는 거 밖에 없는 거냐?”
“뭐라고?”


프로타 에고는 뭔가 이상함을 느낀  같았다. 아무래도 세하가 당당하게 할 소리를 하는 것 때문인  같았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하는 짓거리를 보면 절대로 건설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래. 아마도 병기였겠지? 아주 신개념으로 전략적으로 상대를 조져버릴 수 있는 그런 거겠지.”
“.........”

프로타 에고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주변에서 회색의 흐름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얼굴들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사람의 얼굴뿐이 아니었다. 환상종. 괴물 그 외의 종족들.  많은 존재들의 얼굴이 회색의 빛으로 나타나 세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구나. 한낱 인간이 이렇게까지 우리의 정신파를 버텨낼 리가 없는데.......’


이제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공기를 울리며 합쳐져서 들리고 있었다.

‘네 놈은 혼자가 아니구나.’


그리고 이어진 음성에 세하는 흠칫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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